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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4장

예수님 만난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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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18 11:21 조회3,65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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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만난 여인

 

예수님 만난 여인

2017년 01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4:3~15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여러 가지 복을 받기 원합니다. 복 중에서 가장 귀한 복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복입니다.

좋은 친구를 만나 그 친구 때문에 공부를 잘 하게 되고, 그 친구 때문에 아주 훌륭하게 자라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 훌륭하게 자란다면, 그것이 얼마나 축복입니까.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담임 선생님은 연세가 많은 분이셨습니다. 선생님의 딸들이 학교 선생님이 되었을 정도로 연세가 많은 분이셨습니다.

어느 날, 제가 교실에 들어가 보니, 칠판에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그런 이야기를 말씀해주신 분이 없었습니다.

그 말을 평생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말이 제 마음에 새겨지니까 언제나 그 말이 기억납니다.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어쩌면 짐승보다 더 못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선생님 덕분에 공부도 더 잘하게 되었고, 좋은 학교에서 장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배필을 만나는 것, 얼마나 큰 복인지 모릅니다. 부모님 밑에서 20~30년 살지만, 배필을 만나서 40~50년을 살게 됩니다.

평생을 같이 사는 그 사람, 함께 있기만 해도 좋고, 얼굴만 봐도 좋고, 너무 너무 좋아서 항상 함께 있고 싶은 사람을 만나 산다면 이보다도 더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좋은 교회를 만나는 것도 복입니다. 교회를 잘못 택하면, 그저 밤낮 싸우고 미워하고, 이간질하고 그래서 마음이 얼마나 상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은혜롭고 사랑이 넘치고 천국 같은 교회에 나오면, 은혜 받고 변화 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그런데 가장 귀한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복입니다. 평생 교회에 다녀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찾아오셨습니다. 요즘도 종종 찾아오십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중요한 일을 만났을 때마다 오셔서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주시면 제 길이 환하게 열립니다. 평생 그렇게 살다 보니까, 얼마나 행복하고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에는 주님을 만난 성도들이 참 많습니다. 주님을 만난 후에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삶이 달라졌습니다.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발버둥 치던 삶에서 벗어나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누리며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받는 축복과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전에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도 남편이 아닌 남자와 사는 불행한 여인이 예수님을 만남으로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남쪽에는 유대, 북쪽에는 갈릴리, 중간에 사마리아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유대 땅에 계시던 예수님께서 북쪽 갈릴리로 가는 도중에 사마리아 지방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본래 유대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곳 사람들을 보기도 싫어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상종하지 않기 위해 그 땅에 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만큼 사마리아 사람들을 싫어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쪽 이스라엘의 수도였습니다. 예루살렘에서 67㎞ 떨어진 곳입니다. 열왕기하 17장에 보면, 앗수르 군대가 사마리아를 점령했을 때에 사마리아 사람들을 옮겨 다 앗수르 땅으로 흩어놓았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사람과 유대인들을 함께 살게 해서 혼혈족이 되게 해버렸습니다.

같이 어울려 살다보니 결혼도 하게 되고, 자식도 낳게 되고, 그래서 혼혈이 되고 말았습니다. 신앙도 혼합되고, 문화도 혼합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사람들은 멸시천대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지 않고, 옆으로 돌아갔습니다. 사마리아 땅을 밟지 않기 위해, 두 배 이상 되는 먼 거리를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그런데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유대 땅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방에 있는 수가 성이라는 마을에 이르렀을 때에 배도 고프고 피곤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가에 앉아 쉬고 계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때가 여섯 시쯤 되었다고 했습니다. 성경의 시간에 6시간을 더하면 우리나라의 시간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나라의 시간으로는 낮 열두 시였습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더운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너무 더워서 사람들이 낮잠을 자거나 시원한 곳에서 쉬는 시간입니다. 거리에는 사람이 없고 한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피곤하셔서 우물가에 앉아 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피곤하셨다고 표현한 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우리처럼 육신을 가지신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피곤하셨기에 풍랑이 이는 바다 위에서 주무셨겠습니까. 배가 출렁거리고 뒤집히려 하여 제자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예수님께서는 편안하게 주무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우리처럼 육신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배고픔도 느끼시고, 힘든 것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내가 목마르다(요 19:28)”라고 외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눅 22:44).

예수님께서는 목요일에 붙잡히셨습니다. 그리고 끌려 다니시며 채찍질에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고, 여러 시간동안 시달리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핍박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6시간 만에 숨을 거두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셨습니다. 로마서 8장 11절에 보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장차 살아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물가에 앉아계실 때에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 여인은 사람들이 욕하고 흉보고 0자기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기 때문에 그것이 괴롭고 싫어서 사람들이 없는 시간에 우물가에 와서 물을 길어갔습니다. 그런데 마침 거기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우연입니까? 아닙니다. 사실은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 일부러 사마리아 지방으로 지나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이 우물물을 길으러 오는 시간을 아시고, 그 곳에서 이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결정해서 예수님을 믿었고, 내가 하나님을 찾았고, 내 노력으로 신앙생활을 잘해서 구원받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죄악에 빠져서 멸망할 수밖에 없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즉 하나님과 좋은 관계가 아니라 제일 나쁜 관계일 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가 화목하게 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한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죄 가운데 있다가 멸망할 수밖에 없고, 하나님 앞에 원수 노릇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공로도 없고, 자격도 없고, 특별한 것이 없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시기도 전에 우리를 알고 계셨고 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게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해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은 모두 천국에 들어가 살 사람들인데,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죗값을 다 청산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까?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예수님께 올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믿습니까? 창세 전에 택함 받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된 이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모든 죄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습니다.

 

요한복음 6장 37~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택하셔서 예수님께 맡겨주신 영혼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예수님께서 마지막 날까지 100% 다 살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양 한 마리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를 어찌 감사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이 은혜를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밤낮 굿이나 하고 무당이 찾아오고 우상숭배하다가 완전히 망할 수밖에 없는 집에서 자랐습니다.

어느 날, 강원도에서 전학 온 친구가 제 옆에 앉았습니다. 이 친구는 예수님을 믿는 아이였습니다.

이 친구가 제게 교회 가자고 해서 따라갔습니다. 교회에 가니 좋았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열심히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목사가 되었고, 그 친구는 장로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친구를 보내주셔서 저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께로 이끌어주시지 않으시면, 예수님께 나아올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택하신 백성들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날마다 마음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마음 문을 빨리 열어드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은 세상이 좋고 죄 짓는 것이 좋아 세상에 빠져 정신이 없습니다. 고생을 많이 한 후에야 마음 문을 열 것입니다.

 

주님을 마음속에 모셔보세요. 주님께서 우리와 더불어 먹고 마시며 우리와 함께 사는 삶을 살아보세요. 이보다 더 행복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 제 마음에 오시옵소서. 주님을 환영합니다. 주님을 모시고 살고 싶습니다.”라고 기도해보세요. 주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임하십니다.

그 이후에 일어나는 일을 유심히 보세요. 여러분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 가운데 살던 죄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돌아오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99명을 통해 기뻐하는 기쁨보다 더 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떠나 재산을 모두 날려버리고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왔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니까 돼지우리에 들어가 돼지들이 먹는 쥐엄열매라도 먹으려고 했지만 먹을 수 없었습니다. 배고프고, 절망에 빠지니까 그때서야 아버지를 생각하고 옛날에 살던 집을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날마다 아들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멀리서 걸어오는 사람의 걸음걸이를 보니 아들 같았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아들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버지는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했습니다.

흉년을 당하고 기근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면 괴롭겠지만, 이때야말로 주님을 만날 기회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는 어려울 때에 돌아오신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오래 전의 일입니다. 우리 교회의 어느 권사님의 가정에 심방을 간 적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집에서 사셨습니다. 남편은 돈을 많이 버는데,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저를 무시했습니다.

목사가 심방을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남편은 집에 있으면서도 같이 예배드리지 않고, 권사님만 예배드리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입니다. 평소에 남편이 부인을 얼마나 때리는지, 교회에 간다고 때리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때린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돈을 많이 버니까 술 마시고 나쁜 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권사님은 평소에는 전혀 내색하지 않으셨습니다. 교회에 잘 나오시고, 봉사도 잘 하시고, 교역자를 잘 대접하셨습니다. 권사님의 얼굴을 보면, 평안하고 행복해보여서 실제로 그렇게 사시는 줄 알았는데, 남편에게 맞고 사셨습니다.

이것은 보통 신앙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어려움 당하는 것을 괴로워하지 않고, 그 가운데서도 행복을 누리는 것을 볼 때, 보통 신앙이 아닙니다.

 

그런데 권사님의 남편이 술을 많이 마셔 간이 나빠졌습니다.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했는데, 한 달 두 달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 일을 하지 못하니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죽어가는 자신을 생각하며 반성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교회의 목사님이 병원으로 심방 가셔서 그분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고 회개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분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다.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간이 기적적으로 점점 좋아졌습니다.

 

퇴원하여 부산에 오셔서 제가 그분을 다시 만났습니다. 예전의 그분이 아니었습니다. 태도가 달라지고 겸손해졌습니다.

예배드릴 때에도 부부가 나란히 앉아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많은 재산으로 주의 일을 많이 하고 돌아가셨습니다.

택한 백성들에게 환난이 오거나 시련이 오는 것은 하나님께서 때가 되었기 때문에 주시는 축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7절에 보면, 물을 길으러 온 여인에게 예수님께서는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절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 4:1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선물’은 구원의 선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라면’이라는 말은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메시아라는 것을 알았더라면’이라는 의미입니다. ‘생수’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11~12절에 보면, 사마리아 여인은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우리 조상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방인들과 상대하지 않습니다. 그릇도 함께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물 그릇으로는 예수님께 물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니 또 다른 그릇이 있어야 하는데, 그릇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인은 그릇도 없고, 우물도 깊은데 어떻게 생수를 얻을 수 있나 하면서 야곱보다 당신이 크냐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꿈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요 4:15)”라고 말했습니다.

물 길으러 오는 것이 얼마나 싫었겠습니까. 물 길으러 올 때마다 사람들이 비방하고 조롱하고 모욕을 주니까, 얼마나 괴로웠기에 다시는 물 길으러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했을까요.

 

이 세상에 사는 인간들은 누구나 물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주는 물은 마실 때만 시원할 뿐, 잠시 후면 다시 목이 마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계속 물을 찾습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우리에게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만족을 주는 것 같아도, 잠시 뿐입니다. 물을 마시고 나면 좋은 것처럼 잠시 좋을 뿐입니다. 조금 후에는 다시 목이 마릅니다. 이 세상의 물은 우리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을 보세요. 솔로몬은 이 세상의 것에서 만족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전도서 2장에 보면, 솔로몬이 제일 먼저 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쾌락을 충족시켜주는 일을 했습니다.

별별 술을 만들고, 큰 집을 짓고, 연못을 파고, 소 떼와 양 떼를 모으고, 금은보화를 많이 모으고, 많은 여자와 함께 살아보는 등 솔로몬은 이 세상 사람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을 다 했습니다. 좋아 보이는 것은 다 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8)”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것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물,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성령의 은혜를 의미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임하시고, 우리가 은혜로 충만하고,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면, 영원히 목마름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7장 37~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7장 39절에 보면,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후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다음에 오순절에 성령이 임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에는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목마르면 예수님께 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콸콸 흘러넘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축복을 받는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성령의 은혜를 받으니까, 아주 분명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안 계시고, 어머니는 빚이 많아 먹고 살기도 어렵고, 학비도 내지 못하고, 중학교에 갈 형편이 되지 못하고 완전히 절망적이지만,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으니까,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가난도 문제되지 않고, 먹을 것이 없어도 문제되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좋았습니다. 밤새도록 공부하면서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좋은지….

 

제가 그 기쁨을 또 한 번 체험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불광동 뒷산에서 사흘 동안 금식기도 하던 어느 날, 한밤중에 비가 억수같이 쏟아질 때, 하늘에서 불이 임했습니다. 완전히 나 자신을 잊어버릴 정도로 좋았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고 인도해주시고 말씀해주시고 가장 좋은 것으로 축복해주셨습니다.

평생 목회에 복을 받아 지금도 전 세계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를 계속 써주시는데, 꿈같은 일입니다.

 

여러분, 항상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까? 항상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사세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성령의 은혜를 가리킵니다.

항상 성령의 은혜 가운데 살면, 마음의 행복은 이루 형용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 그렇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예배에 참석하신 분들을 성령의 은혜로 충만하게 해주셔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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