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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7장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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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9-19 15:00 조회3,34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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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2017년 09월 17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7:37~39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장막절 끝 날에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에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열두 살 이상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장막을 치고 한 주간 장막생활을 체험하는 날이 장막절입니다.

한 주간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막에 기거하면서 조상들이 고생했던 것을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는 40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많은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첫째, 날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해주셨습니다.

광야는 낮에 굉장히 뜨겁습니다. 그런데 구름이 뜨거운 햇빛을 가려줘서 시원하게 해주셨습니다. 광야는 밤이 되면 굉장히 춥고 어둡습니다. 그런데 밤마다 불기둥이 나타나 밝혀주고 따뜻하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섬세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날마다 메추라기를 보내주셔서 배고파 고생하거나 굶주려서 죽는 사람이 없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셨습니다. 생수가 강 같이 흐르게 하셔서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은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원래 광야에는 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는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좋은 물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신명기 8장 4절에 보면,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해어진 옷을 입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하는 동안 건강이 나빠져서 고생하게 하거나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광야 길을 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함께하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봐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시면, 부족함이 조금도 없습니다.

 

광야에서 40년을 보낸다는 것은 참으로 고생스러운 일입니다. 한편으로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을 체험하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체험하고, 반석에서 생수가 나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면서 살았으니 광야에서의 생활이 가장 은혜로운 시간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날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인도해주시고 돌봐주시는 백성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 외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면, 날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릴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과 규례를 말씀하시고, 그대로 살게 하셨습니다.

신명기 6장 24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항상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하심이며 또 여호와께서 우리를 오늘과 같이 살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항상 복을 받을 뿐 아니라 복을 누리며 살게 하시려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보면, “내가 오늘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행복하기를 원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게 살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방법을 찾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복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행복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명기 4장 6~8절에 보면, “너희는 지켜 행하라 이것이 여러 민족 앞에서 너희의 지혜요 너희의 지식이라 그들이 이 모든 규례를 듣고 이르기를 이 큰 나라 사람은 과연 지혜와 지식이 있는 백성이로다 하리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민족은 가장 훌륭한 민족이요, 가장 뛰어난 민족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대인들은 다섯 살만 되면 창세기 1장 1절부터 외우게 합니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을 외웁니다. 열두 살이 될 때까지 날마다 그렇게 합니다. 그래서 모세오경을 다 외웁니다.

그리고 열두 살이 되면, 성인식을 합니다. 말씀으로 무장한 다음에 어른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그렇게 합니다. 아이들로 하여금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게 하고, 외우게 하고, 평생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살게 합니다.

 

어렸을 때의 교육이 중요합니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시작해서 초등학교 6학년이 될 때까지의 교육이 가장 중요합니다.

일본에 가면, 우리나라 사람과 일본 사람의 차이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 갔을 때, 유치원생 아이 몇 명이 줄을 서서 유치원 버스를 기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느 집을 가든 현관에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일본에 가면 조심스럽습니다.

지극히 소소한 것까지 정리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교육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면에서 실패했습니다. 그저 공부만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원에 다니느라 바쁩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으로 만드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올바른 정신을 가진 지도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뒤처집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시키며 아이들을 교육시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민족, 가장 강한 민족이 되었습니다.

 

6백만 명 밖에 되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수억 명의 아랍 사람들과 전쟁했습니다.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이스라엘은 나라의 크기가 우리나라의 강원도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쉽게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6일 만에 아랍 사람들이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만큼 이스라엘은 강한 나라입니다. 그 누구도 함부로 볼 수 없습니다.

외관상으로는 작은 나라요, 작은 민족이지만, 세계의 경제를 잡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건망증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쉽게 잊어버립니다.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셔서 죽음을 면하고 구원 받았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기뻐하고 좋아했습니까.

그런데 사흘 후, 마라에 이르렀을 때, 물이 써서 먹을 수 없다고 난리였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너가게 하신 하나님께 무엇이 불가능하겠습니까.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합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사람에게는 100% 불가능한 일인데, 기도하니 기도한 대로 이루어지는 놀라운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절망할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께는 절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세요.

 

우리는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삽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많고 큰데, 우리는 그것을 다 잊고 삽니다. 당장 어려움이 오면 그것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건망증이 있는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 절기를 정해주셨습니다. 매년 절기가 되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생각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셨습니다.

 

잠언 3장 9~10절에 보면,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포도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을 제일로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복을 구하지 않아도 됩니다. 차고 넘치도록 복을 주실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3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생수의 강’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이사야 55장 1절에 보면,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시지 않으십니다.

과거가 어떠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목마른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서 마시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는 목마른 사람이 참 많습니다. 죄 많은 세상, 고생 많은 세상에서 고통을 얼마나 많이 당합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심령이 고갈되어서 사막처럼 메말랐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물론이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 심지어 평소에 새벽예배 열심히 나오고 기도생활 열심히 하고 성경을 열심히 읽는다는 사람 중에도 심령이 고갈되어 고통당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돈이 없기 때문입니까? 솔로몬은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모두 받아 누렸습니다. 그리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고백했습니다. 심령이 고갈되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솔로몬은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전 2:17)”라고 고백했습니다.

 

대궐 같은 집에서 돈을 쌓아놓고 잘 먹고 잘 산다고 해서 영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기도하는 중에 주님을 만나세요.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주님을 만나는 순간, 안개가 사라지듯 근심과 걱정이 다 사라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은혜를 많이 받았지만, 성령으로 충만하기 전에는 여러 가지로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해진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강하고 담대해졌습니다.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세상에서 두려운 것이 없었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힘 있게 전하고, 항상 기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족도 없고, 돈도 없고, 세상 지위도 없었습니다. 감옥에 갇혀 순교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기뻐하고 행복해했습니다. 항상 기쁨이 넘쳤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만 생각하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는 축복을 어떤 사람에게 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기도에 전심전력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장 14절에 보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기 전, 120명의 성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심으로 기도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9~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간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주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전심으로 구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전도사였을 때의 일입니다. 늘 은혜 받고 충성했지만, 때때로 심령이 고갈될 때가 있었습니다.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심령이 고갈되면 견디지 못합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없습니다.

주일 저녁이 되니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날 산에 올라갔습니다. 하루 기도하고 돌아올 생각으로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다 보니 목만 아플 뿐, 마음은 여전히 답답했습니다. 너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그 날 밤, 밤을 새며 산에서 기도했습니다. 피곤하고 배고프고 목은 더 아팠습니다.

화요일에도 산에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더 지쳤습니다.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제게서 멀리 떠나신 것 같았습니다.

수요일에는 낭떠러지 끝에 앉았습니다. ‘오늘 불을 받고 돌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몸부림치다가 떨어져 죽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몸부림치다가 떨어져 죽은 것이지, 자살한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기도하는데, 별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캄캄한 가운데서 꼼짝하지 못하고 기도했습니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마치 물을 갖다 퍼붓는 것 같았습니다. 성령의 불은 받지 못하고, 물벼락만 맞았습니다. 온몸이 다 젖었습니다. 화나고 속상했습니다.

‘부르짖다가 죽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두 손을 높이 들고 “주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순간, 불이 임했습니다. 캄캄한 밤중에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리고 한참 기도하다 보니 해가 떴습니다. 7~8시간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목은 잠겼습니다. 성령의 불 속에서 기도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듯이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6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가운데 중요한 것은

첫째, 예수님을 믿게 하여 구원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임하시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육신의 부모의 자녀였을 뿐인데,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중생합니다.

 

디도서 3장 5~7절에 보면,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나고, 거룩한 자가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내 힘이나 부모의 가르침에 의해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만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거듭난 자에게는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거듭난 자에게는 믿음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듭난 자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계시다는 것을 믿고, 하나님께서 좋으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거듭난 자는 창세기 1~11장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천지창조를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진화론을 믿습니다. 교회 중직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많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록된 말씀에 덧붙여도 안 되고, 말씀에서 빼도 안 됩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다 멸망할 것이라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에큐메니컬 운동하는 사람들, 종교다원주의자들은 “기독교에만 구세주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종교는 똑같다. 모든 종교는 하나다.”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이 다 멸망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공동번역 성경에서 십계명을 찾아보세요. 두 번째 계명이 아예 없습니다. 그것이 가톨릭입니다. 그들은 이단 중의 이단입니다.

보통 이단들은 우리와 비슷하고 한두 가지가 틀립니다. 그런데 가톨릭은 60~70%가 우리와 다릅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셔야 되요. 교회라고 해서 다 교회인 것은 아닙니다. 목사라고 해서 다 목사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똑바로 알고 똑바로 믿어야 합니다. 은혜 충만하고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한다고 해서 ‘성령의 역사가 대단한 분이구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9~10절에 보면,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탄의 활동을 따라 능력과 표적이 나타나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세에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나는데, 그들은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해서 택하신 자들도 미혹합니다.

은혜 충만한 것 같고, 능력을 행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하여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 7:23)”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주님과 상관없습니다. 사탄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에 보면,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왜 진리의 말씀을 마음대로 가감합니까. 진리의 말씀을 가감하는 것은 무시무시한 일입니다.

 

거듭난 사람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믿습니다. 세상에서 진화론을 가르쳐도, 그 말씀이 믿어집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을 가르치는 신학교에서는 창세기 1~11장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창세기 1~11장의 말씀을 신화라고 하고 믿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이단 중의 이단입니다.

그런 교회가 한국에도 많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은 다 똑같은 교회인 줄 압니다. 교회만 가면 구원 받는 줄 압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목사라고 해서 다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목사 중에도 사기꾼이 많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십니다. 이것은 성령의 은혜입니다.

 

셋째, 우리를 변화시켜주십니다.

말과 생각, 행실, 가치관, 인생의 목적과 목표, 성품이 변화되게 하십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 성령을 받은 사람은 분명히 변화됩니다.

 

넷째, 사랑이 충만하게 하십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원수를 용서합니다.

 

다섯째, 승리의 삶을 살게 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에 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귀와 싸워 이기게 하십니다. 환난과 시험을 이기게 하십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마음에 천국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요한복음 4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베드로전서 1장 8~9절에 보면,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 적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주님을 믿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으로 인해 즐거워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좋은지, 마음에 천국을 이룹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권능이 충만해집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섯째, 주님의 증인 노릇을 하게 하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걸어가면서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우리도 합니다. 주님께서 받으신 고난을 우리도 받습니다. 그리고 장차 영광을 받습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4절에 보면,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 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교는 성령 충만함을 받고 성령께서 말씀하신 것에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좋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에게 좋은 대로 하는 사람은 엉터리입니다.

선교역사를 보면,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따라 순종하여 선교사역이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갔지, 자기 멋대로 가지 않았습니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위해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주님을 위한 꿈과 소원을 갖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사람은 삶이 다릅니다.

 

일곱째,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게 하십니다.

사도행전 5장 40~42절에 보면,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았다고 해서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항상 성령 충만한 생활을 하려면,

첫째,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6장 18절에 보면,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생활이 유지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쓸 뿐 아니라, 여러 성도를 위해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다 보면, 기도시간이 길어집니다.

 

저는 기도하며 지구를 한 바퀴 돕니다. 개척 초기부터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제가 실제로 전 세계를 다니고 있습니다. 기도하는 종을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하기를 힘쓸 뿐 아니라,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방 식구들을 위해 기도하고,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전 세계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에 항상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아야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순종해야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 수 있는 이유는

 

사도행전 5장 32절에 보면,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오로지 기도에 힘썼던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평소에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아가면, 성령께서 항상 함께하셔서 은혜로 충만할 것입니다.

 

셋째, 교회생활을 충실히 해야 합니다.

교회생활을 충실히 하면, 은혜 받을 기회도 많습니다. 은혜를 받아 건강해집니다. 그러나 교회에 있는 시간보다 세상일을 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심령이 메마르기 쉽습니다.

 

넷째, 주의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충성할수록 죄 지을 시간이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하루 24시간 교회에서 주의 일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오직 주님만 생각하며 주님을 위해 살고 싶었습니다. 이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씀을 꼭 다시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붙잡고, 마음에 새기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는 삶을 살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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