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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7장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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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8 10:53 조회4,2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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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2008년 03월 16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7:45~50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입니다.

죽을 수 없는 하나님의 아들,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위해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랍고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5장 6~11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죗값은 사망입니다(롬 6:23).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범하게 되면 죽습니다. 로마서 3장 10~12절에 보면,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말씀이 사실이라면, 모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고,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죗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6장 38~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한 명도 잃어버리지 않고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보면,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피 흘림을 통해서만 사함 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범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죄 사함을 받으려면, 양을 잡아서 그 피를 제단에 뿌림으로 속죄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범죄한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는데, 양이 대신 죽음으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기 전, 장자가 멸망당하는 큰 재앙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장자를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했더니, 집집마다 장자가 멸할 때에 피가 묻어있는 집은 하나님께서 들어가지 않고 지나갔습니다. 그 피 때문에 멸망당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절기를 기념한 날이 유월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도 유월절이었습니다. 그 날도 유대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유월절에 양들이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보면, 세례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어린 양처럼, 고통 가운데 부르짖으며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종합해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각은 3시(우리나라 시각으로는 오전 9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3시부터 9시(우리나라 시각으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여섯 시간동안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려 계셨습니다.

이런 상태로 어떤 사람은 1주일 동안 죽지 않고 살아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렇게 고통당하다가 온 몸에서 피와 물이 빠져 나감으로 죽게 되는 것입니다.

 

두 손과 두 발이 십자가에 못 박혀 있을 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고통 때문에 사람이 죽는 것은 아닙니다.

목마름과 굶주림으로 인해 죽습니다. 1주일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고 계속 피를 흘리고, 온 몸에 수분이 빠져 나가므로 결국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형이야말로 사람을 말려서 죽게 만드는 가장 잔인한 사형제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여섯 시간 만에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몸이 쇠약하셨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끌려 다니시면서 재판을 받으시고 채찍질 당하셨습니다. 얼마나 시달리셨는지, 십자가형틀에 매달렸을 때는 여섯 시간 밖에는 버틸 힘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은 금요일입니다. 유대인들은 금요일 해 지는 저녁부터 토요일 해 지는 시간까지가 안식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시신을 십자가 위에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신을 치우기 위해서 창으로 찔러서 죽인다고 합니다. 그래도 죽지 않으면 다리를 꺾어 죽여 땅 속에 묻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운명하신 예수님은 창에 찔리기만 하시고, 다리는 꺾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더 고통스러웠던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는 고통이었습니다. 죽음은 분리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죽음’은 영혼으로부터 육신이 분리되는 것이고, ‘영혼의 죽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되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울 왕을 보십시오. 사울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았습니다. 그는 살았지만 죽은 자입니다. 육신은 살아있지만 영혼이 죽은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이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죽음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를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그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고통이 너무 커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저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으셨습니다. 빛이 되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순간,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흑암 가운데 들어가셨습니다.

 

본문 45절에 보면,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3시간 동안 해가 얼굴을 감춤으로 온 세상이 어두워졌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4~48절에 보면,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죄인 된 우리를 위하여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얼마든지 원수들을 멸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53~5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언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묵묵히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멜 깁슨의 영화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신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멜 깁슨은 가톨릭 신자이지만,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약물 중독으로 방황하던 자였습니다.

어느 날, 그는 성경을 읽다가 십자가의 고난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그의 나이 35세에 구원을 체험한 복음적인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만난 날부터 꿈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꿈은 100% 복음영화를 만들어 주님을 증거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브레이브 하트’로 아카데미 영화 감독상과 제작상을 받은 후,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예수님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작 스폰서를 구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벤허’처럼 간접적인 종교 영화도 아니고, 직접적인 예수 영화가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고 모두 반대했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의 마지막 12시간을 중심으로 한 수난의 이야기만으로는 영화가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영화 역사상 영어가 아닌 히브리어로 대화를 하며, 영어자막을 쓰는 그런 영화는 성공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할 수 없이 멜 깁슨은 자신의 사재를 털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습니다. 멜 깁슨은 “성령이 나에게 임하셨고, 주님께서는 나에게 복음 전파의 도구로 이 영화를 만들기로 명하셨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자기 재산 2,500만 불을 투자해서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헐리우드에서는 ‘이제 멜 깁슨은 망했다’고 소문이 났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가 개봉되던 첫날 얼마나 많은 관객들이 몰렸던지, 첫날 수입이 2,360만 불이나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작 첫날에 투자한 모든 제작비를 환수하게 되었습니다.

극장마다 부흥회가 시작되었고 강도와 살인범이 이 영화를 보고 회개하고 자수했습니다. 타락했던 자들이 돌아왔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주께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남미, 호주, 이슬람 국가까지 회심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작을 가장 반대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영화가 반유대인의 정서를 자극한다고 영화상영 반대 시위를 벌였습니다.

영화 시사회에서 유대 출신 기자가 영화감상 후에 멜 깁슨에게 “당신은 정말 유대인이 예수를 죽였다고 생각합니까? 당신의 견해를 직접 듣고 싶습니다.”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멜 깁슨은 “당신들 유대인이 예수를 죽인 것이 아니라, 내가 그 분을 죽였습니다. 나의 죄가 그 분을 돌아가시게 했고, 나의 죄 때문에 그 분이 이런 수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이 영화의 주제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이사야 53장 5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은 이 영화를 보시고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고난만 늘 생각했는데, 예수님께서 고난 당하시기 이전에 12시간을 끌려 다니면서 채찍질을 당하고 피투성이가 되기까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셨는가를 이 영화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고난 당하셨기에 저와 여러분이 구원 받았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고난 받으심으로 이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누가 예수님을 못 박았습니까?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얼마나 많이 범하고 있습니까? 이제는 더 이상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으로 구원받은 것처럼, 더 많은 영혼이 구원받아 주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 아직도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희생해야 합니다.

제가 공군 군목이 되었을 때, 전 장병이 예수 믿게 해달라고 강단에서 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제게 “내가 너를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그런 뒤에 너를 구원할 수 있었는데, 네가 전 장병을 구원하려면 얼마나 많은 희생을 해야 하는지 아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리에서 “주님, 제가 죽어도 좋으니 전 장병들이 예수 믿게 해 주십시오.”라고 각오하고, 군목으로 받은 월급으로 커피와 과자를 사서 한 밤중에 보초병들을 찾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나눠주며 기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은 부대에 소문이 났고, 1년 후에는 전 장병이 세례를 받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골로새서 1장 24절에 보면,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희생하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바로 사도 바울의 고백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고난을 기꺼이 받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대로 사도 바울은 일평생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헐벗고 굶주리고 매를 맞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구원받게 된 은혜를 감사하고,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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