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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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10 09:27 조회3,348회 댓글0건본문
성찬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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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04월 22일(금요철야)
본문 / 누가복음 22:19~20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중에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모두 구원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38~3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려면, 죄가 없는 사람이 죄인을 대신해서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죄가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억지로, 마지못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원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열두 영이 더 되는 천사를 불러서 원수들을 다 멸하실 수 있었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려면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기 위해 원수들을 다 멸하면 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반항하지도 않으시고, 순순히 포박 당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내어주시는 몸이라는 의미입니다.
누가복음 22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포도주를 부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원하여 죽어주시고, 우리를 위해 피 흘려주셨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사형틀이었습니다. 가장 고통 받으며 죽게 만드는 사형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오후 3시에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고통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큰 고통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는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는 순간,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대신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뿐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 받는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얼마나 아프셨나 못 박힌 그 손과 발 죄 없이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 예수님
하늘도 산과 들도 초목들도 다 울고 해조차 빛을 잃고 캄캄하게 되었네
나의 죄 너의 죄와 우리의 모든 죄를 모두 다 사하사려 십자가에 달리신 주
얼굴과 손과 발에 흐르는 그 귀한 피 골고다 언덕 위를 붉게 물들이셨네
오 놀라운 사랑 크시고 끝없도다 오 주님 사랑에 구원의 강물 넘치네(찬송가 614장)
주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저와 여러분은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용서받고, 마치 죄가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의롭다함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3장 23~24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칭의’라고 합니다.
우리는 마치 죄 없는 사람처럼 의롭다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속량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사람은 다 저주 가운데 죽는 사람인데, 예수님은 왜 저주 받은 사람처럼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율법대로 살지 못하므로 저주를 받았는데,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모든 저주에서 속량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저주 받은 사람입니다. 북한 땅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그들은 저주 받은 사람들입니다. 북한의 정치 수용소에 갇혀서 온갖 고문을 받다가 죽는 사람들은 저주 받은 사람들이고,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큰 저주는 예수님을 믿을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구원 받을 기회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을 기회도 얻지 못하고, 고통만 당하다가 죽는 사람만큼 불쌍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가 죽어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사람들보다 불쌍한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께도 버림 받고, 이 세상에서도 버림 받은 사람처럼 저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 시민이 되었습니다. 땅에서도 아브라함의 복을 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다가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보다 큰 복이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재벌이 되었다 할지라도 예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당하게 될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자유로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을 뿐 아니라, 땅에서 사는 동안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아브라함과 같은 복을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믿음으로 살다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을 모시고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니, 세상에 이보다 더 큰 복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와 여러분은 항상 이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환난과 시험이 오고, 고난이 와도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감사하세요. 구원 받은 것, 천국에 가게 된 것,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받음을 감사하시면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구원 받은 사람들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면,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택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특권을 받은 사람들은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드신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선한 일을 위해 하나님이 만드신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선한 일을 위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하나님을 믿게 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19~21절에 보면, “부당하게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고난 받을 이유가 없는 분이신데, 우리를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선한 일 중에 가장 선한 일은 멸망할 인간으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멸망할 인간을 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선한 일을 행하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이것을 통해 예수님은 우리에게 선한 일을 위해 고난 받는 자가 되라는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명을 보여줍니다. 선한 일 가운데 가장 선한 일은 죽을 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멸망할 자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장 12~16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주님이 고난 받으신 것처럼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기 위해 우리도 고난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으신 것과 같은 고난을 받아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사명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다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 받을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선교사가 되어 직접 선교지에 가서 복음을 전하던지, 선교사를 후원하는 자가 되어 선교사를 위해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와 물질로 후원하며 선교사가 복음을 잘 전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일, 즉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하는 일을 위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성도들의 사명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명을 잊어버린 채 살고 있습니다. 그저 편하게 예수 믿다가 천국에 가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있습니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신앙생활하게 됩니다. 사명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도 추태를 부리며 부끄럽게 살아갑니다.
우리의 사명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다 구원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명을 알고, 날마다 나아가서 전도하고, 한 영혼이라도 구원 받게 하려고 발버둥 쳐야 합니다.
그런데 사명을 잊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 오늘날 많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 노릇을 못하고, 오히려 전도의 문을 막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양과 염소의 비유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0).
지극히 작은 자를 사랑하고 돌보는 것은 예수님에게 잘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외면하고, 그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예수님을 외면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함부로 살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함부로 살기 위해 택함 받은 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택함 받았고, 선한 일을 위해 지음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사명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한 명도 전도해보지 않았으면서 교회에서 행세나 하려는 사람 때문에 교회가 얼마나 부끄러움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택하셨습니까?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무엇을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목적을 가지고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찬송하는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해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를 구별하시고, 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에 보면, 사도 바울은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말하면서 창세전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신 목적은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엡 1:6).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신 이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신 이유도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 대신 죽어주시고,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신 데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우리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또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에 보면,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미리 아시고, 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성품과 인격이 예수님을 닮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우리를 보며 예수님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고,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되지 않고, 예수님처럼 살지도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변화되지 않고, 예수님처럼 살지 않을까요?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4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가지시고 떡을 나누어주시며 예수님께서는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2:19). 그리고 포도주를 나누어주시며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2:20).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매우 중요한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22장 24절 이하에 보면, 제자들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만찬을 가지셨는데, 그 사이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만,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크냐, 누가 더 어른이냐, 누가 더 선배냐, 누가 더 선임이냐는 문제를 가지고 다툼이 생겼습니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베드로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 22장 39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감람 산에서 땀이 핏방울 같이 될 정도로 기도하셨지만, 제자들은 잠만 자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라고 책망하셨습니다(눅 22:46). 결국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다 도망갔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제자들과 같은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제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그러나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나니 제자들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기쁨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고난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1~42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통해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고,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까?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처럼 살다가 죽을 것입니까? 오순절에 성령 충만한 은혜를 받은 제자들처럼 살겠습니까? 이 시간에 마음의 결단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받으면, 누구든지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리게 되고, 변하여 새 사람이 됩니다. 성령을 받으면 변합니다. 성령을 받으면 달라집니다. 성령을 받으면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니다. 전도자가 됩니다. 그래서 어디서나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증인이 됩니다.
우리 교회 집사님 중에 한 분이 서울에서 회사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이 집사님이 제게 “서울에 오시면, 한 번 들러주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루는 시간이 나서 그 회사에 갔습니다. 수백 명의 직원이 모여 찬양하며 은혜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제게 1시간 동안 설교해달라고 했습니다.
설교 후에 기도시간을 가지는데, 직원들이 얼마나 뜨겁게 기도하는지, 회사가 완전히 복음화되어 전 직원이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자기에게 좋은 차가 있지만, 서울에서는 자신의 차를 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일부러 택시를 탄다고 합니다. 전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어떤 때에는 하루에 20명에게 복음을 전했다고 합니다.
돈 버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복음화하고, 어디를 가든지 전도의 목적을 가지니, 하나님이 얼마나 축복하시는지, 엄청난 축복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을 통해 교회는 부흥됩니다. 이런 성도들을 통해 세상이 변화됩니다. 이런 성도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사는 사람들은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언제나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 ‘지난밤에 자다가 죽을 수도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오늘 하루도 살게 하시는구나.’라고 생각하고,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생명을 연장시켜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늘 하루를 더 살게 하시고, 이 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나를 살게 하시는 데는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은혜 받고 변화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변화되지 못한 모습으로 천국에 가면 안 됩니다. 부끄러운 모습으로 천국에 가면 안 됩니다. 고약한 버릇을 그대로 가지고 천국에 가면 안 됩니다. 악독하고 음란한 성품을 가지고 천국에 가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 받을 기회, 변화될 기회를 주십니다.
둘째, 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사명이 남아있는 사람은 죽을병에 걸려도 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사실을 기억하시고, ‘사명을 다하라고 하나님이 오늘을 나에게 주셨다’라고 생각하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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