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24 14:11 조회4,304회 댓글0건본문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
2017년 01월 22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4:15~26
요한복음 4장 13~14절에 보면, 물을 얻기 위해 우물가에 온 여인에게 예수님께서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여인은 예수님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 4:15)”라고 말했습니다.
물 길으러 우물가에 나오는 것이 얼마나 싫었기에 여기 물 길으러 오지 않게 해달라고 말했을까요. 물 길으러 우물가에 나오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먹으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달라고, 그래서 다시는 우물가에 나오지 않게 해달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이것이 도대체 무슨 물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이 물은 생수의 강과 같이 흘러넘치는 성령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7장 37~39절에 보면,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지만, 성령께서 임하시면 생수의 강과 같이 넘치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될 것을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말씀하신,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은 바로 생수의 강과 같이 흘러넘치는 은혜를 가리킵니다. 이 여인은 그 물이 무엇인지 모르면서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달라고 예수님께 구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9~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마태복음 7장 11절에 보면,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께 기도 많이 하시죠? 우리는 하나님 앞에 구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하나님께 구해서 받고 싶은 것 중에 가장 귀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버지, 100억 원만 주세요.” “건강을 주세요.” “명예를 주세요.” “권세를 주세요.” “장수하는 복을 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를 다시는 목마르지 않게 하는, 영원토록 목마르지 않게 해주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면,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와, 행복하다. 좋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하나도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괴로워했습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를 괴로워했습니다. 죽기를 원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쓸데없는 것이요, 결단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합니다.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해주는 생수는 오직 성령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보세요.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믿음이 강해집니다. 또 지혜가 충만해집니다. 무엇보다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들어서 많이 노력하고 많이 애써야 했는데, 성령 충만함을 받으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기쁘고 즐겁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사니까 자연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이런 사람은 죄와 싸워 이깁니다. 마귀와 싸워 이깁니다. 죄 많은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환난과 시험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사니 장차 받을 상급이 큽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의 지조를 지키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주의 일을 하면서 사니 장차 받을 영광이 이루 말할 것 없이 큽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을 때에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성령의 충만한 복을 받는 것보다 더 큰 복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변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주의 일을 하며 살았습니다.
그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항상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에게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했습니다. 자기처럼 기쁨으로 살라는 의미입니다.
빌립보서 2장 17~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되는 이 물을 달라고 하는 이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네 남편을 불러 오라(요 4:1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생수의 강과 같이 흘러넘치는 은혜를 받으려면, 먼저 죄를 회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생수의 강과 같은 성령의 선물을 받으려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위해 “네 남편을 불러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이 여인은 매우 당황했을 것입니다. 과거에도 다섯 남자랑 살았고, 지금 같이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닌데, 남편을 불러 오라 하시니 얼마나 곤란했겠습니까.
그래서 이 여인은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요 4:17)”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요 4:17~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사정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생각을 모두 알고 계시고, 형편을 알고 계시고,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계시고, 어떤 상태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속일 수 없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다 꿰뚫어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나 주님 앞에서는 정직한 것이 최고입니다. 적당히 얼버무리고 거짓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이 여인이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던 여자, 지금 사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라는 것을 이 여인이 말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도 속일 수 없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리새인들은 아주 철저한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사람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밤낮 이중적인 인간으로 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들을 얼마나 책망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책망을 들으면서도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입니까.
다윗 왕이 죄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열왕기상 15장 4~5절에 보면,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다윗을 위하여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등불을 주시되 그의 아들을 세워 뒤를 잇게 하사 예루살렘을 견고하게 하셨으니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윗도 인간인지라 죄를 범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것 외에는 평생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을 어기지 않고 다 행했습니다. 다윗이 죄가 없어서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윗이 정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셨습니다.
시편 84편 11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십니다.
시편 112편 2절에 보면,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112편 4절에 보면,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은 아주 캄캄하고 살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자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정직한 사람들에게는 흑암 중에서도 빛이 일어납니다.
캄캄한 곳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번개가 치면, 그 순간 길이 보입니다.
세상이 점점 어지러워지고 살아가기 힘들다고 해서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세요. 하나님께서 축복하십니다. 흑암 중에서도 빛이 일어나게 해주십니다.
서울 영락교회에 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은 아주 정직한 분이셨습니다. 6ㆍ25한국전쟁이 일어났을 때, 서울 시민들은 피난 가느라고 정신없었습니다. 은행에서는 돈을 정리해서피난가려니 얼마나 바쁘겠습니까.
그런데 최 장로님은 은행에서 빌린 돈을 갚겠다고 은행을 찾아갔습니다. 난리 통에 빚을 갚겠다고 찾아오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은행원들은 나중에 갚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최 장로님은 “피난 갔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그 빚을 어떻게 갚냐”라고 하면서 기어코 갚겠다고 하셨습니다.
최 장로님은 제주도로 피난 가셨습니다. 거기서 미군 부대에 물건 파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돈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을 빌리러 은행에 갔다가 서울에 있는 은행에 있던 사람을 그곳에서 만났습니다. 최 장로님이 정직한 것을 그 사람이 아니까, 담보도 필요 없고, 그냥 필요한 대로 자금을 빌려줬습니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어 큰 부자가 되셨습니다.
정직한 자는 흑암 중에서도 빛이 일어납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죄가 있고, 허물이 많고, 실수가 많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정직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은 정직했습니다. 자기의 부끄러운 사정을 아시는 주님 앞에 모든 것을 시인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님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9)”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지자라는 것을 알게 된 여인은 예배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20)”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봉사하는 것이 많습니다. 안내위원, 수금위원, 계수위원, 교사, 찬양대 등 봉사하는 것이 많습니다.
모든 것이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시간은 예배드리는 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항상 기쁘시게 해드리고,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예배시간마다 기쁨이 충만하고 은혜가 풍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마다 믿음이 생겨야 하고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때에 복된 예배가 됩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봉사하느라고 하는 일이 많아 예배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만큼 은혜 받을 기회가 없습니다.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은혜를 사모하는 가운데 말씀에 집중해야 말씀을 깨닫고, 말씀이 귀에 들어오고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집중하지 않으면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봉사한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를 받아야 믿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을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봉사하느라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원망불평이 많고 낙심합니다. 기분이 상해서 성질부리고 불평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행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예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여인은 예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전 720년경에 앗수르 군대가 쳐들어와 사마리아를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앗수르 왕이 이방인들을 들어와 살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과 앗수르 사람이 섞여 살다 보니 사마리아 사람들은 앗수르 사람도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혼혈족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을 멸시하고 천대했습니다.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은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심 산에 성전을 짓고 예배드렸습니다.
그리심 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하나님께 바치려 한 곳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전쟁을 이기고 돌아와 제사장 멜기세덱을 만나 십일조를 드린 장소입니다. 그리고 모세가 광야를 지나 돌아왔을 때에 하나님께 제사 드린 곳입니다.
그러니까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을 예루살렘 못지않게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곳에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니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예수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요 4:20)”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고 말씀하셨습니다.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배 장소가 문제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어디서나 예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산에서만 해야 한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예루살렘에서만 예배해야 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어디에서든 예배할 수 있습니다. 들에서도 예배할 수 있고, 바닷가에서도 예배할 수 있고, 학교 강당을 빌려서도 얼마든지 예배할 수 있습니다.
미국 알래스카의 큰 길 가에 있는 한 언덕에 서부 영화에서 나오는 듯한 술집이 있습니다. 그런데 술집이 부도가 나서 한국 교회가 그것을 샀습니다.
한국인들이 그곳에 교회 간판을 붙이고 십자가를 세우고 예배를 드립니다. 제가 그 교회에 가서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술집을 리모델링하여 교회로 만들었습니다.
절간이 기도원이 되고, 절간이 성전이 되는 일이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어디서든 예배할 수 있습니다. 장소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요 4:23).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영적 예배일까요?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자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려면, 예배자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가인과 아벨이 장성하여 자기 믿음을 따라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는데,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제물을 받으십니다. 어떤 제물을 드리는가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하는 사람을 먼저 보십니다.
잠언 15장 8절에 보면,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 자체가 아주 악독한 인간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의 제사를 미워하십니다.
잠언 21장 27절에 보면,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한 인간이 드리는 제물은 가증하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에 보면, “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은 가인을 악독한 인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평소에 못되고 악한 짓을 하는 인간이 황소를 백 마리 천 마리 드려도, 재산을 아무리 많이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악독한 인간이 드리는 제사를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영적 예배를 드리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 없이 예배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진심으로 회개하고 용서받고 깨끗해져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에 내 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 없는 예배를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가 되려면,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로 예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의 예배와 기독교 예배의 차이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진리를 똑바로 알아야 하고 진리를 똑바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진리 되신 예수님을 똑바로 알고 똑바로 믿고, 예수님께 순종하며 예배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될 줄 믿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25절에 보면, 이 여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여인은 죄 많은 여인이었지만, 메시아에 대한 관심이 있었습니다. 메시아가 온다는 것도 믿었습니다. 믿음이 좋은 여인인 것 같습니다.
메시아를 믿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요 4:2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사모하고 기다리던 메시아 그리스도와 귀한 시간을 보낸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아마 춤추고 싶었을 것입니다.
메시아를 만난 이 여인은 수가 성을 구하는 전도자로 변화되었습니다. 죄가 많고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던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 변화되었습니다.
수십 년 교회에 다녀도 왜 변하지 않습니까? 주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난 사람은 반드시 변화됩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수가 성 여인처럼 변화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희들 모두 주님을 만나기 원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저희들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 수 있도록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저희에게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나오는 모든 분들 한분도 빠짐없이 주님을 만나는 복을 받고 날마다 아름답게 변화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꾼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