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식하는 사람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1 13:01 조회3,639회 댓글0건본문
외식하는 사람들
외식하는 사람들
2015년 11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3:13~24
저와 여러분처럼,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이 세상의 어떤 복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가장 큰 복, 가장 귀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생할 자로, 하나님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우리를 택해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살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셨습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그리고 40일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십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을 때에 성령 충만한 가운데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보좌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스데반은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주님께서 서계신 것을 보았습니다(행 7:55~56).
저와 여러분이 신앙을 지키고, 주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당하고 순교할 때, 주님께서는 모른 척하지 않으십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죽을 때에 주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벌떡 일어나셔서 스데반을 맞이하시기 위해 스데반을 보셨습니다. 스데반이 영안이 열려 그것을 보았을 때,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그래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천사의 얼굴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스데반의 얼굴에 기쁨이 충만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4장에 보면, 대제사장이 예수님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4:61~62).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것과 예수님께서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께서는 머지않은 장래에 하늘 구름을 타시고 이 세상에 오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는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그때부터 예수님께서는 영원토록 왕 노릇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심판 주가 되셔서 이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국회에서 청문회하는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장관이나 국무총리를 세우기 전에 후보자 청문회하는 모습을 방송해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방송은 보지 마세요. 보면 골치 아픕니다.
국회의원들이 후보자의 뒷조사를 어떻게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주 작은 잘못까지 들추어내어 어떻게 해서든 망신을 주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려고 발악합니다. 그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후보자보다 더 나쁜 사람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하나님께서 보시고 웃으실 것입니다. 가장 먼저 지옥에 갈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들추어내며 비방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청문회하는 모습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후보자를 뒷조사해서 별별 것을 질문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래도 드러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인간인지라 모든 것을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드러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도 숨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십니다.
잠언 24장 12절에 보면, “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인간들은 실수를 많이 합니다. 재판관이 실수해서 죽지 않아야 할 사람에게 사형 언도를 내려 죽인 적도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매 순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저울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정확하게 아시고, 모든 일을 정확하게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시는지,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화’는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지옥 불에 들어갈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죄를 범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런데 죄를 뉘우치거나 회개하지 않고, 계속 반복해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죄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데,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범한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지 않고 자꾸 변명한다면, 자신이 죄를 범한 것이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죄에 대한 책임을 전가한다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아담이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그의 아내 하와가 따준 선악과를 먹었지만, 하나님께서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을 먹었으면,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했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아담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창 3:12). 이렇게 하면, 죄가 몇 배로 더 커집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외식하는 위선죄가 바로 그것입니다. 실제로는 마음이 악하고 음란하고 거짓되고 모든 죄를 범하면서 시치미를 떼고 자신은 의롭고 경건하고 거룩한 것처럼 위장하는 것, 이것은 아주 큰 문제가 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이 가장 의롭고 경건한 것처럼 행세하다 보니 회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은 죄를 범하지 않았고, 의롭고 경건한 것처럼 거짓된 삶을 살다 보니 회개하는 자세를 가질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무리 죄가 많아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조건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아무리 많은 죄를 범하고, 아무리 못된 짓을 했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누가복음 15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 할지라도, 죄에서 돌이켜 회개하면, 그 사람의 과거가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는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다 용서하시고,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면 살 길이 열리고, 회개하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외식하는 사람들은 회개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소망도 없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아무리 죄가 많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악독한 인간이라도 그가 회개하지 않고 죽는 것을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아무리 큰 죄인이라도 회개하고 살기를 기뻐하십니다.
본문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신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겠습니까.
에스겔 18장 21~23절에 보면, “그러나 악인이 만일 그가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반드시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그가 행한 공의로 살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회개하면 사는데, 끝까지 회개하지 않다가 결국 멸망할 그들을 보시며 하나님께서는 “너희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은 터질 듯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목회자들이 설교할 때, 성도들의 믿음이 좋고 성도들이 사랑스러워서 성도들을 칭찬해주고 축복하는 설교를 하면, 설교하는 목회자의 마음이 행복합니다.
그러나 바르게 살지 못하고,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을 책망하는 설교를 할 때에는 설교자의 마음이 무겁고 아픕니다.
인간의 마음도 그러한데, 주님의 마음은 오죽하겠습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요.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범하는 죄가 무엇이기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본문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3:2)”라고 외쳤을 때에 그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그들이 망하라고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살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인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세례 요한의 경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심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신도 천국에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드는 행동을 했습니다.
제가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제가 다니던 교회에 분쟁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니 사람들이 변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끼리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았습니다. 자기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발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만 보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같았습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해보였습니다.
제가 어느 분과 통화하다가 “그렇게 하시면 됩니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제게 “나는 지옥에 갈 것을 각오하고 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었습니다. 지옥에 갈 것을 각오하고 산다니, 그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천국에 갈 것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렇게 잘못된 마음을 갖게 되었을까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음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3:23). 그들은 믿음을 포기한 사람입니다. 그러니 못할 짓이 없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도 두려워하지 않고, 위선을 행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책망하지 않으실 수 없었습니다.
본문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을 만나면,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사람을 따라다니면, 그 사람과 비슷하게 복을 받습니다. 그런 사람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나오는 서기관과 바리새인 같은 사람을 만나면 안 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들도 천국에 들어가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천국에 가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배나 지옥 자식이 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막힌 노릇입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사탄이 좋아하는 짓만 했습니다.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저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선생님이 아주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첫 번째 수업 시간에 칠판에 ‘사람이면 사람이냐, 사람 노릇을 해야 사람이다.’라고 쓰셨습니다.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그 선생님이 처음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분이 아니셨는데, 칠판에 그렇게 써놓으셨습니다.
전교조에 가입한 선생님들 중에는 잘못된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사랑제일교회의 전광훈 목사님은 자녀가 아들 한 명 뿐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이 벽에 ‘부시, 죽여’라고 써놓고, 매일 칼로 그곳을 찌르는 것을 목사님께서 보셨습니다.
목사님이 놀라서 “부시가 누구냐?”라고 물었더니 아들이 “미국 대통령이에요. 이 사람은 죽여야 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부시, 죽어라”라고 하며 칼로 벽을 찔렀습니다. 목사님은 아들에게 “어떻게 이런 짓을 하게 됐냐?”라고 물었더니 아들은 “담임선생님이 가르쳐줬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아들의 담임선생님이 전교조에 가입한 분인데, 아이들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쳤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떤 친구를 만나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제가 이렇게 목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친구를 잘 만났기 때문입니다.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제 옆에 앉았던 친구는 우리 반에서 유일하게 예수님을 믿는 아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친구를 제게 붙여주셨습니다. 친구는 저를 교회에 데리고 갔고, 그로 인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의 형님은 서울대학교 학생이었는데, 성령 충만한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 형님이 하시는 것을 보고 ‘예수님은 저렇게 믿는 것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형님이 하는 것처럼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산에 가서 기도하고, 철야기도도 하고, 하루에 세 번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성경도 열심히 읽고 외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도 형님처럼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을 가장 기쁘시게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끝에 열심히 전도하게 되었습니다.
전도하다 보니 ‘우리나라 국민을 모두 구원 받게 하는 목사가 되어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꿈이 커져서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그 친구를 만났기 때문에 저는 영원히 복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 교회에도 열심히 전도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며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해 수고한 것처럼, 그분들도 열심히 전도합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여 그 사람이 교회에 열심히 나오도록 하기 위해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고, 자주 만났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부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금방 갚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갚지 않았습니다. 형편이 어려워 갚지 못하는 것입니다.
제가 어릴 때에 제 어머니가 빚을 졌는데, 빚을 많이 져서 이자도 갚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빚을 지고 갚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새가족의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준 것이 돈 때문이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 사기꾼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사람을 잘못 만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믿지 못합니다. 참으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
본문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눈 먼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눈 먼 인도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눈 먼 인도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죄 가운데 사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캄캄한 밤을 지나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맹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가리켜 ‘눈 먼 인도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죄 가운데 살면,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멸망의 길로 가면서도 자신이 멸망한다는 것을 모릅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발람 선지자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 선지자에게 금은보화를 갖다 주며 이스라엘을 향해 저주하라고 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하나님의 종이 저주하면 저주 받고, 축복하면 축복 받는다는 것은 믿었던 것 같습니다.
성경에 보면, 모압 왕 발락이 발람 선지자에게 ‘복채’를 갖다 주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민 22:7). 모압 왕 발락은 귀한 것을 발람 선지자에게 갖다 주며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면 안 되는데, 발람 선지자는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 나귀를 타고 길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가다가 죽을 뻔 했습니다. 나귀는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손에 들고 길에 선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발람의 눈에는 그것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돈의 욕심으로 인해 눈이 멀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려다가 죽을 뻔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죄 가운데 있으면, 욕심 가운데 있으면, 눈이 멀게 됩니다.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성전보다 금을 더 사랑하고, 귀하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금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면, 그것은 꼭 지켜야 하지만, 성전으로 맹세한 것은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금을 바쳐야 그것이 자기들의 수입이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17~2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금이냐 그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 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 맹인들이여 어느 것이 크냐 그 예물이냐 그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제단이냐 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 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성전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 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단으로 맹세하는 것이 더 큰 맹세인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물로 맹세한 사람에게는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그 예물은 자기들의 수입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철저하게 자기 생각만 했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수입을 늘릴 생각만 했습니다.
마가복음 12장 4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가난한 과부를 도와주는 척 하면서 오히려 그들의 재산을 가로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돈을 얼마나 좋아하고, 돈에 눈이 어두운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악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돈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지적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신앙이 타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본문 23~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라기에 보면,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말 3:10). 그러나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라고 기록되어있지 않습니다.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라’는 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만든 법입니다. 이것을 ‘전통’이라고 합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아주 작은 것까지도 철저하게 드리는 신앙인임을 나타내기 위해 그런 법을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돈을 좋아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십일조 헌금을 억지로 하지 마세요. 아주 작은 단위까지 아주 정확하게 십일조 헌금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제발 그렇게 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있고, 아브라함처럼 야곱처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려는 마음이 있다면, 기쁨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드리려면, 기쁨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십일조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보다 넘치게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항상 기쁨으로 해야 합니다. 자원해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억지로 하지 마세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지 않고, 어려움을 당하는 세상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그들에게 없었습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래서 본문 23~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외식하는 자가 된 것은 욕심 때문입니다. 그들에게는 명예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고, 경건하다고 칭찬 듣기를 원했습니다. 마치 자기들이 최고인 것처럼 세상에서 인정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물질욕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물질을 긁어모으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잠언 2장 7절에 보면, “그는 정직한 자를 위하여 완전한 지혜를 예비하시며 행실이 온전한 자에게 방패가 되시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사람 앞에서는 물론이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제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완전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실수도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죄인임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어떤 죄인이라도 용서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기억하지도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사 43:25). 회개하는 자에게는 천국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의 평생에 축복이 될 줄 믿습니다. 마음에 새길 뿐 아니라, 이 말씀을 항상 기억하고, 이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 겸손하고 솔직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축복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