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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8장

용서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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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7:48 조회5,72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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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사랑

 

용서와 사랑

2015년 03월 15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8:15~20

 

마태복음 18장 12~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작은 자’는 사람들이 보기에 별 볼 일 없는 사람, 있어도 없어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작은 자’는 믿음이 없어 보이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 굉장히 힘 있게 봉사하는, 중요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 보여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작은 자 중에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아무리 작은 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보잘것없는 작은 자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주님의 뜻과 마음을 알아서 작은 자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본문에 보면, 믿음이 작아 교회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생겼을 때,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교회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가리켜 죄를 범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죄를 범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여러 가지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처자가 있는 직분자가 다른 여자와 관계를 맺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들통 났다고 생각해봅시다. 다른 여자가 교인 중 한 사람일 수도 있고, 교회 밖의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예수님은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형제가 범죄한 것이 드러났을 때에 먼저 그 사람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스스로 회개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그 사람을 찾아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이 언제 회개할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회개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죄가 더 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범죄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빨리 그 사람을 찾아가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알게 되었으니 아무도 모르게 혼자 조용히 그 사람을 찾아가서 권고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려면,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갖느냐가 참 중요합니다.

첫째, 한 사람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자기는 의인이고, 특별한 인간이고, 굉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건방진 자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나도 당신과 다름없는 죄인입니다.’라고 생각하고, 온유하고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잠언 25장 15절에 보면, “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뼈가 얼마나 단단합니까. 그런데 부드럽게 말하는 것이 뼈를 꺾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범죄한 사람을 찾아가기 전에 먼저 충분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살펴서 ‘나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1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라고 말했습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범죄한 사람이 나의 권면을 듣고 순종하여 회개하고 죄를 끊어버렸다면, 멸망의 길로 가던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주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이와 반대로 그 사람이 권고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을 두 번째 찾아갈 때에는 혼자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같이 가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19장 15절에 보면,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의 잘못을 확정짓고 처벌하려 할 때에는 한 사람의 말만 듣고 확정짓지 말라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말씀하신 것과 예수님의 말씀이 일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증인을 선택할 때에는 주의해야 합니다. 어느 사람이 교회에서 범죄한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혼자 가서 이야기해도 말을 듣지 않았을 때에는 몇 사람을 데리고 같이 가야 합니다. 그때 어떤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할까요?

첫째, 믿음의 본이 되는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둘째, 함부로 소문내지 않을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입이 가벼워서 떠벌리고 다니거나 무책임한 사람을 데리고 가면 안 됩니다.

셋째, 모든 성도들로부터 신임을 얻는 사람을 데리고 가야 합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고, 모든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이런 사람과 함께 가서 권고한다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순종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문제가 해결된다면, 한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소문나지 않고 문제를 조용히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범죄한 사람에게도 좋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있었음에도 마치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처럼 문제가 조용히 해결되니 좋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했는데도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완악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없어야 하는데, 이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이런 사람은 문제를 크게 일으킵니다.

본문 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교회에 말한다’는 것은 담임목사에게 보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사람에게 이렇게 권고했는데도 이 사람이 고치지 않으니 교회에서 처리해주셔야겠습니다.”라고 보고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담임목사는 장로들과 의논합니다. 범죄한 사람을 불러서 심문하게 됩니다. 우선, 범죄한 사실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회개하도록 권면하고, 그 사람에게 기회를 줍니다.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이런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의 뜻에 순종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 사람이 교회에서 맡았던 직분을 내려놓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합당한 책벌을 내려서 근신하며 회개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당회에서 결정한 뜻에 순종해야 하는데,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히려 화를 내며 당회에서 결정한 것에 반항하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8장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교회에서 말하는데도 듣지 않아서 이방인과 세리와 여겨 출교시켰는데, ‘인간들이 그렇게 했는데, 무슨 상관이 있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권위를 매우 존중하십니다.

 

사람들이 모여 결정한 것이지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모릅니다. 그것을 두렵고 떨리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해버리는 사람은 천국과 지옥도 믿지 않고, 하나님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도 믿지 않는 완악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최후가 어떻게 될지, 우리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아볼 수 있는 증거가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지만, 모두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평생 교회에 다니고, 예배를 드렸다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미국의 어느 교회의 경우, 그 교회에서 봉사를 가장 열심히 하고, 가장 충성하는 사람이 그 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러 온 목사에게 자신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니라고 솔직히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인품이 훌륭하고, 교회에서 봉사를 열심히 하다 보니 교회의 장로가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 중에는 별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사기꾼도 있고, 도둑도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단지 교회생활을 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 사람이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무엇을 통해 알 수 있습니까?

첫째, 회개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말씀에 100%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고, 말씀에 순종합니다.

 

요한복음 3장 36절에 보면,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영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영생을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있습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생기면,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믿음이 자라는 만큼 말씀대로 사는 것이 즐겁고, 철저히 말씀대로 살려고 애씁니다. 그 모습을 통해 믿음이 많이 자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셋째, 변화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와서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가, 교회에 나온 후에 성품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기 전에는 화를 잘 내고, 한번 화가 나면 뒤집어 엎어버리던 사람이 교회에 나온 후에는 화를 참게 되고, 악하던 사람이 점점 온순해지고, 착해진다면,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이 함께하신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거짓말을 아주 잘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는 사람이 진실해지고 솔직해집니다. 이런 변화를 보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를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5장 9절에 보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과거에는 어둠 가운데 있었는데,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빛의 자녀가 된 것이 열매로 나타나는데,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포도나무에는 포도가 열리게 되어있습니다. 이처럼 열매를 보면, 그 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열매를 보면, 그 사람이 진짜 선지자인지, 가짜 선지자인지 알 수 있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통해 어떤 열매가 나타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넷째,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참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섯째, 형제를 사랑할 뿐 아니라, 원수까지 사랑하는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를 박해하는 사람에게 보복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줍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성령 충만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증거가 하나도 없고, 죄를 범하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교회에서 권고하는 것도 듣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아무리 작다 해도 교회를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비록 두세 사람이 모였다 할지라도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이라면, 그 가운데 주님이 반드시 계십니다.

 

에베소서 1장 22~23절에 보면,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비록 두세 사람이 모인 교회라 해도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십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러므로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에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교회를 이루었다면, 교회가 비록 작다 해도 교회를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해도 처음부터 믿음이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라고 해도 처음부터 믿음이 대단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믿음이 작습니다. 교회 안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린도교회는 1년 반 만에 아주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거듭났다고 해도,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예수님을 믿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믿음이 아직 작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대부분은 어린 아이와 같았습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혈기가 아직 남아있고, 예전의 버릇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시기가 있고, 분쟁이 있습니다.

이들 중에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데,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그런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사람들을 바라봅니다. 이것이 믿음이 작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은혜를 받아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고전 3:6~7).

사도 바울은 말씀의 능력이 있었지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믿음이 어린 사람들을 자라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은혜를 받아 믿음이 쑥쑥 자라 교회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부흥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습니다.

목회자가 말을 잘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설교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교회를 성장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이후, 베드로가 어떻게 변했습니까?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뜨겁게 기도하고,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고, 열심히 전도하고, 성도들끼리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백성에게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구원 받는 백성을 날마다 더해주셨고, 예루살렘교회는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것은 성령이 하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지, 사람이 한 것이 아닙니다.

 

스데반 집사가 순교한 이후에 흩어진 성도들은 성령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비록 흩어지지만, 가는 곳마다 전도하여 교회를 세웠습니다.

안디옥에서는 이방인들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전도가 매우 잘되었습니다. 교회가 커지고, 훌륭한 신앙의 인물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은 금식하며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성령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워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가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성령께서 교회를 주도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좋게 변화되고, 많은 성도들이 모이고, 부흥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은 모두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제게 “이 교회는 네가 세운 교회가 아니다. 내가 세웠다. 네가 설교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니다. 네가 목회를 잘해서 교회가 부흥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백성을 모아주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을 아무데나 맡기실 수 없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이곳으로 모아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많은 사람들을 모아주시니 먼 곳에서도 와서 수만 명의 성도가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주님께서 다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8장 18~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라고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교회는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눈물로 중보기도 하며, 언제라도 그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를 용납해주고 용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그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곧 사랑입니다.

 

우리는 범죄한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사람이 범죄한 것이 드러났을 때, 우리가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정죄한다면, 그 사람은 더 악해질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와의 관계는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일어날 일은 뻔합니다. 모든 것이 더 나빠질 뿐입니다.

 

가장 좋은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입을 꾹 다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은혜를 주십니다.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충만해지고, 믿음이 충만해지면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이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충만해야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사랑이 충만해지면, 아무리 못된 인간이라도 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 사람을 위해 눈물 흘리며 중보기도하게 되고, 그를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고, 그를 위해 축복할 수 있게 됩니다.

 

저는 실제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제가 그렇게 기도해보니 범죄한 사람의 마음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주님이 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져주시니 그 사람의 마음이 한순간에 변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이 저를 찾아오고, 제게 전화를 하고, 저와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절로 화목하게 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저를 사랑하고 존경하게 되고, 저를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천국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17~21절에 보면,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라고 말했습니다.

교회가 이 말씀대로 산다면, 교회는 모두 천국이 될 것입니다. 교회가 이 말씀대로 살면, 교회는 이 세상의 빛이 되고, 저절로 부흥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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