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하지 말라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7-31 08:42 조회3,563회 댓글0건본문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2006년 06월 09일(금요철야)
본문 / 마가복음 6:45~52
마가복음 6장 30~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오병이어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떡과 물고기를 먹은 사람이 남자의 수만 5천 명이라고 했으니 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하면 2만 명이 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셨을 뿐 아니라, 모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시고, 듣지 못하는 사람의 귀를 열어주셔서 듣게 하시고, 걷지 못하는 사람을 걷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본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전지전능하신 분이 임금이 되시면 걱정할 것이 없고 두려워할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에서 왕 노릇을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가지고 계셨지만,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해결하지 못하실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든지 예수님께서는 다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율법을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저주 받을 짓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받아야 하는 모든 저주를 속량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모든 저주를 속량 받습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알지 못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자기 나라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피하여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올라가셔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배를 타고 갈릴리 건너편 벳새다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밤 사경쯤에, 즉 새벽 3~6시에 바다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거세게 불어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오히려 뒤로 밀렸습니다.
제자들은 하루 종일 예수님을 따라다니느라 피곤한 데다가 밤새 노를 저어야 했으니 얼마나 피곤했겠습니까. 그런데 바다에 바람이 거세게 불어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오히려 뒤로 밀려났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젓고 있는 것도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다가 내려오셔서 바다 위를 걸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돕기 위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형편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풍랑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괴로움을 당하는가, 얼마나 답답해하는가, 얼마나 슬퍼하는가, 얼마나 낙심하는가를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아시고 해결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해결하시지 못하는 문제는 없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할렐루야”라고 외치며 예수님을 맞이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실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예수님을 유령이라고 생각하여 소리질렀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막 6:5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그치고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의 문제였습니다. 본문 마가복음 6장 52절에 보면,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를 남기셨습니다. 예수님 외에 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본 사람은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배불리 떡 먹은 것만 기억할 뿐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신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깨닫는 것은 은혜입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말씀을 들었는데, 깨닫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예수님께서 표적 행하시는 것을 다 보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끝까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목을 매어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도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답답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편 49편 20절에 보면, “존귀하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멸망하는 짐승 같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깨닫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잘 깨닫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깨닫지 못해서 고생을 많이 합니다. 복이 자기 앞에 와있어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면 그 복을 받지 못합니다. 복을 받았음에도 자신이 복을 받은 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얼마나 답답합니까.
잘 깨닫는 것은 매우 유익합니다. 저는 깨달음을 통해 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교회를 개척하려고 할 때의 일입니다. 예배당을 지으려면, 땅을 매입해야 합니다.
그때 저는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제게 주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돌이켜보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제게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위해 가장 좋은 곳에 교회를 짓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교회 지을 땅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당시 비어있던 수영로터리가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교회를 지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손해를 많이 봅니다. 한심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만드신 것을 보세요.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사람의 머리로는 해결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위해 먼저 우주와 만물을 만드시고, 그 후에 사람을 만드셔서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크십니다. 풍성하십니다. 그러므로 가장 좋은 것을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응답 받은 후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구체적으로 만나주시고, 구체적으로 이루어주십니다. 그래야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무소불능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 없는 기도를 하지 마세요. 믿음의 기도를 하세요.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마다 깨닫고, 기도할 때마다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을 깨닫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던 바다에 풍랑이 일어난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도 날마다 풍랑이 일어납니다.
풍랑을 만났을 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풍랑이 일어났다 해도, 풍랑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풍랑이 일어났다고 해서 죽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죽고 사는 것, 흥하고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28~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붙잡고 계십니다.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아갈 자는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아무도 손댈 수 없습니다. 만물보다 크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붙잡고 계시는데, 누가 우리에게 손댈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어떤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3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형편을 잘 아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귀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시고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우리에게 손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변에 핍박자가 있어도,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성령께서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십니다. 그리스도인 안에는 그리스도의 영이 계십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에 보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우리의 형편을 얼마나 잘 아시겠습니까. 성령님은 우리를 위해 간구해주시고, 우리를 구체적으로 도와주십니다.
너무 피곤하여 기도하기 힘든 때가 있습니다. 그때 저는 성령님을 의지합니다. “제가 피곤한 것을 아시는 성령님께서 저를 위해 간구해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십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십니다. 여러분을 늘 도우십니다. 우리 대신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혜사 성령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풍랑이 일어나도,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왜 풍랑을 허락하실까요?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온전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풍랑을 허락하십니다.
야고보서 1장 2~4절에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해도 온전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풍랑이 계속 일어나는데도 온전히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괴로워도 잘 참으라고 했습니다. 인내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성도가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로 하여금 고난을 겪게 하시는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에게 고난을 겪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난을 통해 우리를 온전한 도구로 만드십니다.
대장장이는 쇳덩이를 용광로 속에 집어넣어 뜨거운 불에 달구어 불덩어리가 되게 한 후에 쇠망치로 두들겨서 도구를 만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로 하여금 풍랑을 겪게 하시고, 어려운 시험을 당하게 하시는 데에는 성도들을 하나님의 목적과 뜻을 이루는 도구로 쓰임 받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있습니다.
지금 어려움과 고난 가운데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작업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작품으로 만드시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여러 가지 고난을 겪게 하셨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교만해서인가 저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빨리 천국에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금식기도 하다가 죽으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금식하며 하나님께 “아버지, 저는 이 세상에서 살기 싫습니다. 저는 천국에 가고 싶습니다. 저를 불러가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저는 삶을 포기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제게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죽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30세에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물질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목사 안수를 받고, 결혼한 후에는 물질로 인해 어려움을 겪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연단하시는 데에는 계획과, 목적, 기한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연단하십니다.
만약 제가 대학생 시절에 물질을 걱정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위해 저를 묶어두셨습니다.
대학교 졸업식 후에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아버지, 이게 뭡니까?”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는 제게 “내가 너를 묶어두지 않았다면, 네가 목사가 될 것 같으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대학 시절에 아무렇게나 살았다면, 훌륭한 목회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제가 딴짓하지 못하도록 저를 묶어두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드시기 위해 저를 용광로 속에 넣으셔서 주무르셨습니다. 물론 아픕니다. 그러나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들어집니다.
고난이 있습니까. 풍랑을 겪고 계십니까.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지십니다. 여러분을 하나님의 작품으로 만드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장차 하나님을 만났을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하시려고 우리에게 풍랑을 허락하십니다.
베드로전서 1장 6~7절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험과 풍랑이 있을 때, 우리가 참고 기도함으로 믿음을 지키면,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하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살다가 예수님을 만나면 얼마나 기쁘고 얼마나 영광스럽겠습니까. 칭찬을 많이 듣고 존귀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장차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믿음의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시련을 통해 우리를 훌륭한 믿음의 사람으로, 금보다 귀한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어주십니다.
야고보서 1장 12절에 보면,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난이 많다 해도 인내하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 중에도 끝까지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
풍랑이 오면,
첫째, 풍랑을 보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둘째,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보면,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모든 사건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언제나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붙잡으세요.
지금 여러분이 겪는 풍랑이 큰 축복이 될 것입니다. 그 풍랑으로 인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셋째, 풍랑의 때를 믿음 성장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풍랑을 통해 믿음이 자라야 합니다. 풍랑이 왔을 때에 겸손하게 열심히 기도하고, 하나님께 매달리면, 큰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할 것입니다.
넷째, 풍랑의 때를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갔지만, 사자 굴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자신이 사자 굴 속에 들어간 것을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로 삼았습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자신에게 돌을 던진 사람들을 축복하며 기도했습니다.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과 같았습니다. 스데반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천국에 갔습니다.
지금 풍랑을 겪고 있습니까. 고난이 있습니까. 시험 가운데 있습니까. 이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시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장차 칭찬과 영광 받을 것을 생각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풍랑이 왔을 때, 시험이 왔을 때, 고난 당할 때, 핍박 당할 때를 하나님께 영광 돌릴 기회로 삼고 장차 받을 영광을 생각하며 기뻐하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십니다.
사도행전 5장 41~42절에 보면,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 받았음에도 복음 전하는 것을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주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것은 축복입니다. 이로 인해 장차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받으면서도 오히려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풍랑이 왔을 때에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 원망 불평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은 자기를 애굽에 노예로 판 형들을 얼마든지 원망하고 불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아무도 손댈 수 없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을 믿었습니다.그래서 요셉은 형들을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 있을 때에 원망 불평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원망 불평하는 것은 믿음 없는 사람의 특징입니다.
믿음 없는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원망 불평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꿈도 비전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을 가장 싫어하십니다.
둘째, 의심해서는 안 됩니다. 자꾸 의심하면 믿음이 없어집니다.
셋째, 부정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믿음의 행동과는 반대됩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거나 부정적으로 말하면 손해가 많습니다. 마음의 기쁨이 사라집니다. 소망이 없어집니다. 절망에 빠집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확신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잘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언제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말하세요. 우리가 생각한 대로, 우리가 말한 대로 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과거에 많이 고생했고, 좋지 않은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좋지 않은 일은 빨리 잊으세요.
좋지 않은 기억이 머리에 남아있으면, 세상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그리고 미래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면 부정적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부정적으로 말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복 받을 기회가 있어도, 복을 받지 못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아주 가난했습니다. 제가 대학생이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를 부잣집에서, 믿음 좋은 가정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게 하셨습니다.
매일 새벽 저는 집주인 부부와 함께 20~30분 거리에 있는 교회까지 걸어서 새벽기도를 갔습니다. 아침 먹고 난 후에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갔습니다.
저는 가정교사로 일하면서 그 집에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그 집에서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배울 것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좋은 것을 보게 하시고 좋은 것을 체험하게 하셔서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 좋지 않은 것은 다 버리세요. 그리고 좋은 것만 기억하세요. 좋은 것만 머릿속에 남겨두세요.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나를 좋은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좋은 그림을 그리세요. 좋게 말하세요. 좋은 것을 생각하세요.
자존감을 가지세요. 우리는 존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함부로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함부로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좋은 계획을 세우세요. 좋은 것을 꿈꾸세요. 믿음으로 말하세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