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 된 자와 먼저 된 자 > 마태복음20장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마태복음20장

나중 된 자와 먼저 된 자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6-01 16:43 조회3,443회 댓글0건

본문

나중 된 자와 먼저 된 자

 

나중 된 자와 먼저 된 자

2006년 12월 10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20:16

 

사람의 일생은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마라톤 경주에서 1등 하려면, 오랜 끈기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출발도 잘해야 하지만,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라톤 경주와 같아서 한두 번 신앙생활을 잘했다고 다 된 것은 아닙니다. 일평생 죽는 날까지,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까지 어떻게 신앙생활을 잘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한때 교회에서 일을 잘하다가, 어느 순간 타락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디모데전서 1장 19~20절에 보면,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10, 14~15절에 보면,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 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주의하라 그가 우리 말을 심히 대적하였느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마 이들은 과거에 교회에서 누구 못지않게 중요한 위치에 있었을 것입니다. 데마는 사도 바울을 잘 돕던 충성스러운 일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떠났습니다.

 

그 사람의 과거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비록 과거는 별 볼일 없었어도, 지금 훌륭하다면 훌륭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입니다. 인생을 어떻게 끝맺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주인은 일꾼들에게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 주기로 약정하고, 아침 일찍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런데 일손이 많이 부족했는지, 주인은 일할 사람들을 더 찾기 위해 거리로 나갔습니다. 3시에 나가보니 사람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포도원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계속해서 정오에도, 오후 3시에도, 심지어 오후 5시에도 놀고 있는 사람을 데려다 일을 시켰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온 사람일수록 일한 시간이 적어집니다. 그러나 집주인은 청지기에게 “나중에 온 사람부터 시작해서 먼저 온 사람까지 똑같이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주라”고 명했습니다.

청지기는 오후 5시에 와서 일한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지불했습니다. 이때 가장 먼저 품삯을 받은 사람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았으므로 몹시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와서 일한 사람은 더 많은 품삯을 받을 것으로 잔뜩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먼저 온 사람들은 화가 났습니다. 이들은 집주인에게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마 20:12)”라고 불평했습니다.

이때 집주인은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3~16)”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교훈을 시사해줍니다.

 

아침 일찍 포도원에 들어와 일한 사람이 원망 불평하게 된 이유는

첫째, 집주인과의 계약을 잊어버렸거나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언약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비교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과 자신을 비교했기 때문에 억울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이 시장에 가서 물건을 20% 할인해서 샀습니다. 이 집사님은 좋은 물건을 싸게 사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옆집에 사는 집사님이 자신과 똑같은 물건을 다른 가게에서 반값에 샀습니다. 이 집사님은 그 순간 기쁨이 사라지고 바가지를 썼다는 생각으로 몹시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사람은 정가에 물건을 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20%나 싸게 산 것을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비교의식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듭니다.

 

셋째, 공로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이만큼 일했으니 이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했으니 당연히 축복해주셔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를 위해 이만큼 일했으니 자신의 공로를 알아줘야 한다는 공로의식으로 가득 찬 사람은 항상 공치사하기를 좋아하고, 누가 알아주지 않거나 대접해주지 않으면 몹시 섭섭해 합니다.

하나님 앞에 이렇게 드리고 이렇게 일하면 내 공로를 인정해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시리라는 생각은 매우 잘못된 생각입니다.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 19:27)”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공로의식으로 가득 찬, 잘못된 질문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28~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를 위해 살았는데 우리가 얻을 것이 무엇이냐?”라는 공로의식 갖고 일하는 사람은 꼴찌 인생, 꼴찌 신앙인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마치 포도원에 들어가서 일한 품꾼처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한복음 6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찬양하고 안내하고 봉사하는 것과 신앙생활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수십 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나이가 든 후에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불과 1~2년밖에 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똑같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집사의 직분을 받아 일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산다면, 이것을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시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은 지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나중 된 자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몇 년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평생 공부만 했는데도 시험 점수가 60점밖에 나오지 않는 사람과 겨우 1~2년밖에 공부하지 않았지만 90점이 나온 사람이 있다면 과연 누가 공부를 잘 한 사람입니까? 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현재의 수준이 문제입니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신앙생활 오래했다는 이유로 중직을 세우는 것입니다. 평생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이 중직이 되어 사사건건 교회의 발목을 잡는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연조와 믿음의 수준은 결코 정비례하지 않습니다. 은혜 받지 못한 사람은 평생 교회를 나왔어도 믿음이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린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교회에 나왔지만 성경 말씀대로 온전한 십일조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후 5시에 포도원에 들어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어도 한 데나리온을 받은 사람은 하루 종일 일거리를 찾지 못해 놀고 있다가 한 시간이라도 일하게 된 것을 너무도 기뻐했을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의 삶을 받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한 데나리온을 받고 보니 그 은혜에 감격하여 더욱 더 감사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들보다 늦게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몇 배로 더 열심히 일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봉사를 많이 했느냐보다 어떤 마음의 자세로 봉사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마음의 자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마 19:27)”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처럼 공로의식을 가지고 일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사람은 헌금할 때에도 하나님께 축복의 대가를 바랍니다. 아무리 많이 드린다 한들 이런 사람의 헌금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열심히 새벽기도 다니는데,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겠습니까?”라고 하나님께 따지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아무리 열심히 일한다 해도 먼저 된 자가 아니라 나중 된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초급수준의 믿음에 머물러 있는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생입니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 보면,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죗값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어야 할 사람입니다. 영원히 지옥의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주시고, 우리가 받을 저주를 속량해 주셨으며 아브라함의 복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은혜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6장 19~20절에 보면,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죽어서 지옥에 가서 멸망할 인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혈로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공로를 앞세워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것을 주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로마서 14장 8절에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잠시도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죗값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으나,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집에서 일꾼으로 섬기게 되었으니 그 은혜에 더욱 감사하여 죽도록 충성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바치고 전도하다가 사업이 잘 되는 것도 축복이지만,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면 그것은 더 큰 축복이며, 순교하게 되면 더욱 더 큰 축복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런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믿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먼저 된 자입니다.

 

과연 여러분은 먼저 된 자입니까? 나중 된 자입니까?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옛날에는 열심도 있었고 기도와 전도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열심도 식었고 기도생활도 별로 하지 않으시는 분들, 그저 주일에 한번 나와 대예배만 드리고 봉사하면 다 되는 줄 아시는 분들은 자신을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은 지 오래되었다고 자랑하지 마십시오. 과거는 문제가 아닙니다. 현재가 중요합니다.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마 19:30)”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7장

8장

9장

10장

11장

12장

13장

14장

15장

16장

17장

18장

19장

20장

21장

22장

23장

24장

25장

26장

27장

28장

 

 



Copyright © dalant.or.kr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
PC 버전으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