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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9장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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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8:02 조회4,31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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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

2015년 04월 26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9:3~15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후, 마지막으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한 남자와 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에덴동산을 만들어주시고, 한 남자와 한 여자와 가정을 이루고 살게 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가정을 만들어주신 것은 가정을 통해 영광 받으시려는 하나님의 소원과 뜻, 계획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가정을 통해 우리에게 축복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마음에 명심하고 ‘우리 가정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가정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이루어주신 것처럼, 우리 가정을 통해 우리 자신은 물론 자자손손 축복을 받아 아브라함과 사라의 가정처럼 복 받는 가정이 되도록 기도하고 노력하며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라고 말씀하시며 먹지 못하게 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따먹으므로 그들은 저주를 받아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아프고 병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늙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아프고 병들고 늙는 것은 죽어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자마자 사람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그냥 먹었는데, 그 후에는 땀을 흘리며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어야 먹고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몸은 피곤을 느끼고 아프고 늙어갔습니다. 이것 자체가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저주가 있습니다. 마음이 병든 것입니다. 육신이 병드는 것도 괴롭지만, 사람의 심령 즉 마음 밭이 병드는 것은 더 큰 불행입니다.

마음이 병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집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마음이 삐뚤어져있고, 마음이 악하고 음란하고 더럽고 완악하고 배신하기를 잘하고, 거짓말을 잘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대인관계에 있어서도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사회가 병들어갑니다. 그래서 결국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런데 우리를 더욱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행복해야 하는 가정이 깨어진 것입니다. 전도서 9장 9절에 보면, 나이 많아 늙은 솔로몬은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전도서에는 처음부터 ‘헛되다’라는 말이 많이 나옵니다. 솔로몬만큼 잘 살고 부유했던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권력과 명예와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모든 쾌락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다 헛된 짓이고, 쓸데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깨달음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하는 모든 것이 다 헛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고생하며 사는 인생에게 나누어주신 분복이 있는데,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고, 반드시 누려야 하는 몫, 피곤하고 험하고 고달픈 세상에서 잃어버려서는 안 되는 몫이 있는데,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우 가난하여 라면을 끓여먹으며 산다 해도 깔깔거리고 웃으며 부부가 서로 사랑한다면, 그런 집은 잔칫집과 같습니다.

잠언 15장 15절에 보면,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잘 먹어서 잔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식을 아무리 많이 차려놨어도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시기한다면, 음식 먹은 것이 오히려 체하고 말 것입니다. 그것이 살이 되겠습니까. 병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항상 잔치하며 삽니다. 마음이 기쁘고 즐겁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송이 저절로 나옵니다.

 

본문 마태복음 19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예수님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이혼문제를 놓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자 바리새인들은 다시 예수님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를 자기 마음대로 버릴 수 없다면, 장가가지 않는 것이 낫겠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말했다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 정도였으니, 그 당시의 사회가 얼마나 병들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본문 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부모를 버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결혼한 후에는 부모를 몰라라 하고 버리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말씀은 결혼한 후에 부부의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수십 년 동안 따로따로 살았던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같이 살게 되었으니 하나 되기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보통으로 힘든 일이 아닙니다.

자녀가 결혼했으면, 부모는 자녀 부부가 하나가 되도록, 한 몸이 되도록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잊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좋아야 하지만, 부부관계는 그것보다 더 중요합니다.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기 때문에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빨리 연합하여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현명한 부모라면, 자녀가 결혼한 후에는 ‘어떻게 하면 이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잘 산다면, 족하게 생각하고, 만족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부모는 부모가 홀로 되었을 때에도 자녀와 함께 살지 않습니다. 자녀와 따로 살면서 왕래하며 살지, 함께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 되는 데에 방해될까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지혜롭습니까.

 

결혼한 후에 부부가 연합하여 하나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결혼한 자녀가 한 마음이 되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결혼한 자녀에게 부모가 개입하고 간섭하여 부부가 하나 되는 것을 방해한다면, 그것은 불행을 초래합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는 여동생에게 아버지의 역할까지 했습니다. 여동생을 시집보낼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언제든지 동생을 편들지 않습니다. 제매를 편듭니다. “너보다 얼마나 훌륭하냐.”라고 말해서 여동생에게 남편을 자기보다 훌륭하게 생각하게 했습니다.

여동생은 둘째 며느리였습니다. 어느 날, 여동생이 시부모와 잠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제가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는지 모릅니다.

동생을 위해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동생에게 편지를 써서 보냈습니다. 편지에 “시부모도 네 부모다. 친부모에게 하듯 효도해라. 그러면 너와 네 자손이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썼습니다.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시아버지가 얼마나 신경을 쓰셨겠습니까. 아들 부부가 직장에 가고 없는 사이 제가 보낸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시아버지가 편지를 뜯어보셨습니다.

시아버지가 편지를 읽고 감동 받으셨습니다. ‘정필도 목사는 진짜 목사다.’라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돈어른께서 저를 존경하시고, 저를 좋아하셨습니다. 그 편지로 인해 모든 문제가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부모가 자기 자식만 편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국에는 헤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지혜가 필요합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어 함께 살게 된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마 10:29). 우리는 이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어 함께 산다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두 사람을 만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사랑하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두 사람을 부부가 되어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저는 이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는 ‘내가 누구와 결혼하든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사람을 나에게 주신다’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할 나이가 되었을 때에 ‘좋은 사람이 없나.’라고 생각하며 사람을 찾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짝지어 주신 사람이 누구인지 저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게 짝지어 주신 사람이 누구인지 저는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사람을 만나면, 제게 세 가지 사인을 주십시오. 세 가지 사인이 나타나면,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제게 짝지어 주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겠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중매하시는 분이 제게 사진을 보여주실 때마다 저는 “기도해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 아내를 소개 받고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게 세 가지 사인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급하셨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저는 ‘나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사람이니까 아내는 기도도 잘하고, 설교도 잘하고, 심방도 잘하는 헌신된 사람이어서 제가 목회하는 것을 도와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대학을 졸업하기 전에 결혼했으니 결혼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았고, 목사와 결혼하겠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결혼한 후 3년 동안 기도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아내와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부가 각각 기도했습니다. 때로는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며 많은 은혜를 받고,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사람을 아내로 주셨구나.’라고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가장 좋은 사람을 아내로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50년 가까이 목회해보니 목사가 헌신된 여자와 결혼하면, 아내가 목회를 간섭하게 되어 힘들게 목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제가 설교준비를 할 때에는 다른 방에서 몇 시간이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고, 항상 뒤에서 도와주며 아이들을 잘 길러주었습니다. 이런 사모가 목회자에게 도움이 됩니다.

만약 제가 결혼하기 전에 생각했던 여자와 결혼했다면, 큰 일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가장 좋은 사람을 배필로 준비해놓으셨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완전하신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시는 사람은 나에게 가장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은 불행합니다. 이것을 빨리 깨달을수록 좋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가장 좋은 사람과 짝지어주시지, 좋지 않은 사람과 짝지어주시겠습니까. 이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배우자가 자신과 생각이 맞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런 사람을 내게 주셨을까. 왜 이런 사람이 나에게 가장 좋은 사람일까.’를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사람보다 더 좋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저는 정직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많은 목회자들을 만나고, 목회자 사모들을 만납니다. 그런데 제 아내보다 더 좋은 사모를 보지 못했습니다. 제 아내보다 훌륭한 사모를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본문을 보면, 우리는 모세 시대에 유대인들이 얼마나 타락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내와 살기 싫으면, 아내에게 얼마나 학대했는지, 심지어 남편에게 맞아죽는 아내도 있었다고 합니다. 남편이 아내와 살기 싫으면, 아내를 쫓아내기 위해 아내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모릅니다.

모세는 사람들의 마음이 완악한 것을 알고, ‘저렇게 살 바에는 차라리 헤어지는 것이 낫겠다.’라고 생각하여 이혼을 허락했습니다.

본문 8~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내가 음행했다면 어쩔 수 없지만, 그 외에는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가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간음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8~16절에 보면,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혼문제에 대해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남편이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아내와 함께 살 때, 어려움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힘들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한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고 살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25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부부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자세히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여 남편에게 복종함으로 남편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도 아내를 사랑하되 아내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줄 정도로, 아내에게 모든 것을 줄 수 있도록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을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예수님처럼 생각하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남편은 불행합니다. 세상에서도 기가 죽습니다.

지혜로운 아내는 자신의 남편을 높여주고 존경합니다. 이런 아내를 위해서라면, 남편은 목숨까지도 내어줄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8절에 보면,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자신과 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부는 한 몸입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아내에게 잘해주면, 모든 것이 남편에게 돌아옵니다. 그런데 아내에게 인색하게 굴면, 남편에게 돌아올 것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5장 33절에 보면,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 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개역한글성경에 보면, “남편을 경외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듯이 경외하라는 것입니다. 남편은 아내를 자신과 같이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면, 가정 천국이 될 줄 믿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니까 가정에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은 매우 중요합니다.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죄인 된 우리, 원수 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어주셨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44~4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한다면, 부부 사이에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원수 같은 남편이라도, 원수 같은 아내라 해도 사랑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로마서 12장 17~2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말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 13~14절에 보면,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원수를 용서할 수 있어야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 14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를 사랑하는지,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지를 보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인지 마귀의 자녀인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사망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살인하는 자는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즉 구원 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부부 사이에 서로 미워한다면, 살인하는 것입니다.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우리가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부부 사이에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뿐 아니라, 성령 충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세상이 매우 악하고, 유혹하는 것이 매우 많기 때문에 우리의 힘만으로는 말씀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면,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용서할 수 있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아보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해주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게 되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며 살게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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