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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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26 09:45 조회3,645회 댓글0건본문
우리는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
우리는 어디에 관심이 있는가
2004년 03월 26일(금요철야)
본문 / 요한복음 4:27~30
마태복음 9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구원하려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의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세리와 죄인들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하고 천대하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가까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리였던 마태를 부르셔서 예수님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의 집에 가셔서 그곳에 있던 많은 세리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들이 이것을 보고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1)”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말에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3~6절에 보면,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쪽 유대에서 북쪽 갈릴리로 가시다가 중간에 있는 사마리아의 수가라 하는 마을에서 잠시 쉬셨습니다. 수가 성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 곁에 앉아서 잠시 쉬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동네로 들어갔습니다. 예수님 혼자 우물 곁에 앉아 계셨습니다.
낮 열두 시쯤 되었습니다. 중동 지방은 낮 열두 시가 되면 매우 덥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밖으로 나오지 않고, 집에서 낮잠을 잡니다.
그런데 그 시간에 사마리아 여인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이 여자는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도 남편이 아닌 사람과 살고 있습니다. 이 여자가 굉장히 아름다웠던 것 같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여자는 창녀와 같은 여자였습니다.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사람들을 피해 그 시간에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이 여자는 부끄러워서 이렇게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줄 아는 사람은 양심이 살아있는 사람입니다. 부끄러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나쁜 짓을 많이 하고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오히려 의인인 척 행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나쁜 짓 하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많이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아무도 없는 시간에 물을 길으러 왔다가 우물가에 앉아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를 오래 전부터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기 위해 아무도 없는 시간에 우물가에 앉아계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요 선지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선지자라도 보통 선지자가 아니라 영감이 뛰어난 선지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자기를 꿰뚫어보듯 다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요 4:19)”라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0절에 보면,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께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평소에 예배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예배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에게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1~24)”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예배드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배합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참으로 예배합니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를 드립니까.
창세기 4장에 보면, 가인과 아벨이 제사드리는 것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큰 제물을 드리는가, 제물을 얼마나 많이 드리는가보다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사람을 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얼마나 웅장하게 드리는가보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을 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예배를 드리려면, 예배드리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기뻐하시는 사람인가, 하나님께서 보시고 탄식하실 사람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은 몸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몸보다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마음이 어떠한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할 때에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5절에 보면,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몸과 마음으로 예배드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는 것을 매우 강조했습니다. 딸이 시집을 가서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면, 하루에 세 번 부모님의 식사를 정성껏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며느리가 정성껏 준비한 식사를 부모님이 기쁘게 드시고 건강하고 장수하시도록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를 예배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합니다.
예배 시간에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찬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헌금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헌금해야 합니다. 성전을 지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전을 지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고 생각하고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3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사람의 말로 들으면 안 됩니다. 사람이 말하지만,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예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배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정성을 다해 예배드려야 합니다.
예배가 살면, 믿음이 삽니다. 예배가 살면, 영이 삽니다. 예배가 살면, 교회가 부흥합니다. 이처럼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예배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5~26절에 보면,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찌하다 보니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은 결혼하지 못한 채 살고 있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관심이 있었고, 메시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비난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보는 것을 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수가 성 야곱의 우물가에서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이 물 길으러 오는 시간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배에 관심이 있고, 메시아에 관심이 있는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 사마리아 여인을 사용하시기 위해, 사마리아 여인을 들어 쓰시기 위해, 사마리아 여인을 축복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기다리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와 메시아에 관심이 있었던 것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관심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관심을 갖는 곳에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사랑으로도 나타나고, 관심으로도 나타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께 관심이 많습니다. 교회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배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관심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어디에 관심이 있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느냐가 우리의 믿음을 보여줍니다.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께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하나님을 떠납니다. 하나님을 잊고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가장 심각한 타락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면서도 다른 사람의 죄에 관심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의 신분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용납할 수 있는 사람과 용납할 수 없는 사람을 구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마 9:12~13)”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서 버림 받고 천대 받는 세리들, 창기들, 죄인들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만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은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께 나아오면 소망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절망 가운데 사는 사람이라도, 예수님께 나아오면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에게 관심을 가지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4장 28~30절에 보면,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것으로 기뻐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증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사람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고, 자신이 메시아를 만난 것을 이야기하며 전도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4장 39절에 보면,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부끄러운 과거를 다 말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께 온 사람들은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요한복음 4장 40~42절에 보면,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렇게 사마리아 여인으로 인해 수가 성의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장 35~38절에 보면,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도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데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죄인들을 구원할 것인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사야 61장 1~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실 일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61장 4절에 보면,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옛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이사야 61장 7~9절에 보면, “너희가 수치 대신에 보상을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몫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그들의 땅에서 갑절이나 얻고 영원한 기쁨이 있으리라 무릇 나 여호와는 정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을 것이라 그들의 자손을 뭇 나라 가운데에, 그들의 후손을 만민 가운데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62장 1~5절에 보면,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다시는 너를 버림 받은 자라 부르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부르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 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한 것처럼 될 것임이라 마치 청년이 처녀와 결혼함 같이 네 아들들이 너를 취하겠고 신랑이 신부를 기뻐함 같이 네 하나님이 너를 기뻐하시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고 고통 당하고 시달리고 멸망할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인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여 모든 저주가 속량되고 축복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는 것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수가 성의 사람들이 구원 받는 데 쓰임 받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하나님께 관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마리아 여인을 비난하고 욕했지만, 사마리아 여인은 사람들의 말을 신경쓰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배에 관심이 있었고, 메시아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메시아를 알게 되자, 담대하게 전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예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만 예배인 것은 아닙니다. 가족끼리 손 잡고 기도하는 것도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디서든지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을 생각하며 기쁨으로 찬양하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예배에 관심을 가지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메시아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곧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예수님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장차 예수님을 만날 것을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산다면, 날마다 아름답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처럼 전도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 전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전도에 관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전도에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전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만 은혜 받고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믿지 않는 식구들을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부산 4백만 시민을 구원 받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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