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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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8-11-20 11:01 조회3,303회 댓글0건본문
예수님의 기쁨
예수님의 기쁨
2018년 10월 21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5:11~17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솔로몬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사람들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다 가져봤고,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해봤습니다. 솔로몬은 왕으로서 부귀영화와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 정말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솔로몬은 행복하게 보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괴로워서 자신이 사는 것을 미워했습니다(전 2:18).
솔로몬은 60세에 죽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100년 넘게 사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솔로몬은 60세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은 믿음도 잃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생을 불행하게 마쳤습니다.
경제적으로 굉장히 잘 사는 나라에 사는 사람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행복지수를 조사해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행복지수를 조사한 결과,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는 서남아시아에 있는 부탄이라고 합니다.
부탄은 국민소득이 얼마 되지 않는 아주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러나 그 나라의 국민들은 아주 행복해한다고 합니다.
미국의 경제학자 리처드 이스털린은 “소득이 일정수준에 이르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소득의 증가가 행복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요해질수록 행복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러했습니다. 솔로몬이 얼마나 부자였습니까. 그런데 솔로몬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부요한 만큼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것을 가졌다고, 많은 것을 해보았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반면 사도 바울은 가족도 없었고, 재산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다가 순교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항상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평안한가를 보면, 신앙이 얼마나 건강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하고 환난과 시험이 많아 어려움을 당합니다. 암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그런데 마음이 평안합니다. 이 사람은 믿음이 강한 사람입니다. 신앙상태가 아주 건강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보다 더 건강한 믿음의 사람이 있습니다. 환난과 시험을 겪고 있지만, 마음이 평안할 뿐 아니라, 기쁨이 있는 사람입니다. 가난해도 기쁩니다. 환난이 있어도 기쁩니다. 시험이 많아도 기쁩니다.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마음은 기쁩니다. 이 사람은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매우 건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 빌립보서 2장 17~18절에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순교의 제물로 드려진다 할지라도 기뻐하고 기뻐하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은 세상, 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나라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항상 기뻐하며 산다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이요,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절로 전도될 것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이렇게 골치 아픈 세상에서 저 사람들은 왜 기쁨이 넘칠까. 예수님을 믿으면 저렇게 되나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절로 전도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흥하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우리에게 항상 기쁨이 있다면, 우리에게도 큰 축복입니다. 잠언 15장 15절에 보면,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항상 잔치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해서 항상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며 복음을 전합니다. 예전에 공산권에 있던 나라에서 목사가 되신 분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도 바울을 찾아오셔서 말씀하신 것처럼, 그분들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 날마다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울과 항상 함께하시며 바울에게 필요할 때마다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시고 함께해주시면 마치 꿈을 꾸는 것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었던 기쁨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15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어 우리에게 기쁨이 충만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완전한 기쁨이요 영원한 기쁨입니다.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기쁨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영원하지도 않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합격했을 때, 처음에는 학비가 없어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학비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장학생이 되어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루하루 먹을 것도 없는 가난한 학생이 학교에 합격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입학해서부터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걱정하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춤추고 싶을 만큼 기뻤습니다.
그런데 그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으니 또 다시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걱정거리가 태산같이 많았습니다.
중학교에 합격한 기쁨, 장학생이 된 기쁨은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그 기쁨은 걱정을 모두 해결해주지 못했습니다. 완전한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쁨은 다릅니다. 예수님의 기쁨은 완전한 기쁨입니다. 영원한 기쁨입니다. 어떤 처지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기쁨입니다. 천국에 갈 때까지 변함없이 계속되는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기쁨이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본문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충만한 사람,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 안에는 성령께서 계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형제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교회에 나와도 믿음이 없는 사람은 사랑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으려고 교회에 나올 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습니다.
2천 년 전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습니다. 유다서 18~19절에 보면,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에 속한 자,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성령이 없습니다.
목회자 중에도 성령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설교를 아주 잘 합니다. 그런데 성령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이 없는 사람은 성령을 모릅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어리석게 봅니다. 성령을 받은 후 기뻐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자신이 체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4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만난 사람은 기쁨으로 삽니다. 성령께서 찾아오셔서 말씀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가르쳐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은 최고의 신학교 교수이십니다. 어느 신학교 총장, 부총장이 저를 찾아온 적 있습니다. 저는 그분들께 “학생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세요. 그래서 학생들에게 성령의 가르침을 받게 하세요. 성령보다 위대한 교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신학을 공부한 학생들이 모든 면에서 부족합니다. 인격도 부족합니다. 최고의 교수이신 성령의 가르침을 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 기도운동이 일어나 학생들이 기도하다 보면, 성령께서 말씀해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것을 통해 영적 지식과 경험이 풍성해집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훌륭한 종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성령께서 증언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성령께서 증거해주십니다.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것과 예수님을 말미암지 않고서는 하나님께 갈 수 없다는 것을 성령께서 증거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습니다.
성령은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입니다(갈 5:22~23). 성령의 열매 중 사랑은 첫 번째 열매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자신이 달라진 것을 깨닫습니다. 사랑할 줄 압니다. 예전에 미워했던 사람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 안에 성령이 계신 사람에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요 사랑의 영이시기 때문에 성령이 임한 사람은 이렇게 변화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하면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갑니다.
예배드릴 때에 기쁨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찬양할 때에 기쁨이 넘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것이 기쁜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기쁨으로 지키는 사람이 받는 복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시고 기뻐하십니다. 그것을 말씀으로 나타내주십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기뻐한다. 나는 너 때문에 행복하다. 나는 너를 축복할 것이다. 나는 너와 함께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시는 축복은 이 세상을 소유한 것보다 더 큰 축복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은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해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복을 평생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3장 8~9절에 보면,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방인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고, 아브라함처럼 믿는 사람마다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처럼 믿는다는 것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창세기 12장 4절에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알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아야 합니다. 살아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 2:17).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믿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받을 수 없습니다.
평소에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을 들어보면,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행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믿음이 충만한 말을 하여 우리의 말을 듣는 사람에게 믿음이 생기게 하고, 은혜를 받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충만한 행동을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을 것입니다. 믿음의 본을 따를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5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 중에 가장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5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창세기 26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가리켜 ‘나의 벗(사 41:8)’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친구입니다.
친구 사이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창세기 18장 1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일을 행하시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미리 가르쳐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들은 말씀을 모두 우리에게 알게 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친구로 대우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장래에 어떻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시면,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주십니다.
성경에는 많은 비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 심판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무슨 징조가 있는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 심판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6장 3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사람은 비판을 많이 받을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는 사람은 자신도 그렇게 공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남을 용서하며 사는 사람은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 남에게 주면서 살면, 하나님께서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시겠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이 시간 결단하세요. 여러분의 인생이 새로워질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9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심은 대로 거둡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모두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 1~13절에 보면,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했지만,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처녀는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기름을 준비했느냐 준비하지 못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기름을 준비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신자입니다. 그 안에 성령이 계신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믿음을 가지고 구원 받은 사람 안에는 성령께서 계십니다. 그 사람은 기름이 준비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 상관없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25장 31~46절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병든 사람을 돌보는 등 사랑을 베푸는 성도는 양과 같은 성도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께 한 것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천국을 상속 받습니다.
그러나 염소와 같은 성도는 교회에 무슨 일이 있는가에 관심이 없습니다. 주위에 아픈 사람이 있어도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삽니다. 이런 사람은 영원한 불에 들어갑니다. 지옥 불에 들어갑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보면,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두었습니다. 남긴 것이 전혀 없습니다.
주인이 왔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들었습니다. 주인은 이들을 축복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로 쫓겨났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있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남긴 것이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합니다. 남긴 것은 땅에 쌓아둔 보물이 아니라, 하늘에 쌓아둔 보물을 의미합니다. 하늘에 쌓아둔 보물이 얼마나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칭찬을 들었습니까? 자기가 가진 만큼 하나님을 위해 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바쳤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를 자신이 소유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 쓰지 않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하늘에 쌓은 보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쌓은 보물이 얼마나 되는가를 보십니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이 부자처럼 생각하고 실천한 사람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만을 위해 살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의 계명대로 실천하여 우리에게 사랑의 열매가 항상 있게 하시려고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면, 기쁨이 충만할 것입니다.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을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복을 받았습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는지 아십니까? 본문 요한복음 15장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함은 너희로 서로 사랑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의 열매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여 깨닫게 하시고, 말씀대로 행하게 하시고, 열매 맺게 하여주옵소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는 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지는 복을 받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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