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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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4:45 조회3,491회 댓글0건본문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2014년 12월 28일(주일예배)
본문 / 누가복음 13:6~9
무화과나무에 대한 이야기는 본문 외에 마태복음 21장과 마가복음 11장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1장과 마가복음 11장에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예수님으로부터 저주 받고 말라죽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본문 말씀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해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 6절에 보면,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었다고 했습니다. 포도원에는 포도나무를 심어야지, 왜 무화과나무를 심었겠습니까? 여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포도원에 포도나무를 심지 않고,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은 특별히 좋은 무화과나무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많이 기대했을 텐데, 3년 동안 열매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얼마나 속상했을까요.
본문 7절에 보면, 주인이 포도원지기에게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라고 말했습니다. 당연한 결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는 이 무화과나무를 매우 사랑하여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라고 말했습니다(눅 13:8~9).
포도원지기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런데 포도원지기는 이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은 것이 마치 자기가 잘못하여 그렇게 된 것처럼 생각하고 주인에게 용서를 구하며 한 번 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하며, 두루 파고 거름을 줄 테니, 그렇게 했는데도 열매가 맺히지 않는다면, 그때는 찍어버리라고 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포도원지기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을 뿐 아니라,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저주를 속량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그 순간, 인간이 죄를 범함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복을 아브라함의 육신의 자손만 받게 하신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그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들에게까지 미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과 같은 이방인들도 예수님을 믿고 성령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누구든지 성령을 받으면, 거듭난 성도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갈라디아서 3장 26~29절에 보면,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께 속한 자, 예수님의 것이 되었다면,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구별 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그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예수님께 속한 자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엄청난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의 유업이 어마어마한데, 아브라함의 자손도 그 유업을 이어받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게 됩니다.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았던 세리 마태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있는 자도 남편이 아닌, 부정한 삶을 살았던 여자에게 예수님께서 찾아오셔서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 여자가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요 4:29).
그래서 사람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그 곳에 이틀이나 머무시며 천국 복음을 말씀해주시므로 그들이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에베소서 1장 4~5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신 백성은 다 예수님을 믿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입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많은 인간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특별히 저와 여러분을 택하실 때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많은 것 중에 하나를 택할 때에 그냥 택합니까? 이유가 있어서 택할 것입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거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택할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를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택할 때에는 택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택하실 때에도 목적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열매’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땅히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런 열매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찍어버리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3장 2~5절에 보면,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특히 3절과 5절 말씀이 매우 중요합니다. 3절과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회개는 중요한 것입니다.
회개는 빨리 할수록 좋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시편 7편 11~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있을 때, 하나님은 불화살을 당기어 겨누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활시위를 놓으시면, 우리는 한 순간에 죽습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2:16~21).
이 부자는 먹을 것이 많으니까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평안이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때가 위험한 때입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있고, 걱정거리가 있어서 하나님 앞에 겸손히 부르짖을 때, 우리가 연약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안전합니다.
받은 축복이 많아서 걱정거리 없이 먹고 마시고 즐기며, 여행 다니며 여생을 살자고 생각하는 사람은 죄만 짓게 됩니다. 그 사람은 빨리 죽는 것이 오히려 복됩니다. 늦게 죽을수록 죄만 짓게 되기 때문입니다.
회개하지 않고 사는 하루하루는 아슬아슬한 위기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아도 아무 일 없으니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셔서 어떤 죄인이라도,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회개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시고 받아주십니다. 그러므로 과거 때문에 고민하지 마세요.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아무리 죄가 많아도 고민하지 마시고, 빨리 회개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은 용서해주십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아니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참아주시는 데에도 기한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이 많은 분이시지만.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참아주시는 데에는 기한이 있습니다. 무기한 기다리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종말의 때가 있습니다.
가나안 백성들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우리는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입니다.
요즘 우리나라의 정치인들 중에도 동성애를 공식적으로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동성애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인간들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공식적으로 찬성한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가나안 백성들은 동성애만 한 것이 아니라, 짐승들과도 그런 짓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참지 못하십니다. 반드시 망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가나안 백성들은 멸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4백 년 후에야 그들을 멸하시고, 그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5장 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나안 족속 중 아모리 족속은 특별했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 않으십니다. 실수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4백 년이 지나면 아모리 족속도 똑같아질 것을 아시고, 4백 년 후에는 아모리 족속도 멸망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때에야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악의 분량이 찼을 때, 하나님이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었을 때, 가나안을 멸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말씀대로 4백 년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고, 가나안 사람들은 죽거나 그 땅에서 쫓겨나고, 그 땅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잘 섬기며 좋은 열매를 맺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가나안 사람들과 똑같은 짓을 하여 결국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 5장 10절에 보면,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마귀의 편에 서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셨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우리에게 확증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탕자가 못된 짓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탕자가 돌아올 때에 아버지의 행동을 보세요. 아버지가 얼마나 좋아했습니까. 아버지는 탕자가 못된 짓 한 것을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탕자가 돌아올 때, 아버지는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라고 말하며, 제일 좋은 옷을 그에게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면 하나님은 이처럼 기뻐하십니다.
과거에 여러분이 부끄러운 짓을 많이 범했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은 용서해주십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도말해주시고, 기억하지도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 18장 21~22절에 보면,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과거에 아무리 많은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에스겔 18장 23절에 보면,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큽니다.
아무리 악한 인간이라도 그가 그대로 죽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들이 회개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중요합니다.
회개가 있는가 없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철저히 회개하는가, 작은 죄와 허물까지 회개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좋은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시시한 사람은 시시하게 회개합니다. 예수님을 적당히 믿는 사람은 적당히 회개하고 삽니다. 회개하는 태도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사람은 많지만, 철저히 회개하지 않고 여전히 죄 가운데 사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사는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철저한 회개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베드로는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철저히 회개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해주실 뿐 아니라, 우리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선물을 받을 때까지. 성령이 임하실 때까지 금식하며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회개하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쓴 120명의 성도들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요? 그들은 철저히 회개하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회개하다가 성령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첫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마태복음 3장 7~10절에 보면,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 좋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둘째,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사는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의 선물을 받은 이후에는 달라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성령이 임하시면, 마귀와 싸워 이기는 권능, 어떤 두려움도 이기는 권능, 어떤 환난과 시험이 와도 이기는 권능, 죄와 싸워 이기는 권능,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권능,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는 권능,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 수 있는 권능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됩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죄인 되었을 때, 너희들이 원수 되었을 때, 내가 너희를 살리기 위해서 너희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지 않았느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들도 서로 사랑해라.”는 것이 주님의 계명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우리 힘으로 어떻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성령을 받으면 지킬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의 사랑을 받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날마다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께서 오셔서 거처를 함께해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신다면, 우리가 구하는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우리가 구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생각하기만 해도 주십니다.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1~2년 기도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주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복을 달라고 하고, 자기 문제만 해결해달라고 기도해보세요. 그런 기도는 응답받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간구하는 것은 물론, 생각하기만 해도 응답받습니다. 말만 해도 이루어집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책망할 것이 있다는 것은 거리끼는 것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 주님의 계명대로 지킨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으며 사는 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서로서로 사랑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우리가 생각하기만 해도 우리에게 주시는 복을 받으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목적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습니다. 회개하는 것 같지만, 철저히 회개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습니다. 이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4~45).
그리고 주님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14~15).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주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34).
주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습니까? 우리가 원수 노릇을 했음에도, 우리가 많은 죄를 범했음에도 주님은 우리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하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고, 주님의 계명입니다. 이 계명을 지켜야 합니다. 성도들 사이에서도 이것을 지켜야 합니다. 다 용서해야 합니다. 그들을 축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 형제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고, 박해자를 축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흥망성쇠는 한국 교회에 달려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회개하느냐 회개하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사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사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를 비난하는 소리가 많이 들립니다. 저와 여러분은 그들처럼 한국 교회를 비난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포도원지기는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포도원지기는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용서를 빌면서 자신이 두루 파고 거름을 줄 테니 1년만 참아달라고 했습니다.
책임감을 느껴야 정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잘못했음에도 마치 자신이 잘못한 것처럼, 그 사람을 위한 자신의 기도가 부족한 것처럼 생각하고, 자신이 그 사람을 도와주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랑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국 교회가 이토록 비난 받는 교회가 된 것이 마치 자신 때문에, 자신이 목사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자신이 신자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며 기도하는 성도들을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지난 수십 년을 돌이켜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많은 위기를 경험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가 망하지 않고, 쓰러지지 않고, 공산화되지 않은 것은 여러분처럼 나라와 민족과 한국 교회를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역자들이 이 땅에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이 있는 한, 한국과 한국 교회는 소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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