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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7장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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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7-03 16:11 조회3,3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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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

 

예수님에 대한 유대인들의 생각

2017년 07월 02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7:10~24

 

유대인의 3대 명절 중 하나인 초막절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루살렘에 모인 사람들 중에 예수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11절에 보면, “명절중에 유대인들이 예수를 찾으면서 그가 어디 있느냐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선한 일만 하셨습니다. 악한 일은 한 번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예수님을 좋은 분, 고마운 분, 훌륭한 분으로 생각할 것 같은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12절에 보면, “예수에 대하여 무리 중에서 수군거림이 많아 어떤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 하며 어떤 사람은 아니라 무리를 미혹한다 하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20절에 보면,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앙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완전하십니다. 조금도 부족함이 없으십니다. 허물이 없으십니다. 실수도 없으시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을 미혹한다고 하고 미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모든 면에서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저와 여러분은 사람들로부터 좋은 소리만 듣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전도서 7장 21~22절에 보면, “또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 그리하면 네 종이 너를 저주하는 것을 듣지 아니하리라 너도 가끔 사람을 저주하였다는 것을 네 마음도 알고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신에 대해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는가에 신경 쓰거나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악담하고 저주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마음만 아플 뿐입니다.

사람은 참 고약합니다. 자신이 다른 사람을 악담하고 저주한 것은 다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악담하거나 저주하면, 기분 나빠하고 화내는 사람이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으려 하거나 사람들로부터 칭찬 들으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요한복음 7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형제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지 않으셨고, 갈릴리에 며칠 동안 머물러 계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14절에 보면, “이미 명절의 중간이 되어 예수께서 성전에 올라가사 가르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초막절을 1주일 동안 지켰기 때문에, 명절의 중간, 즉 3~4일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올라가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시지 않으실 것처럼 “내 때가 아직 차지 못하였으니 나는 이 명절에 아직 올라가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뒤늦게 예루살렘에 가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전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을 때에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마가복음 1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쉬지 않으시고 마을마다 다니시며 전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인 초막절을 놓치지 않으시고 사람들에게 전도하려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가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뜻대로 행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까지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쉴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집회를 인도하러 외국에 가면, 관광은 하지 않습니다. 관광할 생각이 있으면, 아예 처음부터 관광할 목적으로 갑니다.

말씀 전하는 것과 관광하는 것을 확실히 구분합니다. 그래서 집회를 인도하러 간 곳이 관광지라도 해도 저는 관광하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하는 것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1994년 제가 중국에 갔습니다. 저를 초청하신 분들께 출발하기 전에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복음을 마음껏 전할 수 있게 해주면 가지, 그렇지 않으면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가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중국 장춘에 가니 지위가 높은 분이 외제차를 타고 저를 마중 나왔습니다. 장춘에 있는 20층 고급호텔에서 큰 방을 제게 사용하게 하고, 식사 때마다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대로 말씀을 전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2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에서 설교했습니다. 성도 중에는 교회에서 2백㎞ 떨어진 곳에 사는 성도도 있다고 했습니다.

예배당에 다 들어올 수 없어 교회 밖에서 말씀을 듣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조용히 말씀을 전합니다. 그런데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제 설교를 듣고 모두 울었습니다.

그때 제 설교를 중국어로 통역하는 분이 믿음이 별로 없는 분이었습니다. 그 날 이분이 제 설교를 통역하다가 불을 받았습니다. 통역을 시작할 때에 그분에게 불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흥분된 상태에서 눈물 흘리며 통역했습니다. 그러니 그것을 들은 성도들이 모두 울었습니다.

 

복음 전하러 다니다 보면, 신기한 일이 많이 벌어집니다. 하나님께서 날씨도 주장하십니다. 그러니 말씀을 전하다 보면 흥분됩니다.

어디를 가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행하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증거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초막절에 성전에서 예수님께서는 완전하고 능력 있고 훌륭한 말씀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28~29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45~47절에 보면, “아랫사람들이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로 오니 그들이 묻되 어찌하여 잡아오지 아니하였느냐 아랫사람들이 대답하되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하니 바리새인들이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실 때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뛰어났습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권위 있는 말씀을 예수님께서 전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15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은 배우지 아니하였거늘 어떻게 글을 아느냐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 있게 말씀을 전하시니 유대인들은 ‘우리는 저 사람이 무식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는데, 언제 글을 배워 저렇게 능력 있게 말씀을 전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외모를 보고 판단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의 외모를 보기 쉽습니다. 학벌이 어떠한가, 세상적인 지위가 어떠한가, 재산이 얼마나 되는가, 가문이 어떠한가, 말을 얼마나 잘하는가 등을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요 7:2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본문 요한복음 7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생각을 사람들에게 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교훈을 사람들에게 전하셨습니다.

 

둘째, 본문 요한복음 7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하나님만 영광 받으시도록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설교자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첫째,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을 인용해서 전하려고 하지 말고,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자기 생각, 자기주장을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복음만 전해야 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 2~4절에 보면,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고 해야 하는데, 진리의 말씀에서 돌이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요즘 코미디처럼 설교해서 인기를 끄는 목회자가 있습니다. 말을 잘 하고 웃겨서 세상 사람들도 인정합니다.

목회자가 사람을 웃기려고 설교하다 보면, 은혜와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설교하는 목회자가 목회하는 교회는 크게 부흥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사람의 방법으로, 사람을 웃기려고 설교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둘째, 설교자 자신이 영광 받으려고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고 생각해야 합니다.

미국 어느 교회의 목사님은 박사학위도 있고, 유명한 분입니다. 제가 미국에 머무는 동안 그분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 목사님의 설교에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그 목사님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았습니다. 자신이 지식이 많고 책을 많이 읽고 유식하다는 것을 설교를 통해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을수록 설교가 은혜롭지 않았습니다. 설교자가 교만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말년에 열매가 좋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목회자가 설교할 때, 성도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물론 설교 내용이 좋아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목회자의 설교를 들으며 ‘저분이 얼마나 은혜 받았는가, 저분이 예수님을 만났는가’를 생각합니다. 설교를 계속 듣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말씀을 전하지만,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자신이 그 말씀대로 살면서 그렇게 설교하는가.’를 생각합니다.

 

어느 교회든지 목회자가 부임하면, 성도들이 목회자의 설교에 귀를 기울입니다. 새로 부임했기 때문에 다른 것에 대해서는 모릅니다. 그래서 설교에만 집중합니다. 설교를 잘하는가 못하는가, 성경을 얼마나 아는가, 외모가 어떠한가를 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사람이 보입니다. 물론 설교를 듣지만,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분이 과연 은혜 받은 사람인가, 저분이 기도하는 사람인가, 저분은 성격이 좋을까’를 생각합니다. 말씀을 듣다 보면, 설교자의 성질이 어떠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분이 주님을 얼마나 닮았나, 말씀대로 살면서 저렇게 설교하나, 얼마나 사명감을 갖고 있는가’를 생각합니다. 설교를 듣다 보면, 설교자의 신앙과 인격, 생각 등을 꿰뚫어보게 됩니다.

보기만 해도 은혜롭고, 목소리만 들어도 은혜롭고,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목회자가 된다면, 그 목회자는 성공한 목회자입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이 어떤 마음과 자세로 말씀을 듣는가가 중요합니다. 어디에 관심을 두고 말씀을 듣는가가 중요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려고 하시는 교훈이 무엇인가에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에 관심을 두고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아버지, 말씀을 듣다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해주세요. 제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 깨닫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하며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깨달을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욕심대로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아버지,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합니다.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세요. 설교 중에 말씀해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듣는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주십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셋째, 사람의 말로 듣지 말고,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신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참 좋은 교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7~8절에 보면,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고,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9절에 보면,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랑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사도 바울이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을 정도로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랑이 많은, 좋은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처럼 목회자가 말씀을 전할 때에 사람의 말로 듣지 말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으로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말씀이 믿는 자 속에서 살아서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 속에서 말씀이 살아서 역사가 일어나 말씀을 믿는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변화가 일어나게 하시고, 믿음을 갖게 해주시고, 말씀대로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설교를 잘 들으면, 진리를 똑바로 알게 됩니다. 진리의 말씀을 믿고 사랑하게 됩니다. 말씀대로 행하며 살게 됩니다.

설교를 듣고 깨달으면,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합니다. 그래서 건강한 믿음의 사람들은 행복합니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믿을 뿐 아니라 말씀대로 사는 사람들을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축복을 받아 간증거리가 많아집니다.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교만한 사람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자랑하고 설교를 비판합니다. 이런 사람은 절대 은혜 받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수십 년 동안 예수님을 믿었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말씀대로 살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점점 완악해집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도 불행하지만, 교회에 해를 많이 끼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잠 3:34).

 

일본 야마구치현에서 연합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일본 전역에서 수백 명의 목회자가 그곳에 모였습니다.

아베 총리를 비롯하여 일본 역사에서 유명한 인물들이 야마구치현의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이 아주 교만하고, 다른 지방 사람들을 깔본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왠지 조심스러웠습니다. ‘교만한 사람들 앞에서 잘못 했다가는 망신당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곳의 목회자가 제게 “일본은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전 세계 중에 최고인데, 왜 교회만은 잘 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저는 “전 세계를 다녀보지만, 일본만큼 훌륭한 나라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며 일본을 한참 칭찬했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말을 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만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으십니다. 성령의 은혜가 있어야 교회가 부흥합니다. 그런데 일본은 너무 교만하기 때문에 일본 교회는 부흥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집회에 참석했던 수백 명의 목회자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한국을 괴롭혔던 것을 용서해달라고 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앞으로 일본 교회도 달라질 줄 믿습니다. 겸손하면 달라집니다.

 

본문 요한복음 7장 20절에 보면, “무리가 대답하되 당신은 귀신이 들렸도다 누가 당신을 죽이려 하나이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시자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니냐(마 12:23)”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마 12:24)”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악한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완악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죄와 허물을 지적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 23:33)”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든 사람을 고쳐주시는 것을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님께서 세상 일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안식일에 일한다고 하며 예수님께서 하시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대해 여러 가지로 설명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7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한 가지 일을 행하매 너희가 다 이로 말미암아 이상히 여기는도다 모세가 너희에게 할례를 행했으니 (그러나 할례는 모세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조상들에게서 난 것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안식일에도 사람에게 할례를 행하느니라 모세의 율법을 범하지 아니하려고 사람이 안식일에도 할례를 받는 일이 있거든 내가 안식일에 사람의 전신을 건전하게 한 것으로 너희가 내게 노여워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배고파서 밀 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님께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마 12:2)”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자기와 그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자기나 그 함께 한 자들이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지 아니하였느냐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마 12: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마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장 9~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회당에 들어가셔서 한쪽 손 마른 사람을 보셨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예수님을 고발하기 위해 예수님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마 12:10)”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마 12:11~1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한쪽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이 어떻게 하여 예수님을 죽일까 의논했습니다.

 

마가복음 2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이라고 해서 무조건 일하지 않으려고 하지 말고, 선한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요한복음 8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마귀의 자식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은 마귀가 하는 짓 그대로 합니다.

 

마가복음 7장 9~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전통을 따라가느라 전통을 앞세우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립니다. 이것이 부흥되지 않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그들은 교만하여 자기 나름대로의 전통과 습관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음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 곳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그런 곳은 교회가 아닙니다. 말씀대로의 교회가 아닙니다. 자기 나름대로의 전통과 습관을 따라 모이고 예배하니 그곳에 성령이 계시겠습니까.

 

바리새인들은 마귀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가리켜 귀신 들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전통을 따르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렸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절대로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깨달은 대로 행하게 하옵소서. 고칠 것은 고치고, 버릴 것은 버리고, 행할 것은 행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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