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마대의 부자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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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6:31 조회3,610회 댓글0건본문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
2016년 06월 26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7:57~66
아이들이 평소에 공부하는 것을 보면서 ‘저 아이는 공부를 잘 할 것 같다. 저 아이는 공부를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이의 실력은 평소에는 알 수 없습니다. 시험을 치룬 후에 성적을 보면, 아이의 실력을 알 수 있습니다.
평소에 공부를 잘 해서 실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성적이 좋지 않을 때가 있고, 평소에는 공부를 못하는 것 같았던 아이가 기대 이상으로 성적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치러보기 전에는 아이의 실력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 교회에 열심히 나오고, 예수님을 잘 믿는 것처럼 보이지만, 믿음이 전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은 전혀 없는데, 단지 교회가 좋아서 교회에 열심히 나와서 봉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아주 소극적이어서 교회에 와서 가만히 있으니 사람들은 ‘저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믿음이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알찬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평소의 모습으로는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을 확실히 알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바로 환난의 때입니다.
평안할 때에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을 당했을 때에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이 사람은 믿음이 훌륭한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믿음이 없구나.’라고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욥처럼 큰 시험을 당했을 때에 그 사람의 믿음의 참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박해를 받을 때에 믿음의 참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박해를 받으면, 예수님을 열심히 믿다가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목숨을 걸고 묵묵히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박해를 받으면, 믿음의 참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는 확실히 분별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아닌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그대로 드러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명하게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40~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사람이 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니 예수님을 맞이하러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남아있습니다.
두 여인이 맷돌을 갈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없어졌습니다. 놀랄 일입니다. 하늘을 보니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데, 춤을 추며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공중에 임하시는 예수님을 맞이하게 되는데, 예수님을 맞이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구경하며 통곡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똑같이 교회에 다녔습니다. 교회에서 충성하고 봉사했습니다. 똑같이 직분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맞이하러 하늘로 올라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올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겉모습을 보면, 다 예수님을 믿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진심으로 믿어 구원 받은 사람,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하늘로 올라가지만, 믿음도 없고, 구원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한 사람은 하늘로 올라가지 못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이 세상은 슬피 울며 통곡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가슴을 치며 가장 크게 울 사람은 누구일까요? 평생 교회에서 생활한 사람, 평생 주의 일을 한다고 한 사람이 가장 크게 울 것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기만 하면 다 구원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기만 하면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서 직분자가 되어 여러 가지 일을 한 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똑바로 믿어야 합니다.
목사, 전도사가 되어 교역자 생활을 한 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구원 받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구원 받지 못합니다. 큰 교회에서 목회하는 유명한 목사라고 해서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분명히 생길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말씀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줄 알았던 사람이 가짜였다는 것을 알게 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사람이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것을 보며 사람들은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큰 은사를 받아서 방언을 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구원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8~10절에 보면,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방언을 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여러 가지 기적이 성령의 역사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 마귀도 똑같이 능력을 행하고, 표적을 행하고,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보여주는 등 별 일을 다 합니다.
여러 가지 놀라운 일이 일어나니 그 사람이 마치 선지자 중의 선지자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귀신을 내쫓고, 권능을 행한다고 해서 모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불법의 사람, 거짓 선지자, 이단, 마귀들도 그런 짓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는 할 수 있으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라도 미혹시키려고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보통 표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큰 표적과 기사를 나타냅니다. 그러니 얼마나 속기 쉽습니까. 아마 수십만 명이 몰려갈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적그리스도들이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미혹시키고 타락하게 해서 멸망시키려고 표적과 기사를 도구로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7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던 사도 바울에게 유혹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육신을 가지고 있으니 정욕이 일어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겉모습을 보면, 사도 바울은 사도 중의 사도였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고 능력이 나타나는 사도였지만, 그렇게 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버림을 받을까봐 두려워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문제를 해결한 후에는 기쁨이 항상 충만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보내는 편지마다 “기뻐하라(고후 13:11, 빌 2:18)”, “주 안에서 기뻐하라(빌 3:1)”, “항상 기뻐하라(빌 4:4, 살전 5:16) 고 했습니다.
바울 자신 안에 그런 기쁨이 있었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한 것이지, 자신이 기쁘지도 않는데 기뻐하라고 말할 수 있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어떻게 항상 기쁨을 가지고 살 수 있었을까요?
첫째, 예수님을 만난 체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당했지만, 주님께서 바울을 찾아오셔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바울과 함께하시고 바울에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바울은 두려움과 공포, 고통 속에 있었지만, 주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기쁘고 좋았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주님께서 말씀해주실 때, 얼마나 행복한지 아십니까. 여러분 모두 사도 바울이 체험한 것과 같은 체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맛을 봐야 알 수 있습니다.
셋째, 구원의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넷째, 장차 받을 영광이 얼마나 큰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성도들을 보면, 직분자나 교역자들 중에도 기쁨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이것은 아주 불행한 일입니다.
왜 기쁨을 잃어버리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거나 하나님의 자녀답지 않게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살면 우리에게서 기쁨이 사라집니다.
우리는 잠시라도 기쁨을 잃어버리면,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철저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는 원인이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항상 건강한 믿음으로 바르게 살 때에 나타나는 증거가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걱정거리가 태산 같고, 세상을 보면 금방 망할 것 같지만, 우리의 마음에는 기쁨이 있고 평강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에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은 30냥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넘겼습니다. 참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 곁을 떠나지 않고,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따라가서 십자가 밑에서 눈물 흘린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7장 55~56절에 보면, “예수를 섬기며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많은 여자가 거기 있어 멀리서 바라보고 있으니 그 중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또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제자들은 다 도망갔지만, 여인들은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여인들은 예수님과 같이 죽을 마음으로 십자가 곁을 지켰습니다.
본문에 보면,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이 등장합니다. 요셉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예수님을 자신을 위해 준비해놓은 무덤에 장사지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8~42절에 보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동산이 있고 동산 안에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있는지라 이 날은 유대인의 준비일이요 또 무덤이 가까운 고로 예수를 거기 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믿음이 부족해서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출교시킨다고 하니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인 것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본 순간, 제자들은 두려워서 도망갔습니다. 그런데 아리마대 요셉은 오히려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뿌리고, 세마포로 예수님의 시체를 쌌습니다.
부자였으니까 무덤을 얼마나 기막히게 만들어놨겠습니까.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의 무덤에 예수님을 지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7장 57절에 보면, 요셉을 가리켜 “아리마대의 부자”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 지방에서 유명한 부자였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낙타는 바늘귀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정말 어렵다는 의미입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큰 부자였지만, 믿음이 좋았습니다. 제자들이 도망갈 정도로 위험한 때에 아리마대 요셉은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해서 정성껏 장사지냈습니다. 순교를 각오한 믿음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저와 여러분도 요셉처럼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장차 오실 메시아, 그리스도에 대해 자세히 예언되어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구약의 예언이 정확하게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예수님께서 입고 계셨던 옷을 벗겼습니다. 예수님께서 입으셨던 옷을 군병들이 제비 뽑아 나누었습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것은 시편 22편 18절에 기록된 말씀이 성취된 것입니다. 시편 22편 18절에 보면,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4절에 보면,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구약에 예언된 대로 사건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에 옆구리를 찔리셔서 물과 피를 쏟으셨습니다. 이것도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9장 31~37절에 보면, “이 날은 준비일이라 유대인들은 그 안식일이 큰 날이므로 그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두지 아니하려 하여 빌라도에게 그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 하니 군인들이 가서 예수와 함께 못 박힌 첫째 사람과 또 그 다른 사람의 다리를 꺾고 예수께 이르러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이를 본 자가 증언하였으니 그 증언이 참이라 그가 자기의 말하는 것이 참인 줄 알고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니라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십자가를 지셨고, 토요일은 예전의 안식일이었습니다. 안식일에 시체를 십자가에 두면 안 되니까 유대인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치워 달라고 했습니다.
군인들이 가서 확인해보니 두 강도는 아직 살아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리를 꺾어 두 강도를 강제로 죽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습니다. 군인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서 피와 물을 다 쏟게 함으로 예수님을 확실히 죽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돌아가셨는데도 군인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을 확실히 증거했습니다.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은 것,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것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9장 36절에 보면, “이 일이 일어난 것은 그 뼈가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리라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함이라 또 다른 성경에 그들이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 34편 20절 “그의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 중에서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라고 기록되어있고, 스가랴 12장 10절에 보면,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시편을 기록한 다윗은 주전 1000년, 즉 예수님께서 오시기 1000년 전의 사람입니다. 스가랴 선지자는 주전 500년, 예수님께서 오시기 500년 전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다윗과 스가랴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리마대의 부자 요셉의 무덤에 묻히신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사야 53장 9절에 보면, “그는 강포를 행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 거짓이 없었으나 그의 무덤이 악인들과 함께 있었으며 그가 죽은 후에 부자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주전 700년경의 사람입니다.
죽어 마땅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어린 양과 같은 분이십니다.
민수기 9장 12절에 보면, “아침까지 그것을 조금도 남겨두지 말며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아서 유월절 모든 율례대로 지킬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앞으로 어떻게 되며, 앞으로 이 세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려면, 성경을 열심히 읽고,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기독교를 싫어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틀렸다고 하거나 말씀대로 되지 않은 것을 증거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 무오합니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보면,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다음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시체를 십자가 위에 그대로 둘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시체를 치워달라고 했습니다.
그때 빌라도 총독은 군인들을 보내어 예수님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게 했습니다. 두 강도는 그때까지 살아있었기 때문에 다리를 꺾어서 죽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운명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창으로 예수님의 허리를 찔러 피와 물이 다 나오게 함으로 예수님께서 죽은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은 빌라도 총독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하여 자신을 위해 준비해놓은 새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지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27장 62~66절에 보면,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덤 문을 완전히 인봉하고, 아무도 무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무덤을 지켰습니다. 왜 이렇게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이미 말씀하셨으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도둑질해서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거짓말할까봐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살아나셔도 예수님께서 돌문을 열 수 없을 정도로 큰 돌로 무덤을 막아놓았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살아나신다 해도 무덤 밖으로 나오지 말고 무덤 속에서 죽으라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이들은 철저히 악한 짓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이렇게 행동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확실하게 증명해주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은 의심하래야 의심할 수 없게 하는, 확실하게 믿을 수 있게 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전화위복되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과 같은 믿음을 가지시고, 아리마대 요셉처럼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적으로만 부자가 되지 마시고, 믿음의 부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 무오하다는 것을 믿으시고, 말씀을 똑바로 알고, 말씀대로 살아서 말씀에 약속된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모든 사람들이 행한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해주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고, 전화위복 되게 하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의 평생에 축복이 되게 하여주셔서 언제나 이 말씀이 기억나게 하시고, 이 말씀으로 인하여 우리의 삶이 더 아름다워지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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