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12-04 15:56 조회4,328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일
2017년 12월 03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9:1~12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와 함께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보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요 9:2)”라고 질문했습니다.
제자들은 왜 이렇게 질문했을까요? 제자들은 평소에 어떻게 생각했기에 이렇게 질문했을까요? 제자들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은 저주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했을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귀하게 여기시고, 우리를 높여주실 뿐 아니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우리가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시고, 사는 땅과 하늘이 복을 받는 등 모든 복을 받는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모든 저주를 받는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고, 온갖 병이 생길 것이고, 사는 땅과 하늘이 저주를 받는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늘날 북한 땅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중국에는 풀이 무성하고, 나무가 많은데, 북한 땅은 아주 황폐합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습니까.
매년 농사를 짓지만, 계속 흉년입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마 10:29).
제가 제자들의 속을 알 수 없지만, 제자들은 이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6~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습니다. 그것을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마귀에게 속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후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창세기 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창 3:16)”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에게는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창 3:17~19)”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저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 3:19)”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죽음에는 육신의 죽음과 영의 죽음이 있습니다. 육신의 죽음은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것입니다. 호흡이 멈추면, 그 후에는 육신이 썩습니다.
영의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고, 하나님 없이 사는 것입니다. 마귀의 종이 되어 죄 가운데 멸망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인간은 모두 죄로 말미암아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통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신적으로, 육신적으로, 영적으로 고통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저주가 왔습니다. 그리고 저주는 인간에게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어떤 고통이든 고통은 괴롭습니다. 그러나 죄를 범한 자에게는 고통이 오히려 축복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주셔서 우리가 괴롭지만, 고통과 고난으로 인해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죄를 그치게 됩니다.
그리고 죄를 많이 범함으로 고생을 많이 했으니 이제는 그리고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변화됩니다.
제가 아는 어느 권사님의 남편은 돈을 많이 버셨습니다. 그리고 남자다운 남자였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교만하고, 자신감이 넘치는지, 제가 심방을 갔을 때에 나와 보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 생각하고 사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아기처럼 변하셨습니다. 겸손하고 얌전한 모습으로 제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알고 보니 간이 나빠져서 죽게 되었는데, 죽음이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셨습니다. 그래서 죽지 않고 기적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이분은 고통 속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성품이 변화되었습니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바치셨습니다. 자신이 소유한 빌딩을 교회에서 쓰도록 내놓았습니다.
병으로 고통 당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이분은 병으로 인해 구원 받았습니다. 변화되었습니다.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통은 깨달음을 줍니다. 병이 들면,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병들어 누워있으면서 건강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깨닫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병든 후에 깨닫지 말고, 미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서 건강할 때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충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건강할 때에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 복됩니다.
성경에 보면,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땅이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얼굴에 땀을 흘리며 수고해야 먹고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노동해야 먹고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힘듭니다. 고생스럽습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것도 축복입니다. 죄 가운데 사는 인간, 하나님 없이 사는 인간이 먹을 것과 돈이 많으면 일할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죄를 얼마나 많이 범하겠습니까.
밤낮 죄를 짓는데도 건강하고 돈이 많다면, 돌아다니며 죄를 지을 것입니다. 과연 그것이 축복입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으로 하여금 얼굴에 땀을 흘리며 수고해야 먹고살 수 있게 하신 것은 축복입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라고 생각하며 하나님을 위해 헌신했습니다.
‘평생 주님을 위해 살리라.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리라.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리라’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이 나라 국민들을 모두 구원 받게 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훌륭한 목회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렇게 결심한 후,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우리 반 친구들을 전도해서 교회에 데리고 갈 때,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한 가지를 해결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생활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가정 형편이 점점 더 어려워졌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가정 형편은 계속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철야기도를 했습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제가 생활비를 벌어가며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공부할 시간이 별로 없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그 당시에 학생들이 데모를 많이 했습니다. 학생들이 데모하느라 휴강되면, 그 시간에 저는 도서관에 가서 공부했습니다.
대학교 졸업식이 끝난 후, 교회에 가서 하나님 앞에 하소연하듯이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도대체 이게 뭡니까? 대학 4년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게 뭡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내가 너를 묶어두지 않았다면, 네가 나의 종이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제게 시간이 있고 돈이 있다면, 제가 딴 짓 할까봐 저를 묶어두셨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만드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목회자가 되려면,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대학생들이 죄를 많이 범합니다. 그런데 저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돈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시기 위해 저를 묶어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딴 짓 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순간, 얼마나 감사한지, 그동안 고생한 것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돈이 없고, 시간이 없게 하신 것이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나니 하나님께서 저를 하나님의 종으로 만드시기 위해 저로 하여금 고생하게 하신 것이라면, 좀 더 세게 고생하게 하셨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좀 더 세게 고생하게 하셨다면, 제가 좀 더 세게 기도해서 더 큰 은혜를 받고, 더 큰 능력을 받아 더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고생한 것이 오히려 축복임을 깨달았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9장 3절에 보면,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은 이 사람의 죄도 아니요, 그 부모의 죄도 아니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론 이 사람의 죄 때문에 이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이 사람은 태어나자마자 맹인이 되었습니다. 죄 지을 새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부모의 죄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3~6절에 보면,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상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께서는 3~4대에 이르기까지 갚으십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우상을 숭배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십니다. 영원히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부족합니다. 자격이 없습니다. 때로는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가 범한 죄에 따라 보응하시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를 만나시든지 죄를 묻지 않으셨습니다. “도대체 죄를 얼마나 많이 범했기에 이 모양이냐”, “무슨 죄를 범했느냐”라고 물어보시지 않으셨습니다.
탕자가 돌아왔을 때에도 그에게 “네가 무슨 짓을 하다가 왔느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죄를 범했느냐”라고 묻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천 년 전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심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다 천국에 들어갈 백성입니다.
그런데 죄가 있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모두 대속해주시고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게 된 저주를 모두 속량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일을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대속하시고,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 오면, 예수님께서는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못 걷게 된 자를 일어나게 하시고, 중풍병자를 고쳐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 이게 바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은 예수님을 만난 후 눈을 떠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요한복음 9장 3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에게 자신이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은 구원 받았습니다.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이 사람은 나이가 40세가 될 때까지 맹인으로 구걸하며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후, 큰 복을 받았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9장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낮’은 일할 때를 의미하고, ‘밤’은 일할 수 없는 때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할 수 있는 때가 있고,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때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할 수 있을 때에 일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는 일입니다. 전도하고 선교하고 봉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9장 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만 일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해서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목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까지 100% 구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목표를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10년 전, 태국 치앙마이에서 성시화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태국 치앙마이 인구의 31%가 기독교인입니다. 태국은 불교 국가입니다.
그런데 성시화집회를 계속하다 보니 그것이 태국 전체에 소문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서 집회를 인도할 때마다 태국의 각 도시에서 사역하시는 목회자들이 참석했습니다. 지금은 태국의 20여 개의 도시에서 성시화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태국에 가보니 태국 전 지역의 목회자들이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불교 나라 태국에서 사역하는 목회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한 사람도 놓치지 않으시고, 반드시 다 구원하실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9장 6~7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민간요법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해서 눈을 뜨게 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짓을 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눈을 뜨게 된다면, 실제로 눈을 뜬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눈을 뜬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맹인의 눈에 바르시고 맹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기분 나쁜 일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맹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면 눈을 뜬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순종하기 얼마나 어렵습니까. 사나운 사람은 예수님께 화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이렇게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평소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병자마다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향해 일어나라고 말씀하셨을 때, 죽은 자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면, 눈을 뜨겠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알았고,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사모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얘기를 들으면,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런 분이시고, 예수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해주셨다고 얘기해야 합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예수님에 대해 얘기해야 합니다. 듣든 말든 얘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기면, 순종하게 됩니다. 산 믿음을 갖게 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의 믿음이 산 믿음이 됩니다. 그리고 기적이 일어납니다. 축복이 있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찾아갔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고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그들에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눅 17:1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 명의 나병환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에게 가던 중에 병이 다 나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 중 한 명은 예수님께 돌아와 예수님의 발아래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무조건 순종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이 메고 왔을 때,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막 2:1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중풍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병만 나은 것이 아니라, 힘이 생겨 자신의 침상을 들고 갔습니다. 순종했을 때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을 때, 엘리사가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왕하 5:10)”고 말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고 나니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순종했을 때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순종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는 자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영생을 보지 못할 것이요,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만큼 순종합니다.
주님을 알고,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믿음만큼 자원해서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주님을 위해 살고, 말씀대로 살고, 주님의 뜻대로 순종합니다. 이것이 믿음의 열매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보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산 믿음을 가지면, 구원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대로 살면, 모든 복을 받습니다. 말씀대로 살며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 응답이 잘 됩니다.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믿고 무조건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9장 8~12절에 보면,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이르되 이는 앉아서 구걸하던 자가 아니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그와 비슷하다 하거늘 자기 말은 내가 그라 하니 그들이 묻되 그러면 네 눈이 어떻게 떠졌느냐 대답하되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그들이 이르되 그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알지 못하노라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다가 보게 된 사람에게 이후에도 계속 질문했습니다.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 보게 된 것이 믿어지지 않아 계속 반복해서 그에게 질문했습니다.
여러분은 믿어집니까? 이것이 믿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구원 받은 것은 공로로 인한 것이 아닙니다. 행위로 인한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은혜입니다. 믿어지는 것이 은혜입니다. 우리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신 귀한 선물을 주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에 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아버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순종하여 기적을 체험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