요한이 기록한 복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9-02 09:13 조회3,655회 댓글0건본문
요한이 기록한 복음
요한이 기록한 복음
2019년 09월 01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21:24~25
본문 요한복음 21장 24절에 보면,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된 줄 아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요한복음을 기록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1장 20절에 보면,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을 가리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만찬 때에 예수님께 기대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모로부터 특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막내아들처럼 사도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마지막 만찬 때에는 예수님의 품에 안겨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가장 장수했습니다. 제자들 중 순교한 사람이 많은데, 사도 요한은 순교한 제자들 중 가장 마지막에 순교했습니다. 그러니 사도 요한은 특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사도 요한이 말한 것처럼 제자들 중에 요한을 특별하게 생각하셨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모두 똑같이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으로부터 똑같이 사랑을 받았지만,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특별히 사랑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똑같이 사랑하지만, 자녀들 중에는 ‘부모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자녀도 있고, ‘부모님은 왜 나를 사랑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사도 요한과 같은 믿음이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믿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목회자 모임에서 간증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보다 저를 일곱 배 더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저를 아껴주시는 형님 목사님께서 “하나님께서 너만 사랑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농담으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그것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되어지는 일을 볼 때, ‘하나님께서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시는구나.’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믿기 때문에 행복하게 목회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사도 요한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특별히 사랑하신다.’라고 믿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4복음서를 기록한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이후에 4복음서를 기록했습니다.
사도행전 1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성령의 세례를 받기 위해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전심전력하여 기도한 사람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이 성경을 기록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에 보면,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의 예언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학문을 연구하듯 성경을 해석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에 성경의 뜻을 똑바로 알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것이 성경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깨닫게 하시고 말씀해주셔야 성경의 뜻을 똑바로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는데, 성령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십니다.
설교를 듣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잊어버립니다. 그래도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성경을 많이 읽고, 말씀을 많이 들으세요. 성령께서 기억나게 하실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할 때에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아마 1백 세쯤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수십 년이 지난 후에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말씀하신 것이 많고, 행하신 일이 많을 텐데, 사도 요한은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했을까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것을 성령께서 기억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십니다. 때로는 우리에게 영감을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하십니다.
제가 은퇴하기 전에는 매일 오전 10시까지 기도했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고 교역자가 많다 보니 제가 교역자들을 일일이 관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제가 할 일은 기도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나든지 오전 10시까지는 기도하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했습니다. 때로는 12시까지 기도할 때도 있었습니다.
제가 교회의 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나서서 문제를 해결한 것보다 더 좋은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기도 시간이 귀하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축복하시고 모든 것을 잘 해결해주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며 하나님께 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또 열심히 일하시겠구나. 하나님께서 바쁘게 일하시겠구나.’라고 생각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설교할 수 있는 좋은 영감을 제게 주십니다. ‘이 말씀을 놓치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고 빨리 적습니다. 그러고 난 후에 계속 기도합니다.
계속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영감을 주십니다. 그렇게 해서 기도하다가 설교 세 편을 쓴 적도 있습니다.
선교지에 집회를 인도하러 갔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새벽에 잠을 깨우셔서 기도하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날 제가 전해야 하는 말씀을 새롭게 주십니다.
설교 준비를 다 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새벽에 새로운 말씀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면, 저는 다 받아 적습니다. 그래서 그 날 새벽에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할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일하십니다.
저는 평소 기도하다가 받은 복이 많습니다. 목회하다 보면, 교회마다 문제가 있습니다. 골치 아픈 문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문제를 쌓아놓고 목회하지 않습니다. 기도로 문제를 해결하며 목회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목회하며 고민합니다. 고민을 안고 목회하는 목회자가 많습니다.
그런데 저는 날마다 기도 시간에 집중해서 기도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합니다.
여러분도 문제를 안고 있을 것입니다.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풀리지 않는 것이 있어 괴로우실 것입니다.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을 안고 살지 마세요. 날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면 간증거리가 많아집니다.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실 때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것을 간증하면,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사탄 마귀는 거짓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반드시 그대로 됩니다.
그런데 뱀은 하와에게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고 말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뱀에게 속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열 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지 않은 한 번은 사탄의 소행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시기 때문에 언제나 진리만 말씀하십니다.
사탄은 그럴 듯하게 말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거짓말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우리가 누구의 말에 귀 기울이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사탄의 말에 귀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쳐야 합니다.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은 악령입니다. 거짓의 영입니다. 악령의 말에는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누구의 말에 순종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말에는 순종할 수도 있고,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형편에 따라, 생각에 따라 순종할 수도 있고, 순종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는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요, 생명의 말씀이요, 축복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복 받는 길이요 행복하게 사는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의 말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다 중요하지만, 성경 중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서입니다.
성경의 다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성경 저자를 통해 전해주는 것입니다. 이사야서는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기록한 것입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므로 가장 정확한 말씀이요, 가장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4복음서를 많이 읽어야 합니다. 성경 전체가 중요하지만, 4복음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계시적 말씀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개인에게 찾아가셔서 말씀하신 것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모두 계시의 말씀이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계시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셔서 말씀하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찾아가셔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 가운데에서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메섹으로 가는 사울을 부르시고 사울에게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장 2절에 보면, 성령께서 안디옥교회를 향해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7절에 보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 예수의 영, 성령이 항상 계십니다. 성령께서 하라고 하실 때도 있지만, 하지 마라고 막으실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야 합니다.
사도행전 22장 18절에 보면,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그들은 네가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사도 바울을 찾아가셔서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2장 21절에 보면,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23장 11절에 보면,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해 말씀하실 때에 항상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계 2:7,11,29, 3:6,13,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령께서 책망하실 때도 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귀를 기울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지 못합니까?
첫째,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그렇게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순종하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셋째,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불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철저히 회개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철저히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불을 받지 못합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죄 사함 받은 것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하실 뿐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선물을 받을 때까지 철저히 회개해야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0~31절에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말씀해주시지만, 표적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가 기뻐하시지 않는가, 하나님의 뜻인가 아닌가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표적을 통해 하나님의 생각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저는 결혼할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여 응답 받은 후에 결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과 살아라”고 직접 말씀하신 것은 아닙니다.
저는 급한 마음에 “세 가지 표적을 보여주세요. 그러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제게 짝지어주신 사람인 줄 알고 결혼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첫째, 만났을 때에 마음이 편안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평생 같이 살 사람인데, 만났을 때에 마음이 편안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만났을 때에 마음이 편안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둘째, 우리 가족 중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반대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뿐 아니라, 작은 트집도 잡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셋째, 목사님 부부가 이 소식을 듣고 좋아하시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결혼을 위해 기도하며 이 세 가지 표적을 하나님께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결혼했습니다.
1982년에 안식년을 맞이해서 미국에 가기 전에 저는 기도했습니다. 미국에 가는 것도 좋지만, 미국에 갔다 온 후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 “아버지, 제가 미국에서 1년 동안 공부하는 것이 제가 하나님을 위해 사는 데 도움이 되고 필요하다면, 비자, 입학 수속 등 준비하는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게 해주세요. 그러나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신다면, 제 길을 막아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여권을 신청하러 서울에 갔습니다. 수요일에 여권을 발급받았습니다. 목요일에 비자 발급을 위해 준비하고, 금요일 아침에 비자를 발급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제가 기도한 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으로 기도했을 뿐인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표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에 공부하러 가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것이 제 목회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은
첫째,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메시아이신 것을 증거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지금도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아이신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을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를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신ㆍ구약성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신ㆍ구약성경에 보면, 메시아에 대한 약속의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후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동정녀의 몸에서 탄생하실 것을 창세기에서부터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의 중심은 예수님이십니다.
창세기 22장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6절에 보면,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기 26장 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삭의 자손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인해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의 복, 죄 사함 받고 천국에 들어가는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보다 귀한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무엘하 7장 16절에 보면,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보면, 다윗의 나라는 끝났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네 나라’는 메시아의 나라입니다. 다윗의 자손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히 보전되고 견고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메시아를 가리켜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 15절에 보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 큰 음성들이 나서 이르되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시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의 나라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영원할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한쪽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가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강도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강도는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만주의 주,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신가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과 그리스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사람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둘째,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31절에 보면,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생명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멸망하지 않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구원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구원 받는 믿음을 가진 사람은
첫째, 하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압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압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가장 정확합니다.
요한복음 6장 67~69절에 보면, “예수께서 열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게 됩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하나님을 항상 의지합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입니다.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늘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순종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때에는 괴로운 것이 정상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할 때 기쁘고,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괴롭다면, 그것은 구원 받은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제멋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영생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알게 하여 믿음으로 구원 받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21절에 보면,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도했다고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4~5절에 보면,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께서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예수님을 믿게 할 수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보면,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거듭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의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게 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고,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구원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곧 성령의 은혜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 받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에 누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습니까?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은 다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에베소서 1장 4~6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신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만날 때에 확실한 믿음이 우리에게 생깁니다. 사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사울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사울은 목숨 걸고 예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 만큼 확실한 믿음은 주님을 만날 때에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의 눈에 예수님이 보인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주님을 만날 때, 말씀으로 만납니다. 주님의 형상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사무엘상 3장 2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살겠다고 결심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평생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렇게 살기로 결심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저는 죽고 싶어서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죽일 수 없어 저를 죽이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애원하듯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의심할 수 없도록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의심하겠습니까.
그런데 신학교에 가서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개척 교회에서 사역하게 하셨습니다.
한 주에 열 번 설교해야 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며 말씀을 준비하려니 딴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신학교에 다니며 너무나 실망한 나머지 절망감을 느껴 목회를 그만둬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2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나도 너처럼 마음이 아프다. 그래서 많은 목회자들이 포기하고 목회를 그만두는데, 너까지 그만두면 되겠느냐. 너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어 한국 교회를 개혁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후, 목회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1장 25절에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에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사도 요한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의 내용에 보충하여 요한복음을 기록했다는 것과 사도 요한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보다 더 자세히 기록하려고 애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복음서를 비교해보면, 같은 사건에 대한 기록인데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보면, 제자들은 귀신 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마 17:19)”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마 17:20)”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같은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마태의 기록과 마가의 기록이 다릅니다. 마태의 기록과 마가의 기록을 합해서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기도하면, 마치 겨자씨가 자라는 것처럼 믿음이 쑥쑥 자랍니다. 믿음이 아무리 작아도, 기도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에 한 여자가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과 22장, 26장에 보면,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다 조금씩 다릅니다. 한 사람이 같은 사건을 기록한 것인데도 똑같이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간증할 때에 전체를 이야기할 때가 있고, 한 부분을 이야기할 때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의 저자마다 각자 기억하는 것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리고 기록할 때에 표현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같은 사건에 대한 기록이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성경에 기록된 사건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21장 25절에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행하신 일을 다 기록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을 아쉬워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에 보면,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왜 성경을 알아야 하는가,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주님을 바르게 알고,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