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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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2-22 11:12 조회3,396회 댓글0건본문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2017년 02월 19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5:1~9
본문에 보면, 유대인의 명절 가운데 하나인 유월절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셨다가 38년 된 병자를 고쳐주신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3대 명절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중에 가장 큰 명절인 유월절이니 1년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 동안 고생하는 그 사람을 찾아가셨습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이라는 뜻으로, 베데스다 연못 가에는 많은 병자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천사가 가끔 연못에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그때 누구든지 먼저 연못 속에 뛰어들면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연못 주변에는 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맹인 등이 물이 움직이면 물로 뛰어가려고 있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도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움직이게 할 때에 내가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야지.’라고 생각하고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런데 자기보다 먼저 물 속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어서 뜻을 이루지 못한 채 38년 동안이나 병을 고치지 못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5장 7절에 보면,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외로움이 그의 마음에 맺혀있었던 것 같습니다.
38년 된 병자의 나이가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38년 동안이나 병으로 고생했다고 하니 나이가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병이 굉장히 중할 것입니다.
그러니 자식이나 가족이 있다 할지라도 얼마 동안은 도와주었겠지만, 38년이나 같이 있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마 다 자기가 먹고 살 길을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가운데 혼자 외로이 고생했을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한 마디로 말해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가족도 없고, 나이도 많고, 병도 중해지니 갈수록 절망적입니다.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이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예루살렘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제쳐놓고,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에 보면,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자기 남편이 아닌 수가 성 여인이 등장합니다. 사람들이 이 사람을 볼 때마다 얼마나 욕하고 흉보고 비난했겠습니까. 오죽 하면 이 여자는 사람이 있을 때에는 우물가에 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많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 있었다고 하고 지금 있는 자도 자기의 남편이 아니니 어떻게 보면 쓰레기 같은 인간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죄인 중의 죄인으로 취급하고, 못된 인간이라 비난합니다. 그러니 이 여자는 절망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사마리아 땅에 가시고 수가 성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이 여자가 언제 물 길으러 나오는가를 아시고 그 시간에 우물 가에 가셔서 이 여자를 기다리셨습니다. 이 여자를 만나시기 위해 기다리셨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님을 만난 후에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이 여자는 동네에 들어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온 동네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직접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성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만나주시니 문제가 한순간에 해결되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큰 복은 예수님을 만나는 복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복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아마 여러분 중에는 스스로 교회에 가고 싶어 나온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요 6:44)”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예수님께 올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스스로 교회에 나온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시고 이끌어주셨습니다. 전도 받아 교회에 나온 분들은 아버지께서 그 사람을 보내셔서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시지 않으시면, 예수님을 믿을 자가 아무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서울 창신초등학교 6학년 1반 반장이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한국전쟁 직후라 한 교실에 학생이 100명 정도 앉아있었습니다.
제 옆에 자리가 비어있었는데, 강원도 인제에서 학생이 전학 와서 제 옆 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친구가 제게 “교회 가자”고 해서 제가 그 친구를 따라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아주 정확하게 때를 맞추셔서 예수님을 잘 믿는 친구를 보내주셨습니다. 자라서 저는 목사가 되고, 그 친구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사람들은 다 예수님께 오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 맡기신 사람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100% 완전하게 다 구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제가 러시아에 가서 집회를 인도할 때마다 감사한 것이 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공산 치하에 있었던 수십 년 동안 예수님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신앙생활하시는 분들은 예수님께서 찾아오신 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분들은 목숨 걸고 전도합니다. 매우 헌신적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는 것과 다릅니다. 이분들은 주님을 직접 만났기 때문에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예수님을 믿게 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행함으로 구원 받을 자는 한 사람도 없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해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잘 나서 구원 받았고 복 받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38년 된 병자가 한 자리에서 어떻게 38년 동안 버텼는가를 생각하면, 참으로 대단한 사람으로 여겨집니다. 여러분은 이런 모습으로 38년 동안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이런 형편에 처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심합니다. 신세타령을 하고, 괴로워하다가 자살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형편에 처하면, 절망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38년을 어떻게 버텼을까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기다리다보니 38년이나 되었습니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절망적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면, 살 길이 반드시 열리고 좋은 일이 생깁니다. 그러나 절망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면, 그 사람은 삶이 비극으로 끝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경우에도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 갈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언제 죽든지 천국에서 눈을 뜰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해주십니다. 히브리서 13장 5절에 보면,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원수 마귀가 속이려고 해도 속지 마세요. 어려움을 당해서 괴로울 때, 앞뒤가 꽉 막힌 것 같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나를 떠나신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지키시고, 말씀하신 것을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절대 우리를 떠나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시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원수 마귀에게 속지 않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나에게도 기회가 오겠지.’라고 생각하며 38년이나 버텼습니다.
드디어 예수님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 5:6)”라고 물으셨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요 5:7)”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으셨을 때에 38년 된 병자가 “네,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대답할 것 같습니까? 저는 예수님께 “예수님, 그것을 말씀이라고 하세요?”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제가 신학교에 다닐 때에 개척 교회에서 사역했는데,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에 되었을 때였습니다.
기도 많이 하시는 집사님께서 제게 “전도사님, 이 예배당에 교인이 꽉 차기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께 “집사님, 그것을 말씀이라고 하세요? 당연히 꽉 차기를 원하죠.”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랬더니 집사님께서 “기도의 눈물이 차야 교인이 찹니다.”라고 마치 선지자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 제가 아무리 많이 울어도 어떻게 예배당을 눈물로 채우겠습니까. 말이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은 “아닙니다. 눈물이 차야 교인이 찹니다.”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말씀이 계속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 제가 설교할 때에 서는 강단은 눈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날부터 강단에 앉아서 울었습니다. “아버지, 우리 교회를 채워주세요.”라고 기도하며 울었습니다. 많이 울어야 강단이 눈물로 찰 테니까 많이 울었습니다. 그때부터 제가 울보가 되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눈물을 펑펑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개척한 지 3개월이 되었을 때에 성도 수가 107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는 180명이 되었습니다. 아이들도 40~50명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셨습니다.
제 눈물이 아직 예배당에 차지 않았습니다. 강단이라도 눈물로 채우려고 생각하고 기도했더니 1년 동안 여러 번 이사할 정도로 부흥되게 하셨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라고 말한 것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는데,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아무리 애써도 안 되는 것이 이 사람의 마음에 고통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께는 차마 도와달라고 말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딱한 사정을 예수님께 아뢰면 좋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사정을 예수님께 말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질문할 필요가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당연히 낫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에게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질문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마가복음 10장 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맹인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바디매오는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바디매오가 눈을 뜨기를 얼마나 원했겠습니까. 바디매오가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할 줄 예수님께서는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질문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매우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픈 사람의 병을 고치실 뿐 아니라, 가장 좋은 복을 주시려는 마음으로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에게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아마 바디매오는 눈을 뜨는 것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생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모든 축복을 주시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의 질문 속에는 예수님의 크신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솔로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1천 번제를 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고 말씀하셨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장수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 원수의 생명을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으니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네 앞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11~13)”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의 형편을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병으로 고생하는 것도 아시고, 여러분이 고민하는 문제도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문제만 해결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네 고민이 뭐냐?”라고 묻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얼마든지 주시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더 큰 복을 주시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나무에 달려 죽는 자는 저주 받은 자인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은 저주를 속량해주시기 위해 우리를 대신하여 나무에 달려 저주스럽게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처럼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저주 받으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저주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저와 여러분은 마치 죄를 지은 적 없는 사람처럼 희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우리의 몸도 변화됩니다. 죽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아프지 않고, 장애가 없는, 영생하는 완전한 몸으로 변화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물질 문제로 고생하는 분이 있습니까. 질병으로 힘든 분이 있습니까. 여러 가지 고통으로 절망 가운데 있는 분이 있습니까.
주님께서는 고통 당하는 사람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그리고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줄꼬? 내가 너를 위해 어떻게 해줄꼬?” 라고 물으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다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많습니다만, 예배 중에도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가 있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때에는 불이 임하기도 합니다.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주님께서 오셔서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저는 50여 년 동안 행복하게 목회했습니다. 제가 행복하게 목회할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든지 기도하면 주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주셨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제게는 간증거리가 생겼습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하기 전에도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수천, 수만 명이 모이는 환상을 제게 보여주시며 “이 양 떼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에서 제게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환상을 보여주시며 제게 “이 양 떼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많은 사람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어디에서 성도들이 몰려오는지, 5백석의 예배실이 금방 꽉 찼습니다. 그때 ‘내가 설교를 잘 하는가보다. 내가 목회를 잘하는가보다. 이러다가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겠네.’라고 교만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주간 수요일에 어른은 반주자와 제 아내뿐이고, 아이들 몇 명이 앉아있었습니다. 아이들 중에도 세 명이 제 아이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 날부터 집에 가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제 죄가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제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교인이 이렇게 나오지 않습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 용서해주세요. 저는 제가 다 하는 줄 알았습니다. 용서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이 교회는 네가 세운 것이 아니라 내가 세웠다. 네가 설교를 잘 해서 이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백성을 모아주기 때문에 이 교회가 부흥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이 자리에 앉아있을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들을 모아주셔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개척 초기의 일입니다. 교역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다 내보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저는 이런 사람과 일할 수 없습니다. 저와 함께 순교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리 교회에 보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주님께서 급하게 응답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그들이 좋은 형님 목사님 밑에서 일했다고 추억할 수 있도록, 네가 그들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좋은 형님 목사가 되어 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부교역자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저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좋은 형님 목사가 되어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역자들을 불러놓고 제가 응답 받은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교역자들에게 “이제부터 나를 당회장, 감독으로 생각하지 마라. 나를 친형이라고 생각해라. 그리고 여러분이 당회장이라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다 해라. 그리고 하고 싶은 것 다 해라. 실수해도 용납하겠다. 실수하면서도 배운다. 실수하는 것을 겁내지 말고 일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나와 의논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모여 밤을 새며 회의해서 50만 명이 모이는 대집회를 계획했습니다. 다들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그분들 때문에 우리 교회가 이렇게 부흥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신 대로 제가 순종하니까 축복을 받았습니다.
저는 큰 꿈을 가진 목사입니다. 부산 시민을 100% 다 예수 믿게 하는 것이 제 소원이요 제 꿈입니다. 그래서 저는 수영로터리가 우리 교회에게 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교회를 개척한 후부터 10년 동안 날마다 수영로터리를 돌며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새가 하늘로 높이 날아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제게 “저 새를 봐라. 저 새를 위해 내가 준비한 하늘의 공간을 봐라. 얼마나 크고 넓으냐. 다만 새는 날개 치는 만큼 사용하지 않느냐. 내가 너를 위해 예비해놓은 것이 그렇게 크고 넓고 많다. 다만 네가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수영로터리를 돌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에게 얼마나 많이 주셨는지, 제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십니다.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제가 목회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겠습니까.
어떤 문제가 생기든지 기도하면, 주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음성을 들으세요. 놀라운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38년 된 병자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고 말씀하셨습니다.
38년 된 병자에게는 일어나는 것도 힘든 일입니다. 38년 동안이나 일어나지 못했는데, 어떻게 쉽게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본문 요한복음 5장 9절에 보면,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8년 된 병자의 믿음이 대단합니다.
사람에게는 100% 불가능하지만, 하나님께는 100% 가능합니다. 사람은 100% 안 된다고 생각해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100%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세요. 그러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 사람을 찾아가 의논하거나 부탁하지 마세요.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실망할 수 있습니다. 입을 다물고 기도하세요.
100%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도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지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 자꾸 입을 벌려 이야기하고 사람을 찾아가면 믿음이 없어져버립니다. 사람을 만나 믿음 없는 사람들의 말을 듣다 보니 믿음을 잃어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성 주위를 돌 때에도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입에서 아무 말도 내지 말라(수 6:10)”고 말했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을 열어 말하기 시작했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 주위를 돌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말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병자가 원하는 대로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에 그를 도와주어서 물 속에 넣어주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요 5: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을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주시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응답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 가장 좋은 것을 나에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가장 잘 되는 길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가장 잘 되는 길로 나를 인도해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너무너무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이 혼란하고,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주님께서 잘 아십니다. 절망 적인 상황 가운데에 있는 분이 여기에 있는 줄 압니다. 절망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찾아오시는 주님, 오늘 주님을 만나게 하여주옵소서.
주님을 만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로 변화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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