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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1장

세례요한의 겸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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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8 11:52 조회3,7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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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겸손

 

세례 요한의 겸손

2016년 09월 25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9~28

 

마태복음 11장 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생겨나지만 세례 요한보다 위대한 사람, 훌륭한 사람은 없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이렇게 극찬하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세례 요한은 오직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헤롯 왕에게 목 베임을 당해 순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생을 일찍 마쳤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일을 짧게 하고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오래 했는가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는가, 하나님을 얼마나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았는가입니다. 짧게 살았어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례 요한의 생은 짧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허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주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자신의 사명을 위해 충성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도 짧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항상 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않으시고, 언제나 예수님과 함께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는 일(마 1:21),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요 6:3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하나님께서 예수님께 맡겨주신 백성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심전력하여 오직 그 일을 하셨습니다. 자신을 위해 사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사셨습니다.

세례 요한도 예수님처럼 자신을 위해 살지 않았습니다. 오직 자신의 사명을 위해 충성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이사야 43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속해주시고 지명하여 부르신 사람들에게는 사명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내게 오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습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 받았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우리를 택해주시고 불러주시고 구원해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목적이 분명합니다.

 

저와 여러분처럼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들은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먹고살기 위해 아등바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을 가지고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해야 합니다. 언제나 그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2~33절에 보면,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서 열매를 맺으려면, 사람들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때,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것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않는 사람이 많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증인,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찬송가를 부를 때, 여러분의 입을 봅니다. 찬송가를 부를 때, 입을 벌리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음치라도 따라서 부르세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찬양받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3~14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첫 번째 복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양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복음을 믿게 하시고 구원 받게 하시고 성령으로 인쳐 주셨습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성령께서 책임지시고 우리를 인도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이런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집에서 설교를 준비할 때, 제가 좋아하는 찬양, 은혜로운 찬양,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찬양을 계속 들으며 은혜 가운데 설교를 준비합니다. 그 시간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제가 찬양을 부르지 않아도, 찬양을 들으며 얼마나 은혜를 받는지 모릅니다.

찬양 가운데 살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마음에 평강이 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믿음이 건강해집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든지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사명을 깨닫고 충성하며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주님께 칭찬 듣고 상급 받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 요한에게 일어난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낙타털 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살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요단 강에서 물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세례 요한을 따랐습니다.

 

그 당시 유대의 정치와 종교를 장악하고 있던 산헤드린 공회원 중 바리새인들은 대표 몇 명을 세례 요한에게 보내어 몇 가지 질문을 하여 확인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것은 종교 문제를 지도하고 감독해야 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치적 소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감독해야 하는 책임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19~20절에 보면,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메시아냐”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메시아가 아닌가’라고 생각하여 세례 요한을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문이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분명하게 대답했습니다.

 

누가복음 3장 15절에 보면,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시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훌륭한 사람이 나타나니까 ‘이 사람이 메시아가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사람들에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엘리야냐”라고 질문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곧 엘리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은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말라기 4장 5절에 보면,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먼저 엘리야가 온다고 예언되어있습니다. 사실 세례 요한은 성경에 예언된 대로 온 엘리야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은 엘리야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8~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해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부드러운 옷을 입은 사람들은 왕궁에 있느니라 그러면 너희가 어찌하여 나갔더냐 선지자를 보기 위함이었더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니라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네 앞에 준비하리라 하신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이 바로 그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시며, 세례 요한이 선지자보다 더 나은 자요 선지자 중의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에게 “네가 그 선지자냐”라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그 선지자’는 모세가 예언한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신명기 18장 15절에 보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어느 선지자보다 뛰어난 선지자였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눈으로 직접 보고 증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가리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마 11: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보통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자신은 선지자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22~23절에 보면, “또 말하되 누구냐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게 대하여 무엇이라 하느냐 이르되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주의 길을 준비하는 자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임금이 오기 전에 “임금님께서 행차하신다.”라고 외치면 백성들은 길을 열어주고, 길 양쪽에 엎드렸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오시기 전에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25~27절에 보면,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당시에 신발끈을 푸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인이 신발을 신을 때에는 빨리 가서 주인의 신발끈을 매어드렸습니다. 주인이 신발을 벗을 때에는 빨리 가서 주인의 신발끈을 풀어서 신발을 벗겨드렸습니다. 노예 중에서 가장 비천한 사람이었습니다.

 

노예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하는 일이 달랐습니다. 농사를 짓는 노예는 과수원을 돌보고, 밭에 가서 일하기도 했습니다. 지식이 많은 노예는 주인의 자녀를 가르쳤습니다. 물건을 잘 만드는 노예도 있었습니다.

요셉처럼 가정 총무를 맡는 노예도 있었습니다. 노예지만 지혜롭고 훌륭하여 주인이 모든 살림을 그에게 맡겼습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시킬 수 없는 노예도 있었습니다. 지능도 모자라고 재능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간단한 일만 시켰습니다.

이런 노예는 주인이 집에 들어오면 빨리 달려가서 주인의 신발끈을 풀어드리고, 주인이 나가려고 하면 빨리 달려가서 주인에게 신발을 신겨드리고 신발끈을 매어드리는 일을 했습니다. 아주 간단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자신이 신발끈을 매는 일도 감당하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그런 일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족하다고 말하며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겸손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칭찬을 듣고 존경을 받으면, 자신의 분수를 지키지 못하고 착각에 빠지기 쉽습니다. 세례 요한은 백성들이 존경했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가리켜 “메시아가 아닌가, 선지자가 아닌가, 엘리야가 아닌가”라고 말하고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은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했습니다.

 

사도행전 12장 21~23절에 보면, 어느 날 헤롯 왕이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백성에게 연설했습니다. 백성들은 큰 소리로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고 하며 헤롯을 신으로 여겼습니다.

그때 헤롯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의 사자가 헤롯을 쳤고, 헤롯은 벌레에게 먹혀 죽었습니다. 아마 벌레에게 물렸는데, 독이 퍼져서 죽었던 것 같습니다.

헤롯은 왜 그렇게 죽었을까요? 자신의 분수를 모르고, 교만하여 자기가 신인 것처럼 착각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잘났다고 큰 소리치고, 천하를 흔들 권세를 가지고 있어도, 벌레만도 못한 인간임을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갑니다. 건강하다고 큰소리치지 마세요. 자다가 심장이 멎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큰소리칠 수 없습니다.

사람이 높인다고 해서 높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벌레에 물려 죽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분수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헤롯을 신처럼 여긴다고 해서 신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헤롯은 자기가 신이 된 것처럼 교만한 마음을 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헤롯을 벌레에 물려 죽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존경하여 그를 선지자로, 메시아로 존경했습니다. 그때 세례 요한이 얼마나 교만하지기 쉽습니까.

그러나 세례 요한은 “나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과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라(요 1:23)”,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요 1:26~27)”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고, 오직 주님만 높이는 겸손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세례 요한의 겸손을 저와 여러분도 본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이 영국을 방문했습니다. 마침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갔습니다. 주일 낮에는 설교를 잘하기로 소문난 목사님의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사람은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나오면서 “참으로 위대한 설교가다. 설교를 정말 잘하신다.”라고 감탄했습니다.

주일 저녁에는 어느 교회에 가서 예배드릴까 생각하다가 찰스 스펄전 목사님의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설교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나오면서 이 사람은 “주님은 놀라우신 구주시다.”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이 사람이 주일 낮에 갔던 교회의 목사님은 설교를 통해 자신을 나타냈습니다. 자기가 박식하고 책을 많이 본 것과 자신이 얼마나 잘났는가, 자신이 얼마나 뛰어난 사람인가를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참으로 위대한 설교가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설교를 통해 자신만 나타냈습니다. 그래서 자기만 영광 받았습니다.

그러나 스펄전 목사님은 예수님만 높이고, 예수님만 증거했습니다. 그래서 설교를 들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훌륭한 구주이심을 깨닫고 은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간증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칫하면 내가 잘나고 훌륭해서 축복 받아 성공한 것처럼 이야기해서 자신을 높이기 쉽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위해 간증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입니다. 간증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높이고 주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간증해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얼마나 형편없었던 사람인가를 말하며 “이런 나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해주셨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여 주님을 높여야 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주님을 깊이 알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간증할 때의 요령이 있습니다. 간증은 대개 세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자신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간단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길게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로 하여금 죄 짓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과정에서 간증거리가 많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나니 얼마나 좋은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어떻게 변했는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얼마나 행복한가를 이야기해야 합니다.

이렇게 간증해야 합니다. 그렇게 간증하면,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메시아도 선지자도 엘리야도 아니고, 다만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라고 말했습니다.

 

겸손은 은혜 받는 비결입니다. 겸손은 은혜 받은 자에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보면,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설교를 들으면,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판단하고 비판하게 됩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은혜를 사모하며 설교를 들으면, 성령의 은혜가 임합니다.

 

말씀을 듣다가 은혜를 받으면,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회개합니다. 자신의 죄를 깨달은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그러나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보고 비판하고 판단합니다.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닫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충만해져서 감사하게 됩니다. 기쁨이 넘칩니다. 행복해집니다.

우리에게 은혜가 임하면, 자신의 사명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합니다. 그래서 큰 일꾼이 됩니다. 교회의 부흥을 가져와서 더 큰 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은혜를 사모하며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항상 은혜 받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25~27절에 보면, “또 물어 이르되 네가 만일 그리스도도 아니요 엘리야도 아니요 그 선지자도 아닐진대 어찌하여 세례를 베푸느냐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1절에 보면,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물 세례는 도덕적 회개를 의미합니다. 자신의 잘못과 자신이 바르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입니다.

성령 세례는 불 세례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거듭나게 하는 세례입니다. 새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세례입니다.

 

교회에 나온 지 오래되었지만, 도무지 변화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령 세례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철저히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을 뿐 아니라, 성령의 선물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회개하는 시간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1시간도 좋고, 2시간도 좋고, 밤새도록 해도 좋습니다. 작정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철저히 회개하는 만큼 큰 은혜를 받습니다. 큰 은혜를 받은 만큼 변화됩니다.

 

우리는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죄가 있습니다. 제가 그러했습니다. 은혜도 많이 받았고, 모든 것을 잘하는 것 같았는데, 깨닫지 못한 죄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시간에 제가 강단에서 혼자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나라를 위해, 부산을 위해, 성시화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성시화를 위해 돕는 사람도 있지만, 방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게 부담감을 주고,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이들은 뭔가 잘못됐다. 앞으로 고생하겠다. 비참하게 죽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한 대로 되었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저는 몰랐습니다. 우리는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제 안에 사랑이 없으면,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그것이 죄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제게 책망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제게 “너는 왜 밤낮 그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느냐. 그들을 위해 울어줄 수 없겠니. 그들을 위해 기도해줄 수 없겠니. 그들을 축복해줄 수 없겠니. 그들을 안아줄 수 없겠니. 그들을 사랑해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주님께서는 사랑이 크셔서 그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고 감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이제부터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두 손을 들고 그분들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즉각 회개하고 순종하니 하나님께서 제게 은혜를 주셨습니다. 만약 그분들이 제 앞에 있었다면, 저는 그분들을 끌어안고 울었을 것입니다. 그분들을 향한 사랑이 제 안에 생겼습니다.

 

이제 저는 비판하지 않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저는 기도합니다. 그들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제가 그렇게 변했습니다.

평생 깨닫지 못했던 죄를 깨닫고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하고 나니 주님께서 저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하게 써주시는 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주위에 미운 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미운 사람에 대해 무관심하고, 생각하기도 싫어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죄입니다. 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큰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을 주셨으니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대로 실천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로 나타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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