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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4장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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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0 10:58 조회5,63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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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2008년 06월 20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복음 14:27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실 날과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 가까웠음을 보여주는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4장 6~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재난이 점점 심해질 것과 큰 환난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첫째, 모든 것은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심판주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아무리 전쟁이 일어나고 환난이 일어나고 재앙이 일어날지라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도 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공중의 참새도 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셋째, 우리는 심판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질병을 두려워합니까? 사업의 부도, 전쟁의 발발을 두려워합니까? 기근이나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을 두려워합니까? 아니면 핍박자가 생겨날까봐 두려워합니까? 미래를 두려워합니까? 환난과 심판을 두려워합니까?

저와 여러분이 두려워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 이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두려워했다는 단어가 처음 나오는 곳이 창세기 3장 10절입니다. 창세기 3장 10절에 보면,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고 난 후,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오실 때에 두려워서 숨어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했다는 말이 여기에서 처음 나옵니다.

 

범죄한 인간에게는 두려움이 생깁니다.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인간은 마음의 평강이 없습니다. 항상 두렵습니다.

도둑, 강도, 살인범들은 도망 다닙니다. 그런데 그들이 붙잡힌 후 한숨을 쉬면서, “아이고, 이제 살았다”라고 합니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단잠을 이루지 못하고 마음을 졸이며 살았는데, 붙잡히니 ‘이제 편안히 살겠구나.’라고 느낍니다.

범죄한 인간에게는 평강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사 48:2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9장 4~6절에 보면, “그들에게 이르시되 땅의 풀이나 푸른 것이나 각종 수목은 해하지 말고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러나 그들을 죽이지는 못하게 하시고 다섯 달 동안 괴롭게만 하게 하시는데 그 괴롭게 함은 전갈이 사람을 쏠 때에 괴롭게 함과 같더라 그 날에는 사람들이 죽기를 구하여도 죽지 못하고 죽고 싶으나 죽음이 그들을 피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섯 번째 나팔 재앙이 임할 때, 고통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은 고통을 두려워하여 오직 죽고 싶은 마음뿐인데 죽음이 그들을 피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만 그 심판이 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엄청난 고통이 오는데 생각하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고 두려워서 모든 사람이 차라리 죽기를 원하지만, 죽음이 그들을 피해갑니다.

 

지옥에 가면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아십니까? 죽거나 무의식 상태가 오히려 더 좋습니다. 그런데 지옥에서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당합니다.

다섯 번째 나팔이 불 때, 지옥의 고통을 맛보여주십니다 그런데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않은 사람만 해한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모든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어리석고 미련한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 저주를 받습니다.

그 저주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지, 눈으로 보는 불행한 일 때문에 미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울 왕은 회개하지 않고 악한 짓을 계속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통해 사울에게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여호와께서 나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삼상 28:16~19)”고 말씀하셨습니다.

 

블레셋 전쟁에서 패하여 아들과 죽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습니다. 그때 사울이 갑자기 땅에 엎드려졌습니다.

사무엘상 28장 20절에 보면,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울은 두려웠는지 정신을 잃고 땅에 엎드러졌습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저주 받은 인간에게 두려움이 찾아것을 알

 

창세기 35장에 보면, 야곱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벧엘로 올라갈 때에 모든 우상을 버리고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창세기 34장에 보면,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할례 받게 하고 몸이 아플 때를 이용해 남자들을 죽였습니다.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주변 민족, 고을 사람들이 야곱의 식구들이 쳐들어올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주위의 모든 고을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줬습니다. 창세기 35장 5절에 보면, “그들이 떠났으나 하나님이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하셨으므로 야곱의 아들들을 추격하는 자가 없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해서 야곱을 뒤쫓아 오는 사람이 없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얼마든지 해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에 두려움이 생기면, 그 사람은 우리를 손댈 수 없습니다. 괴롭히려 하는 사람, 원수들에게 하나님께서 두려움을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두려움은 그런 사람들에게 생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가나안 땅으로 쳐들어가게 하실 때, 기생 라합이 한밤 중에 지붕 위로 올라가 정탐꾼에게 말했습니다.

여호수아 2장 8~11절에 보면, “또 그들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서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니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로 말미암아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말만 들어도 간담이 녹아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쳐들어갈 때, 가나안 사람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간담이 서늘했습니다. 마치 고양이 앞의 쥐 마냥 벌벌 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잠언 29장 25절에 보면,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구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립니다. 어떤 사람이든 두려워하면, 그 사람의 노예가 됩니다.

 

권투선수가 경기하기 전에 상대 선수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면, 경기에서 진 것과 같습니다. 상대편을 두려워하면, 몸이 굳어버립니다.

평소 권투를 잘하던 사람이라도 주먹이 나가지 않습니다. 마치 녹슨 기계처럼 말을 듣지 않습니다. 결국 경기에서 패합니다.

이처럼 두려움은 마음을 약하게 만들고 힘을 빼버립니다. 그래서 경기에서 패하게 만듭니다.

 

저와 여러분은 두려워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시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외에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은 원수 마귀입니다. 마귀는 속임수를 써서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을 가지게 합니다.

 

디모데후서 1장 7~8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마귀가 주는 두려움에 속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믿음과 두려움은 반비례합니다. 그리고 믿음과 담대함은 정비례합니다. 믿음이 강하면 담대함이 생깁니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약해지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다윗은 참으로 담대했습니다. 다윗은 어렸을 때에도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골리앗 앞에서 부들부들 떨며 두려워했지만, 다윗은 어린 나이였음에도 골리앗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나아가 싸워 그를 죽였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요?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담대하게 했을까요? 믿음입니다.

다윗은 믿음이 컸습니다. 다윗이 나이는 어렸지만, 믿음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보다 컸습니다. 그래서 담대했습니다. 골리앗과 싸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도 믿음이 약해졌을 때가 있었습니다. 사울 왕을 피해 도망 다니다가 지쳤을 때, 다윗은 굉장히 피곤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다윗은 믿음이 약해져서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무엘상 27장 1~2절에 보면,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사울이 이스라엘 온 영토 내에서 다시 나를 찾다가 단념하리니 내가 그의 손에서 벗어나리라 하고 다윗이 일어나 함께 있는 사람 육백 명과 더불어 가드 왕 마옥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건너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 약해졌습니다. 얼마 후 사울의 손에 붙잡힐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원수의 나라 블레셋의 땅으로 도망갔습니다. 사울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다윗의 믿음이 약해진 증거입니다.

 

다윗의 죽고 사는 것은 사울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과 죽음도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만 바라보시고 세상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전염병과 광우병으로 세상이 난리를 치더라도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다윗의 죽고 사는 것은 사울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믿음이 약해지니까 사람을 두려워했습니다. 걱정했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약해지는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육신을 피곤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있는데, 병으로 인해 육신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지고 믿음도 약해집니다.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사탄은 하나님의 종들을 공격할 때에 몸을 병들게 해서 피곤하게 하거나, 사고가 나게 해서 몸을 다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일하지 못하게 묶어둡니다.

몸이 피곤하면 기도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면 낙심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선교지에 가서 선교사를 만나면, 건강을 지키라고 강조합니다. 건강을 지켜야 기도할 수 있고, 건강을 지켜야 선교사역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위해서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마음껏 충성하기 위해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건강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기적인 마음으로 건강을 챙기지 마세요. 이기적은 마음으로 건강을 챙기는 사람은 몸과 마음이 둘 다 병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주의 사역을 위해 건강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으려면, 영적으로 약해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믿음이 좋던 사람도 기도생활을 하지 않으면 믿음이 약해지기 마련입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낙심합니다. 두려움이 생깁니다. 이렇게 되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때에는 만사를 제쳐두고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기 시작하면, 믿음도 살아나고, 영육도 살아납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머나교회를 향해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고난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환난과 시험을 두려워하는 것 자체가 믿음이 약해졌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주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주를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합니다.

사도들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습니다. 채찍질을 당하고 고난을 당해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오히려 더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믿음이 강하면 환난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은 생명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서 특별히 허락하시는 것이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일을 하며 고난 받으면, 낙심하지 마시고 상과 면류관을 받을 것을 생각하시며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14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안에 평안이 넘쳐야 합니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근심이 많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그 이유는 성령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평안하지 못한 것은 주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우리 안에 충만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과 근심에 사로잡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전에는 두려워 떨며 도망 다녔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후에는 강하고 담대해졌습니다.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순교를 각오하고 담대하게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을 통해 이 땅에 수많은 교회가 생겼으며,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겼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으로 충만해집니다. 담대한 마음을 가집니다. 우리의 마음에 평안이 넘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도 염려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두려운 마음이 생기는 이유는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일 3:14-15)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망에서 옮겨 생명에 들어가는 사람이요,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심판날에도 담대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6~18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 사랑 안에 거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4장 17절에 보면,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담대할 수 있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환난과 재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모든 죄를 사함 받았으니 어떤 형벌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평안이 없습니다. 오히려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한 사람도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미워할 자유가 우리에게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다 용서해야 하고, 긍휼히 여겨야 합니다. 사랑해야 합니다. 축복해야 합니다.

사랑의 영, 성령으로 충만할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온전한 사랑이 생길 때까지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두려움이 다 사라집니다.

 

수영로교회의 개척을 시작했을 때, 초량교회의 장로님이 예배당을 지어주셔서 예배당 지을 것에 대한 걱정 없이 편하게 예수님을 믿으려는 사람들이 우리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전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어디서 오는지, 주일마다 많은 사람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성질이 나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얼마나 미운 짓을 하는지 제가 미워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미운 마음을 가지는 것은 성령과 대치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사랑의 영이시고,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제 마음에 미운 마음이 가득 차니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칠 수 없었습니다. 은혜로운 설교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부흥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에 미운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제가 미운 마음을 가지면 우리 교회가 부흥될 수 없으니 하나님 앞에서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그 집사를 사랑하게 해주세요, 제 마음에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저는 목회를 할 수 없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을 제게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당시 전 교인을 위해 기도할 때에 구역별로 기도했는데, 착하고 좋은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에는 축복하고 금방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원수 같은 사람을 위해 기도할 순서가 되면,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미운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는 것 자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못된 사람을 만나면 보기도 싫고 상대하기도 싫어야 하는데, 그 집사님을 만나면 저도 모르게 끌어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집사님이 변한 것입니다. 미운 짓을 하던 분이 저를 칭찬하며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을 목사를 돕는 자로 바꿔주셨습니다.

 

강단에서 기도할 때, 평소에 못된 짓을 많이 하던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 사람들은 못된 짓을 많이 하니 망할 수밖에 없고 저주받을 수밖에 없고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제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이치에 맞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가 그렇게 생각한 것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너는 왜 그 사람을 판단하기만 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 사람이 망할 것 같고, 그 사람이 죽을 것 같으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울어줄 수 없겠니. 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해줄 수 없겠니. 그 사람을 위해 축복기도해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강단에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순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축복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제 마음에는 미운 사람이 생기지 않았습니다. 미운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은 제가 기도해야 할 기도대상입니다. 그를 위해 대신 울고, 축복기도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 일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해주시고 은혜를 주시는지 모릅니다. 수영로교회 부흥의 비결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축복하셔서 성도들을 교회에 보내주셨습니다. 일꾼으로 세우셨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온전한 사랑이 생길 때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두려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선교사가 무슬림 지역에 들어가 선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들에 대한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을 가진 사람,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려는 불타는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가면 붙잡히고 감옥에 가고 나중에는 순교할 것을 알면서도 담대히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어떻게 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혼에 대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도 바울과 같이 되려면,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이 가득해야 합니다. 그래야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염려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심령의 건강은 평안으로 나타납니다. 심령이 강건한 것은 평안함으로 나타납니다. 심령이 건강하면, 두려움이 없고 걱정이 없습니다. 더 강건해지면 기쁨이 넘쳐 항상 감사하며 삽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으로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마음에 근심과 두려움이 없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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