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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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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08 14:09 조회3,4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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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2011년 01월 14일(금요철야)

본문 / 누가복음 16:1~8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셨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만드셨을 뿐 아니라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만들어 놓으신 에덴동산은 천국과 비슷할 정도로 살기 좋은 장소였습니다. 거기에는 농사지을 필요도 없고, 노동할 필요도 없고, 과일나무에 달린 과일을 따먹기만 하면 되는, 행복한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다 준비해놓으시고. 모든 것을 다 마음대로 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오직 하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수천수만 가지는 자유롭게 하되, 이것 하나만 손대지 말라는 것과 같습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쉽습니까.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것을 따먹었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말미암아 세 가지 불행한 일이 생겼습니다.

 

첫째, 죽음이 왔습니다.

죽음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육신의 죽음이 있습니다. 육신의 죽음은 육신으로부터 영혼이 떠나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습니다. 정말 작은 연못이라서 물속에 들어가서 놀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연못 근처에서 놀던 아이 하나가 없어졌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그 연못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아이를 건져놓은 것을 보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상처도 하나 없고 깨끗했습니다. 그런데 죽어있었습니다. 영혼이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아무리 육신이 완전할지라도 영혼이 떠나면 이렇게 시체가 되는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영혼이 떠나면 그 사람의 육신은 썩게 되고, 흙으로 돌아갑니다.

 

둘째, 영적 죽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떠난 영혼, 하나님 없이 사는 영혼은 영적으로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영적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부산 같은 경우는 90%,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영이 죽어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 하나님 떠난,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이 있습니다.

둘째 죽음이라고도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없는 지옥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영원히 죽음의 장소에서 살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온 두 번째 불행은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타락은 성품이 점점 마귀를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특별히 구별되게 만들어주셨는데, 타락할수록 하나님의 형상은 사라지고, 마귀를 닮은 인간이 됩니다. 성품이 아주 악독하고 불의하고 거짓되고 교만해집니다.

성품이 타락할수록 마음은 지옥같이 됩니다. 사람이 타락할수록 이 세상은 지옥 같은 세상이 됩니다.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타락 때문입니다. 사람이 사람 노릇을 해야 하는데, 사람이 마귀 노릇을 하기 때문에 인간이 불행해집니다.

사람이 타락할수록 이 세상은 불행한 세상이 됩니다. 타락한 인간이 많아지면 세상은 지옥이 됩니다. 지옥에 가기 전에 지옥을 맛보면서 살게 됩니다. 인간이 타락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써 온 세 번째 불행은 영안이 어두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점점 모르게 되었습니다.

옛날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찾아오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타락할수록 인간은 하나님을 모르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어두워졌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게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깜깜하기 때문에 분별할 수 없습니다.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맹인이 되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공부해보면,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줍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만 봐도 나라가 세워지고 망한 기록을 통해 그 속에서 우리가 찾을 수 있는 교훈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했을 때 나라가 흥하고 잘 되었는지, 어떻게 했을 때 나라가 망하는지, 인류역사가 우리에게 분명한 답을 줍니다.

그런데 역사를 통해 많은 교훈을 받았음에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깨닫지 못하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므로 망하게 됩니다. 그렇게 살면 망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잠언 26장 11절에 보면,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미련한 인간은 미련한 짓을 거듭합니다. 한번 미련한 짓을 해서 혼났으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그 짓을 반복하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미련한 짓으로 하나님 앞에 매를 맞았으면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사람이 미련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서 ‘이렇게 하면 안 되겠구나!’라고 깨닫는 것이 큰 축복입니다. 깨닫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설교를 듣는 중에 많은 깨달음이 있을 것입니다. 깨달음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성령의 은혜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을 밝혀주셔서 분별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깨닫는 자는 살 길이 열립니다. 은혜 받은 사람들은 영안이 밝아져서 잘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깨달음을 통해서 지혜를 얻게 됩니다. 그래서 성공합니다. 축복을 받습니다.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본문 누가복음 16장 1~8절에 보면,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이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를 가지고 잘못된 곳에 사용해서 낭비한다는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청지기를 불러서 소문의 사실 여부를 묻습니다.

누가복음 16장 2~3절에 보면,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이 청지기가 깨닫게 된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셈을 하기 전에는 청지기 직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직분에 있는 동안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부르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5~7절에 보면,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인심을 써서 탕감해주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청지기가 그 직을 잃어버리고 나서 사람들에게 찾아갔을 때 자신을 천대하거나 박대하지 않고, 영접해주고 도와줄 것이라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렇게 한 것을 주인이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인은 책망하기보다는 일을 지혜롭게 처리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이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이 말씀 그대로 청지기에게는 놀라운 지혜가 있었습니다.

 

왜 지혜롭다고 했는지 네 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자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주인이 소문을 듣고 불러서 야단칠 때 변명하지 않고, 자기 잘못을 다 인정했습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자백하면,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는 용서를 받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아무리 죄가 많이 있어도 용서해주시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자백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지 모릅니다.

 

이 청지기는 자기 잘못을 그대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잘못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자신이 잘못했으면서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잘나거나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구제불능인 사람입니다. 못된 짓을 그렇게 많이 했으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교만한 사람이 그렇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고 충고하면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화내고 덤비고 공격합니다. 교만한 사람에게 함부로 이야기했다가는 본전도 찾지 못합니다.

 

잠언 9장 7~9절에 보면, “거만한 자를 징계하는 자는 도리어 능욕을 받고 악인을 책망하는 자는 도리어 흠이 잡히느니라 거만한 자를 책망하지 말라 그가 너를 미워할까 두려우니라 지혜 있는 자를 책망하라 그가 너를 사랑하리라 지혜 있는 자에게 교훈을 더하라 그가 더욱 지혜로워질 것이요 의로운 사람을 가르치라 그의 학식이 더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거만하고 교만한 사람에게 충고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충고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미워하고 덤비고 못된 짓을 합니다. 그러니까 지혜로운 사람에게 책망하고 충고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더 지혜로워지고 더 잘 됩니다. 그래서 충고를 받지 않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겸손히 충고를 잘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요한일서 1장 8~10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언제나 정직하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겸손히 자백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사람이 아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은 살 길이 열립니다.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피할 길이 열립니다.

 

둘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알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가지고 온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고 있는 것도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이고, 우리가 사는 집도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이고, 주머니에 있는 돈도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셔서 받은 것이지, 원래 내 것이 아닙니다.

 

역대상 29장 14절에 보면,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해서 많은 금은보화를 바치면서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역대상 29장 16절에 보면, 다윗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미리 저축한 이 모든 물건이 다 주의 손에서 왔사오니 다 주의 것이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저의 모든 것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제 자녀도 주님의 것이고, 제 집도 주님의 것이고, 제 회사도 주님의 것이고, 제 몸도 목숨도 주님의 것입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윗처럼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임을 아는 사람들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돈 많다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큰 집 가지고 산다고 교만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자기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그저 청지기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물질을 사용합니다. 물질도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기뻐하시는 일에 물질을 사용합니다. 그래서 더 큰 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셨는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에게 더 맡기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물질을 사용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에게 맡겨주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려고만 하면, 우리가 생각하기만 해도 주시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 체험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자기 집의 대문 앞에 나사로라는 헌데 투성이인 거지가 있었습니다. 부자는 거지 한 명도 돌볼 줄 모르고, 자기만 먹고 마시며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부자가 죽어서 지옥에 갔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입니까.

여러분, 제일 좋지 않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육신을 즐겁게 하는 데 사용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쾌락을 위해서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 제일 좋지 않습니다.

 

전도서 2장 1~3절에 보면, “나는 내 마음에 이르기를 자,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 하였으나 보라 이것도 헛되도다 내가 웃음에 관하여 말하여 이르기를 그것은 미친 것이라 하였고 희락에 대하여 이르기를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하였노라 내가 내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여야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술로 육신을 즐겁게 하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성도들은 육신을 즐겁게 하기보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심령에 천국이 이루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한 솔로몬은 아주 생각을 잘못한 것입니다. 수많은 술을 만들어서 어떻게 하면 육신을 즐겁게 할까 하고 잘못된 생각을 했습니다.

 

전도서 2장 7~8절에 보면, “남녀 노비들을 사기도 하였고 나를 위하여 집에서 종들을 낳기도 하였으며 나보다 먼저 예루살렘에 있던 모든 자들보다도 내가 소와 양 떼의 소유를 더 많이 가졌으며 은 금과 왕들이 소유한 보배와 여러 지방의 보배를 나를 위하여 쌓고 또 노래하는 남녀들과 인생들이 기뻐하는 처첩들을 많이 두었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의 명예와 권세를 이용해서 재산을 모으려고 하고, 처와 첩을 천명이나 두고 살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일입니다.

 

여러분, 꼭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물질을 썩어질 육신의 쾌락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지를 생각해야지, 썩어질 육신을 즐겁게 하려고 생각하면, 모두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이 많은 교인 중에 십일조를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일조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못합니다. 십일조 액수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신이 청지기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까워서 십일조를 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천국 백성이 아닙니다. 거듭난 사람들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압니다.

십일조도 제대로 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바르게 살지 않습니다. 자기를 위해서는 아낌없이 쓰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인색합니다. 그래서 헌금도 형식적으로 합니다. 정성 없이, 의미 없이 합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셋째, 모든 것을 잃을 때가 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죽는 순간에 모든 것을 다 놓고 갑니다. 하나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죽는 순간에 다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죽지 않고 살아 있는 동안에 부도가 나서 다 잃어버릴 수도 있고, 사기를 당해서 다 잃어버릴 수도 있고, 하룻밤 사이에 불이 나서 다 불타버릴 수도 있습니다. 반드시 잃을 때가 옵니다. 우리는 알몸으로 왔기 때문에 알몸으로 돌아갑니다. 절대로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 보면, 한 부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밭에 소출이 많아서 쌓아 둘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곳간을 다 헐어버리고, 새로 크게 지어서 거기에 곡식을 쌓아두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로 지은 곳간에 여러 해 동안 쓸 물건을 쌓아 두었습니다. 이렇게 하자 부자는 평생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해도 되겠다고 안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부자에게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 영혼을 불러 가시면 아무리 부자라도 쌓아놓고 죽습니다. 그러니까 자기를 위해서만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인색한 사람이 다 이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해주셔서 매우 부유해졌는데, 그것을 하나도 누리지 못하고 죽는 사람입니다. 재물이 많아지는 복뿐 아니라 누리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부흥회를 인도하러 가셨는데, 그 교회에서 제일 부자이신 장로님이 초대하셔서 식사하러 갔더니 음식을 어마어마하게 차려놓았답니다. 목사님이 축복기도를 하시고, 식사를 하는데, 장로님은 다른 것은 드시지 않으시고, 작은 그릇에 담긴 미음만 조금 드시더랍니다. 알고 보니 병이 있어서 그 많은 음식을 하나도 드시지 못하시고, 미음밖에 드실 수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장로님은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돈이 많고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누리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전도서 5장 11절에 보면, “재산이 많아지면 먹는 자들도 많아지나니 그 소유주들은 눈으로 보는 것 외에 무엇이 유익하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재산이 많아지고 집에 커지면, 그것을 관리하기 위해 사람도 많이 필요하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그리고 자신은 더 누리는 것도 없습니다. 옷이 아무리 많아도 한 번에 입을 수 있는 옷은 한 벌 뿐입니다. 그러므로 보는 것 외에는 하나도 유익이 없습니다.

 

전도서 5장 13~16절에 보면, “내가 해 아래에서 큰 폐단 되는 일이 있는 것을 보았나니 곧 소유주가 재물을 자기에게 해가 되도록 소유하는 것이라 그 재물이 재난을 당할 때 없어지나니 비록 아들은 낳았으나 그 손에 아무것도 없느니라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이것도 큰 불행이라 어떻게 왔든지 그대로 가리니 바람을 잡는 수고가 그에게 무엇이 유익하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재산이 많은 것 때문에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재산이 많아서 교만해지고, 유혹을 많이 받다 보니 죄를 많이 짓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신앙과 인격에 해를 당합니다.

재산이 많은 만큼 은혜도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재산이 축복이 됩니다. 물질은 많은데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 물질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죄만 짓게 되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됩니다.

 

부자들이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24, 막 10:25, 눅 18:25).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살 수 있는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물질로 하나님께만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 날이 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의 재물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거두어 가시면 하룻밤에 다 없어질 수 있습니다.

욥을 보세요. 욥은 동양에서 제일 큰 부자였습니다. 자녀도 10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다 없어졌습니다.

언제나 모든 것은 잃어버릴 때가 온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살아야 우리가 지혜로운 자가 될 줄로 믿습니다.

 

다니엘 4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꿈을 통해서 경고를 받고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그 꿈을 꾼 날로부터 1년쯤 지난 후의 일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 4장 30~33절에 보면,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으로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이 말이 아직도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이르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왕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라 바로 그 때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젖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이 자랐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이 되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신병에 걸리게 하시니까 그 순간에 쫓겨나서 소처럼 풀이나 먹고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거두시니까 왕의 권세도 순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잃어버릴 때가 온다는 것을 알고 겸손하게 사는 사람이 지혜로운 줄로 믿습니다.

 

욥기 1장 21절에 보면, 욥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나서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놓고 갈 때가 옵니다. 다 잃어버릴 때가 옵니다. 그것을 항상 기억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넷째, 청지기는 자기 자신의 손에 있을 때 선한 일을 했기 때문에 주인이 지혜 있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청지기가 셈하기 위해 아직 장부를 가지고 있을 때,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선한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혜롭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아직 가진 것이 있을 때, 재물이 남아 있을 때, 권한이 있을 때가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 청지기는 직분을 빼앗기면 어떻게 살지 근심에 사로잡혔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한 가지 지혜를 깨닫고 빚진 사람들을 다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혜롭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언제 거둬 가실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아직 기회가 있을 때 허송세월 하지 말고 이 기회를 선용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지혜 있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전도서 3장 12절에 보면,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지혜롭게 사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고 전도서는 말합니다.

기쁨이 넘치는 가운데 선한 일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니까 좋고, 하나님이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이니 좋습니다. 천국에서 상 받을 것을 생각하니 좋습니다.

 

여기서 선을 행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선을 행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광을 돌리는 방법은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오늘날 이 세상은 살아가기가 어려워지고, 점점 더 험악해집니다. 하지만 세상을 바라보며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져주신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말씀대로만 사십시오. 우리가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 모든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언제나 인간은 욕심이 앞서 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원하는 대로 행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어느 젊은 목사님이 자신의 꿈에 대해 제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분은 똑똑하고 공부도 많이 하시고, 인물도 좋으신 분인데, 지금은 부산에 있지만, 나중에는 서울에 가서 목회에 성공해서 자기가 있는 교회를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를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마음에 씁쓸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소록도로 가라”라고 말씀하시면, 소록도로 가야 하고, “제주도로 가라”라고 말씀하시면, 제주도로 가야 하고, “아프리카로 가라”라고 말씀하시면, 아프리카로 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꿈은 자기 욕심이고 야망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서울 사람이지만, 부산에 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여러분에게 혹시 인간적인 욕심에서 나온 꿈이 있다면, 그런 것들을 다 던져버리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제 소원은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아버지, 말씀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라고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알아서 다 해주십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는 방법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려고 애쓰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했을 때, 손해 본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면, 평생 축복받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가장 선한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을 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은 사도 요한의 간증입니다. 사도 요한은 무엇을 구하든 다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다 이루어 주신다고 말합니다.

그 비결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였더니 무엇을 구하든 하나님께서 다 주셨다고 말합니다.

사도 요한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애쓰면서 살아보십시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를 드릴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봉사를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헌금 생활을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주일을 보낼까 하는 마음만 가지고 살면,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켜 보십시오. 하나님이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우리 중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자세를 가지고 살면, 구하지 않아도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이미 아시는 하나님께서 다 주실 줄 믿습니다.

 

넷째, 다른 사람을 돕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회를 주어지는 대로 모든 사람에게 착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특별히 믿음의 가정들이 어려움을 당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기회를 주셨구나’라고 생각하고 그 가정에 필요한 것을 도와야 합니다.

 

다섯째,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한 일 중에 가장 선한 일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서 살아갈 때 여러 배의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눅 18:30).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주님을 위해서 살려고 하고, 어떻게든 복음을 전하고 한 영혼이라도 구원 받게 하기 위해서 노력하며 산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기쁘시게 하는 선한 일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리석고 불행한 사람은 많이 물질을 쌓아놓고 죽는 사람입니다. 이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기회를 놓치지 말고, 선한 일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세요.

그리고 또 하나는 유서를 써놓고 사세요.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면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을 줄 믿습니다.

 

많은 축복을 받은 사람보다 더 큰 축복은 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복은 많이 받았는데 은혜를 받지 못하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복 받는 것보다 더 귀한 것은 큰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더 귀한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됩니다.

은혜만 받으면 뭐합니까? 하나님을 위해서 쓰임 받지 못하면 은혜 받은 대로 살다가 그냥 죽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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