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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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3-06 15:42 조회4,267회 댓글0건본문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신 하나님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신 하나님
2017년 03월 05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5:19~29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은 특별히 축복을 받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창세기 12장 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터를 잡고, 생활 터전이 짜여 있는 자기 집, 친척이 있는 고향을 떠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라고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앞으로 말씀해 주시는 대로 따라갈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고 고향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이 많지만 그 중에 아주 특별한 복이 있습니다. 창세기 22장 17~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특별한 자손을 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갈 3:16)”고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 천하 만민을 복 받게 하는 자손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그 자손’은 복수가 아닙니다. 단수입니다. 한 사람, 네 자손 중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씨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씨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메시아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메시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셨습니다. 이방인들이라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해주셨습니다(갈 3:13~1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는다는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기 전에는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를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메섹에 많다는 것을 알고, 그들을 다 잡아가두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을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고 고백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미워할 이유가 없는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때리고 죽이고 감옥에 넣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메시아이신 것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사도 바울을 긍휼히 여겨주시고, 복음을 전하는 직분을 사도 바울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유대인들도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시요 메시아이신 것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들이 메시아 그리스도를 죽이고 있다는 것을 몰라서 끔찍한 잘못을 하고 있으니까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진리를 똑바로 알지 못해서 거짓 진리에 속아 잘못된 종교생활을 하다가 지옥에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진실을 모르고 거짓에 속아 못된 짓을 하고 불행을 겪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된 진리에 속지 않도록, 거짓말에 속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성령의 은혜로만 진리와 진실을 똑바로 알고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20세기의 가장 큰 불행은 전 세계의 교회들이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고 제멋대로 해석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목회자들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가르침을 진리인 줄 알고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성경을 그대로 믿지 않고 제멋대로 해석합니다.
우리나라에 있는 교회 중에도 창세기 1장 1절의 말씀을 믿지 않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들은 창조론을 믿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의 말씀이 신화라고 주장합니다. 다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진화론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기적과 같은 사건도 꾸며낸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그 교회에서 사용하는 공과책을 보았습니다. 주일마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주일학교 공과책을 보았습니다.
홍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에게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라고 명령하시고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홍해를 향해 지팡이를 내밀었을 때에 홍해가 갈라져 벽처럼 양쪽에 물이 서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 가운데의 길로 건너가게 하신 사건인데,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는 그 교회에서 사용하는 공과책에는 그렇게 설명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 나라에는 자연 현상으로 때때로 모래가 모여 바다 위에까지 올라올 때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이라는 것을 믿지 않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설명했습니다. 그것을 보니 화가 났습니다.
지금은 고고학이 발달되었고, 최신 장비를 이용해서 바다 깊은 곳까지 카메라를 넣어 촬영하는 기술이 발달되었습니다. 그래서 홍해의 바닥을 조사해봤습니다.
정확하게 바다 속에 모래가 언덕 같이 쌓여 사람이 건너갈 수 있었던 것이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바다가 굉장히 깊어서 모래가 자연적으로 바다 위로 나올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발한 지점과 도착한 지점이 어디인지 정확합니다. 제가 성지순례를 갔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발한 지점과 도착한 지점에 깃발을 세워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간 모랫길 여기저기에 애굽 병사들의 마차 바퀴가 지금도 있습니다.
성경 말씀은 정확 무오한 말씀이요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것을 꾸며낸 책이 아니라는 것을 고고학자들을 통해 증명되고 있습니다.
성경이 정확 무오한 책이라는 것을 예수님을 모르는 고고학자들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이해할 수 없는 기적들을 꾸며낸 신화처럼 생각합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이 누구신지 잘 모르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 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꼭 예수만 믿어야 천국 가느냐’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모든 종교는 같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종교에든지 메시아는 있고, 어떤 종교를 믿든 구원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라고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이 퍼졌습니다. 전 국민의 97%가 기독교인이었던 영국에 지금은 기독교인이 전 국민의 3%도 되지 않습니다. 전도할 필요 없고, 예수님만 믿을 필요도 없으니 교회가 점점 작아져서 교회가 없어졌습니다.
한때 한국에 선교사를 보낸 영국의 교회에서도 성도가 몇 명 모이지 않다가 최근에는 성도들이 모이지 않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교회를 팔아넘겼다고 합니다.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한국 교회 중에도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은 목회자와 그 목회자를 따르는 사람들은 이상합니다.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별 짓을 다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교회에 성도가 모이지 않아 교회가 없어집니다.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그들 속에 성령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육에 속한 사람입니다(고전 2:14). 육에 속한 사람은 믿음이 없는, 세상 사람과 똑같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유다서 1장 19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없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속에는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똑바로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잘못 믿는 사람들은 언뜻 보기에는 예수님을 믿는 것 같지만 그들은 구원 받은 사람도 아니고, 구원 받을 사람도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없는 사람,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성경은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17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에 보면,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기록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보통 책과 다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예언의 말씀에서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만약 하나라도 더하면, 이 책에 기록된 재앙을 더하실 것입니다. 하나라도 빼거나 믿지 않는 사람은 생명나무와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실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친구를 따라 교회에 갔는데, 정통 보수 교회에 가게 된 것이 감사합니다. 성경을 정확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교회에 가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리고 기도를 많이 하는 교회였습니다. 성도들이 얼마나 열심히 기도하는지, 저는 그것을 보면서 ‘기도는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또 하나 감사한 것은 나를 전도한 친구의 형님을 만난 것입니다. 그분은 성령 충만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을 보며 ‘평생 이렇게 예수님을 믿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그분보다 훌륭한 분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훌륭한 분을 하나님께서는 제게 붙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을 따라다니며 형님이 하는 대로 똑같이 따라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것이 제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본문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기로 결심한 이유가 나옵니다. 하나는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셨기 때문이요, 또 하나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성 모독죄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께 트집을 잡고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유대인들처럼 실수하지 않으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1장 3~6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창세 전에 택함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7~12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자 하나님, 즉 그리스도이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함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13절에 보면,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성령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구원 받고 성령의 인 치심을 받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신다는 것은 성령께서 거하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요,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 모두 하나님이십니다.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 보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축도할 때에 많이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놀라운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랑,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셔서 믿음으로 살아 결국 승리하고 천국에 들어가도록 책임져주시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영원토록 함께 있기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게 축복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도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 혼자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8~9절에 보면, 빌립이 예수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빌립에게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본 것은 하나님을 본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싶으면 예수님을 깊이 알면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도 다 아시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주셨는데, 예수님께서도 생명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창조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그리스도의 형상대로 회복시키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22~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 받고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심판하는 권한을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을 섬긴 사람들은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심판 자리에 올 필요도 없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입니다(롬 10:17).
요한계시록 1장 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 말씀을 열심히 읽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알고 진리를 똑바로 믿는 것이 얼마나 복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17절에 보면,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때문에 죄 사함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성령님이 그 안에 거하시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모시고 사는 사람은 천국에 가서도 하나님을 영원히 모시고 살 사람입니다. 영생을 얻었다는 것이 이런 뜻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의 안에 하나님께서 계십니다. 성령께서 그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몸이 성령의 전입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속에는 항상 주님께서 계십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었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망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생명을 얻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다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28~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가지 부활이 있습니다. 첫 번째 부활은 생명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부활하여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활은 천년왕국이 지난 후,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질 때에 죽은 사람이 모두 부활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다 부활합니다. 그들에게는 심판이 없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부활은 심판의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부활을 심판의 부활이라고 하는 이유는 천년왕국이 지난 후 묶여있던 마귀를 풀어주는 순간, 마귀가 하나님께 반역을 하고 공격합니다. 그때 전체가 완전히 멸망합니다. 그래서 심판의 부활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6절에 보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을 하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을 합니다. 서로서로 사랑하면서 산 사람은 생명의 부활을 하고, 형제를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고 불의한 짓을 해서 괴롭히는 못된 인간은 심판의 부활을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형제를 사랑하느냐 미워하느냐에 따라 심판이 달라집니다.
마태복음 25장 31~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데, 양과 염소로 구분하는 것처럼 모든 인간을 구분하십니다.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천국에 들어가서 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주리실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라 하실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셨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으셨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드셨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히셨을 때에 와서 본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직접 예수님께 한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 보면, 임금 되신 예수님, 심판주이신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마 25:41~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들이 불평할 때에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마 25:45)”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양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은 사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 그 안에 성령이 있는 사람입니다.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 사람입니다.
염소는 마귀의 자녀를 가리킵니다. 지옥에 가서 영벌을 받을 사람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5장 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양은 형제를 사랑한 사람이고, 염소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염소입니다. 마귀의 자녀입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사람은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입니다. 영생을 얻은 사람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 안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이 없는 사람,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의 안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속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사망 가운데에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양과 같은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우리가 가장 지켜야 할 계명, 우리가 지키면 주님께서 기뻐할 계명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주님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1).
마태복음 5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는 사람이 양과 같은 사람입니다. 이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은 염소와 같은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4장 11~13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었습니다. 성령님께서 그 사람 속에 계십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갈 4:6).
로마서 8장 14~16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우리를 인도해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해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예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말씀을 믿고 사랑합니다. 말씀대로 살게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계명대로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고, 원수도 사랑합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줍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그러나 믿음이 작은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시고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우리는 점점 변화됩니다. 마귀의 형상이 없어지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점점 회복됩니다.
성령 충만하게 되면, 믿음도 충만해지고 사랑도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뿐만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됩니다.
성령 충만하면 권능이 충만해집니다. 우리에게 힘이 생깁니다. 그래서 마귀와 싸워 이겨 거룩하게 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서 축복을 받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담대해집니다. 그래서 매를 맞아도 순교하더라도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이 사람들은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에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되고, 예수님과 함께 천년동안 왕 노릇하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장차 받을 영광이 크다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성령으로 충만한 성도가 되셔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을 똑바로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똑바로 알고 똑바로 믿을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하고 사랑이 충만한 성도가 되셔서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으셔서 마귀와 싸워 이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증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 우리 마음에 잘 새겨지게 하시고, 그대로 믿고 그대로 살게 하여주셔서 우리의 남은 생애가 더 아름다워지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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