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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20장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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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8-07 13:46 조회3,494회 댓글0건

본문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19년 06월 30일(주일3부예배)

본문 / 요한복음 20:19~23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주일에 부활하셨습니다.

주일에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에 가장 먼저 찾아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에 막달라 마리아를 가장 먼저 만나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장 먼저 만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제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굉장히 기뻤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숨어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까지 제자들은 하루 종일 불안해하며 지냈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렇게 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큰소리쳤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4)”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라고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 이렇게 제자들은 예수님께 못할 짓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제자들은 예수님 앞에 고개를 들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도 예수님을 뵐 용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19절에 보면, “이 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권세가 있고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사람을 두려워하면 모든 일에 실패합니다.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왜 유대인들을 두려워했을까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붙잡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유대인들에게 붙잡히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문을 잠그고 숨어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은 믿음이 없는 사람, 믿음이 있어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모습과 같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제자 중 둘이 엠마오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거기서 만났습니다.

누가복음 24장 36~40절에 보면, “예수께서 친히 그들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니 그들이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이렇게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매 순간 두려워하고 걱정하고 의심했습니다. 제자들은 절대주권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축복을 받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 해도, 하나님께서 살리시면 살아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1천 명의 원수가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면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왜 죽음을 두려워합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빌립보서 1장 23~24절에 보면,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속히 이 세상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을 생각하니 이 세상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성도들을 생각하면 성도들과 함께 있는 것이 유익하리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빨리 천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천국과 지옥에 분명히 있다는 것과 자신은 구원 받았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큰소리쳤습니다. 우리는 이런 베드로를 보고 ‘믿음이 좋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다 도망갔습니다. 이 모습을 보면 이들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보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닭 울기 전에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할 것을 아셨습니다.

베드로가 아무리 큰소리 쳐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잘 아십니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숨어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실망스럽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제자로 만드시기 위해 3년 동안 얼마나 수고하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먹고 자며 그들을 훈련하고 교육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예수님께서 실패하신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바라는 일꾼의 기준이 굉장히 높았습니다. 그런데 제가 원하는 일꾼의 기준에 맞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 왜 우리 교회에는 100점짜리 일꾼이 한 사람도 없습니까.”라고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저절로 사람이 되는 줄 아니. 사람으로 만들어야 사람 노릇을 한단다. 좋은 일꾼이 저절로 생기는 줄 아니. 좋은 일꾼으로 만들어야 한단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만들죠?”라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교육하고 훈련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게는 밑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목회자들을 초청해서 목회하면서 잊을 수 없는 직분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매년 초에 3개월~6개월 간 주일 저녁에 외부에서 목회자를 초청해서 1시간씩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훌륭한 일꾼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듣다보면 세뇌되어버립니다.

 

그렇게 했더니 우리 교회의 일꾼들이 변화되었습니다. 장로님들이 다른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장로님들이 되셨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장로님들이 당회실에 모여 싸웁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장로님들은 당회실에 모이면 1시간씩 기도하십니다. 기도한 후에는 서로 안아주고 축복합니다. 이런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 후로 우리 교회에 간증거리가 얼마나 많아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저는 기도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대로 하여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은 실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이 교육하고 훈련하는 것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 실패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신 자신의 목적과 뜻에 따라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심한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평강의 축복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세상에 난리가 있어도 전혀 걱정되지 않고 마음에 평안이 있다면, 이것은 영과 육, 정신과 신앙이 건강하다는 의미입니다.

평강의 복은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습니다. 다른 데서는 평강의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가 근심하고 두려워하고 평강을 누리지 못합니까? 모르기 때문입니다. 첫째, 미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둘째, 살 길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셋째, 문제의 해결책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모든 것을 가르쳐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 계신 성령께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우리 안에 넘칠 것입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20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십자가에서 못에 박혔던 두 손과 창에 찔렸던 옆구리를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로 하여금 눈으로 보고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미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의 손을 만져보았을 것입니다. 못 자국을 눈으로 확인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게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에 대해 확신을 갖게 하시려고 제자들로 하여금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게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어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막달라 마리아를 통해 알았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실제로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를 만져보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확신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음을 확신한 제자들은 기뻤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부활할 것을 생각하니 기뻤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제자들은 그 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는 순간, 자신도 부활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기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예수님의 몸은 또 다시 죽는 몸이 아닙니다. 병들고 아프고 늙고 쇠하는 몸이 아닙니다. 영생하는 몸입니다.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4절에 보면,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들릴 때에 우리의 몸은 썩지 않는 몸, 죽지 않는 몸, 영생하는 몸으로 한 순간에 변합니다.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까.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도 죽어 이 세상을 떠납니다. 그들은 다 천국에 가있습니다. 천국에서 편안하게 있습니다. 기쁘고 즐겁게 있습니다. 입에서는 찬양이 저절로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그들은 부활합니다. 영광스러운 몸, 영생하는 몸으로 부활합니다. 다시는 병들지 않습니다. 늙지 않습니다. 죽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삽니다.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척, 친구가 죽었을 때,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당분간 보지 못하는 것을 생각하면 슬픕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죽는 순간 세상 고생이 끝났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은 순간 천국에서 눈 뜹니다.

 

천국에 가면 얼마나 기쁘고 좋겠습니까. 그들은 아마 천국에서 춤추며 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기도하며 살 것입니다. 그렇게 지내다가 예수님께서 오시는 날에 부활하여 우리와 함께 만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신앙을 확실히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환난이 와도 담대하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부활신앙을 확실하게 하시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요한일서 1장 1~3절에 보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 내용입니다.

사도 요한이 책을 보고 안 것도 아니고, 누가 가르쳐줘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사도 요한이 직접 눈으로 보았다고 했습니다. 손으로 만져봤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의 증인으로서의 자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신 것은 제자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에게도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우리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만난 하나님, 우리가 아는 하나님, 우리가 체험한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목회자만 하나님을 전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하나님을 전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님의 증인으로서 사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책을 통해 예수님을 알고, 전도 받아서 예수님을 알고, 설교를 통해 예수님을 알 뿐입니다. 간접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을 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확신이 없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여러 번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예수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에게도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을 반드시 만나시기 바랍니다.

 

제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예수님을 확실하게 만난 목회자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사례비를 주든 주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핍박이 있어도 개의치 않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런데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사울은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목숨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둘째, 성령을 충만히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성령을 체험했습니다. 기쁘고 좋았습니다. 은혜 받으신 분은 다 체험하셨을 것입니다. 그런 기쁨을 어디서 누릴 수 있겠습니까.

 

성령을 체험하니 구원의 확신이 생겼습니다. 천국에 갈 것을 확신했습니다. 천국에 가서 예수님을 만날 것을 확신했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생기니 담대해졌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노래 부를 기회가 생기면 저는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1절만 부른 것이 아니라 끝까지 다 불렀습니다. 저는 얌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체험한 후에는 담대해졌습니다.

성령을 체험한 후에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위해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면서 평생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순교할 것을 각오하고 삽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면, 포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삽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저를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22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향하사 숨을 내쉬며 이르시되 성령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시며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성령과 함께하지 아니하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과 함께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으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1:3~14)”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사해주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구원 받게 하시고 믿음으로 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다 구원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시작하시고 끝내십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해야 우리가 성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합니다. 성령과 함께 일하면, 모든 일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은 후에 일을 시작하라는 의미입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이 말씀에 순종하여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그리하여 성령을 충만히 받았습니다. 이들은 온 천하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 받았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후, 교회는 큰 환난을 당했습니다. 이때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성도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리하여 안디옥교회를 비롯하여 교회가 많이 생겼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곳에는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들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예수님의 사람, 그리스도의 사람이 두세 명이라도 모인 곳은 교회가 됩니다.

빌립보교회가 그런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를 받은 루디아와 간수가 예수님을 믿어 그곳에 빌립보교회가 생겼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에 그리스도의 사람이 두세 명이라도 있으면 교회가 생길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20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들이 받은 사명이 얼마나 크고 귀중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명이 주는 영광도 크지만, 사명을 감당하려면 책임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해서 죄를 사함 받게 하고 천국에 들어가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5~19절에 보면,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에 믿는 사람도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믿는 사람은 죄를 사함 받습니다.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은 죄를 사함 받지 못하고 천국에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은 매우 존귀한 사명입니다. 영광스러운 사명입니다. 우리의 책임이 매우 큽니다.

 

우리가 복음을 열심히 전했음에도 믿지 않았다면, 믿지 않은 사람의 잘못입니다. 우리는 책임을 다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아서 복음을 듣지 못하고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조건 전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하는 일에 항상 힘써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을 뿐 아니라 말씀대로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성령 충만하여 능력 있는 복음 전도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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