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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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3:18 조회3,267회 댓글0건본문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2015년 12월 13일
본문 / 마태복음 24:1~2, 마가복음 11:15~18
예루살렘 성전은 왕궁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가장 아름답고 뛰어난 건물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시온산 정상에 있었습니다. 시온산 정상에는 약 3백 평방미터의 평지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지의 한쪽에 예루살렘 성전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흰 대리석으로 지어졌고, 지붕에는 금으로 입혀놓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의 모습이 햇빛에 반사되면, 매우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떠나 걸어가실 때, 제자들이 와서 성전 건물을 가리켜 보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0년 후에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아마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진다고 하셨으니, 그들은 생각하기에도 끔찍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법궤나 성전에 대해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궤 자체가 특별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전쟁하러 갈 때에 법궤를 가지고 나아갔습니다.
그들은 전쟁하러 갈 때에 법궤를 가지고 나아가면, 승리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법궤도 빼앗기고,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의 법궤 자체에 힘이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법궤를 가지고 전쟁터에 나아갔지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지 않으시니까 그들은 전쟁에서 패했고, 법궤도 빼앗겼습니다.
전쟁터에 법궤를 들고 나아가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는 백성, 하나님께서 떠난 백성은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법궤가 무슨 힘이 있어서 전쟁에서 이기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법궤에 손대거나 들여다본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법궤가 사람을 죽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나 성전은 모두 건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우리가 살기 위해 준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전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특별히 건축한, 하나님의 집입니다. 겉을 보면, 하나의 건물이지만, 건물을 지은 목적이 다르고, 용도가 다릅니다.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성전이 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성전이 우리에게 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전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 찬양하고, 열심히 기도생활하고, 하나님을 잘 섬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성전이 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은혜를 받으며 기뻐하고 행복해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솔로몬 왕은 그의 아버지 다윗이 준비해놓은 것으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금은보화가 얼마나 많은지, 성전 벽과 기둥을 정금으로 입혔습니다. 성전을 인류 역사상 최고의 건물로 지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 성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유명해지니 전 세계에서 왕들과 귀족들, 사절단이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잔치하며 술을 마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딸들을 데리고 와서 솔로몬에게 바쳤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1천 명의 여자를 데리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니 솔로몬이 성전에 가서 기도할 시간, 하나님을 섬길 시간이 있었을까요.
밤낮 먹고 마시며 향락을 누리다가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나중에는 우상을 만들어놓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아주 훌륭한 성전이었지만,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고, 사신 우상을 섬기며 죄 가운데 사니 여러 나라에서 쳐들어왔습니다. 결국 바벨론 군대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 성전을 완전히 불태워버렸습니다.
만일 성전 자체에 능력이 있다면, 성전을 건드렸을 때에 성전을 건드린 사람이 망해야 할 텐데, 성전을 불태워도 망하지 않았습니다. 성전이 없어져버렸습니다. 기원전 586년에 있었던 일입니다.
나라가 망한 후, 70년 동안 포로생활을 했습니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대로, 70년이 지나 516년에 바사 왕 고레스의 명령으로 예루살렘의 두 번째 성전 스룹바벨 성전을 건축해서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스룹바벨 성전도 불타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이 타락하여 죄 가운데 사니까 성전이 남아있지 못했습니다. 원수들의 침략을 받아 다 불타버렸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솔로몬 성전도 아니고, 스룹바벨 성전도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헤롯 왕이 지은 것입니다. 헤롯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성전을 지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이 왕이 되어 물질적으로 걱정할 것이 없으니,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지은 성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마가복음 11장 15~17절에 보면,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성전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예배가 있고, 말씀을 통해 은혜 받는 곳이 아니라, 장사꾼들이 바글바글해서 돈 버는 데에만 정신없는 시장터처럼 되어버렸습니다.
말라기에 보면, 제사장들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말라기 1장 7~8절에 보면,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제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여호와의 식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하기 때문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제물을 바치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을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더러운 떡, 곰팡이가 피어서 사람도 먹지 못하는 떡을 형식적으로 제단에 드렸습니다. 아무 정성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눈 먼 희생제물, 병든 것을 바쳤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으며 너를 받아 주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떡, 눈 먼 희생제물, 병든 것을 총독에게 바친다면, 총독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말라기 1장 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제단 위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가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성전에서 하는 행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누가 와서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 1장 13~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거로운고 하며 코웃음치고 훔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봉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이는 여호와의 말이니라 짐승 떼 가운데에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속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이방 민족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백성들은 제사 드리기 위해 정성을 다해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은 건강하고 좋은 것은 빼버리고, 눈먼 것, 다리 저는 것, 병든 것, 쓸모없는 것과 바꾸어서 제사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명심하세요. 예수님을 믿으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우리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합니다.
예배 드릴 때에도, 찬송할 때에도, 기도할 때에도, 헌금할 때에도, 봉사할 때에도 자원해서 기쁨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서 해야 합니다.
남의 눈치를 보며 형식적으로 적당히 흉내 내는 것은 헛수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뭐가 아쉬우셔서 그런 것을 받으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 성전에 올 때에 제물로 드릴 짐승들을 먼 곳에서부터 끌고 왔겠습니까? 사람들은 짐승을 사서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러니 서기관들은 장사꾼들과 담합하여 제물을 사람들에게 아주 비싸게 팔았습니다. 장사꾼들은 제물을 판 돈의 얼마를 서기관들에게 주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형식적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들은 돈에 눈이 어두워 나쁜 짓을 했습니다.
말라기 2장 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가 너희의 자손을 꾸짖을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 아프시고 분노하셔서 “너희들의 얼굴에 짐승의 똥을 바를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망신당하게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 얼굴에 똥이 묻어있다면, 빨리 씻으려고 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너희도 제하여 버림을 당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들은 가인의 제사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잠언 15장 8절에 보면, “악인의 제사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가 기뻐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인이 제사 드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시고 미워하십니다.
잠언 21장 27절에 보면, “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벨의 제사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보시기 전에 먼저 사람을 보셨습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창 4:4~5).
겉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예배를 드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먼저 보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인가를 먼저 보십니다.
가인은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아우, 자기보다 의로운 아우 아벨을 죽였습니다. 악한 인간이 악한 뜻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을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2장 13~16절에 보면,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5~17절에 보면,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을 보고도 통회자복하거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마가복음 11장 18절에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회개하려는 마음을 가지기는커녕 예수님을 죽이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들은 악독한 마음을 가졌습니다.
요나서에 보면, 니느웨 백성들은 이방 민족이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 민족이었고, 망할 수밖에 없는 민족이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니느웨에 가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라고 외쳤을 때, 임금으로부터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니느웨 사람들이 모두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굵은 베 옷을 입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심판을 취소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제사장들은 이방인들보다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회개하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당시의 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매우 악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성전보다 더 귀한 성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와 여러분의 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이후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항상 우리 안에 계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 속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한 사람의 몸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17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너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다. 너희들의 몸 안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신다. 그러므로 몸으로 함부로 죄 짓지 말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므로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께서 멸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도 거룩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6장 18~20절에 보면,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시고, 마귀에게 빼앗겼던 우리를 다시 찾으셨습니다. 우리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살면 안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어느 장로님의 간증입니다. 장로님은 영어를 아주 잘하셔서 외국인 회사에서 일하셨습니다. 그런데 출장갈 일이 많았습니다.
장로님은 평소에 기도를 많이 하시고, 은혜를 많이 받으신 분이셨는데,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호텔에서 자기 전에 포르노영화를 한 편씩 보고 잠들었습니다. 포르노영화를 본다고 해서 실제로 음행을 행한 것은 아니니 죄의식이 전혀 없었습니다. 습관적으로 포르노영화를 본 것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는 얼마나 음란한 생각이 가득하겠습니까. 장로님 안에 계신 성령께서 얼마나 괴로우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참다못해 손대기 시작하셨습니다. 가족들이 멀쩡하다가도, 장로님께서 포르노영화를 보기만 하면,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장로님께 연락이 왔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하신 장로님께서 하루는 출장 가서 집으로 전화했습니다. 아픈 사람이 있는지, 아이들은 잘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확인한 후에 또 다시 포르노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집에 또 난리가 났습니다.
장로님께서는 ‘내가 음란한 것을 봐서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 것은 아닌가. 한 번 시험해보자. 앞으로 세 번 포르노영화를 볼 테니 하나님께서 징계하시는지 알아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포르노영화를 보기 전에 집에 전화해서 가족에게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포르노영화를 봤습니다.
그런데 장로님이 포르노영화를 보면, 영락없이 집에 난리가 났습니다. 세 번 모두 정확하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죽는다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때서야 장로님은 무릎을 꿇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께서 “네가 더러운 것을 보고 있을 때에 나는 통곡하고 있노라”라고 말씀하시며 장로님을 책망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믿음으로 살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드리게 됩니다. 주님을 위해 살게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우리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거룩해야 하는 몸으로, 거룩해야 하는 성전을 거룩하게 지키지 못하고, 더러운 말을 하고, 더러운 생각을 하고, 더러운 것을 보면 되겠습니까.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얼마나 괴로워하시겠습니까.
로마서 12장 1~2절에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우리의 몸을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을 따라가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방식대로 살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백성들이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하면 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인간들을 보고 그들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들어와 계시는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첫째, 건강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건강해야 교회에 열심히 나올 수 있습니다. 봉사도 많이 할 수 있습니다. 남을 도울 수 있습니다. 일도 잘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의 마음에 기쁨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믿음이 충만해서 천국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주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즐거움과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나올 때마다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마다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헌금을 드릴 때에도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봉사할 때에도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항상 기쁨이 있을 때, 그 사람은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셋째,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열매 중에 최고의 열매는 우리 때문에 예수님을 믿게 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우리 때문에 구원 받는 자가 많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사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보고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근심이 많은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도 밤낮 기뻐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됩니다.
어느 새신자의 이야기입니다. 친구들이 전도해도 가기 싫어서 계속 교회에 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한 번 교회에 왔습니다.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밝은 빛이 비쳤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완전히 거꾸러져서 은혜 받고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전 된 우리의 몸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너무 너무 중요한 말씀입니다. 평생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성전을 거룩하게 할 뿐 아니라, 성령께서 거하시는 우리의 몸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산 제물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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