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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5장

박해받는 그리스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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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1-20 11:07 조회3,3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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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 받는 그리스도인

 

박해 받는 그리스도인

2018년 10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5:18~21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모든 저주를 속량 받았고, 아브라함의 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축복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기도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5장 20~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를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증거하는 것 때문에 세상은 우리를 박해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보내주신 하나님을 세상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박해 받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속하여 세상과 짝되어 산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친구가 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과 친구가 되면, 하나님과는 원수가 됩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에 보면,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과 짝하여 세상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면,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됩니다. 이때부터 변화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변화됩니다. 예전에는 유행가를 좋아하여 유행가를 잘 불렀는데, 변화된 후에는 유행가가 싫어집니다. 찬송을 부르게 됩니다. 예전에는 밤낮 소설책을 읽었는데, 거듭난 후에는 성경책이 더 재미있습니다. 예전에는 먹고사는 일에만 전념했는데, 거듭난 후에는 교회에 나와 봉사하는 것이 좋습니다. 예전에는 세상 친구들이 많아 세상 친구들과 술 마시러 다니고 놀러 다니며 별짓을 다 했는데, 거듭난 후에는 세상 친구들이 싫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박해를 받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엡 1:3). 에베소서 1장 4~5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은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사야 43장 1~4절에 보면,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내가 네 대신 사람들을 내어 주며 백성들이 네 생명을 대신하리니”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에서 살다 보면, 강을 건너야 할 때도 있고, 불 가운데로 지날 때도 있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무엇이 아까워서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래서 세상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을 미워하고 박해합니다.

 

셋째,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빛이 된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미워하고 박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살면, 그들의 허물과 죄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자기들의 위선, 거짓된 삶, 죄와 허물이 예수님으로 인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해 자신들의 정체가 드러나니까 예수님을 미워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바르게 살려고 하고,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과 친구가 되어 세상 사람들과 같이 나쁜 짓을 하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 사람들과 달라야 합니다. 그래서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니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이 되면, 하나님께는 영광이 되지만, 우리는 박해를 받습니다. 그러나 장차 큰 영광과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박해 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박해와 고난을 통해 신앙상태를 점검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안할 때에는 믿음의 수준이 어떠한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인해 박해를 받으면, 신앙의 참모습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믿음이 없는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과 박해가 있으면, 신앙이 증명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신앙 상태를 스스로 알 수 있습니다.

 

둘째, 순금 같은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욥기 23장 10절에 보면, 욥은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욥이 얼마나 고통당했습니까. 그런데 욥은 모든 고난이 헛된 고난이 아니라, 고난으로 인해 순금 같은 신앙을 갖게 된다고 고백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고생하며 자랐습니다. 저는 그것을 감사합니다. 고난이 있었기 때문에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큰 문제가 있을 때에는 밤을 새며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성령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목숨 걸고 신앙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만약 고난이 없었다면, 기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고난이 제 믿음을 순금 같이 만들어주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평안할 때에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두려워하지 않고, 항상 기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큰 환난이 오고, 큰 박해가 있어도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구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넷째, 천국에 가서 영광과 상급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보면,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고 기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고난당할 때에 왜 고난이 왔는가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8~20절에 보면,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당하게 고난 받을 때도 있고, 죄로 인해 고난 받을 때도 있고, 선을 행하다가 고난 받을 때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7절에 보면,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을 행했는데도 고난 받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광과 상급을 주시려고, 축복하시려고 고난당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했는데도 고난 받는다 해도 불평하거나 의심하지 말고 장차 받을 영광을 생각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0~21절에 보면,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선한 일 중에 가장 선한 일은 지옥에 갈 영혼을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라고 고백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살면서 박해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고난 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바울은 고난 받는 것을 어떻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주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은 기쁩니다.

둘째, 장차 주님과 함께 영광 받을 것을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장차 받을 영광이 크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으면 달라집니다. 성품이 달라집니다. 얼굴이 밝아집니다. 은혜 받은 사람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합니다. 그래서 저절로 전도가 됩니다.

부인이 먼저 교회 다니며 변화되고 행복해하는 것을 보고 남편이 궁금해 하며 부인을 따라왔다가 남편도 은혜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최고의 전도법입니다.

 

은혜 받는 것은 좋습니다. 교회에 가는 것도 좋습니다. 교회 일 하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살다시피 하며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등한히 하면 안 됩니다.

교회에 빠져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등한히 하면, 주위 사람들이 비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박해가 아닙니다. 자신이 잘못했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박해는 자신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오직 예수님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고난당하는 것이 박해요 핍박입니다. 자신이 잘못해서 욕먹는 것은 박해가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잘 믿으려면, 부지런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 일도 열심히 하고, 자신이 맡은 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것을 이유 없이 싫어하고 미워해서 박해하는 사람도 없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4~3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족이 아무리 중요해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 가족을 사랑하지만, 하나님보다 가족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가족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한다면, 가족과 원수 될 수밖에 없습니다.

가족으로부터 핍박 받는 것을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핍박하는 가족을 전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살고, 예수님을 믿어야 축복 받는다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고 난 후 교회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당시 저희 집에는 매달 찾아오는 무당이 있었습니다. 가끔 집에서 굿도 했습니다. 무당이 “예수 믿는 사람이 이 집에 있어서 이 집은 망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가 저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는 저를 혼내시려고 친척 아저씨를 부르셨습니다. 친척 아저씨는 제게 “이 놈아, 그래도 네가 예수님을 믿을래? 네가 예수님을 믿겠다면, 내가 너를 죽이겠다.”라고 하시며 다듬잇돌을 들어 올리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마음이 평안했습니다. 아저씨가 다듬잇돌로 저를 치시지 않으실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다듬잇돌로 저를 내리치셔서 제가 맞아 죽는다면 제가 순교자가 되는 것이니 제게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친척 아저씨는 다듬잇돌로 저를 내리치려고 하시다가 그냥 내려놓으셨습니다. 나중에 그분도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친척들과 모두 절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께서 가장 섭섭해 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제게 “이 녀석, 너는 내가 죽어도 절하지 않겠구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할머니께 “할머니,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절한다고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알아요?”라고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죽었는데 어떻게 알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래서 제가 절하지 않는 거예요. 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신다면, 제가 얼마든지 절할 거예요. 할머니께서 돌아가셔도 저는 절하지 않을 거예요. 섭섭하시다면 제가 미리 절할게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아침에 학교에 가기 전에 “할머니, 미리 절 받으세요.”라고 하고 할머니께 큰 절을 하고 난 후 학교에 갔습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났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께서 “이제 그만해라. 나도 예수 믿을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중학교 3학년이었을 때에 어머니께 교회 가자고 했더니 어머니는 제게 “이놈아, 너 때문에 우리 집이 망한다더라.”고 말씀하시며 제게 욕을 퍼부으셨습니다. 차라리 집에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저는 어머니께 울면서 “저 같은 효자가 어디 있습니까. 어머니가 저를 힘들게 하시지, 제가 어머니를 힘들게 한 적 있습니까. 죽은 자식의 소원도 들어준다던데, 저 같은 아들이 예수 믿으라고 하는데, 이것도 못 들어줍니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가 우는 것을 보신 어머니께서는 “교회 가면 되잖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하다가 박해 받아도 두려워하지 마시고 계속 전도하세요. 그래서 온 가족을 예수 믿게 하세요. 온 가족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큰 핍박이 있어도, 그리스도인들은 계속 전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신앙이 건강해집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사람은 백 배의 복을 받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는 최고의 비결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사는 것은 당장은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두고두고 우리가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마태복음 10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피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이 더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박해 받는 곳에 있지 말고, 그곳을 피해 다른 곳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으면 그곳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어떤 곳에서는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만일 그때 사도 바울이 죽었다면, 사도 바울은 순교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가 되어야 죽습니다. 베드로는 돌에 맞아 기절했다가 다시 깨어났습니다. 베드로는 깨어나 다른 곳에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25절에 보면,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매를 맞고 투옥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이때 바울과 실라는 어떻게 기도했을까요?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곳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기쁨의 찬송을 불렀을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고난 중에도 기도하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감동 받으셨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 26절에 보면,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간수는 모든 것을 책임지고 사형 당합니다. 그래서 간수는 자살하려고 칼을 빼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행 16:28)”고 말했습니다.

간수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울과 실라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간수는 바울과 실라에게 와서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행 16:30)”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3~34절에 보면,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말년에 투옥되어 오랫동안 옥에 갇혀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바울은 옥중서신을 기록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있는 동안 큰 일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을 보며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1장 19~21절에 보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마 10:23)”고 말씀하신 대로 환난이 있으면 환난을 피해서 갔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전도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안디옥교회는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파송해서 최초로 선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북한의 김일성이 북한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할 때의 일입니다. 그때 끝까지 성전을 지키겠다고 성전을 떠나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때 박해를 피해 남한으로 내려온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 동네에서 너희를 박해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로 인해 남한의 교회가 크게 부흥되었습니다. 북한의 성도들이 남한으로 오기 전에는 서울에 교회가 몇 개밖에 없었습니다. 교회가 있다 해도, 교회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로 인해 세계적인 장로교회가 한국에 생겨났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5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 9장 3~5절에 보면,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도들을 박해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도들이 미워하는 것은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주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장 13절에 보면,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혼자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박해가 있어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항상 이기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이깁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들, 부르심을 받은 자들, 택하심을 받은 자들, 진실한 자들도 이긴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님과 함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없이는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항상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고자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환난의 때, 박해가 있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말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우리가 항상 이 말씀으로 무장해서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늘 성령 충만한 가운데 주님을 모시고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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