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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7장

예수님을 얼마나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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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7-10 14:10 조회3,48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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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얼마나 아는가

 

예수님을 얼마나 아는가

2017년 07월 09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7:25~36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세 부류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25절에 보면,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저 사람, 서울 사람이야.”, “저 사람, 부산 사람이야.”라고 말할 때, 서울에 사는 사람을 서울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예루살렘 사람’이라는 말은 예루살렘에 사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본문에 보면,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분위기가 험악했을 것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나타나시기만 하면, 예수님을 붙잡아 죽이려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기회를 노리고 있었습니다.

 

분위기가 험악함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오셔서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25절에 보면,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말하되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고 “이는 그들이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시지 않으시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셨을까요?

첫째, 예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으셨습니다.

죽을 자리에 이른다고 해서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러시아인 목사님들을 만난 적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예배드리는 곳에 러시아 비밀경찰들이 앉아 있다가 트집 잡을 것을 발견하고는 끌고 나가 죽인다고 합니다.

저보다 연세가 많으신 분이 공산당에게 붙잡히셔서 총에 맞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죽지 않으시고 기적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의 자리에서도, 총에 맞았어도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암에 걸렸다고 해서 다 죽는 것은 아닙니다. 90세가 넘어 돌아가신 분의 시체를 해부해보니 온몸에 암이 퍼져있었다고 합니다. 암이 갑자기 퍼졌겠습니까. 몸속에 암이 있었지만, 90세가 넘도록 암과 함께 건강하게 사신 것입니다. 이처럼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 10:29)”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알고 계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30절에 보면, “그들이 예수를 잡고자 하나 손을 대는 자가 없으니 이는 그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음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때가 언제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을 세우고 있어도, 아직 때가 되지 않았음을 예수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걱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셋째,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20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려는 위해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26절에 보면,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계획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는데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비웃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루살렘 사람들이 얼마나 완악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선한 일만 하셨습니다. 병으로 고통 당하는 사람, 나병환자, 맹인, 걷지 못하는 사람, 듣지 못하는 사람, 말 못하는 사람들을 다 고쳐주시는 등 좋은 일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일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하면서 죽이지 않으니 ‘왜 예수님을 죽이지 않는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의 계획대로 되는 것을 보려고 했는데,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가만히 있으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비웃었습니다. 얼마나 못된 사람들입니까.

 

본문 요한복음 7장 26절에 보면,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그들이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 줄 알았는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당국자’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지도자요, 유대 종교지도자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7장 11절에 보면,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13절에 보면, “그러나 유대인들을 두려워하므로 드러나게 그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이 두려워한 유대인들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장로들, 바리새인들이 중심이 된 유대인들을 가리킵니다.

 

요한복음 7장 12절에 보면,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20절에 보면,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무리’는 초막절을 지키기 위해 여러 지방에서 찾아온 순례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계획세운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 중에는 예수님을 가리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수님을 가리켜 무리를 미혹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7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너희에게 율법을 주지 아니하였느냐 너희 중에 율법을 지키는 자가 없도다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20절에 보면, 이에 무리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무리들은 바리새인들과 대제사장들의 계획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31절에 보면,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리 중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무리 중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큰 표적과 기사를 많이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보다 더 많은 표적을 보여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믿음은 좀 불안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표적 행하신 것만으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사탄도 표적과 기사를 행합니다. 사탄의 종들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마술을 행하는 것을 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2절에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표적만 보고 믿으려 하기보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 진리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확실한 믿음입니다.

 

표적을 믿는 믿음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똑바로 알고, 진리를 믿어야 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사도 바울은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표적과 기사가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14장 8~10절에 보면,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앉아 있는데 나면서 걷지 못하게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바울이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 큰 소리로 이르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일어나 걷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9장 6~11절에 보면,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 초기에 사도 바울에게서 굉장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행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의 손으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사도 바울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놀라운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사역 말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23절에 보면, “이제부터는 물만 마시지 말고 네 위장과 자주 나는 병을 위하여는 포도주를 조금씩 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저와 여러분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역 초기였다면, 사도 바울이 기도해주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사역 말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20절에 보면,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병든 사람이 생겼다면, 고쳐주어야 할 텐데, 그대로 두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전과 아주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사도 바울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능력을 행하게 하시면, 사도 바울에게서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으시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줍니까? 사도 바울이 과거에 행한 표적과 기사는 모두 성령께서 하신 것임을 보여줍니다.

사도 바울에게 능력이 있어서 표적과 기사를 행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았을 뿐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8~11절에 보면,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에 자신에게서 능력이 나타나니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복음도 전해야 하고, 병도 고쳐줘야 하니 얼마나 바빴겠습니까.

그런데 이제 죽을 때가 다가왔습니다. 순교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사도 바울에게서 능력이 나타나도 사도 바울이 능력을 행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에게서 능력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동역하는 디모데의 위장병도 고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시간을 주셔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이 지금까지 남아있어서 우리가 사도 바울의 설교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습니다.

병을 고치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만 행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1천 년, 2천 년이 지난 후에 살아갈 성도들을 생각하셔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능력을 그만 행하게 하시고, 사도 바울이 죽는 날까지 감옥에서 기도하며 편지를 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오묘합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 능력을 많이 행했고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열심히 일하고 능력을 많이 행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자신이 잘 나고 뛰어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다릅니다. 마태복음 7장 22~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가 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도둑질했습니다. 이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함으로 유명해졌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게 몰려왔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감사하다고 이들에게 많은 돈을 헌금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들이 얼마나 많은 돈을 모았겠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의 눈에는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보였습니다. 엄청난 일을 해내는 것을 보고 ‘저 사람은 설교도 잘 하지만, 능력 있는 종이다.’라고 생각하여 수만 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누구의 능력입니까.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성령께서 능력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요즘 많이 거론되는 이단 그 사람이 책을 많이 냈습니다. 그 책을 제게도 보내줬습니다. 제가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몇 부분을 보았습니다.

이 사람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귀신을 내쫓으면 사람들이 자빠졌습니다. 성도들을 세워놓고 이 사람이 성도의 머리에 손을 대면 성도들이 자빠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신이 나간 후 새 사람이 된 성도는 별로 없다고 합니다. 또 다른 귀신이 그 속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러니 이것은 사기입니다. 거짓 표적입니다.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들이 능력을 행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것인데, 자기가 귀신을 쫓아냈다고 합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입니다.

 

거짓 선지자뿐 아니라, 오늘날 목회자 중에도 자기가 잘해서, 자기가 훌륭해서 교회가 부흥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지 않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한 후, 처음에 5백 명이 들어가는 예배당을 지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2~3년 만에 예배당이 꽉 찼습니다. 그때 제 마음 속에 ‘이런 식으로 부흥하다가는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겠구나. 내가 설교를 잘 하는 모양이지. 내가 목회를 잘 하는 모양이지’라고 생각했습니다. 한순간 지나간 생각이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사탄이 주는 생각입니다.

그 주간, 수요일이 되었습니다. 수요예배 시간에 어른은 반주자와 제 아내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 몇 명만 앉아있었습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다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신이 없었습니다. 큰 일 났다 싶었습니다. ‘성도들이 왜 갑자기 나오지 않나. 좋지 않은 소문이 났나. 내가 잘못한 게 있나.’라고 생각하며 걱정했습니다.

예배가 끝나도 집에 갈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뭘 잘못했는지 가르쳐주세요. 성도들이 왜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

다음 날에도 집에 가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할 생각이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라고 큰 소리로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런 책망을 들어보신 분 계십니까? 아마 없을 것입니다. 책망 듣는 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는 제가 하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고, 제가 설교하고, 제가 심방하고, 제가 목회하지, 누가 합니까. 육안으로 보면, 다 제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 저는 몰랐습니다. 주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울며 회개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이 교회는 네가 세운 것이 아니라 내가 세웠다. 네가 설교를 잘 하고 목회를 잘 해서 성도들이 모이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백성을 모아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영로교회에 오는 성도들은 보통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많이 모아주시니 수만 명이 예배드리는 교회로 부흥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난 후, 저는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주님께서 우리 교회의 당회장이십니다. 저는 교육전도사와 같은 마음으로 충성할 테니 주님께서 다 맡아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을 당회장으로 모시고, 저는 교육전도사와 같은 마음으로 충성합니다.

 

그 후, 어느 주일저녁예배 시간에 성도들이 반 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제가 마음속으로 “주님, 심방 좀 하세요. 메추라기를 몰아오듯 성도들을 몰아오세요. 주님께서 모아주시지 않으시면, 우리 교회에 올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부근에 좋은 교회가 많고, 훌륭한 목사님께서 계신 교회가 많은데, 누가 저 같은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우리 교회까지 오겠습니까. 주님, 성도들을 모아주세요. 메추라기를 몰아오듯 몰아오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예배를 인도하며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대표기도가 끝나고 “아멘”한 후, 눈을 뜨니 예배실 문이 열리더니 성도들이 우르르 몰려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예배실이 꽉 찼습니다. 그 후, 제가 은퇴할 때까지 저는 늘 그렇게 목회했습니다.

 

5천 석 예배실이 꽉 채우는 것은 힘듭니다. 구석구석 빈 자리가 보이면, 저는 “주님, 심방 좀 하세요.”라고 기도합니다.

계속 예배드리다가 예배실이 꽉 찬 것이 보이면, “주님, 수고하셨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평생 그렇게 목회했습니다. 주님과 함께 목회했습니다.

제가 왜 행복한지 아십니까. 문제가 생기면,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평생 그렇게 살았습니다. 수영로교회는 특별한 교회인 줄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고백했습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께 모든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27~29절에 보면, 예루살렘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두 가지를 잘못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예수님을 다 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참 그리스도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틀린 말입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예수님을 안다고 해봐야 예수님에 대해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리 사람이요, 나사렛 가난한 목수의 아들이요, 형제는 누구라고 알 뿐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에 대해 얼마나 아십니까. 평생 교회에 다녔지만,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알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지 않는 사람,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예수님에 대해 바르게 알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알지도 못하는데, 신앙생활을 어떻게 바르게 하겠습니까. 예수님을 알지 못하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 성경을 모르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바르게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올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이단에게 미혹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에서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도록 성경을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야 합니다.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됩니다. 날마다 주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것이 즐겁습니다. 교회생활이 즐겁습니다. 예배드리는 것이 즐겁습니다. 찬양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기도시간이 즐겁습니다.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봉사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전도하고 선교하는 것이 행복합니다. 나누고 구제하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며 살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되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되 체험적으로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젊은이들이 연애할 때에는 서로가 서로를 잘 모릅니다. 아는 것 같지만 모릅니다. 그래서 속기 쉽습니다. 그러나 결혼하여 같이 살아보면, 그때서야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비로소 알게 됩니다.

살아보니 좋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입니다. 1년 살아보니 좋고, 2년 살아보니 두 배로 좋고, 3년 살아보니 세 배로 좋고, 10년 살아보니 열 배로 좋은 사람이 진짜 좋은 사람입니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이렇게 좋은 사람이 또 있을까’라고 생각될 만큼 좋아서 평생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분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알고 싶으십니까? 예수님을 알고 싶으십니까?

기도생활을 많이 하세요. 주님을 만나는 시간을 많이 가지세요. 놀라운 일을 많이 체험할 것입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사세요. 말씀대로 살아보세요.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계명대로 예수님처럼 서로 사랑하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체험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보면,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의 삶 가운데서 이루어진 것을 간증했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간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27절에 보면,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아노라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는 어디서 오시는지 아는 자가 없으리라”고 말했을까요? 그들은 성경에 무식했기 때문입니다.

미가 5장 2절에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메시아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28~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너희가 나를 알고 내가 어디서 온 것도 알거니와 내가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니라 나를 보내신 이는 참되시니 너희는 그를 알지 못하나 나는 아노니 이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도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믿겠습니까.

본문에 나오는 예루살렘 사람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독사의 새끼들아(마 23:33)”, “독사의 자식들아(마 3:7, 12:34, 눅 3: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이라고 해서 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요, 마귀의 자식들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31~36절에 보면,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하시니 이에 유대인들이 서로 묻되 이 사람이 어디로 가기에 우리가 그를 만나지 못하리요 헬라인 중에 흩어져 사는 자들에게로 가서 헬라인을 가르칠 터인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 한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잠시 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40일 후에 승천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너희가 나를 찾아도 만나지 못할 터이요 나 있는 곳에 오지도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 지옥에 갈 테니 주님께서 계신 곳에 올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뿐입니다. 지옥의 영원한 멸망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참 불쌍한 영혼입니다.

 

이들은 육신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고, 육신의 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직접 보면서도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미워하고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 후에라도 이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세상에는 끝까지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회개할 기회를 놓치면 안 됩니다. 기회를 놓친 후에는 아무리 후회해도 쓸데없습니다.

잠언 1장 28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하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리라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회를 놓치면, 끝난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열 명의 처녀 비유에서 보면, 슬기 있는 다섯 처녀는 등과 기름을 준비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는 아무리 얘기해도 말을 듣지 않고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신랑이 온 후에야 서둘러 준비하려 했습니다.

마태복음 25장 11~13절에 보면,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감사합니까? 예수님을 알게 된 것이 감사합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세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세요.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 천국에 가는 것은 물론이요, 땅 위에서 사는 동안 날마다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과분한 사랑을 베푸셔서 주님께 죄송스럽고 감사합니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가시다가 주님을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이 말씀을 듣는 귀가 복된 귀가 될 줄 믿습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예수님을 알게 된 것, 주님을 사랑하게 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우리가 말씀대로 살아서 주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날마다 체험하며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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