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생을 버리고 재물을 택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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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8:46 조회3,668회 댓글0건본문
영생을 버리고 재물을 택한 사람
영생을 버리고 재물을 택한 사람
2015년 05월 10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9:16~26
본문에 보면, 재산이 많아 부유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17절에 보면,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사람이 달려와서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질문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18장 18절에 보면,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 기록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부자 청년은 돈만 많은 것이 아니라, 세상적으로도 성공한 관리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런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복이 많은 사람,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돈, 명예, 건강 등 세상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님을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이 청년은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에 관심을 갖고 영생의 문제 때문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이 청년은 세상적으로도 훌륭하지만, 세상의 일에 관심을 갖기보다 영생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마가복음 10장 21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청년을 보시고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여러분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영생을 얻은 사람인 줄 믿습니다. 이보다 큰 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보다 큰 복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복을 다 받았다 해도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는 사람은 가장 큰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이 세상의 복을 다 받아 누리며 살다가 죽으면 구더기도 죽지 않을 만큼 뜨거운 지옥 속에서 영원히 고통 당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끝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는 사람보다 더 큰 저주를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환난과 시험이 많은 이 세상에 살면서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았고, 영생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장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주 행복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재산도 별로 없고, 몸도 건강하지 않으니 별 볼 일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내놓을 것은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영생을 얻었기 때문에 기쁘고 감사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감사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마다 기쁘고 행복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이 청년처럼 생각합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해야 영생을 얻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착하게 산 사람이 천국에 가서 영생복락을 누린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 제가 연세 많으신 할머니께 전도한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가 예수님을 믿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할머니, 예수 믿으세요.”라고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내가 이제 예수 믿어 구원 받을 수 있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러시냐고 물었더니 “내가 구원 받고 천국에 가려면, 평생 선하게 살았어야 하는데, 이제 예수 믿는다고 한들 어떻게 구원받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머니는 이제 너무 늦어서 천국에 갈 자신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선하게 살았기 때문에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만 믿고 영접하면 됩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제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셨습니다.
선한 일을 하고 공로가 있는 사람만 좋은 곳에 간다는 생각이 할머니의 머릿속에 가득하여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우리는 선한 일을 하면서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평생 선한 일만 행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 인간은 타락의 근성을 가지고 있어서 알게 모르게 많은 죄를 범합니다. 얼마나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은 똑같습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보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 보면,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선한 일만 행하고 죄를 범한 적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자기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그들의 모든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2장 8~10절에 보면,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된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행위는 보잘것없고, 행실을 보아서는 구원 받을 자격이 없지만,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이라는 은혜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는 은혜, 믿음으로 구원 받게 되는 은혜는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은혜를 받는 사람은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부르시고 구속하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가운데 택함 받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이것은 보통 은혜가 아닙니다.
에베소서 2장 5절에 보면,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고,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에 갈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은 부자 청년에게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어느 계명이오니이까”라고 다시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0절에 보면,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청년이 철저한 바리새인의 집안에서 태어났는지 모르지만, 이 청년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계명을 가르치고, 십계명을 외우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청년은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청년은 자기 생각으로는 자기가 사람을 죽인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간음한 적도 없습니다. 도둑질한 적도 없습니다. 자기 생각으로는 자기가 계명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이 청년은 자기는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세상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예수님께 “선생님이여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부자가 되면, 착각하기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며 살지만, 부자가 되면 착각하기 쉽습니다.
첫째, 부자는 자기 자신이 의인이라고 착각합니다.
자신이 부자가 되어 잘 살게 된 것은 자신이 바르게 살았기 때문이라고 복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둘째, 부자는 자신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잠언 28장 11절에 보면,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명철한 사람은 자신이 부족하고 허물이 많고 죄가 많다는 것을 압니다. 그런데 부자는 명철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은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지혜 있는 사람이라서 많은 재산을 모으고 사는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셋째, 부자는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 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아첨합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자신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넷째, 부자는 자신이 특별히 복 받은 사람이라고 착각합니다.
이렇게 착각하며 살기 때문에 부자들은 마음이 교만합니다. 뻣뻣한 자세로 행세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진짜 교만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마음이 교만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멸시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모자란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살려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 보면, 물질을 쌓아놓고 부자로 살 수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모른 채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라고 예수님께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면,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가 없는가가 무엇으로 나타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를 보면, 우리에게 믿음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을 실천하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통해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믿음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있는가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 믿음이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애씁니다.
우리는 믿음만큼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매우 좋은 사람은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자원해서 순종합니다. 억지로 순종해도 다행이지만, 믿음이 좋은 사람은 자원하여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이것을 통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려면, 세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희생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둘째,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겸손하게 섬길 줄 아는 사람만이 이 말씀대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셋째,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주는 것, 나누는 것이 이 말씀대로 실천하는 데 중요합니다.
부자 청년의 주위에 가난한 사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그런데 부자 청년은 나눌 줄 몰랐습니다. 재산 모으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 청년에게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본문 22절에 보면,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청년은 재산이 많아서 자신의 재산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2절에 보면, “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으로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을 버리고, 재물을 택했습니다.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부자 청년은 믿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영생의 축복은 세상의 금은보화와 비교할 수 없이 큰 축복이라는 것을 부자 청년은 몰랐습니다.
영생의 축복이 가장 큰 축복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영생을 얻기 위해서라면 재물은 물론이요, 목숨까지도 바치면서 믿음을 붙잡습니다. 영생의 복이 크고 귀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라면, 목숨을 버리면서도 신앙을 지킵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영생을 포기하고, 재물을 택했습니다. 부자 청년은 영생의 축복이 얼마나 큰가를 몰랐을 것이고, 영생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영생을 사모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밭에 진주가 있다는 것을 안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다 팔아서 밭을 샀습니다. 진주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가진 것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나 귀한 진주가 밭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팔아 밭을 샀습니다.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본문 23~24절에 보면, 부자 청년이 근심하며 간 이후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로 어떻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그만큼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래서 제자들은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7절에 보면,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엄청난 부자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면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부자가 되면 아무것도 걱정할 것도 없고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재벌 가운데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분 중에 크리스천인 한 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서울에 집회를 인도하러 가면, 그 부부가 바쁘신 가운데도 집회 시간마다 참석하고 제게 기도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분과 이야기해보면, 걱정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재벌들 중에 얼굴이 행복해 보이는 분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통령도 여러 번 만나보았지만, 대통령이 된 후에 “대통령이 되고 나니 이렇게 행복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걱정이 많고, 억울함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부자이고 출세했으니 좋아 보입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부자들은 부유할수록 걱정거리가 더 많아집니다.
돈 때문에 오히려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나라든지 복권 1등에 당첨된 후에 망하지 않은 사람이 없고, 불행해지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떼돈이 생기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그 돈을 탐하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 것 같습니까. 돈이 오히려 원수가 됩니다. 돈이 생긴 후에는 예전에는 하지 않은 고생을 하게 되고,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기도를 했습니다. 잠언 30장 7~9절에 보면, 솔로몬은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렇게 기도할 뿐 아니라, 이런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둘째, 재산이 많다고 해서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돈만 있으면 모든 병을 고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치지 못하는 병이 더 많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걱정이 많기 때문에 병도 많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산이 많다고 해서 오래 살고, 재산이 많다고 해서 죽을 사람이 죽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죽고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솔로몬은 엄청난 부자였지만, 60세에 죽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600년 살았으면 좋았을 텐데, 왜 60세에 죽었을까요?
죽고 사는 것은 우리의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물질의 많고 적은 것과도 전혀 상관없습니다. 죽고 사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셋째,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에 대해 부요하지 못한 자는 어리석은 부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12장 16~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어리석은 부자입니까? 재물을 모으기만 하고, 쌓아놓기만 하고, 나눌 줄 모르고, 주님을 위해 바칠 줄 모르는 사람이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쌍한 사람입니다.
지혜로운 부자는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이고, 내 재산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라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넷째, 하나님을 위해 살지 않는 사람은 부자가 될수록 불행해지고 타락하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유명한 왕이 되고, 부자가 되었지만, 타락하고 불행해졌습니다. 전도서에 보면, 솔로몬은 너무나 괴로운 나머지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했습니다(전도서 1:2). 솔로몬은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한스럽게 생각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지옥과 같았습니다. 전혀 행복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솔로몬이 자신을 찾아오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여 그들에게 전도하려는 마음을 가졌다면, 성경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고, 성경을 세계 여러 나라의 말로 번역했을 것이고, 전도하는 일에 성공하기 위해 성전에 나가 열심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는 마음이 솔로몬에게 있었다면, 솔로몬은 절대 타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더 큰 축복을 받았을 것입니다.
다섯째,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욥은 그 시대에 가장 큰 부자였습니다. 그리고 욥은 아주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다윗은 아주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역대상 29장 14절에 보면, 다윗은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겸손합니까. 다윗은 엄청난 부자였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바나바는 성령 충만한 부자였습니다. 사도행전 4장 37절에 보면,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 충만한 예루살렘교회는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습니다(행 4:32).
사도행전 4장 34~35절에 보면,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부자라도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니다.
많은 사람들이 물질의 탐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저버리고, 타락하고 멸망합니다. 물질의 탐심은 아주 무서운 것입니다. 사울 왕, 아간, 아나니아와 삽비라, 가룟 유다는 물질의 탐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저버리고, 멸망하여 지옥에 갔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서 하나님께서 아무리 부유하게 하셔도 걱정하지 않으시도록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타락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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