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고난도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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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6 10:03 조회6,575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고난도 축복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고난도 축복이다
2004년 05월 28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복음 9:1~3, 39~41
시각장애인들 중에는 안마사로 일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안마사로 일하는 어느 시각장애인 처녀와 총각이 결혼했습니다. 남자는 전혀 보이지 않고, 여자는 조금 보였습니다. 둘은 아주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길을 걸어갈 때에도 같이 가고, 안마하러 갈 때에도 같이 다녔습니다. 비록 장애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행복하게 잘 지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안마하러 다닐 때 이상하게 사람들이 남자에게만 안마해달라고 하고, 여자는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그런데 부부 안마사 중 남편은 미남인데, 부인의 얼굴에는 상처가 있어서 사람들이 부인에게서 안마를 받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돈을 잘 벌고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개안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이 성공적이어서 전혀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실망했습니다. 남편이 매우 괴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눈을 뜨게 되어 부인의 도움 없이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부부 사이가 멀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던 사람이 개안수술을 통해 보게 되었다면,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오히려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행복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돈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건강하면 행복합니까? 세상에는 돈과 건강을 가지고 있어도 불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돈과 건강을 가지면 좋지만, 그것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명예가 높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권력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습니다. 결혼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두 눈을 다 가졌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앞의 이야기처럼 두 눈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죄를 범하게 되고, 고민과 문제가 생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행복은 어떠한 조건이나 환경,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내 마음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 만족, 기쁨, 감사가 있으면 행복할 수 있습니다. 이것들이 마음속에 있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행복하게 살려면,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심보가 고약하면 돈과 권세와 명예가 있다 해도 그 사람은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심보가 고약하고 교만하고 악하고 음란한 인간들에게는 돈, 명예, 권세들이 행복을 주지 않습니다. 항상 원망하고 감사할 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어떤 조건에 있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불행하게 삽니다. 마음을 잘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행복할 것 같아 보이는데도 불행한 사람들이 있고, 불행할 것처럼 보이는데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것도 가지고 저것도 가지니까 행복할 것 같지만, 본인은 전혀 행복하지 않습니다. 좋은 집, 지식, 학벌, 명예가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 상태가 어떠한가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두 눈을 가지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다면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눈을 가리고 실험해보십시오. 그러나 앞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시각장애가 있어도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의 개안수술 후에 더욱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행해졌습니다.
두 눈이 보이지 않았을 때에는 그들에게 기뻐하고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개안수술 후에 그 마음이 깨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중요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만나십니다. 그는 이 세상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의 나이를 알 수 없지만, 살아오면서 많은 멸시와 천대를 받으며 남을 귀찮게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맹인을 보면서 ‘무슨 죄가 많아서, 누구의 죄 때문에 이렇게 됐을까’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고통 중에 사는 사람들을 볼 때, 흔히 ‘무슨 죄가 많아서 그럴까’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은 ‘왜 고난은 오는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고난을 당합니다. 또 고난의 결과를 모르기 때문에 앞길이 캄캄하고, 미래가 없는 것 같아서 괴로워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고민하는 만큼 그만큼 불행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혜가 능력이 지식이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을 가지시고, 완전한 사랑을 가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입니다. 또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모든 복을 다 가지고 계시고, 우리에게 나누어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하나님이 왜 우리에게 고난을 주십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나옵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고난을 지시고 돌아가실 정도인데, 우리에게 왜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까! 고난은 괴롭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저주는 아닙니다. 축복이 될 때도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 사람이 맹인으로 태어난 이유가 누구 때문인지 묻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질병은 괴로운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죄에 대한 징계로 병이 오기도 합니다.
요한복음 5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38년 동안 병으로 시달린 사람을 고쳐주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면, 죄로 말미암아 병이 올 수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에게 육체의 고난이 있다는 것은 우선 고난이 죄를 끝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특히 육체의 고난으로 예수를 믿어 구원 받게 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음란한 사람들에게 에이즈 등의 병이 생기는 것은 일종의 벌입니다. 이렇게 두려운 병이 생기는 것 자체가 축복입니다.
그러나 욥의 경우는 죄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닙니다. 사탄의 큰 시험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첫째, 하나님은 욥의 신앙을 잘 아셨으므로 감당할 수 있는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욥기 1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사탄에게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장 3절에서도 하나님은 “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여전히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켰느니라”라고 말씀하시며 욥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래서 2장 5절에 보면, 사탄이 욥의 뼈를 치고, 7절에서는 욥의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종기가 나서 온몸이 고통스럽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 영광 받으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셋째, 죄 없이 고난 당하는 성도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 욥에게 시험을 허락하셨습니다.
욥기를 읽어보면, 욥의 마지막이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데 고난이 온다면, 욥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고난을 당하게 되면, 먼저 혹시 범죄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범죄했을 때 당하는 고난은 징계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죄에서 돌이키게 하는 사랑의 채찍입니다. 그 외의 고난은 우리의 신앙과 인격을 온전하게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시련입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은 금덩어리를 정금으로 만들기 위해 용광로에 집어넣는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난이 오면,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고난이 왔을 때, 낙심하고 헤매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기도합니다. 기도하면 자연히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큰 은혜를 받으면 큰 변화가 일어나고, 신앙과 인격이 온전해집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욥과 같은 시험을 허락하실 때도 있는데, 이유는 인정 받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고, 상급과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시험을 통과한 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믿음을 인정해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이 좋은가를 인정하시고, 그 후에 엄청난 축복을 받게 하십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험 후에 갑절의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도 사자 굴에 들어가는 엄청난 시험을 통해서 그의 믿음이 얼마나 훌륭한지 드러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니엘을 더 축복하시고 크게 들어 쓰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9장 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심판의 목적은 옳고 그른 것을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이 심판은 양과 염소를 구분하기 위함입니다. 택자(擇者)와 불택자를 나누기 위함입니다. 양과 같은 택함 받은 백성은 반드시 예수 믿어서 구원 받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택자는 바리새인처럼 눈은 떴으나,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이들은 지옥에 갈 사람들입니다. 심판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장 25~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거늘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7~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심판 중에 제일 무서운 심판이 예수를 믿지 않는 심판입니다. 이는 그 사람이 염소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믿지 않는 것이 심판 받은 증거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가 믿어집니까? 믿어지시면 하나님의 자녀이고, 양입니다.
고난을 통해 죄를 회개하고, 주님 앞에 돌아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아주 주 얌전하시고, 살림도 잘 하시고, 아이들도 잘 키우고 매우 훌륭하신 여 성도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남편이 부인을 얼마나 때리고, 못 살게 하는지 아이들이 눈 뜨고 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그 부인은 끝까지 현모양처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남편에게 중한 병을 주셔서 몇 년 동안 고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낫지 않으니 결국 그분은 예수님을 믿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 그분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죽는 그 날까지 정말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그분은 병으로 고생하다가 천국에 갔지만, 그분에게 병은 축복이었습니다. 병 때문에 주님을 믿게 되었고, 사람이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고난을 통해 예수를 믿고 구원 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러나 불택자는 고난이 와도 깨닫지 못하고, 더 악해집니다. 이런 사람들은 고난이 와도 예수를 믿지 않고, 겸손해지지 않고, 거룩하게 살지 않고,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우편 강도같이 끝까지 예수님을 저주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고난이 저주입니다.
불택자들이 고난을 말미암아 약해지고 망하는 것은 택자들에게는 축복입니다. 반대로 성도들의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불택자들이 흥왕해서 더 악해지고, 나쁜 짓을 많이 하게 된다면, 예수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더 많이 괴로움을 당하겠습니까.
우리 성도들에게도 크고 작은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난이 축복이 되고 있는지, 고난이 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고난이 축복이 됩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에 고난을 많이 당했을 텐데, 그것이 저주가 되었는지 축복이 되었는지 생각해보십시오.
저 역시 고난을 많이 당한 사람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가난하여 물질로 고생을 많이 당했습니다. 고생이 매우 심해서 빨리 죽어 천국에 가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고난의 시절을 보내고, 옛날을 돌이켜볼 때, 고난이 얼마나 내게 축복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감사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 고난을 통해서 저로 하여금 항상 기도할 수밖에 없게 만드셨습니다. 적어도 하루에 세 번은 교회에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때로는 교회에서 철야기도하기도 하고, 산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헛되이 고난 당한 것이 아닙니다. 고난으로 인해 하나님의 축복을 체험하게 되고, 주님의 음성을 듣고, 믿음이 더 견고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고난이 축복이 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하나님께 너무 감사했습니다.
저는 대학생 때 가정교사를 하면서 제가 돈을 벌었습니다. 돈을 벌어서 쌀을 한 가마니 사면 벌레 먹은 쌀만 먹었습니다. 그리고 늘 5시간 이하로 잤습니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마치고, 졸업했습니다. 졸업식이 끝난 후 교회에 가서 엎드려 기도했습니다.
지난 4년을 뒤돌아보니, 잠도 못 자고 죽어라 일하고 공부했던 것밖에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왜 나를 이렇게 고생시키시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때 주님은 제게 “내가 너를 그렇게 묶어놓지 않으면, 네가 주의 종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주의 종으로 만드시기 위해 저를 가난하게 하셔서 다른 것을 할 수 없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특별히 저를 훈련시키신 것입니다.
아무쪼록 여러분들은 어떤 고난이 와도 그 고난을 축복 받는 기회로 만드시고, 영광 돌리는 기회로 만드십시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고난도 축복이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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