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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3장

교회안에 있는 세종류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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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7:07 조회4,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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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 있는 세 종류의 사람

 

교회 안에 있는 세 종류의 사람

2004년 03월 07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3:1~5

 

신구약성경이 모두 중요합니다만, 그 중에서도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사복음서가 가장 중요합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복음서는 성도들이 가장 많이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맹인이 눈을 뜨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고, 귀신들린 사람들에게서 귀신이 쫓겨나가는 기적을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았습니다. 심지어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음식을 배불리 먹어보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놀라운 체험과 소문으로 인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3)”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마 16:14)”라고 대답했습니다.

여기에서 그 당시 예수님을 따라다녔던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따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 16:15)”라고 물으셨습니다. 이때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정확히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 기뻐하시며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만 이런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교회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이 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크게 세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첫째,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 교회에 나왔든지 오래 다녔든지 상관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을 불교의 석가모니나 유교의 공자처럼 훌륭한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말씀하지만, 이것이 사실일까?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신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회개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회개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직 믿음이 없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중에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사도 바울과 같이 변화되어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을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사도가 되기 전에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리새인으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읽고 성경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는 좋은 가문에서 훌륭한 학식을 가진 사람이었고,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하게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었습니다. 유대교에 충실했던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는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해 다메섹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는 놀라운 체험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밝은 빛이 사울 일행 앞에 비취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땅바닥에 엎드렸습니다. 이때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행 9:4)” 이에 사울은 “주여 누구시니이까(행 9:5)”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은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생생하게 들었습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 사울은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던 일에 앞장섰던 사울이 예수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위대한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예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위해 사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잘 압니다. 베드로처럼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실히 알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심을 알고 믿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도 하나님 아버지께 올 자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요 14:6).

이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고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 사람들입니다.

 

본문에 보면, 유대인의 지도자 니고데모가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일찍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며 아무나 할 수 있는 기적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이 보내신 분이요 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분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정확하게 누구신지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몰래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어렸을 때부터 성경도 잘 알고 하나님에 대해서도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지 않으면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나 자신이 성령으로 거듭났는지 아닌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이 확실히 믿어집니다. 또 이런 사람에게는 분명한 회개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회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거듭난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행위를 뒤돌아보며 통곡하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반드시 변화가 있습니다.

 

영국의 죄수 가운데 슈로스츠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40년 동안 교도소에서 생활했습니다. 얼마나 별난 사람이었는지, 가죽 채찍으로 50대씩 맞는 매를 8번이나 맞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곳에 있는 동안 조금도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형기를 마치고 감옥에서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갈 곳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구세군 숙박소에 들어가 하룻밤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는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18년 동안 출옥자들을 돌보아주는 곳에서 열심히 봉사하며 살았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변화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변화의 속도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더디고 또 다른 사람은 빠르며, 또 어떤 사람은 조금 변하고 또 다른 사람은 많이 변합니다.

 

어느 전쟁 고아가 무척 고생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어느 부잣집에서 그를 불쌍히 여기고 양자로 데려다 키웠습니다. 얼마나 행복하고 좋겠습니까.

그러나 정작 이 아이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아무렇게나 먹고 자고 놀던 때가 그리워서 가출했다가 다시 잡혀 들어오기를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받고 열심히 교회에서 봉사하던 사람이 어느 날 옛날로 돌아가 술을 잔뜩 먹기도 하고 옛 친구들을 만나 밤새도록 노름에 빠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과거에 예수님을 만났고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아직 덜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크게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성 어거스틴과 같은 사람입니다. 방탕한 사람으로 살던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거듭나 새사람이 되어 훌륭한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길을 가다가 한때 몹시 사랑했던 여자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녀는 너무 반가워하며 유혹했지만, 그는 자신이 옛날의 어거스틴이 아니라고 소리치며 그녀의 유혹을 단번에 뿌리쳤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거듭난 후 성자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철저히 변화되었습니다. 여러분도 이렇게 철저히 변화된 새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⑴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⑵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⑶ 예수님만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다.

⑷ 오직 예수님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⑸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때마다 일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하며 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⑹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늘 성경을 읽고 말씀을 사랑하며, 말씀을 통해 교훈을 받고 은혜를 받으며 삽니다.

⑺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잠시도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하루하루 산다는 것을 감사합니다.

⑻ 하나님이 먼저 나 같은 죄인을 택해주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택해주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합니다. 그래서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찬송가 310장)”라고 찬송합니다. 이 찬송은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간증입니다.

⑼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구원의 확신이 내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도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장차 천국에서 주님을 만날 소망이 있습니다.

 

조지 휫필드는 “거듭나야 합니다!”라는 설교를 많이 했습니다. 이 설교에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은혜를 받은 청년이 목사님의 말씀을 많이 듣기 위해 목사님의 비서를 자청했습니다. 목사님을 수행하는 동안 이 청년은 ‘거듭나야 한다’는 제목의 설교를 무려 70번 들었습니다.

하루는 똑같은 말씀을 듣는 것이 싫증나서 청년은 목사님께 이 설교를 70번이나 들었다며 왜 매번 같은 설교를 하시는지 물었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그 청년에게 “바로 네가 거듭나야하기 때문이다.”라고 책망했습니다. 아무리 설교를 많이 들어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셋째,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마치 물웅덩이를 발견한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은혜 가운데 사는 사람은 땅 속에서 샘이 솟아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고여 있는 물과 계속 샘솟는 물은 비교되지 않습니다. 수질도 다르고 물의 양도 엄청나게 다릅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고 믿고 고백했습니다. 구원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기 전에는 다른 제자들과 똑같이 서로 다투고 시기질투하며 옛 사람 모습 그대로 살았습니다.

그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라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막상 위기를 당했을 때에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일로 괴로워하며 통곡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러나 나약한 베드로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담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대자들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받아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큰 능력이 임하여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3천 명이 회개하고 세례 받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곳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 충만한 전도자에게는 구원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립니다.

 

은혜를 받으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이 즐거워집니다. 전도가 즐겁고, 예배가 즐거우며, 성경 말씀이 마치 송이 꿀같이 달고, 마음이 천국이 되어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고 싶어집니다. 주님을 위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기쁨으로 자원하여 충성 봉사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세상을 이기고 환난을 이깁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하나님의 집에 큰 일꾼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장차 주님 앞에 설 때 면류관 상급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거듭나야 합니다. 거듭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해서 모두 좋은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세 종류의 사람 중에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모였는가가 중요합니다.

 

저는 국내외로 부흥집회를 많이 다닙니다. 어떤 교회는 얼마나 성도들이 은혜를 많이 받는지, 설교시간에 보면 얼굴이 환하게 빛납니다.

제가 LA에 가서 집회를 인도한 적 있습니다. 70~80명이 모이던 교회에 담임목사님이 새로 부임한 후 11개월 만에 350명이 출석하는 교회가 되었으며, 제가 집회 인도할 때에는 500명 정도 모였습니다. 목사님을 비롯하여 전 성도들이 열심히 전도하고 기도하며 은혜 충만한 모습으로 신앙생활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은혜가 충만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모두 성령 충만한 은혜 가운데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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