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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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5-07 09:44 조회2,550회 댓글0건본문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2021년 02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21:34~36
누가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눅 21:7)”라고 물었습니다.이에 예수님께서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눅 21:8~9)”,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0~1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태초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내다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10~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26~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1~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소중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고난이 많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이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고난 속에서 살아도 결과는 같지 않습니다.
고생과 고난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이전보다 나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데, 이전보다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이전보다 험악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이전보다 착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정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그러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으로 인해 성품이 고약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몰인정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잔인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좋아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고난으로 인해 악해지는 이유는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자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보다 더 좋아집니다. 좋게 변합니다.
아브라함의 부모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9장 7~8절에 보면,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아닙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었고, 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지만,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만 구원받았습니다.
똑같이 고난을 겪어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이전보다 더 좋아집니다.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사람은 고난을 겪어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고난을 겪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이 좋아집니다.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살다 보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 속에서 기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시편 50편 15절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이 좋아집니다. 믿음이 강해집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권사님은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습니다. ‘저렇게 고통당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습니다.
권사님은 아이들과 날마다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이들도 열심히 기도하여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권사님의 가정을 보며 감사했습니다.
예전에는 고생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잘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든 것이 잘 될 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위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거에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축복 받은 후에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지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겸손한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지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교만해지면 예전에 받은 은혜가 다 없어집니다. 받은 은혜를 다 잃습니다. 심령이 완악해집니다.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8장 12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공했을 때, 모든 것이 잘 될 때, 부요해졌을 때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교만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공하고 모든 것이 잘 되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배를 등한히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가지 않습니다. 믿음을 잃습니다.
둘째,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고 복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된 것이지, 자신이 잘 나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산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똑똑하고 잘 나서, 자신이 모든 것을 잘 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랑을 하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
히스기야 왕이 그러했습니다. 남 유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죽었습니다. 이것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유명해졌습니다. 남 유다가 부강해졌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교만해졌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의 왕이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의 사절단을 보고 흥분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보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을 때, 히스기야는 교만을 뉘우쳤습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의 책망을 듣고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으니 그 시간은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므낫세는 왕이 된 후,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악한 짓을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도 므낫세를 따라서 했습니다. 열왕기하 21장 9절에 보면,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하 21장 16절에 보면,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보다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망했습니다.
셋째, 교만한 사람은 사람을 판단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완전한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런 실수를 범하기 쉽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넷째,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자신이 판단하여 자신에게 좋은 대로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장 13~17절에 보면,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은 것은 헛수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은 것은 허송세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택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3장 10~11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고로 인해 의식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깨어날지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중에는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 있었던 일이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서울에서 열심히 목회하시는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며 간증하시는 것을 제가 서울에 가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설교하시다가 갑자기 강대상에 머리를 박고 쓰러지셨습니다. 그 후에 깨어나지 못하시고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후에 목사님이 단상에서 기도하시다가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반드시 회개하고 죽습니다. 제가 55년 동안 목회하면서 이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 우리 교회에 출석하신 여자 집사님의 남편이 목회자의 자녀인데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밤낮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 간경화에 걸렸습니다. 배가 만삭된 임신부의 배처럼 커졌습니다. 부인 집사님이 심방을 요청하셔서 제가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남편은 제게 “목사님, 요즘은 의술이 발달하여 무슨 병이든 다 고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상태가 심각해져서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에 누워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그동안 자신이 범한 죄를 회개하더랍니다. 한참 동안 회개하다가 쓰러지듯 눕더니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날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한 후에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교회에 가서 기도한 후에 집으로 갔습니다. 저녁 먹고 난 후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가다가 기도하러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이 교회에 계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제게 같이 심방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안수집사님이 혼수상태로 누워 계셨고, 부인 권사님께서 혼자 계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제게 기도하라고 하셔서 저는 집사님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후에 권사님께서 간증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과 제가 다녀간 후, 집사님이 갑자기 일어나셔서 큰 소리로 회개하셨다고 합니다. 한참 동안 회개하시더니 다시 혼수상태가 되셨다고 합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 젊은 집사 중 한 명이 참 열심 있고 헌신적이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다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있는 자식들까지 다 모였습니다.
혼수상태로 누워계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눈을 뜨시더니 “저 두 분은 누구야?”라고 물으셨습니다. 가족들은 천사들이 아버지를 데려가려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쁨 속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본문 누가복음 21장 34~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 우리는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2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을 때에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교회에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가족들에게도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는 제 마음에 드는 좋은 일꾼이 우리 교회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사람이 저절로 사람 되는 줄 아니, 교육과 훈련을 통해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목사님이 목회하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일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 저녁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매년 그렇게 했습니다. 그 후로는 우리 교회에서는 일꾼들이 알아서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가 이렇게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부르시든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이 말씀을 듣는 분 모두에게 은혜를 주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성도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20210228
오늘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20210228
본문 / 누가복음 21:34~36
누가복음 21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예루살렘에 가셨을 때,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사람들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을 보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눅 21:7)”라고 물었습니다.이에 예수님께서는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눅 21:8~9)”,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수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 21:10~19)”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말씀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태초부터 영원한 미래까지 내다보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대로 다 이루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누가복음 21장 10~1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1장 26~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속량이 가까웠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1장 31~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매우 소중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고난이 많습니다. 전 세계의 사람이 고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똑같이 고난 속에서 살아도 결과는 같지 않습니다.
고생과 고난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이전보다 나빠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똑같이 고난과 어려움을 겪는데, 이전보다 좋아지는 사람이 있고, 이전보다 험악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이전보다 착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정이 많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너그러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고난으로 인해 성품이 고약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몰인정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잔인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 참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난으로 인해 이전보다 더 좋아지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데 고난으로 인해 악해지는 이유는 마귀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자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악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전보다 더 좋아집니다. 좋게 변합니다.
아브라함의 부모는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로마서 9장 7~8절에 보면,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모두 하나님께서 택하신 것은 아닙니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입니다. 이스마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아닙니다.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였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었고, 에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많지만, 다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만 구원받았습니다.
똑같이 고난을 겪어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이전보다 더 좋아집니다. 고난이 왔을 때,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의 특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시지 않은 사람은 고난을 겪어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고난을 겪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은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이 좋아집니다.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살다 보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 하나님의 자녀는 고난 속에서 기도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시편 50편 15절에 보면,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은혜를 받습니다. 믿음이 좋아집니다. 믿음이 강해집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권사님은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습니다. ‘저렇게 고통당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습니다.
권사님은 아이들과 날마다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아이들도 열심히 기도하여 은혜를 받고 믿음으로 자랐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이 모두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권사님의 가정을 보며 감사했습니다.
예전에는 고생했지만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잘 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이 상태가 계속 유지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든 것이 잘 될 때, 또 다른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위기를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해질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거에 은혜를 받았다 할지라도 축복 받은 후에 교만해지면, 하나님께서 대적하십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지면 하나님과 원수가 됩니다.
겸손한 사람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해지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교만해지면 예전에 받은 은혜가 다 없어집니다. 받은 은혜를 다 잃습니다. 심령이 완악해집니다.
잠언 16장 18절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18장 12절에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누구보다 먼저 멸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공했을 때, 모든 것이 잘 될 때, 부요해졌을 때에 교만해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특징이 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교만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니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런데 성공하고 모든 것이 잘 되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예배를 등한히 합니다. 교회에 열심히 가지 않습니다. 믿음을 잃습니다.
둘째, 교만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살고 복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잘 된 것이지, 자신이 잘 나서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잘 산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이 똑똑하고 잘 나서, 자신이 모든 것을 잘 해서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자랑을 하지,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릅니다.
히스기야 왕이 그러했습니다. 남 유다가 위기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사 18만 5천 명이 죽었습니다. 이것이 전 세계에 알려졌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유명해졌습니다. 남 유다가 부강해졌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이 교만해졌습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을병에 걸렸다가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바벨론의 왕이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의 사절단을 보고 흥분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가진 것을 바벨론의 사신들에게 자랑했습니다.
역대하 32장 24~26절에 보면,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므로 여호와께 기도하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고 또 이적을 보이셨으나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하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그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내리게 되었더니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그와 같이 하였으므로 여호와의 진노가 히스기야의 생전에는 그들에게 내리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으면 보답해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을 때, 히스기야는 교만을 뉘우쳤습니다. 그리하여 히스기야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지 않았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이사야의 책망을 듣고 달라져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15년 연장해주셨으니 그 시간은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보답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므낫세를 낳았습니다. 므낫세는 왕이 된 후, 우상을 숭배하고 온갖 악한 짓을 했습니다.
유다 백성들도 므낫세를 따라서 했습니다. 열왕기하 21장 9절에 보면, “이 백성이 듣지 아니하였고 므낫세의 꾐을 받고 악을 행한 것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민족보다 더 심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열왕기하 21장 16절에 보면, “므낫세가 유다에게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보다 큰 죄가 어디 있겠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망했습니다.
셋째, 교만한 사람은 사람을 판단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완전한 줄 알고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런 실수를 범하기 쉽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12절에 보면,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넷째,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습니다.
무엇이든 자기 생각대로 합니다. 자신이 판단하여 자신에게 좋은 대로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4장 13~17절에 보면,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은 것은 헛수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은 것은 허송세월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교만해지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섯째,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사명을 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택하신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택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3장 10~11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 나 곧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구원자가 없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보면,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산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로 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고로 인해 의식을 잃은 사람이 있습니다.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누워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깨어날지 죽을지 알 수 없습니다. 이 중에는 깨어나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 있었던 일이 오래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서울에서 열심히 목회하시는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며 간증하시는 것을 제가 서울에 가서 들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설교하시다가 갑자기 강대상에 머리를 박고 쓰러지셨습니다. 그 후에 깨어나지 못하시고 그대로 돌아가셨습니다.
부산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새벽기도 후에 목사님이 단상에서 기도하시다가 일어나지 못하셨습니다. 기도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반드시 회개하고 죽습니다. 제가 55년 동안 목회하면서 이것을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 우리 교회에 출석하신 여자 집사님의 남편이 목회자의 자녀인데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밤낮 술을 마셨습니다.
술을 많이 마셔 간경화에 걸렸습니다. 배가 만삭된 임신부의 배처럼 커졌습니다. 부인 집사님이 심방을 요청하셔서 제가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의 남편은 제게 “목사님, 요즘은 의술이 발달하여 무슨 병이든 다 고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상태가 심각해져서 병원에서 죽었습니다.
장례식 때에 들은 이야기에 의하면,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에 누워있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그동안 자신이 범한 죄를 회개하더랍니다. 한참 동안 회개하다가 쓰러지듯 눕더니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저는 날마다 교회에 가서 기도한 후에 학교에 갔습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에도 교회에 가서 기도한 후에 집으로 갔습니다. 저녁 먹고 난 후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어느 날, 집으로 가다가 기도하러 교회에 갔더니 목사님이 교회에 계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제게 같이 심방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안수집사님이 혼수상태로 누워 계셨고, 부인 권사님께서 혼자 계셨습니다. 목사님께서 제게 기도하라고 하셔서 저는 집사님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후에 권사님께서 간증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목사님과 제가 다녀간 후, 집사님이 갑자기 일어나셔서 큰 소리로 회개하셨다고 합니다. 한참 동안 회개하시더니 다시 혼수상태가 되셨다고 합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 젊은 집사 중 한 명이 참 열심 있고 헌신적이었습니다. 그 아버지가 교회에 열심히 다니시다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외국에 있는 자식들까지 다 모였습니다.
혼수상태로 누워계시던 아버지께서 갑자기 눈을 뜨시더니 “저 두 분은 누구야?”라고 물으셨습니다. 가족들은 천사들이 아버지를 데려가려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기쁨 속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를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웠습니다. 이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본문 누가복음 21장 34~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 우리는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15~21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어떻게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것을 생각하면,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데려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을 때에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교회에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우리를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가족들에게도 좋은 기억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개척 초기에는 제 마음에 드는 좋은 일꾼이 우리 교회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사람이 저절로 사람 되는 줄 아니, 교육과 훈련을 통해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훌륭한 목사님들을 초청해서 목사님이 목회하면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좋은 일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일 저녁마다 그렇게 했습니다. 매년 그렇게 했습니다. 그 후로는 우리 교회에서는 일꾼들이 알아서 움직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 교회가 이렇게 좋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부르시든 많은 사람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 이 말씀을 듣는 분 모두에게 은혜를 주신 줄 믿습니다.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말씀대로 살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성도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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