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면 죽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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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18 16:09 조회3,606회 댓글0건본문
죽으면 죽으리라
죽으면 죽으리라
2003년 01월 03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복음 12:24~25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백부장은 자기 하인이 중풍병으로 죽어갈 때 예수님께 찾아와서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사옵나이다(마 8:8)”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백부장을 가리켜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보지 못하였노라(마 8:10)고 말씀하시며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았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보시고 백부장을 칭찬하시고 축복하셨을까요? 백부장의 말과 태도가 그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으면 “주님, 제발 우리 집까지 갑시다. 아무리 피곤하고 바쁘셔도 우리 집에 꼭 오셔야 되겠나이다.”하고 모시고 가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달랐습니다. 주님은 만왕의 왕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존귀한 분이신데, 하찮은 일로 인해 시간을 빼앗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면 빛이 생기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니까 한마디 말씀만 하셔도 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믿음이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의 말이 그의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평소의 행동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평소의 말 하나, 행동 하나가 내 믿음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평소에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은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말과 행동 속에 믿음이 보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거나 죽은 것입니다. 평소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예수 믿는 사람이구나.” 라고 알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이 그 사람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제 조카가 다니는 회사의 사장님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진 유태인입니다. 어느 날, 이 사장님이 출장을 갔다가 퇴근시간이 지나서 ‘아무도 없겠지.’ 생각하고 회사에 전화했더니 제 조카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장이 없으면 적당히 하고 시간 되면 가버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조카는 혼자서 늦게까지 회사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장님이 감동을 받아 직원관리를 비롯해서 모든 사인도 조카에게 하게 해서 지금 제 조카는 그 회사에서 사장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함을 보여주니까 다 맡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믿음을 가지고 말하고 행동할 때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은 어떻게 삽니까?
첫째,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참 믿음의 사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거짓 믿음의 사람도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할 수 있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짓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불법을 행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을 때에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렇게 기도해야 되고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면 오히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큰 축복을 가져옵니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생각이 완전하고, 내 계획보다 하나님의 계획이 완전하고, 하나님께서 좋은 생각을 가지시고 좋은 길로 인도하시고 모든 것을 하신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위대한 믿음의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내 생각보다 더 좋게 더 잘 되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기도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저를 실망시키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 길을 순탄하게 인도하셨습니다.
1975년도에 교회를 개척해서 1982년이 첫 번째 안식년이었습니다. 장로님들이 제게 안식년을 지키라고 하셔서 안식년을 앞두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내년이 안식년인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여러모로 봐서 지금쯤 미국에서 공부하고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목회에 유익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데 필요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옵소서.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제발 이 길을 막아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탁하지 않았는데, 미국에서 오지 않겠느냐고 제게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 당시에는 미국 비자를 받기가 힘들었는데, 저는 가족까지 다 데리고 가는데도 그냥 얼굴만 보고 도장을 찍어줬습니다. 그것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당시에는 부산에서는 여권을 만들 수 없던 때라 1982년 1월에 서울로 가서 월요일에 여권을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수요일에 여권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목요일에 서류를 준비해서 금요일에 비자 받으러 미국대사관에 갔습니다.
목사님들도 비자를 받으려고 여러 명 서있었는데, 다른 사람은 다 취소되고 저에게는 도장을 찍어줬습니다. 부랴부랴 비행기표를 사서 미국에 들어가 주일을 지키고 저녁 비행기를 타고 동부로 가서 리폼드신학교를 찾아가니까 월요일 아침 9시였습니다.
첫 시간이 시작됐는데, 백인 목사 학생들이 한 명씩 나와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에서 오는 중이라고 바로 제 소개를 했더니 박수치면서 환영해주었습니다.
월요일에 여권을 신청했는데 그 다음 월요일부터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멋진지….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뜻대로만 살려고 하십시오. 욕심을 버리십시오.
결혼 문제, 취직 문제, 사업 문제, 학교입학 문제 등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십시오. 그런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둘째,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걸고 지키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우상을 만들지 말고 우상 앞에 절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을 생명을 걸고 지켰습니다.
차라리 풀무불에 들어가서 죽으면 죽었지,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어길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위대한 믿음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무엇이든지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처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이라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랑하는 독자 이삭이라도 포기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포기하지 못하면, 온전히 순종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목숨까지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가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란, 예수님을 본받아 살면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목숨을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하고, 예수님처럼 목숨을 내어놓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4~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 26~27절에 보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4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려면 자기 부모형제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할 각오를 해야 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소유를 모두 포기해야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모세는 포기를 얼마나 잘했는지 모릅니다. 히브리서 11장 24절에 보면,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는 왕족의 영광을 포기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25절에 보면,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세는 잘 먹고 잘 살고 낙을 누리는 것, 애굽의 모든 보화를 포기했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애굽의 모든 영광을 포기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세를 높이 들어 쓰셨습니다.
셋째, 믿음의 사람들은 거룩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겁니다.
‘거룩’이라는 단어의 원어를 보면, 구별한다, 구별됐다는 뜻입니다. 거룩은 바로 세상과 구별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린 세상, 하나님을 반역한 세상, 죄악에 빠진 이 세상과 구별되게 사는 것이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룩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아야 됩니다.
거룩이란 하나님을 위해서 구별된 것입니다. 거룩할 성(聖) 자가 들어가는 단어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성전이 왜 귀합니까? 하나님을 위해 구별한 집이기 때문이요, 하나님께 예배하고 만민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기 위해 지은 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특별히 구별한 성물, 성직,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구별한 거룩한 날 성일도 귀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몸은 세상 사람과 다른 성결된 몸이니까 거룩한 몸입니다. 이 몸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께 예비한 몸이요, 하나님께 기도한 몸이요, 성령을 모신 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몸을 언제나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생명을 걸어야 합니다.
다니엘은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 음식을 거절했습니다. 죽음을 각오한 대단한 결심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룩을 지키기 위해서는
⑴ 먹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술을 마시면 안 되는 이유는 술 자체가 죄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에 보면,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⑵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눈은 얼마나 예민한지 모릅니다. 보는 것에 따라 마음이 달라지기 때문에 눈을 통해 마귀가 얼마나 역사하는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잘하는 신자라도, 아무리 기도생활을 많이 하고 은혜를 많이 받은 목사라도 음란한 비디오나 포르노 영화를 보면 자신도 감당하지 못하게 됩니다. 우리가 그것을 이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⑶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거룩하게 깨끗하게 은혜롭게 말해야 합니다. 말의 영향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내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게 하십시오.
그런데 더러운 말, 음란한 말, 잘못된 말을 하면, 하나님께서 분노하시고 자기 자신도 더러워집니다.
⑷ 생각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마음 관리를 잘해야 됩니다. 생각하는 것이 선하고 의롭고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깨끗하고 진실하고 아름다운 좋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성수주일을 위해서도 목숨을 걸지 않으면 지킬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 친구인 김상복 목사님은 월남하기 전에 이북에서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어머님이 대단히 훌륭하신 분이어서 주일에는 절대 학교에 보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산당이 들어와서 교회에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주일에 모든 학생을 학교에 나오게 했답니다. 학교냐 교회냐, 둘 중에 하나를 택해야 되는 순간에도 김상복 목사님은 어머니의 신앙이 일사각오 신앙이니까 교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월요일에 학교에 가면 공부하지 못하고 실컷 맞고 하루 종일 벌을 섰다고 합니다. 그렇게 매를 맞아가면서도 주일을 지키는 것을 남쪽으로 피난오기까지 계속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영광을 받으셨을까요.
지금도 주일에 학교에 공부하러 오라고 하면 자퇴까지 각오하고, 주일에는 교회에 나오는 단호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그행동한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 5: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진짜 찍어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살기 위해 목숨을 걸라는 것입니다.
넷째,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합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해야 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됩니다. 그런데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첫째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을 첫째로 생각해야 합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수확하면 하나님을 생각하고 첫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고, 양이나 나귀나 소를 기르는 사람은 새끼를 낳으면 첫 새끼는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께 드립니다. 이렇게 하는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을 사랑했지만,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독자 이삭을 바칠 수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부모와 형제도 사랑해야 하고, 자식도 사랑해야 되고,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절대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2장 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장 15절에 보면,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선순위의 첫째를 주님에게 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합니까? 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까? 왜 거룩을 지키지 못합니까?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면 목숨도 아끼지 않고 바칠 수 있습니다. 믿음 중에 가장 큰 믿음은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믿음입니다. 목숨이 가장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드리는 사람은 모든 것을 드릴 수 있습니다.
왜 하나님의 일에 열매가 없습니까?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입니다. 죽을 각오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2장 24~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위해 목숨을 건다면 오히려 살고,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하면 오히려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입니다. 다니엘은 거룩을 지키기 위해 왕의 명령을 어겼고, 기도하면 사자 굴에 들어가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을 각오로 평소와 똑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룩을 지킬 수 있고, 기도의 능력의 사람이 될 수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쓰시는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죽을 각오로 충성하여 가는 곳곳마다 교회가 생기고 복음이 전해지고 백 배, 천 배, 만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죽을 각오하고 달려드는 사람은 엄청난 일을 합니다. 그러나 목숨 걸지 않은 사람은 시시하게 일생을 마치고 맙니다. 목숨을 걸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열매를 하나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기도에 생명을 거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일이 일어나는지 모릅니다.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이다(에 4:16)”는 각오로 사흘 동안 금식기도를 하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기도하고,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가니까 자기 민족을 구원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왜 존경받습니까? 주기철 목사님은 순교하기 전에 어떤 설교를 했느냐 하면 ‘일사각오(一死覺悟)’, 즉 한 번 죽을 각오를 한다는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순교하셨습니다.
이처럼 목숨을 거는 신앙의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크게 쓰시는 줄 믿습니다.
다니엘처럼 사자 굴에 들어갈 각오로 기도해보십시오.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니엘은 위대한 선지자로서 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야곱은 부족한 면이 많았지만, 얍복 강가에서 생명을 걸고 기도하다가 천사와 씨름하여 승리하고 ‘이스라엘’이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갖게 되었고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부족해도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그냥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결사적으로 매달리고 생명을 걸고 기도하는 믿음이라야 불을 받아도 확실하게 받고, 응답 받아도 확실하게 응답 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평생 목회에 축복을 받는 이유는 일찌감치 생명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에 아예 죽기 위해 생명 걸고 기도하다가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전도사였을 때에도 심령이 고갈되어 괴롭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불광동 뒷산에 올라가 낭떠러지 끝에 앉아 사흘 동안 금식기도했습니다. 마지막 날 응답하지 않으시면 떨어져 죽을 각오를 하고 몸부림치다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서 “주여!”라고 외치면서 부르짖는 순간에 불이 확 임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 불을 받고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는데, 시간 가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이렇게 저는 “기어코 은혜 받아야 되겠다.”라는 마음으로 목숨 걸고 기도합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속을 썩이는 집사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내가 죽던지 저놈이 죽던지 끝장을 내야 되겠다.’라고 결심하고 하나님 앞에 결사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저를 불러 가시던지 그 집사를 불러 가시던지 둘 중에 하나 택하십시오. 저를 다른 데로 보내시던지 그 집사를 내쫓아주시던지 둘 중에 택하십시오.”라고 밤새도록 부르짖었습니다.
새벽녘이 가까웠을 때에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가 문제다.”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나는 훌륭한 목사고 잘났는데 내가 문제라니….’ 놀라웠지만 책망하는 음성을 듣고 주님 앞에 울면서 회개했습니다.
“저는 제 문제가 뭔지도 모르는, 문제 있는 목사입니다. 아버지,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인자한 음성으로 “나는 너를 붙잡고 일하고 있지, 그 집사를 붙잡고 일하는 것이 아니다. 부흥되고 안 되고는 너에게 달렸지, 그 집사에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다. 그 집사는 너에게 맡긴 내 양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입을 지으신 분이십니다. 직접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들을 귀가 없어 듣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으면 생명 걸고 기도해 보십시오. 반드시 응답 받습니다. 그래서 저는 회개하고 “다시는 성도들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문제가 나에게 있음을 알고 이제는 성도들을 원망하지 않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성도들이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뿐이고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생명 걸고 기도하고 생명 걸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를 가질 때에 반드시 문제가 해결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담대합니다. 목숨을 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에, 믿음의 사람은 담대합니다.
갈렙은 85세 때 “헤브론 산지를 내게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담대하게 목숨 걸고 헤브론을 점령해서 자기의 땅이 되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에 담대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담대했습니다. 목숨을 걸었기 때문에, 죽을 각오했기 때문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응답 받습니다. 큰 축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숨을 거는 믿음,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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