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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22장

예복을 입은 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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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9:30 조회3,78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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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복을 입은 성도

 

예복을 입은 성도

2015년 08월 30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2:1~14

 

입시철이 되면, 합격하는 사람도 있지만, 낙방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합격하는 사람은 그동안 공부하며 고생한 것이 기쁨으로 바뀝니다. 그래서 행복해합니다. 그러나 낙방한 사람은 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천국에 가는 사람과 천국에 가지 못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을 맞이하고 천국에 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느라 고통당한 것을 다 잊습니다. 주님을 만나는 기쁨,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을 생각할 때에 느끼는 기쁨은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예수님을 만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좋게 생각하는 그 이상의 기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 생활을 했지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시며, 거절하시므로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은 누구보다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7:21).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저 사람은 천국에 가면 면류관을 열 개 정도 받겠다’라고 생각될 만큼 훌륭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엄청난 일을 얼마나 많이 벌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외면하실 것입니다(마 7:23).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열 명의 처녀는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신랑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 중에 슬기 있는 다섯 명은 등과 함께 기름을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명은 등만 준비했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 아주 훌륭한 크리스천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명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이 왔을 때, 신랑을 맞이하러 갔습니다. 미련한 다섯 명은 그때서야 기름을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미련한 자들이 기름을 준비해서 갔으나, 문은 이미 닫혀버렸습니다. 미련한 자들이 문을 두드렸으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미련한 자들은 신랑을 맞이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은 상관없지만, 평생 교회 생활을 했는데, 주님을 맞이하지 못하고,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면, 세상에 이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재림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때보다 기쁜 날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때를 신랑과 신부가 결혼하는 혼인잔치에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혼인하는 날보다 기쁜 날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날은 혼인하는 날과 비교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한 날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가장 기쁜 날에 비유하려니 혼인하는 날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에 보면,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날을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비유하여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떤 임금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혼인 잔치를 베풀기 위해 사람들을 초청했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초청한 사람들 중에는 잔치에 온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다들 핑계를 대고 잔치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한 사람도 잔치에 오지 않았습니다. 임금이 얼마나 섭섭했겠습니까.

그런데 임금의 초청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임금이 보낸 종을 잡아 모욕하고 죽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임금은 노하여 군대를 보내 살인한 자를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습니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어있는데, 임금이 초청한 사람은 혼인잔치에 오지 않았으니 임금은 종들에게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라”라고 말했습니다.

종들은 악한 자든 선한 자든 그 사람의 신분과 과거를 따지지 않고, 초청에 응하는 사람들을 모두 잔치에 오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혼인 잔치에 손님이 가득 찼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은 천국에 갈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혼인잔치에 초청 받을 자격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복음을 전하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초청에 응하기만 하면 구원 받게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와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세리와 창녀와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받습니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잘난 사람을 찾으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은 죄가 없다고 큰소리치는 사람을 찾으러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 받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있는 십자가에 매달린 강도처럼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 나를 기억해주옵소서.”라고 주님을 찾으면, 살 길이 열립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을 때,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요한복음 1장 10~12절에 보면,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선순위에서 언제나 첫째 자리에 있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5~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순위에서 첫 번째가 이스라엘 백성, 유대인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선순위의 첫 번째가 예루살렘과 유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시고,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게 하셔서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셨습니다.

 

로마서 2장 6~1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실 때에도 유대인에게 먼저 진노하시고, 상 주실 때에도 유대인에게 먼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유대인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먼저 유대인에게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복음 전하는 자들을 오히려 핍박했습니다. 그들은 스데반 집사를 돌려 쳐 죽였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은 완악했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방인 중에는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운동이 일어나서 교회가 시작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약해졌습니다.

오히려 흩어졌던 성도들이 이방 나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방인들은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안디옥 지방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에 따라 바나바와 사울을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18장 5~6절에 보면, “실라와 디모데가 마게도냐로부터 내려오매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유대인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 밝히 증언하니 그들이 대적하여 비방하거늘 바울이 옷을 털면서 이르되 너희 피가 너희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나는 깨끗하니라 이 후에는 이방인에게로 가리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유대인들을 상대해봐야 복음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오히려 대적하고 비방하니 사도 바울은 이방의 땅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에 머물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곳에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고린도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니 사도 바울은 이방인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열심히 믿었습니다.

로마서 11장 11절에 보면,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 11장 25절에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방인 가운데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다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될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둔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임금의 초청을 받았지만, 잔치에 오지 않은 사람은 누구를 가리킵니까?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먼저 청함을 받았으나,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잔치에 초청해서 혼인 잔칫집이 가득 찼습니다. 여기에 초청 받은 사람들은 저와 여러분과 같은 이방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비유해서 말씀하신 대로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전 세계에 수십억의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대부분 이방인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에 참석하려면, 반드시 예복을 입고 있어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본문 11~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초청을 받아 혼인 잔치에 참석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잔치에 왔어도 잔치에 참석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쫓겨나서 버림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원 받은 성도들은 입은 옷이 다릅니다. 요한계시록 7장 9~14절에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서 있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이르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하더라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보혈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함 받아 의롭다함을 받은 사람들은 천국에서 흰 옷을 입고 주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장 6~9절에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과도 같고 많은 물 소리와도 같고 큰 우렛소리와도 같은 소리로 이르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고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옷을 입고 다니다 보면, 겉으로 보기에는 깨끗해보여도, 더러워진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세탁해야 깨끗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기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받으려 함이로다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러운 옷을 씻는 것은 더러운 행실을 회개하고,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로 깨끗이 씻음 받아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정신을 차리고, 날마다 옷을 빨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주님 앞에 회개하여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깨끗하게 되고, 의롭다함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날마다 희고 깨끗한 세마 포옷을 입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복을 입은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가리키는 것일까요?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교회에서 봉사할 때에도 건성으로 봉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으로 봉사합니다. 헌금할 때에도 형식적으로 헌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려는 마음으로 헌금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예복을 입고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과 예복을 입지 않은 채 혼인 잔치에 참석한 사람의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사람은 적당히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자신이 좋을 대로 사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기분에 따라 살고, 기분에 따라 신앙생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믿음이 산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신앙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둘째, 변화가 있는 사람입니다.

수영로교회에서 40년간 목회하고 있는데, 저는 갈수록 행복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변하지 않은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월이 갈수록 성도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면,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이렇게 기쁜데, 주님께서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 교회가 크고 사람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자랑스러운 교회인 것은 아닙니다. 옛 사람이 변하여 새 사람이 된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이 변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변화된 사람을 가장 기뻐하실 것입니다.

 

평생 교회 생활을 했지만, 변화되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시끄럽고 분쟁이 그치지 않고, 부흥되지 않는 교회가 많습니다.

왜 성도들이 변하지 않는지 아십니까?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복을 입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셋째,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행세해도, 형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이중적인 인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주 잘못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말과 혀로만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는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아 사랑이 많아졌습니다. 그들은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습니다. 그리고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천국과 같은 교회였습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해도 되고, 미워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지, 사랑하지 않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알 수 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망에서 생명에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망에 머물러 있습니다(요일 3:14).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살인하는 자입니다. 살인하는 자는 그 속에 영생이 거하지 않습니다(요일 3:15).

 

마태복음 25장에 기록된, 양과 염소의 비유에 보면, 양은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말과 혀로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행했습니다. 실제로 사랑을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25:46).

반면, 염소에게는 행함이 없었습니다. 염소와 같은 사람은 설교를 아무리 들어도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살아갑니다. 이들은 영벌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처럼 사랑을 실천하느냐, 실천하지 않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3:34).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확증시켜주셨습니다(롬 5:8,10).

 

원수까지도 사랑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44).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축복하며, 그가 잘되도록 기도해주라는 의미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랑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마 5:45).

예전에는 원수에게 보복하려 했던 사람이 모든 것을 용서해주고,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 축복기도해준다면, 예수님을 믿고 변화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3~14절에 보면,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외워서 항상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평생 교회생활을 했지만, 예복을 입지 못하고, 옛 사람이 입었던 냄새나는 옷을 그대로 입고 있는 사람이 매우 많습니다.

평신도 중에서는 물론이요, 직분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 목회자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몇 사람이 예수님을 맞이할 것 같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청함을 받고, 수십억 명의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며 크리스천 행세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예복을 입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은 혼인 잔칫날입니다. 예복을 입고 있는 사람만 잔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시고, 깊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과연 예복을 입고 있는가’ 스스로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모두 어린 양 예수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설 수 있도록, 흠과 티와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아름다운 모습의 성도로 살아가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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