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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21장

너는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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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26 10:02 조회3,7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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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를 따르라


너는 나를 따르라
2019년 08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21:18~23

4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여러 번 책망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 믿음이 작은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큰 놀이 일어나는 바다를 보고 무서워하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마 8:26)”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가셔서 매를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지만, 예수님께서 붙잡히셨을 때에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서 들은 제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제자들은 크게 기뻐하거나 감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있던 곳에 찾아오셨을 때에도 제자들의 반응은 미지근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서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그곳에 있다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예수님께 달려가 예수님을 끌어안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제자들 중에 그렇게 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보면,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은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가 다가왔을 때에는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부활하셔서 제자들 앞에 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기뻐하지도 감동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통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요 우리도 다시 살아나 영생을 누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전혀 감동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한심한 제자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만약 이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지 않으셨다면, 제자들은 본래 자기들의 자리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내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다시 찾아오셔서 제자들에게 사명을 다시 확인시켜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요 21:1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네 어린 양’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을 가리킵니다.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을 예수님께 맡기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 받을 사람입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 제자들의 사명입니다. 이것을 하다가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무엇을 하다가 예수님을 맞이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어린 양을 먹이는 일, 하나님의 어린 양을 치는 일에 충성하다가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4장 44~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 예수님의 양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 함께 은혜를 받는 가운데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이 가장 복 있는 사람입니다.

왜 이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 열심히 살다 보면, 자신의 신앙이 건강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장차 받을 상급이 크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이제 결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위해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기억하고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을 머리로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첫째,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집착하면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주의 일을 할 수 있겠나.’, ‘나 같은 사람은 조용히 예수 믿다가 천국에 갈 수 있으면 좋지.’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말씀하셨음에도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갔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면,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나설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과거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보지 않으시고 현재를 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를 보지 않으시고 현재를 보시는데, 과거에 집착해서야 되겠습니까. 과거를 생각하고 과거에 매여서는 안 됩니다.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큰 죄를 범한 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돌이키고 살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과거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 사람이 범한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돌이켜 바르게 살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살아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되고 축복이 되고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이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다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5장 11~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과거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작은 아들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고 생각하고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아들의 이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은 아들의 과거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좋은 옷을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아버지는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돌이켜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과거를 보지 않으십니다. 돌이켜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모습만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죄인이라도 돌이키면 삽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매이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 우리의 모습을 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내 모습을 보고 계십니다.

둘째,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 같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지 못합니다.

왜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할까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항상 은혜를 사모합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기 원합니다. 그것을 놓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불을 받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합니다. 밤낮 기도를 하지만, 성령의 충만함을 받지 못한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한 후, 전도사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제 심령이 너무 답답했습니다. 이렇게는 살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서울 불광동에 있는 산에 올라갔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벼랑 끝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불 받기 전에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벼랑 끝에 앉아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루가 지나도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여전히 답답했습니다. 목은 마르고 피곤하고 배고팠습니다. 이틀이 지나도 변함없었습니다. 억울해서 내려갈 수 없었습니다.
화요일 밤에는 절벽 끝에 앉아 ‘오늘 밤에는 끝장낸다. 불을 받던지, 몸부림치며 기도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던지 오늘 밤에는 끝장낸다.’라고 생각하고 기도했습니다.
불은 내리지 않고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속옷까지 다 젖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생각해보니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힘을 다해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순간 불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기쁘고 좋았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가 떴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제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에도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확실히 성경의 불을 받은 후에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기도하지만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항상 기도합니다. 그러나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기도하기 시작하면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해보세요. 그러면 간증거리가 많아집니다. 어떤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든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면 기도하다가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하다가 하나님을 만납니다. 기도하다가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다가 인생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지만, 성령의 은혜를 확실히 받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의 은혜를 받을 때까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작정하고 기도해보세요. 금식하며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보세요. “아버지, 이번에는 꼭 응답을 받아야겠습니다. 꼭 은혜를 받아야겠습니다. 응답을 받기 전에는, 은혜를 받기 전에는 절대 물러나지 않겠습니다. 기도하다가 죽어도 좋습니다.”라고 결심하고 기도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찾아오실 것입니다.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기도하다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으면, 성령의 권능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복음의 증인이 됩니다.

본문 요한복음 21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한눈팔지도 말고 방황하지도 말고 목숨 걸고 충성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언제 가장 강해집니까? 목숨을 걸 때 가장 강해집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큰 일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제가 공군 군목으로 복무할 때의 일입니다. 일월산에 있는 부대에서 복무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복무했습니다.
일월산에 있는 부대에 부임하고 첫 번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온 장병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저는 날마다 강단에 올라가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해주세요.”라고 날마다 울며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게 “내가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에야 너를 구원할 수 있었다. 네가 전 장병을 구원 받게 하려면, 얼마나 희생해야 하는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하려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는 죽어도 좋습니다.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퇴근 후에 집에 와서 아내와 딸을 처가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는 짐을 싸서 부대 내에 있는 교회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군목 월급을 전도하는 데 다 썼습니다.
새벽 1~2시가 되면, 커피와 과자봉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보초 서는 장병들에게 그것을 나눠줬습니다. 장병들이 커피와 과자를 다 먹고 나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줬습니다. 축복기도를 해주면 대부분 울었습니다. 그리고 주일이 되면 교회에 와서 앉아있었습니다.

이것이 소문났습니다. 부대장이 감동을 받고 교회에 왔습니다. 어떻게 왔는지 물어보니 예배드리러 왔다고 했습니다.
이등병 몇 명 밖에 없는 것을 보더니 방송실에 가서 전 장병 교회로 집합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부대장 덕분에 교회가 꽉 차서 예배드렸습니다.
연말이 되었습니다. 부대장이 새해에는 전 장병을 신자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전 장병에게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 4영리를 외우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 해에 전 장병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나중에는 장교 부부가 찬양대에 섰습니다. 부대장 부부가 앞자리에서 예배드렸습니다. 그리고 전 장병이 예배드렸습니다.
저는 전 장병을 예수 믿게 하기 위해 목숨 걸었습니다. 목숨을 거니까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하셨습니다.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제자가 생겼습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실수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베드로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베드로로 하여금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하라는 의미입니다.

제가 늘 기도하는 것이 있습니다. 저는 “복음을 전하다가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게 해주세요. 병들어 죽는 것이 아니라 순교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이 제 소원입니다. 제가 늘 이렇게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저를 세계 여러 나라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하십니다.

가장 좋은 소원은 어떤 고난이 있어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기 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소원을 가지기만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기만 해도 복을 받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1장 19~23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더라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만찬 때에 예수님의 품에 의지해서 “주님, 주님을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요한에 대해 궁금했는지, 예수님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질문에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다른 사람의 마지막에 대해 알려고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마지막에 대해 안다고 한들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겠습니까. 마치 자신이 선지자가 된 것처럼. 하나님이 된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미래에 대해 아는 것은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고 우리를 망하게 하는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발견한다면, 그 사람의 마지막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돌이키면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못된 인간이라 망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훌륭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존경해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본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이것이 좋은 자세입니다.
잘못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야 합니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잘 될 수 있도록 축복해야 합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 사람을 도우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21장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다른 사람의 마지막에 대해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주님만 따르기 위해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 17~30절에 보면,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네가 계명을 아나니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속여 빼앗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그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예수께서 둘러 보시고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도다 하시니 제자들이 그 말씀에 놀라는지라 예수께서 다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나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놀라 서로 말하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는가 하니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될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 고난이 있고 박해가 있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백 배의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장차 받을 상급과 영광이 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말고, 오직 주님만 따르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말씀대로 실천하여 열매 맺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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