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부터 오시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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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1-09 12:38 조회4,562회 댓글0건본문
위로부터 오시는 이
위로부터 오시는 이
2017년 01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3:31~36
세례는 세례 요한이 시작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세례를 베풀 때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에게 오셔서 세례 받으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22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가만히 보니 세례 요한에게 오는 사람보다 예수님께 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생각하기에는, 예수님께서도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셨는데, 세례에 있어서는 예수님보다 세례 요한이 권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가니 세례 요한의 제자들의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 세례 요한에게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요 3:26)”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 가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요 3:28)”라고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나는 메시아가 아니고, 예수님이 메시아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요 3:28)”고 말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은 자신과 예수님이 얼마나 차이 나는가를 비교해서 설명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31~32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그가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되 그의 증언을 받는 자가 없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땅에서 난 이요, 그리스도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위로부터 오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늘로부터 오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늘로부터 오시는 분이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만물 위에 계시다고 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보고 들은 것을 증언하신다고 했습니다. 하늘로부터 오셨기 때문에 하늘에서 본 것, 들은 것을 그대로 전하십니다.
선지자들은 기도하다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와 영감을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그대로 전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는 다릅니다. 하늘로부터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친히 보셨고 들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선지자라고 해도 예수님과는 비교되지 않는다고 세례 요한은 설명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요, 예수님께서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고 분명히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이것을 몰랐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생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이 누군지 정확하게 똑바로 알지 못해서 오해하고 있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석가나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와 같은 성현(聖賢)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보내심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대답했습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빌립이 예수님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요 14:8)”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한 것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기도했던 적이 있습니다. ‘봐야 믿지, 보지도 못한 하나님을 어떻게 믿나’라고 생각하여 저녁 늦게 혼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좀 보여주세요. 제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라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불이 번쩍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나보다’라고 생각하고 눈을 떴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자동차의 불빛이었습니다.
빌립도 저처럼 예수님께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요 14:9~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자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혼자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예수님 안에 계셔서 예수님과 함께하시고 예수님께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본 것은 곧 하나님을 본 것과 같습니다. 참 놀라운 일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셔서 예수님과 함께하십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35절에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님을 사랑하셔서 만물을 예수님의 손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요한복음 17장 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께 모든 것을 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들 예수님께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제는 주님께서 모든 것을 주장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만주(萬主)의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고, 하나님께서 만물을 예수님께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구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기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다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당집 아들이 군대에 갔습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 장병이 되었습니다. 군대에 가면, 세례 받기 쉽습니다. 많은 장병들이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를 받았으니 예배 시간마다 사용하는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웠습니다. 믿음이 별로 없지만,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무당의 아들이 예수쟁이가 되었습니다. 몇 개월 동안 열심히 교회 다니고 찬송도 부르고 기도도 했습니다.
휴가 받아 집에 갔더니 큰 굿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무당의 아들이 아직 기도할 줄 몰랐습니다. 한쪽 구석에 앉아 주기도문만 열심히 외웠습니다.
웬일입니까. 굿이 되지 않았습니다. 귀신이 오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약해보이는 아들이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만주의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이길 것입니다.
내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기시기 때문에 덩달아 이깁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은 덩달아 이깁니다. 내가 잘 나서 내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직장에서 일이 벌어져 어찌할 바를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 기도하세요. 기도할 줄 모르면, 주기도문이라도 외우세요.
여러분이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과 함께하시는 주님은 만주의 주가 되시고 만왕의 왕이 되시므로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엄청난 약속을 하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이 이긴다고 했는데, 요한계시록 2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이 엄청납니다.
요한계시록 3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이길 것입니다. 이기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보좌에 앉는 축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 이기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에 앉으시는 것처럼, 우리도 이기면 예수님의 보좌에 앉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서는 고난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똑같이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 영광이 얼마나 큰지, 이 세상에서 고난 당하는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요 3:16).
그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요 1:12).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큰 죄인이나 작은 죄인이나 세리나 창녀나 강도든 어떤 인간이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이것은 약속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는지 믿지 않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습니까?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데,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7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열매를 보고 그 사람이 참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구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은 나무인지 나쁜 나무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다면, 그 나무는 좋은 나무입니다. 아주 나쁜 열매를 맺었다면, 그 나무는 나쁜 나무입니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알 수 있습니다.
포도가 열렸으면, 그 나무는 포도나무입니다. 가시만 나왔다면, 그 나무는 가시나무입니다. 열매를 보면, 어떤 나무인가 알 수 있습니다.
열매를 보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 보면,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 믿음 안에서 사는 사람의 안에는 항상 예수님께서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에서 떠나시지 않으십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안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 성령께서 계시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첫째, 그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압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똑바로 압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요, 절대주권을 가지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시요, 신실하시고 사랑이 넘치시는 분이시요, 완전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고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십니다.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알고 믿습니다.
그래서 죽은 자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일어나라”고 말씀하시니 죽은 자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를 향하여 예수님께서 “잔잔하라”고 말씀하시니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으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사랑이 많으신 분이신 것과 예수님 때문에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을 알게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것을 알고 믿습니다.
둘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도 신실하십니다.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절대주권을 가지셨고,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십니다. 약속한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주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있는 것을 알고, 항상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 앞에 나아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셋째,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믿음만큼 주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의 열매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믿음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자원해서 순종하고,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순종이 있는 믿음은 산 믿음입니다. 순종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께 순종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요한일서 2장 3~6절에 보면,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그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 안에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롬 5:8).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주셨습니다(롬 5:1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박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원수들을 위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어려워서 이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하고 용서하지 못한 것을 후회합니다. 죽기 전에는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27절에 보면,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주님을 믿고 주님을 섬긴다면, 주님을 따르게 되어있습니다.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고, 믿음으로 영생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게 됩니다(요 3:36).
하나님의 아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 없는 사람입니다. 죽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이 산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왜 훌륭합니까? 아브라함은 다른 신들을 섬기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이끄셔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디로 가야 할지도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보여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니까 날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보여주시는 대로, 지시하시는 대로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날마다 말씀을 따라 살았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 2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운 명령에 어떻게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히브리서 11장 18~19절에 보면,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고 약속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시므로, 이삭을 번제로 드려도,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살리셔서라도 약속을 이루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드릴 수 있었습니다. 대단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얼마나 축복을 받았습니까. 순종하는 자는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받고, 모든 복이 따라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작은 사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주님께 순종할 때도 있지만, 불순종할 때도 있습니다. 완전한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에 100% 순종할 수 있습니까. 때로는 삐딱하게 행동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에는 기쁘고 마음이 평안합니다. 기분이 좋습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든 본의 아니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에는 괴롭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증거입니다. 구원 받은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입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계신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세요.
죄를 짓고 마음이 평안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답답합니다. 기분이 나쁩니다. 구름이 잔뜩 낀 것 같습니다. 폭풍우가 몰려올 것 같습니다. 마음이 이상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요, 거듭났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회개합니다.
마태복음 21장 28~32절에 보면,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이나 유대인이나 서기관보다 세리나 창녀가 먼저 천국에 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세리나 창녀는 뉘우치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 회개가 그렇게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보면,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나가서 먹고 마시며 허랑방탕하게 지냈습니다. 나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우리에 가서 쥐엄 열매라도 먹으려고 했는데, 그것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때서야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눅 15:18~19)’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탕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는 아버지께로 돌아오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멀리서 거렁뱅이가 걸어오는데, 아들인 것 같았습니다. 아버지가 달려가서 확인해보니 아들이었습니다. 돼지우리에서 뒹굴다가 왔으니 얼마나 냄새나고 더럽겠습니까. 목욕이나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기뻐했습니다.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위해 잔치를 벌였습니다. 아버지는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눅 15:24)”고 했습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흥분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할 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을 지체하지 마세요. 즉각 회개하세요.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완전히 도말해주십니다.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죄악의 흔적을 완전히 도말하십니다.
그 뿐 아니라 회복시켜주십니다. 요엘 2장 25절에 보면,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셔서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와서 다 먹어버려 밤낮 흉년과 기근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면 고생한 만큼 갚아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놀라운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해주실 뿐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임하시면, 우리를 변화시켜주십니다. 우리의 성품이 변화됩니다. 악한 성품이 착해집니다. 불의한 성품이 의로워집니다. 거짓된 성품이 진실해집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으며 축복을 받고 사랑을 받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세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얼마나 변화되었습니까.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사랑이 충만해져서 서로서로 나누어주며 함께 썼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천국 같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주님의 계명대로, 주님의 뜻대로 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되면, 어떤 축복을 받을까요?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주님의 계명대로 살았을 뿐 아니라, 주님 앞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원수가 굶주릴 때에는 먹여주고, 원수가 목말라할 때에는 마실 것을 주는 것입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자를 용서하고 그들을 축복하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살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평생의 복이 될 줄 믿습니다. 듣기만 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시고,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원합니다.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 원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아감으로 복을 받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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