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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3장

세례요한의 충만한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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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12-19 13:13 조회4,70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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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충만한 기쁨

 

세례 요한의 충만한 기쁨

2016년 12월 18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3:22~30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내가 얼마나 죄가 많고, 얼마나 허물이 많은 죄인인가를 깨닫습니다. 자신이 허물 많은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하고 겸손해집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자신이 죄인인줄 알고 항상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살기 때문에 은혜 받은 사람은 그만큼 거룩해집니다.

 

또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은혜 받은 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은 사람일수록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며 주님의 사랑에 감격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죄 사함 받고 구원 받은 것을 생각하며 늘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양합니다. 그래서 아주 행복한 성도가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기뻐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은혜를 받았는가 은혜를 받지 않았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 받은 사람은 아무렇게 살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까?’를 생각하며 기도합니다. 그런 가운데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깨닫습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면, 눈빛이 달라집니다. 말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집니다. 삶의 자세가 달라집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얻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 의미없이 살다가 죽는 인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실 일이 있고,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려는 계획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알고 살기 때문에 아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깨닫고 살기 때문에 삶의 목적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본문의 세례 요한과 같은 사람이 그런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일생을 다 바쳤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30대 초반에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세상적으로는 행복하지 못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장가 가서 자식 낳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삶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쁨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삶은 아주 특별했습니다.

 

세례 요한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증거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을 보내매 요한이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이 증거한 것이 모두 진리였음을 증명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요한은 켜서 비추이는 등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등불이 심지를 태워서 어둠을 밝히듯이 세례 요한은 자기의 몸을 주님을 위해 바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장 6~8절에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3~12절에 보면, 마태는 세례 요한에 대해서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이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니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증거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라는 것을 증거했습니다.

 

누가복음 7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선지자보다 훌륭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특별히 높여 소개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선지자 중에 선지자요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는 의미입니다.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자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7장 28절의 끝 부분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지만,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이 요한까지라는 의미입니다. 세례 요한은 구약시대의 마지막 사람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이전에 죽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정결해진 우리와 세례 요한을 비교하면, 세례 요한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세례 요한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마치 죄를 하나도 범하지 않은 사람처럼 완전히 깨끗하게 씻음 받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에 가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후에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세례 요한보다 더 낫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을 사람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신랑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 보면,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전한 복음을 들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으면 예수님의 신부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도하는 것은 처녀를 신랑 예수님께 중매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결혼식을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9절에 보면,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이 얼마나 좋은 날인지 아시죠? 세상의 고생이 다 끝납니다. 마치 신부가 깨끗한 옷을 입고 결혼하는 것처럼, 저와 여러분들은 세마포 옷을 입고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고난이 있어도 우리가 신앙을 지키며 믿음으로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을 만나는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난의 길을 그리스도와 함께 기쁨으로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장차 주님과 함께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가를 알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사느라고 고생합니다. 주님께서 걸어가신 뒤를 따라가는 분들, 선교사가 되고 주의 종이 되어 복음을 전하느라 고난을 받습니다. 장차 이들이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 받는 것은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이 말씀을 믿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주님의 뒤를 기쁨으로 따라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축복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을 축복이 얼마나 큰지, 저와 여러분은 복 받은 사람입니다.

축복 받은 저와 여러분이 어떻게 사는 것이 좋겠습니까? 세례 요한의 신앙과 인격을 본받아 세례 요한처럼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22~26절에 보면, “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베푸시더라 요한도 살렘 가까운 애논에서 세례를 베푸니 거기 물이 많음이라 그러므로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더라 요한이 아직 옥에 갇히지 아니하였더라 이에 요한의 제자 중에서 한 유대인과 더불어 정결예식에 대하여 변론이 되었더니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베푸니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그러니 세례 요한의 제자가 불만이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제자는 예수님보다 세례 요한을 최고의 스승으로 생각했습니다. 나이로 봐도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나이가 많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소개했으니까, 세례 요한의 제자는 세례 요한을 더 훌륭한 선지자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 갔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은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요 3:27)”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항상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돈이 생기거나 권력이 생기면 교만해집니다. 자기가 굉장한 힘을 가진 줄 알고 착각하며 살다가 망합니다.

골리앗과 같은 사람들은 자기가 한번 나가서 외치면 이스라엘 군사들이 벌벌 떨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얼마나 우쭐했겠습니까. 그래서 “너희 중에 나를 상대할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목동 다윗의 물맷돌 하나로 끝내버리셨습니다. 간단히 끝내버리셨습니다. 물맷돌이 이마에 박히는 순간, 골리앗은 기절해서 넘어졌습니다. 그때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권력은 대단합니다. 그는 전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말 한마디로 한 족속을 다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었습니다.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정신병이 들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멀쩡하던 사람이 들짐승과 함께 풀을 뜯어먹고 한심한 짓을 했습니다.

교만하면 망합니다. 세상 권력이 많으면 뭐하겠습니까. 바벨론은 70년 만에 망했습니다요. 강하다고 해서 오래 가는 것이 아닙니다. 절대로 안심할 수 없습니다. 권력이 강하고 힘이 있어도 큰 소리 칠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1~23절에 보면,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하니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므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벌레에게 먹혀 죽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헤롯이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들에게 연설했을 때, 백성들은 “이것은 신의 소리다”라고 하며 헤롯을 하나님처럼 높였습니다.

사람들이 높여줄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헤롯은 교만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주의 사자가 헤롯을 쳤습니다. 그래서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대단한 사람을 보내서 헤롯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제 생각에는 헤롯이 모기에게 물려 말라리아에 걸려 죽은 것 같습니다. 무슨 벌레가 헤롯을 물었는지 모르지만,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간단합니다.

 

북한에서 우리를 핵폭탄으로 위협하고 우리에게 큰소리쳐도, 하나님께서는 간단히 끝내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사야 45장 5~7절에 보면,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나니 나 밖에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나는 네 띠를 동일 것이요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 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들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손을 한 번 움직이시기만 하면, 어두움도 한 순간에 사라질 줄 믿습니다.

 

고린도전서 4장 7절에 보면,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것 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지 아니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속옷 하나 걸치지 않고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태어났습니다. 자그마한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후에 우리에게 주셔서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역대상 29장 10~14절에 보면, 다윗은 온 회중 앞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며 “우리 조상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을 받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다윗은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라고 기도했습니다. 14절에 보면, 다윗은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정성을 다해 헌금할 때마다 이렇게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드릴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을 드릴 뿐입니다. 다 주님의 것입니다. 제 것이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면서 헌금하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세례 요한은 자기의 신분과 소명이 무엇인가를 똑바로 알았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3장 28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기의 신분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제자들에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냐. 나는 다만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야. 너희들이 나를 증거해 줘야 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존경하고 높여줘도 세례 요한은 교만하지 겸손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이렇게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세례 요한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자신은 예수님 앞서 보내심 받은 것을 언제나 명심하고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 듣고 인기가 높아지고 모든 것이 잘 되면, 우리는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할 영광을 우리가 도적질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내가 이렇게 될 수 있었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노예 중에서도 가장 낮은 노예는 주인이 벗은 신을 들고 갑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신을 종으로 비유하여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을 들고 가는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신앙과 인격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남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이 받아 능력이 나타날 때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마치 내가 남보다 특별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면 큰일납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환상과 계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교만해질까봐 자만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가시가 떠나가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가시가 떠나가게 하시지 않으시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해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가는 곳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생기고, 교회가 생겼습니다.

만일 사도 바울이 한국에 다녀갔다면, 그때부터 한국에도 교회가 생기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가 계속 있었습니다. 귀한 종 사도 바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보살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로 하여금 고통 받게 하시고, 가난하게 하시고, 박해와 곤고를 겪게 하셨습니다.

목적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겸손하게 만드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잘 한다고 교만해지면 안 됩니다.

그리고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정신 차리고 깨어 기도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있으니까, 먹고 싶은 것도 많고, 보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눈앞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겠습니까. 오직 주님만 생각하며 거룩한 마음, 정결한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10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를 약하게 만드는 여러 가지 고통의 요소 때문에 오로지 주님만 바라고 주님을 의지하고 마음을 다할 때에 더 큰 역사가 일어납니다.

 

세례 요한은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가는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29절에 보면,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부를 맞이하고 싱글벙글 하는 신랑을 보고 좋아하는 기쁨이 세례 요한에게 있었습니다. 신랑을 정말 사랑하는 사람만 이런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이 잘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고 좋아했습니다.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0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 100% 헌신된 종의 신앙고백입니다.

오직 주님이 잘되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자기 자신은 고통 중에 죽어도 주님만 영광 받으신다면, 그것을 만족하게 여기는, 충성된 종의 마음을 저와 여러분도 가져야 할 줄 믿습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얼마나 주님을 사랑했는지,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 것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을 것이고, 나는 오직 주의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세례 요한처럼 주님만 위해 산 사도 바울은 자신이 복음을 전해 구원 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얼마나 기뻐했을까요. 우리는 성경을 통해 그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0~2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서 가장 기쁠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자신이 전도한 사람이 천국에 왔을 때입니다. 자신이 전도한 사람이 천국에 왔을 때, 전도한 사람으로서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빌립보서 4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 때문에 구원 받은 한 사람 한 사람은 사도 바울의 면류관입니다. 면류관에 붙은 다이아몬드가 됩니다.

자기가 전도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정결한 신부가 되어 신랑 되신 예수님을 만나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기쁘고 좋겠습니까. 앞으로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19~20절에 보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의 성도들을 향해 말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실 때, 사도 바울 때문에 구원 받는 성도들은 사도 바울의 영광이요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통해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기쁨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많아지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으로 기뻐하지 마시고, 한 영혼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구원 받게 하고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게 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부가 많아지면, 장차 주님께서 오시는 날, 그들이 내 영광이고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새기시고, 이 말씀대로 사셔서 세례 요한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평생의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내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사오니 성령이여 도와주옵소서. 우리가 성령의 은혜로 감당할 수 있게 될 줄 믿습니다.

장차 주님께서 오시는 날, 우리 때문에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어린 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고 기뻐할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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