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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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3:12 조회3,647회 댓글0건본문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2015년 12월 06일
본문 / 마태복음 23:29~39
본문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며칠 전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그들의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본문 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가장 악독한 죄를 지적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죽은 선지자들에 대해 존경심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선지자들의 무덤을 아름답게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몄습니다. 그들은 선지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은 조상들이 선지자들을 죽인 것이 잘못된 것임을 인정하면서 “만약 우리가 그때 살아있었다면, 조상들처럼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말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과 행동이 전혀 달랐습니다. 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조상들과 똑같이 행동하면서도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언제나 현재가 중요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라고 말하지만, 만일 그들이 과거에 의롭게 행동했더라도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그들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하고 있습니다. 지금이 중요한데, 그들은 지금 더 큰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옆에 있던 십자가에 못 박힌 한 강도는 평생 사람을 죽이고, 남의 것을 빼앗는 등 온갖 나쁜 짓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누가 봐도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강도는 십자가에 달려있는 동안 변했습니다.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의로우신 분이시고, 죄가 없으신 데도 돌아가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기다리고 있던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눅 23:42). 그는 과거에 아주 악독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지금 죽기 직전에 있습니다. 그런데 변화되었습니다.
그가 회개하는 마음으로 주님께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겸손하게 부탁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여러분의 부모, 형제, 친구가 임종할 때는 전도하기에 아주 좋은 기회입니다. 어느 권사님께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심방 갔습니다. 권사님의 얼굴이 사색이 되어있었습니다. 의사도 포기하고, 가족들에게 장례식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임종하기 전까지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에게 믿음의 말, 좋은 말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권사님의 귀에 대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랬더니 권사님의 얼굴이 환해지고, 핏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호흡이 끊어지기 전까지 귀는 열려있습니다. 그래서 소리가 들립니다. 그때 예수님을 가르쳐주고, 지금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천국이 있다고 말해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으니 예수님께 죄를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구원 받습니다.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과거의 죄를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혈통을 그대로 이어받았습니다.
우리가 어떤 혈통을 가졌는가는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많이 마시고, 노름을 많이 하고, 술을 마시면 물건을 때려 부수고, 어머니를 때리고, 자녀들을 괴롭혔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 나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겠다.’라고 결심했습니다.
아들이 자라서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노름을 하고, 폭력을 행사하며 자신의 아버지가 했던 것과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어렸을 때에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절대 저렇게 살지 않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자란 후에는 아버지와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왜 그럴까요? 평생 아버지의 모습을 눈으로 보고 들으며 배운 것이 그것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자라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이 평생 갑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돌덩어리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성령의 불이 임하면, 사람이 변화됩니다. 말하는 것이 달라지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지고,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지고, 목표가 달라집니다. 무엇보다 성품이 달라집니다. 죽어도 변하지 않을 것 같았는데, 성령을 받으면 달라집니다.
성령을 받으면, 사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전에는 밤낮 죄악으로 인해 넘어졌는데, 이제는 죄악을 이기게 됩니다. 마귀와 싸워 이깁니다.
이전에는 밤낮 성질을 내던 사람이 달라집니다. 자신이 알고, 친구가 알고, 모든 사람이 압니다. 성령의 불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40년 역사를 아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 개척 초기부터 출석하는 사람이 과거에 어떠했는가를 저는 압니다.
그런데 지금은 변화되고 새사람이 된 것을 봅니다. 지금은 교회의 중직자가 되었습니다. 은혜 받으니 변화된 것을 봅니다.
그러므로 절망하지 마세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면 달라집니다.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의 선물을 받으면, 변하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 속에 있는 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사탄이 그 속에서 밤낮 왕 노릇 했는데, 이제는 그 속에 성령이 들어와 계십니다. 그러므로 변하지 않으래야 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문 3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너희 조상의 분량을 채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분량을 채우라’는 말은 죄악의 분량을 채우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범죄했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벼락을 내리시거나 진노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범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기를 원하시고, 죄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시고, 참고 기다려주십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죄를 범하고, 회개하지 않으면, 죄악의 분량을 채우게 됩니다. 그렇게 해서 죄악의 분량이 차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지 않고,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살아도 당장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괜찮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쌓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마다 하나님의 진노가 계속 쌓입니다. 죄악의 분량이 차면, 그때는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합니다.
창세기 15장 13~1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을 멸하시기로 이미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심판하셔서 멸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아모리 족속은 달랐습니다. 죄악의 분량이 아직 가득 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4백 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다 알고 계셨기 때문에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레미야 44장 22~2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 악행과 가증한 행위를 더 참을 수 없으셨으므로 너희 땅이 오늘과 같이 황폐하며 놀램과 저줏거리가 되어 주민이 없게 되었나니 너희가 분향하여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며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규와 여러 증거대로 행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재난이 오늘과 같이 너희에게 일어났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금방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꾸 죄를 저지르면서도 회개하지 않아 죄악의 분량이 차니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참으실 수 없어서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죄 가운데 가장 악독한 죄는 죄인이 의인을 죽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을 괴롭히고 핍박하고 죽이는 죄가 가장 악독한 죄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8~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는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핍박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미워하고 우리를 핍박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예수님을 미워하고, 예수님을 괴롭히는 것은 아주 큰 죄입니다.
마태복음 10장 9~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믿는 것이 예수님을 올바로 믿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성경을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주의 종이 복음을 전하다가 어느 가정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주의 종을 영접하지 않고, 주의 종의 말을 듣지도 않는다면,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박대하고, 예수님을 저버린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소돔 고모라보다 더 무서운 심판을 받을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마귀의 자녀입니다.
누가복음 10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말을 듣는 자는 곧 내 말을 듣는 것이요 너희를 저버리는 자는 곧 나를 저버리는 것이요 나를 저버리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저버리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진리를 전하지 않고, 죄를 짓고, 딴짓을 한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종이 아닙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는데도 받아들이지 않고, 듣지도 않고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본문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무섭게 말씀하셨을까요? 그들이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자라도 회개하면 용서 받고, 구원 받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의 소망이 없습니다.
본문 35~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 돌아가리라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주후 70년경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누가복음 19장 41~44절에 보면,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독수리의 밥이 될 것을 알지 못하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병아리를 암탉이 날개 아래에 품듯이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품으셔서 보호하시려고 했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사랑을 거절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들은 주님의 사랑을 왜 거절했을까요? 그들은 주님의 사랑을 몰랐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사랑을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주님의 사랑을 거절합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사랑을 믿으십니까? 주님의 사랑을 아십니까? 주님의 사랑을 믿는 사람,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주님을 사랑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하셔서 우주 만물을 만들어놓으시고, 에덴동산을 만들어놓으시고,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28, 29). 이처럼 창세기 1장에서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 25절에 보면,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인이라도 구원 받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사랑이 많은 분이신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구원 받는 것을 스스로 포기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신 예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구원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습니다. 아무리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회개하면 죄를 사함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실 뿐 아니라,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를 따지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주님을 거절하는 자는 멸망합니다.
본문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려진 바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금방 멸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후통첩을 하시고도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 40년을 더 기다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게 40년 동안의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후 70년경에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멸망의 길로 가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이들은 위기 속에서 살아갑니다. 오늘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시편 7편 11~13절에 보면,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사람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그가 그의 칼을 가심이여 그의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 죽일 도구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가 만든 화살은 불화살들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범죄하고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 가운데 살 때, 하나님께서는 분노하십니다. 그런데도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칼을 가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활을 당기셔서 심장을 겨누십니다. 그리고 죽일 도구를 예비하십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면서도 회개하지 않는 것은 위험한 시간을 보내는 것입니다. 언제가 마지막이 될지 모릅니다. 오늘밤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보면, 심상치 않습니다.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면, 심상치 않습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심판의 날이 가까웠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밭에 가라지들이 알곡보다 더 크게 자라면, 누가 봐도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와 믿음 없이 교회 다니는, 마귀의 자녀가 확실히 드러납니다.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와 봉사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방탕하게 살아가면서 죄를 지으며 이중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철저하게 이중적으로 살아갑니다.
지금은 그런 세상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가 확실하게 구분됩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비하셔서 참고 기다리십니다.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무작정 참고 기다리시는 것은 아닙니다. 죄악의 분량이 차면, 아마 정신없을 것입니다.
주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의 사랑을 거절하지 마세요.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 사람은 회개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사랑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모두 주님의 사랑을 깨닫고, 늘 감사하며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지막 때에, 이 세상 어디 편안한 곳이 없는 이때에,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음을 믿습니다.
아버지,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하며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시고, 원수 마귀와 싸워서 승리하며 거룩하게 살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게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힘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사오니 성령 충만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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