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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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6:50 조회3,596회 댓글0건본문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2016년 09월 04일(주일예배)
본문 / 요한복음 1:1~13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말씀에 비유해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장 2~3절에 보면,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예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했습니다. 만물 가운데 주님께서 창조하시지 않으신 것이 없다고 하며, 예수님께서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증거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말씀이신 주님께서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다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5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9~12절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빛에 비유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빛이 하나님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빛에 비유한 것이지, 빛이 하나님인 것은 아닙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보면,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빛에 비유했습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6~8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세례 요한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라고 말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습니다. 세례 요한은 광야에서 기도하며 은혜를 받고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다가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세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 증거한 것을 가리켜 사도 요한은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라고 말했습니다.
창세기 1장 1~5절에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빛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첫째 날에 빛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처음에는 깜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은 모두 같은 것이 아닙니다. 누가 말하는가에 따라 다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도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도 신실하고 완전합니다. 거짓이 없습니다. 변함없습니다.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신실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신실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 말씀은 진리일 뿐 아니라,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천지는 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24~25절에 보면,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 풀과 같습니다. 이 땅에서 잠시 살다가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전지전능할 뿐 아니라, 영원히 변함없고, 영원히 살아있습니다.
세상은 없어질 날이 옵니다. 세상은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부터 예수님을 믿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을 돌이켜보면, 제가 처음부터 성령을 제대로 받은 것 같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은혜 받고 생각한 것이 평생 이어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금식기도하는데 주님께서 제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때때로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한 번도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주님께서 제게 말씀하시면, 아무리 불가능해보여도 언제나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언제나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주님께 영광 돌립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말씀대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신실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고, 약속하신 것을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에게는 건망증이 있어서 자신이 말한 것도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에 응답 받을 때까지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응답 받으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다메섹 도상에서 사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그 기록이 여러 번 반복해서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기록을 종합해보면,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굉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울이 장차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을 전하고, 많은 고난을 받을 것까지 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십니다.
창세기 1장 15~16절에 보면, “또 광명체들이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하나님이 두 큰 광명체를 만드사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시고 작은 광명체로 밤을 주관하게 하시며 또 별들을 만드시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큰 광명체’는 태양, 해를 가리킵니다. 그래서 큰 광명체로 낮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태양이 비추면 낮입니다.
‘작은 광명체’는 달을 가리킵니다. 달은 밤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달은 태양의 빛을 받아서 반사시킵니다. 그러나 달도 광명체입니다. 밤에도 빛은 있습니다. 다만 빛이 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밤에는 약한 빛을 비추게 하셨을까요? 약한 빛을 비추는 것이 잠을 자는 데에 좋기 때문입니다. 깊이 수면(睡眠)하여 피곤을 풀 수 있게 하셨습니다.
빛의 역할은
첫째, 밝게 해줍니다. 그래서 어둠이 물러가게 합니다.
어둠은 빛으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어둠이 깔려있어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불을 켜면, 어둠은 사라집니다. 어둠은 빛 앞에서는 꼼짝하지 못합니다. 빛을 비추는 순간, 어둠은 사라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 요한이 예수님을 왜 빛에 비유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진 이 세상을 밝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진심으로 영접하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어두웠던 사람이 밝아집니다. 그 사람의 가정이 밝아집니다.
요한복음 12장 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따뜻하게 해줍니다.
햇빛이 얼마나 따뜻합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걸어갔습니다. 광야는 밤에는 굉장히 춥고, 낮에는 햇빛이 뜨겁습니다. 사람이 살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면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해를 가려서 시원하게 해주셨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밝고 따뜻하게 해주셨습니다. 얼마나 자상하신 하나님이십니까.
추운 겨울에 따뜻한 햇빛을 쬐면 추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 생명을 줍니다.
태양이 없으면, 이 세상은 깜깜할 뿐 아니라, 몹시 추워집니다. 태양이 없으면, 이 세상은 금방 얼음덩어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죽습니다. 그만큼 태양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예수님을 빛에 비유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을 밝게 해주시고, 세상을 따뜻하게 해주시고, 세상에 생명을 주십니다.
요한복음 8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빛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게 될 것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9~13절에 보면,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아들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믿으면, 빛 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누가복음 16장 8절에 보면,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둘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이 세대의 아들들입니다. 또 하나는 빛의 아들들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빛의 아들이 되지만, 그 외에는 모두 이 세대의 아들입니다.
본문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대인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바리새인, 유대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비방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친구 따라 교회에는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간다고 모두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명령이나 강요에 의해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에베소서 1장 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48절에 보면,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택하시고 작정하신 그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만드시기 전에 미리 다 아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셨습니다. “나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택해주신 사람이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사람이다.”라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6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6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아버지께서 오게 하여 주지 아니하시면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예수 믿게 하시고,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13절 말씀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질문을 해봅니다.
첫째, 진심으로 예수님을 영접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교회 나오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18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어린 아이’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0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주의 종들을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마태복음 10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돔 고모라에 임한 심판보다 더 무서운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것이 큰 죄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오히려 저버립니다. 이것은 말씀이신 주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8절에 보면,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말을 저버리는 것은 사람의 말을 저버리는 것이 아니고,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돔 고모라 땅에 내린 심판보다 더 큰 심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영생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을 저버렸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 멸망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교회에 나온다고 해서 모두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아는 방법은
⑴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의 안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성령으로 말미암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4~17절에 보면,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해주십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임을 믿게 됩니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에 보면,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가셔서 아버지가 많이 그리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 되신 것이 감사했습니다. 중학생이었을 때에는 하루 종일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아버지”라고 실컷 불렀습니다.
친구들의 부모님을 보니 대단하셨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의 부모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비교해보니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제일 부자요, 제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니 세상의 아버지들은 시시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나쁜 아버지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는 정말 좋은 분이십니다. 하루 종일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육신의 부모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성령으로 거듭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두 번째 태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을 때에는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회개합니다. 이것이 거듭난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의 특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죄를 범하는 자신이 밉고, 자신이 범한 죄를 미워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울며 금식하며 “아버지, 다시는 이런 죄를 범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죄와 싸워 이길 힘을 주시옵소서.”라고 몸부림치며 회개합니다.
이렇게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선물을 반드시 주십니다. 이런 기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그런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어떤 때에는 밤새도록 회개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도한 날 밤에 저는 성령의 불을 받았습니다.
저는 하나님 앞에 회개하기 위해 기도했는데, 철저히 회개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제게 성령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⑵ 열매를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 선지자인지 거짓 선지자인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을까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열매가 보여줍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지 열매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가 그렇지 않은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따라 열매가 달라집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멋대로 사는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마 7:22~23).
대부흥사가 되었다고 해서, 교회에서 집사가 되고 장로가 되었다고 해서, 한국 교회를 움직이는 지도자가 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8~14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은 빛으로 말미암아 드러나나니 드러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4~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어서 착한 일을 많이 하고, 의로운 일을 많이 하고, 진실하게 살면,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17~18절에 보면,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진실이 빠지면 안 됩니다. 진실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진실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도 진실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3장 19~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합니다. 그래서 악을 행하는 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드러날까봐 빛을 미워합니다. 빛을 싫어하고, 어둠을 좋아합니다.
성경에 보면, 서기관들과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싫어했습니다. 자기들이 얼마나 나쁜 짓을 하는지,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예수님을 통해 다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빛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니 그들은 예수님 때문에 자기들이 망했다고 생각하여 아예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얼마나 악한 사람들입니까.
우리가 빛의 열매를 맺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랑의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려면,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없습니다.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형제를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5~7절에 보면,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2장 9~11절에 보면,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빛 가운데 행합니다. 형제를 사랑하는가, 사랑하지 않는가를 보면, 빛 가운데 있는가, 어두움 속에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4~15절에 보면,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심판하시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해주셨습니다.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고통 중에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을 조롱하는 사람들을 위해 오히려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렇게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보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4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필레오(φιλέω)’입니다.
마태복음 5장 4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스톨게(στοργή)’입니다. 자신의 부모, 자녀,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방인들도 이렇게 사랑합니다. 심지어 짐승들도 이렇게 사랑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인 사랑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죄인,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고, 그를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용서하는 마음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용서를 구한다고 해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용서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용서해야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마태복음 5장 4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우리가 온전해집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평생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평생 교회의 마당만 밟다가 지옥에 가는 자가 없게 하여주옵소서.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셔서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며 사는 하나님의 복된 자녀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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