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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장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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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10-11 16:10 조회3,53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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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2016년 10월 09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35~42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33년 동안 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하신 것은 그 중에 마지막 3년 밖에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먼저 세례 요한에게 가셔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 후,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금식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세 번 시험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시험에서 멋지게 승리하셨습니다.

 

그리고 난 후, 예수님께서는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고 외치셨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제자를 택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제자가 하나 둘 생겼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초기부터 제자들을 택하신 것은 제자를 양육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4장 18~22절에 보면,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어떻게 부르심을 받았고 제자가 되었는가 간단간단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신 후에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천국 복음을 전하셨고,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마 4:23).

그래서 예수님에 대해 소문이 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사람들은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 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다 고쳐주셨습니다(마 4:24). 그리고 그 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안드레가 가장 먼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안드레가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는가를 기록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40절에 보면,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 요한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신에 대해서는 기록하지 않았고, 자기와 함께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안드레에 대해서만 기록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제자를 예수님의 제자로 받아들이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사도 요한만 정확하게 아는 사건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이 사건이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은 밧모 섬에 유배 갔다가 죽을 고비를 여러 번 경험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오랫동안 살아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마태복음도 읽어보았을 것이고, 마가복음, 누가복음도 읽어보았을 것입니다. 읽어보니 빠진 이야기도 있고, 쓴 사람들이 잘 몰라서 기록하지 못한 것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을 보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는 없는 내용이 많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복음서 중 요한복음을 보면, 사도 요한이 보충한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택하시고, 제자들과 함께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제자들을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시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것을 보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철저하게 교육시키시고 양육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 2/3가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제자들에게는 설명해주시고, 제자들에게 많은 것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집중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장차 교회를 세우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누구보다 중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많은 시간을 할애하셔서 제자들을 집중적으로 교육시키시고 양육하셨습니다.

 

제가 목회해보니 저 혼자서 아무리 열심히 심방해도 하루에 열 가정을 심방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의 일꾼들에게 “오늘 두 가정씩 심방해주세요.”라고 부탁해도, 일꾼이 1천 명이면, 하루에 2천 가정을 심방할 수 있습니다.

제가 전도할 경우, 혼자서 아무리 열심히 전도해도 얼마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모두가 전도훈련을 받아서 전도에 능숙한 사람이 된다면, 여러분이 한 명씩 전도해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우리가 효과적으로 일하려면, 주변에 일꾼들을 길러야 합니다. 제자들을 길러야 합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내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많이 길러내면,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래를 내다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누군가가 예수님의 일을 대신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그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양육하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36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가 그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에 대해 평소에 세례 요한으로부터 자세히 들어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즉시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지체할 수 없었습니다. 메시아이신 주님께서 나타나셨으니 즉각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이들은 그때부터 주님을 따라다니며 주님의 제자가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제자가 자기가 보는 앞에서 예수님께로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세례 요한이 섭섭하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세례 요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자신의 사명만 다하면 됩니다.

 

요한복음 3장 26~30절에 보면, “그들이 요한에게 가서 이르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이 곧 선생님이 증언하시던 이가 세례를 베풀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내가 말한 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언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이 얼마나 멋집니까. 세례 요한은 자신을 따르던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몰려가는 것을 보고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오직 주님만 높였습니다. 오직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했습니다.

 

지금도 많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을 합니다. 제자훈련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매우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성도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아닌 사람 1백 명보다 낫습니다. 그만큼 크게 차이 납니다.

 

우리 교회가 41년 동안 무슨 일을 하든지 척척 해냈습니다. 땅을 사고, 건물을 여러 번 짓고, 건물을 사도 언제나 헌금이 남았습니다. 헌금이 남는 것이 축복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될 수 있었는가 하면, 수만 명의 성도가 달려들어서 일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헌신된 사람이 우리 교회에 많기 때문입니다.

그분들은 헌금하라고 해서 헌금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전도하라고 해서 전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들은 주님의 제자로서의 삶으로 무장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둬도 열심히 기도합니다. 열심히 전도합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합니다.

이 성전을 지을 때, 장로님들은 자신의 집을 다 바치셨습니다. 저는 오히려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은 자신의 집을 자발적으로 바치셨습니다.

그런 교회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서 교회에서 쓰고도 헌금이 남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제자를 양육해서 교회의 일꾼으로 세우기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제자훈련은 나의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제자를 만드는 것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목회자들 중에는 제자훈련이 자신의 제자로 만드는 것이라 착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특징은 자신의 교회만 생각합니다. 자신의 교회만 잘 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모든 교회가 잘 되어야 합니다.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수영로교회를 개척했을 때, 사람들이 어디서 몰려오는지, 전도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어떤 때에는 1년 동안 성도 수가 2배로 늘어났습니다. 교회가 빨리 컸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예배 시간마다 예배당이 꽉 찼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속에 ‘내가 목회를 잘하는 모양이지, 설교를 잘하는 모양이지, 계속 이렇게 부흥되다가는 우리 교회가 부산에서 제일 큰 교회가 되겠구나.’라고 혼자서 잠시 생각했습니다. 오래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은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그 주간 수요일에 어른은 제 아내와 반주자 뿐이고, 아이들 몇 명만 앉아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그 날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가르쳐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목요일에도 집에 가지 않고 계속 기도했습니다. 밥 먹기도 싫었습니다.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몇 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갑자기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 니가 해? 내가 하지.”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목회하지, 누가 목회합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제게 “니가 하느냐, 내가 하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몰랐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주님께서 하신다는 것을 저는 몰랐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다 제가 하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교회는 네가 세운 것이 아니라, 내가 세웠다. 이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네가 목회를 잘해서도 아니고, 설교를 잘해서도 아니고, 내가 내 백성을 모아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왜 부흥했습니까? 사도행전 2장 47절에 보면,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원 받는 사람을 주님께서 날마다 더해주셔서 예루살렘교회가 급성장했습니다.

 

수영로교회는 특별한 교회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이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교회를 세우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교회가 부흥하는 것은 설교를 잘 하고, 목회를 잘 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의 백성들을 모아주시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마산, 양산, 거제도, 울산에서도 우리 교회까지 옵니다.

 

저는 주님께 “이제부터 주님께서 이 교회의 당회장이십니다. 저는 교육전도사와 같은 마음으로 충성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알아서 하시고, 주님께서 다 책임지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에는 “주님, 이것 잘 해결하셔야 합니다. 잘못하시면 주님 망신, 제 망신입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예배드리다 보면, 뒷자리가 빈 것이 보입니다. 그러면 “주님, 심방하세요. 메추라기 몰아오듯이 몰아오십시오. 누가 저 같은 목사의 설교를 들으러 오겠습니까. 주님께서 모아주시지 않으시면, 우리 교회에 올 사람이 없습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저는 그렇게 목회했습니다.

 

저는 목회할수록 기도시간을 늘였습니다. 가만히 보니 제가 심방하고, 제가 사람을 만나고, 제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면, 문제가 계속 생겼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다 맡으세요. 저는 모르겠습니다.”라고 하고, 기도에 집중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실패가 없고, 부족함이 없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더 좋게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목회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적으로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입니다. 학벌이 있었겠습니까. 지위가 있었겠습니까. 재산이 있었겠습니까. 대부분 어부였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을까요? 어떤 사람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마태복음 16장 24~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세리였던 마태는 주님께서 부르셨을 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좋은 직장을 버리고 즉각 주님을 따랐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28절에 보면,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8~30절에 보면, “베드로가 여짜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제자들은 모두 끝까지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님의 명령에 따라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했습니다.

 

그들은 주의 일을 하다가 때로는 채찍질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당하는 것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순교했습니다. 이들이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성령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믿음이 충만해지면, 권능이 충만해집니다. 그래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승리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교역자들이 시시해보이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그분들이 받을 영광이 클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이 땅에 주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을 때, 그들이 받을 영광이 클 것입니다.

주님께서 혼자 세상을 다스리시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위해 살았던 제자들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겠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언제 순교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세례 요한 때문에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베드로는 안드레를 통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장 45~51절에 보면, 나다나엘은 빌립을 통해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창신교회의 이범호 장로님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제 옆 자리에 앉으신 분입니다. 그분이 저를 전도하셔서 제가 교회에 나가게 되어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분이 제게 “교회에 가자”고 해서 저를 교회에 데려갔습니다.

그 친구의 형님이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 형님을 따라다니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주님을 만나신 형님을 통해 저도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중요합니다.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나아가게 되고,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가 된다면,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이 클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메시아를 만난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요. 안드레는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형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요 1:41)”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따라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전도는 쉽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전도는 예수님께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데리고 오면 됩니다.

 

누가복음 14장 16~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들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매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이것이 주님의 마음입니다. 이 세상 어떤 사람이라도 데리고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집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사람들을 교회로 데리고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처럼 예수님을 믿으시오.’라는 의미로 우리가 본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고, 믿음이 자라는 것은 성령께서 하십니다. 성령께서 그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고, 그 사람의 믿음이 자라게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8장 14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성령께서 은혜를 부어주시면, 믿음이 생깁니다. 은혜를 받을수록 믿음이 자랍니다.

 

그러나 교회에 한 번 나왔다고 모두 구원 받는 것은 아닙니다. 평생 교회에 다녔다고 해서 구원 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생겨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순종하지 않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야 구원 받기 때문입니다.

둘째,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회개하는가 회개하지 않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철저히 회개하면, 그때부터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성령의 은혜로 말미암아 사람이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셋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넷째,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하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보아야 합니다.

기차를 타고 가다가 옆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그분이 수영로교회의 성도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가워하며 음식을 나누어먹는다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만났을 때에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마음 자체가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을 보여줍니다.

은혜를 충만히 받으면,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됩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증거요, 믿음을 가진 증거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보시고 그들에게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오셔서 “무엇을 구하느냐”라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왕상 3:5)”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솔로몬은 하나님께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라고 대답했습니다.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꿈에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께서 그에게 무엇이든 다 주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때 토마스 아퀴나스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나 훌륭한 고백입니까.

저와 여러분도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38절에 보면, 두 제자는 “무엇을 구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예수님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께 왜 이렇게 질문했습니까? 이들은 주님께서 계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주님과 함께 있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가시는 곳에 주님과 함께 가고,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 주님과 함께 있고 싶어서 예수님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이것은 제자로서의 올바른 자세입니다. 주님께서 가시는 곳에 함께 가고, 주님께서 계시는 곳에 함께 있고, 주님을 따라가는 삶을 사는 사람이 올바른 제자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39절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와서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가서 예수님과 함께 있어보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고 시간까지 상세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메시아를 만난 것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날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만난 시간까지 기억하고 기록했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찾아오셔서 제가 주님을 직접 만난 그 날을 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 되자마자 금식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금식기도를 시작한 지 사흘째 되던 날, 한밤중에 주님께서 제게 가까이 다가오셔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주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그 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날부터 저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주님께서 때때로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대로 목회합니다. 책을 보고 목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목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말씀해주시는 대로 순종하면, 가장 잘 됩니다. 가장 복됩니다. 두고두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불광동 뒷산에서 기도하다가 불을 받았던 날도 잊을 수 없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전도사였던 때입니다. 1969년 6월로 기억합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불을 받았습니다. 몇 시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 날 이후, 저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전도사인데도 교회에서 부흥회를 인도해달라고 부탁받았습니다. 큰 교회에서 중고등학생들을 모아놓고 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쓰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생생하게 만나는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42절에 보면,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안드레가 그의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시몬은 베드로의 본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게바’라는 새 이름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6장 15~18절에 보면,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라는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본래의 이름은 시몬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으면, 새 이름을 얻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마귀의 자녀였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성도’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 백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빛의 자녀’라는 새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와 여러분은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해드리는 제자가 되셔서 내가 만난 예수님이 얼마나 좋은가, 예수님을 만나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를 사람에게 전해주어서 많은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에게 평생 복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한 분도 빠짐없이 주님을 만나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메시아를 만난 기쁨이 넘쳐 안드레가 시몬에게 복음을 전한 것처럼, 시몬을 예수님께 인도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을 주님 앞에 인도하는 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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