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접하실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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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7 20:27 조회5,675회 댓글0건본문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접하실 주님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접하실 주님
2010년 09월 26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4:1~3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을 기록한 4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시면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된 자를 일으키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심지어는 죽은 자를 향하여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셔서 살아나게도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나아온 사람들은 축복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예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전능하실 뿐 아니라, 과거와 현재는 물론 미래에 일어날 일뿐만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형편도 다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본문에 보면 제자들이 근심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왜 “나를 믿으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살 길이 열리고,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기 때문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우리를 편히 쉬게 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앞으로 될 일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장차 예루살렘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과 사흘 만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여러 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3장에서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게 될 것과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게 될 것까지 미리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지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앞으로 일어날 일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근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1).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무것도 근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았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고, 천국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그 안에 보혜사 성령님이 계셔서 언제나 함께 하시기 때문에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요, 진리의 말씀임을 믿습니다.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우리가 있을 곳을 예비하시면 이 세상에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은 후에는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면 어디에서 살까’라고 막연히 생각할 수 있는데, 본문을 자세히 보면,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이 있을 거처를 예비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에 준비된 그 집은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너무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일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가 있을 곳을 예비하시면 다시 이 세상에 오신다고 합니다. 재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영접해주시고, 주님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게 하셔서 영원히 주님을 모시고 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믿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까? 믿어집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입니다.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 믿음을 갖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장차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영접해주시고, 천국으로 데리고 가셔서 영원히 함께 산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은 삶의 태도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 저와 여러분은 복 있는 자들인 줄 믿습니다.
1.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하늘에 있는 본향을 사모하면서 삽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조상들은 언제나 이 세상에서 어디를 가든지 자기들은 나그네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영원히 살 곳이 아니라 잠시 머물다가 가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기들이 영원히 머물 곳은 하늘에 있는 본향이라는 믿음을 항상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6절에 보면,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더 나은 본향, 저 천국을 늘 사모하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21~24절에 보면,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늘 천국을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 자신은 하루라도 빨리 이 세상을 떠나서 주님 계신 그 곳에서 주님과 함께하고 싶지만, 남아있는 성도들을 위해서 이 땅에 남아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땅에 있지만, 항상 하늘을 바라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천국과 예수님의 재림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땅의 것만 생각하고 삽니다. 빌립보교회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라고 말합니다(빌 3:18~19).
항상 세상만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은 배부르게 먹는 것이 그들의 신이고, 부끄러운 일을 하면서도 영광으로 알고, 십자가의 원수로 살아가는 믿음이 없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와 여러분은 언제나 영원히 살 그곳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주님께서 우리가 있을 곳을 예비하시면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접해주시므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은 아무리 큰 환난이 와도 잘 이깁니다.
주님이 함께 계심을 믿기 때문이고, 절대주권과 생사화복이 주님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흥하고 망하는 것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지 않으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마 10:29).
여러분, 세상 환난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세상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절대주권이 우리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언제나 담대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큰 박해를 당해도 기쁨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3~4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의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니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자랑했습니다. 믿음이 더욱 자랄 뿐 아니라 사랑이 풍성하고, 환난과 박해도 잘 인내하면서 견뎠기 때문입니다.
3. 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서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사도행전 5장 40절에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잡혀서 채찍질을 당하고, 다시는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은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겪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고, 영광으로 생각하여 어디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행 5:41~42).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4. 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죽음이 와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쁨으로 죽음을 맞이합니다.
이화대학교 총장이었던 김활란 박사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런 유언을 했다고 합니다. “내가 죽으면, 아무도 울지 말고 찬송만 불러라. 나는 더 좋은 곳에 가는데 왜 우느냐.” 그래서 그분의 장례식 때에는 아무도 울지 않고 찬양을 불렀다고 합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 분, 주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면서 기뻐하는 분들은 죽음이 와도 그 얼굴에 행복함이 있습니다. 천국에 대한 믿음이 있는 분, 주님을 만난다는 믿음이 있는 분은 죽음도 기쁨으로 맞이할 줄 믿습니다.
5. 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장차 다시 오셔서 우리를 영접해주실 주님을 생각하며 충성된 삶을 삽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예수 믿다가 죽은 성도들이 부활하여 제일 먼저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때의 부활을 ‘생명의 부활’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 믿지 않는 분들은 나중에 부활하게 되는데, 이 부활은 ‘심판의 부활’입니다. 심판을 받아서 지옥에 갑니다. 예수 믿고 믿음으로 살다가 죽은 성도들이 먼저 주님을 만나고, 다음에는 그 당시에 살아있는 성도들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영광스런 몸처럼 변화되어서 주님을 만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3장 20~21절에 보면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을 그대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영광스러운 몸, 죽지 않고 늙지 않고 썩지 않고 영원히 영생하는 몸으로 변화되어서 주님을 만납니다. 이때, 사도 바울처럼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충성하며 산 사람들은 칭찬을 듣게 되고, 면류관을 받게 되는 영광이 있을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영국 군인들이 승리하여 고국으로 돌아올 때 개선 행진을 했습니다. 런던 거리에는 시민들과 영국 상ㆍ하원 의원들과 귀족들, 여왕까지 그 자리에 나왔습니다. 그 행렬의 처음에는 육군이 앞장서고, 뒤를 이어 해군과 공군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작은 부대가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영국여왕을 비롯한 귀족들과 시민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 부대는 상이군인들로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팔과 다리를 잃거나 몸의 한 부분을 잃은 군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습니다. 이렇게 온 국민이 일어서서 맞이한 것은 나라를 위해서 싸우다가 희생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살다가 이렇게 고통과 고난을 당하고, 희생한 사람들은 장차 주님을 만나는 날에는 그 영광이 클 줄 믿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기만을 위해서 살고,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살던 사람들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을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을 자들을 이렇게 말합니다.
지옥 불에 들어갈 인간이지만, 불에 타는 것을 끄집어내어서 겨우 목숨만 살리는 것처럼 표현합니다.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았는데 삶은 믿는 자답게 살지 않아서 지옥 불에 들어가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어서 겨우 구원을 받은 사람은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지만, 상급은 행한 대로 받습니다. 구원받았다고 똑같지 않습니다. 실제로 어떻게 살았는가에 따라 그 사람이 행한 대로 상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면,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라고 기록되어이R습니다.
성경에 보면 성도들이 장차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을 천국 혼인잔치에 비유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에 보면,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사도 바울은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열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우리 성도들은 처녀가 신랑을 맞아서 평생 함께 사는 것처럼,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서 영원히 천국에서 함께 살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랑 예수님을 맞이하려고 하는 신부로서 어떻게 준비하고 있어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마음단장을 잘해야 합니다.
첫째, 정결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깨끗하고 거룩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더러운 부분은 깨끗하게 목욕하는 것처럼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결한 마음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둘째,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단장해야 합니다. 거짓이 있으면 안 됩니다. 신앙생활은 정직이 생명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인정해주시는 진실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진실하지 않은 신앙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정결한 마음과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주님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안에는 보혜사 성령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성령 충만한 은혜 가운데 사셔서 항상 정결하고 정직하고 진실한 마음으로 단장을 잘하고 계시다가 주님을 만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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