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성령을 보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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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2-31 12:40 조회3,316회 댓글0건본문
내가 성령을 보내노라
내가 성령을 보내리라
2018년 11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6:1~11
예수님의 말씀은 모두 귀합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은 더욱 귀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8~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해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은 우리가 꼭 지켜야 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잊으면 안 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전 아홉 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요한복음 13~16장에 보면, 목요일 밤 마지막 성만찬 자리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 내용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놓치지 않고 자세히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다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는 불의함이 없고 죄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예수님의 제자들은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제자들이 본다면, 제자들은 큰 혼란에 빠질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하게 죽을 수 있는가, 악한 자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면, 의롭고 바르게 사는 사람들이 낙심하기 쉽습니다. 사람들의 신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복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고 믿고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지 않는 악한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신앙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죄가 있거나 힘이 없어서 붙잡혀 매를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6장 53~5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해 자세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신다면,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거짓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히 성경대로 사셨고, 모든 것을 성경대로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얼마나 신실하신가를 나타내 보여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을 행하셔서 악한 사람들을 다 멸하실 수도 있지만 능력을 행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흘 후에 다시 부활할 것을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예수님께서 죽으시는 것과 부활하시는 것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요 16: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실족한다는 것은 핍박으로 인해 믿음이 흔들리거나 넘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은 환난이 오고 핍박이 오면 흔들립니다. 그래서 신앙을 포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실족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2~3)”라고 질문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마 11:9)’라고 말씀하시고,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 보면, 세례 요한이 태어났을 때에 그의 아버지 사가랴에게 천사가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세례 요한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마 11:2~3)”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마 1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어떤 일을 당해도 실족하지 않으려면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야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믿음이 충만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실족하지 않습니다.
성령을 받은 제자들을 보세요.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아도, 낙심하거나 실족하지 않았습니다. 주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기뻐하고,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순교한 후, 교회가 핍박을 받았습니다. 이 일로 인해 성도들이 흩어졌습니다. 이때 성도들은 도망간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어디를 가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전했습니다.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방인에게까지 전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커졌습니다.
이것을 본 그곳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 ‘그리스도인’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이렇게 다릅니다. 핍박이 있다 해도, 기회가 있으면 전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작았습니다. 그래서 실족하기 쉽습니다.
이런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그들이 이런 일을 할 것은 아버지와 나를 알지 못함이라(요 16:2~3)”고 말씀하셨습니다. 출교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열 가정만 모여도 그곳에 회당을 짓고 공동체생활을 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이웃이 되어 서로 돕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이방인들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돌로 쳐 죽여도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공동체로부터 출교 당한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9장 13~22절에 보면, “그들이 전에 맹인이었던 사람을 데리고 바리새인들에게 갔더라 예수께서 진흙을 이겨 눈을 뜨게 하신 날은 안식일이라 그러므로 바리새인들도 그가 어떻게 보게 되었는지를 물으니 이르되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 하니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이에 맹인되었던 자에게 다시 묻되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대답하되 선지자니이다 하니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스데반이 왜 돌에 맞아 죽었습니까? 스데반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전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고, 메시아라고 증거하면 출교하기로 결정되어있었기 때문에 스데반은 출교 당해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이렇게 하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생각한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신가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기다리던 메시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그들이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았다면 이런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이렇게 기도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거나 핍박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을 알면,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섬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가 알게 해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알게 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절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6장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분쟁이 일어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들이 하는 것이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기하고 분쟁하는 사람은 젖먹이 신자요,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입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밤낮 시기하고 분쟁합니다.
예수님만 따라가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저절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것을 모르고 사람을 따라 행하다 보니 파당이 생깁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입을 다물고 기도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탄 마귀와 싸웁니다.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게 하여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사탄 마귀의 소행입니다. 겉으로 보면, 사람이 교회를 분열시키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탄 마귀가 역사하여 교회가 분열됩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겼을 때에 입을 다물고 기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모든 것이 쉽게 해결됩니다. 아침에 안개가 사라지듯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해결해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6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한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한 이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핍박을 당하면 ‘저들이 예수님을 몰라서 우리를 핍박하는구나.’라고 생각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잘 처신해야 합니다.
스데반이 그러했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을 때에는 믿음이 대단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제자들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다고,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셔서 매를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는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실 때와 계시지 않으실 때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할 때에는 믿음이 강해집니다. 그래서 마음이 평안합니다.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이런 때는 영적으로 굉장히 위험합니다. 이런 때에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에 보면,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을 받으면 주님이 내 안에 계신 것과 내가 주님 안에 있는 것을 압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면, 하나님께서 나와 항상 함께하시는 것과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핍박이 왔을 때에 실족하기 쉽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6장 5~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는지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시면, 보혜사 성령께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보혜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를 지켜주십니다.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절대 떠나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놀라운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보다 큰 복이 있겠습니까.
본문 요한복음 16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전에도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셨을 때에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셨습니다.
누가복음 1장 15절에 보면,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모태에 있을 때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장 41절에 보면,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누가복음 1장 67절에 보면,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은 자유롭게 일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떠나신 후에 예수님께서 보내주시는 성령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가 이런 복을 받았습니다.
성령은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하십니다. 성령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예수님을 알도록 우리에게 예수님을 증거해주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십니다.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우리를 책임져주십니다.
성령은 조금도 실수하시지 않으십니다.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100% 천국에 들어가게 하십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인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티켓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 천국 백성으로 인쳐주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신 것은 큰 축복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6장 8~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죄를 책망하심으로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우리가 믿음 없이 행한 것을 책망하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가 몰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했습니다.
성령께서 이것을 책망하셨을 때에 3천 명이 “어찌할꼬” 하며 가슴을 치고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있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시려고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의와 다릅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지만, 예수님 때문에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죄인 취급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빌라도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참 심판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심판을 통해 세상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죄가 무엇이며, 의가 무엇이며, 심판이 무엇인가 압니다. 그러므로 어떤 핍박과 환난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낙심하지 않습니다. 승리할 것입니다. 성령을 충만히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가 모두 성령 충만하기 원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주님을 깊이 알기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늘 기억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원합니다. 어떤 환난이 와도, 승리하게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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