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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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8-30 11:33 조회3,531회 댓글0건본문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
천국에 들어가기 어려운 사람
2008년 07월 11일(금요철야)
본문 / 마태복음 19:16~30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천국에 간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러 종류의 사람이 교회에 다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 중에는 은혜를 많이 받은 신령한 성도도 있고, 믿음이 어린 성도도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불신자도 많습니다. 도둑도 있고, 소매치기도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훔쳐갈까 생각하며 기웃거리다가 훔쳐서 도망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경꾼도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단에서 파송되어 온 사람도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종류의 사람이 교회에 다니는데, 이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아주 전형적인 종교인입니다. 청년은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마 19:16)”라고 질문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고 말씀하셨습니다.
청년은 예수님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 19:20)”라고 다시 물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율법을 지켰고 영생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께 질문하는 이 청년은 전형적인 종교인입니다.
이런 사람을 만나면 이 사람이 정말 거듭난 신자인지, 아닌지를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영생을 얻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어렸을 때부터 계명을 지켰다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그를 훌륭한 신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이 참으로 예수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거듭난 사람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정확하게 알고 계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9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에게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갔습니다. 재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은 그가 소유한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믿음과 영생을 포기할지언정 재물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이 청년은 영생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말로는 영생을 들먹였지만, 자신이 가진 재물 때문에 영생을 포기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 이 청년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많습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아직 거듭나지 못한 종교인이 많습니다.
이들은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잘 압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들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사람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왜 순종하지 못할까요? 아직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종교인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 청년은 재물이 너무나도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재물이 엄청난 짐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에게 재물이 별로 없었다면,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없는 사람에게 예수님께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신다면 가지고 있는 것이 별로 없으니 팔 것도 별로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에 가난하게 자랐던 것에 대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유하게 자랐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죄를 더 많이 범했을 것입니다. 목사가 되지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기도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다고 해도, 은혜를 받은 신령한 그리스도인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가난하게 자라게 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재물이 많아서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과 같은 사람이 오늘날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들은 참 불쌍합니다.
갑자기 망하거나 투옥되거나 죽을병에 걸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나아와 거듭난 성도가 되고 은혜가 충만한 신령한 성도가 된 분이 있습니다. 이들은 특별히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입니다. 스스로 재물을 포기하지 못하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포기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많은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을 청년에게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포기하라고 말씀하신다면, 그보다 더 큰 것을 주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넓은 사랑을 언제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포기하라고 말씀하실 때,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재물보다 더 값진 것을 주시기 위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부자 청년이 소유한 재물보다 값지고 귀한 것을 무엇일까요? 거듭난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거듭난 믿음을 주시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다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거듭난 믿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거듭난 믿음이 없으면,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영원히 저주 가운데 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거듭난 믿음을 가진 사람들입니까? 거듭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믿음을 가진 것을 감사하십시오. 거듭난 사람은 주님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갑니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고 할 때, 제일 방해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못해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왜 교회에서 시기하고 분쟁할까요? 자기 자신을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 교수들이 왜 싸웁니까? 진리 때문입니까? 자기를 부인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잘되려면,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를 왜 지지 못할까요?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이 잘되려면, 십자가를 지는 가족이 많아야 합니다. 왜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할까요?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심에 눈이 어두워 자기만 생각합니다. 다른 식구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가정이 잘될 리 만무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왜 위대한지 아십니까? 아브라함은 포기를 잘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무조건 떠났습니다.
그 뿐 아니라 소돔과 고모라에 전쟁이 일어나 그곳 사람들이 다 죽거나 포로로 잡혀갔고, 그 중에 조카 롯도 포로로 잡혀갔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집에서 훈련시킨 318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쳐들어가 원수들을 다 무찌르고 포로 된 사람들과 재물을 다 빼앗아 돌아갔습니다.
그러므로 소돔 왕은 목숨만이라도 살려준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래서 소돔 왕은 아브라함에게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창 14:21)”고 말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오직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동행한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의 분깃을 제할지니 그들이 그 분깃을 가질 것이니라(창 14:22-24)”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소돔 왕에게 속한 재물은 조금이라도 가지지 않겠다는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은 포기를 잘 합니다.
다니엘의 믿음이 위대한 점이 무엇입니까? 다니엘은 느부갓네살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고 결심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우상 앞에서 재물로 드렸던 음식을 먹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느부갓네살의 명령을 거부하면 죽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을 축복하셨습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영감을 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명예와 재물 등 세상의 것들을 포기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보다 더 귀하고 값진 것을 주십니다.
저는 재물을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포기하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모으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이름으로 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집도 없고, 차도 없습니다.
포기하고 나니 굉장히 자유롭습니다. 사례비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제가 세상의 것을 포기하니까 하나님께서는 신령한 은혜로 저를 부유하게 해주셨습니다. 그것이 제 목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모든 것을 책임져주실 수 있습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신실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에 언제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나중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대책을 세워놓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부자청년과 같이 되지 않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하나님께서는 제게 은혜를 넘치게 하시고 부유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때에는 말하자마자 이루어지고, 생각하기만 해도 이루어지는 때도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위해 준비해두신 것이 많다고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해두셨습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주실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재물을 포기하지 못해서 실패한 사람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몇 사람만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아간입니다.
여리고 성을 침략하는 것에 성공했지만, 아이 성을 침략하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간이 외투와 은과 금을 감추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7장 21절에 보면,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그 무게가 오십 세겔 되는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가졌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수 7:21)
가나안 땅을 쳐들어갈 때,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의 많은 성을 점령할 것인데, 첫 번째의 여리고 성에서 하나님께 다 바쳐야 합니다.
그런데 아간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감추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으로 말미암아 아이 성과의 싸움에서 패하여 많은 전사자가 생기는 기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간과 그의 가족은 재물에 눈이 어두워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둘째, 엘리사의 시종 게하시입니다.
아람 장군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목욕하여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가지고 왔던 금은보화를 엘리사에게 주며 받으라고 했을 때, 엘리사는 하나도 받지 않고 돌려보냈습니다.
그런데 게하시가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아람장군을 따라가서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왕하 5:22)”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받아와 감추었습니다. 게하시는 재물에 눈이 어두워서 자기가 나병에 걸리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셋째, 가룟 유다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의 하나가 되는 영광을 얻었지만, 물질에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사도들이 사용하는 재정을 담당했는데, 그는 도둑이었습니다. 자기가 관리하면서 지켜야 할 텐데, 그는 오히려 훔쳐갔습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는 완악했습니다. 끝까지 예수님을 속이다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넘기는 짓을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유다 속에 사탄이 들어갔다고 했습니다(눅 22:3). 마귀가 그의 마음에 악한 생각을 넣었다고 했습니다(요 13:2).
재물을 포기하지 못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 재물을 포기하지 못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는 사람, 재물을 포기하지 못해 재물의 노예가 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마 19:26)”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30절에 보면,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포기하고 십자가를 지고 고난 받는 사람에 대해 얼마나 큰 상급을 준비하셨는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베드로처럼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양과 염소의 비유에 나오는 양과 같이 살아간다면 승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의 백성을 사랑합니다. 거듭난 성도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형제들을 사랑합니다.
골로새서 3장 23절에 보면,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해 주님께 하듯 해야 합니다. 대접을 하더라도 주님을 대접하듯이 하고, 사랑을 베풀더라도 주님을 사랑하듯이 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산다면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사랑은 곧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재물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주면서 살면 됩니다. 누가복음 6장 38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믿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십니다.
사랑은 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을 위해 아낌없이 드리는 사랑이 나타날 것입니다. 형제를 위해 무엇이든지 주려는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우리가 주면서 산다면, 주님께서 후히 되고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안겨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여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눈으로 보고 체험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행복해질 것입니다. 가정에서도 이 말씀대로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가정이 천국이 되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 말씀대로 순종하면 우리 교회는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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