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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8장

천국에서 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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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7:45 조회3,66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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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에서 큰 자

 

천국에서 큰 자

2015년 03월 08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8:1~6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9장 33~34절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하기 전에 예수님께 오는 길에 “누가 크냐”라고 쟁론했습니다.

 

본문의 일이 있은 지 한 달 쯤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을 세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마 16:21, 17:22. 20:18).

마가복음 9장 32절에 보면,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심각하게 말씀해주시는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을 뿐 아니라, 묻기도 두려워했습니다.

주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지만, 왜 제자들은 깨닫지 못했을까요? 욕심에 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출세하고 싶은 욕심, 명예와 권세를 얻어 세상에서 높아지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다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변화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변화됩니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자신의 죄와 허물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회개하는 만큼 거룩해지고, 회개하는 만큼 겸손해집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변화입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의 허물을 깨닫고, 자신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며 전심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회개할수록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사해주시고, 우리를 정결하게 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자가 됩니다.

하나님은 회개한 자에게 성령의 선물을 주셔서 죄를 끊어버리게 하시고, 죄와 싸워 이기게 하시기 때문에 거룩하게 살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우리에게 생깁니다.

그러므로 철저히 회개하는 사람은 거룩해집니다. 자신에게 죄가 얼마나 많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가를 알기 때문에,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은 아주 겸손하게 변화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만난 이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라고 고백했습니다(딤전 1:15). 자기 같은 죄인은 세상에 없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은 사도가 되었지만, 자신은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했습니다(고전 15:8). 덜 된 인간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사도 바울이 말을 잘해서 자신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정말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자신을 어린 아이와 같이 낮추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서로 자기가 잘났다고 큰소리치며 쟁론했습니다.

자기가 남보다 크다고 주장해서 남보다 큰 자가 됩니까. 자기가 남보다 뛰어나다고 큰소리쳐서 존경받게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가복음 9장 3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남보다 큰 자가 되려면, 겸손하게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저절로 존경받고 높아집니다.

 

본문 마태복음 18장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마치 어린 아이인 것처럼 자기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날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깨닫지 못하고, 예수님이 유대인의 왕이 되시면 한 자리 차지할 것만 생각하고, 서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누가 더 큰지 쟁론했습니다.

 

본문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3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같이 겸손한 사람이 되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진심으로 거듭난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아주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에 아주 충성스러운 일꾼 중에 부산에서 유명한 분이 계십니다. 예전에 이분이 전성기였을 때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젊었고, 성도의 가정을 심방할 때라 하루는 그 집에 심방 갔습니다.

그 당시 이분은 아직 교회에 다니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목사가 심방 왔으면, 예배를 드려야 할 텐데, 이분은 자기보다 어린 젊은 목사가 심방 왔으니 마치 환자 대하듯이 저를 대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제가 말할 틈이 없었습니다. 저는 마치 병원에 찾아간 환자처럼 그분의 이야기를 듣다가 돌아왔습니다.

이분은 목사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고, 저를 환자처럼, 어린 아이처럼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났습니다. 제가 예배실을 들어오는데, 앞자리에 그분이 앉아계셨습니다. 저는 그분을 발견하고, 그분께 인사하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뒤로 돌아서서 고개를 숙이고 계셨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후,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철없는 짓이었는가, 얼마나 건방진 행동이었는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처럼 변했습니다.

거듭난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종을 대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예전에 교만할 때에는 목사에게 함부로 말했는데, 거듭난 후에는 달라집니다. 거듭난 성도는 매우 겸손해집니다.

 

우리 교회에 나오는 새가족이 많습니다만, 그 중에는 어른 행세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신이 가진 돈을 자랑하고, 자신의 지위를 자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니까 대접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 변화되어 교회에서 봉사하고, 성도들을 섬기려고 합니다. 겸손한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런 변화가 일어날까요?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음이 생기면,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거듭난 자가 되면,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본문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연자 맷돌은 지름이 120~150㎝ 되는 대형 맷돌로, 소나 당나귀가 끌어 돌립니다. 연자 맷돌을 목에 달아서 깊은 바다에 밀어넣는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 중에 작은 자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연자 맷돌을 목에 달고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7~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작은 자라도 실족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8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 작은 자’는 교회에 나오는 어린 아이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믿음이 겨자씨만큼 작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이 사람이 예수님을 믿나, 형식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것은 아닌가’를 분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믿음이 작은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작아도 그 믿음으로 구원 받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만 구원 받는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자신이 엉터리라고 생각되고,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믿음이 없는 사람인지 구분할 수 없다 할지라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사람은 구원을 받습니다.

 

겨자씨가 작지만, 겨자씨를 심으면, 1년 만에 엄청나게 자랍니다. 제가 대만에 갔을 때, 겨자씨를 뿌려 그것으로 울타리를 만든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은 믿음이 작지만,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은혜 받기 시작하면, 믿음이 쑥쑥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작은 사람은 실족하기 쉽습니다. 믿음이 매우 약하고 작기 때문에 실족하기 쉽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에서 누군가가 업신여긴다거나 함부로 대하면, 낙심하여 교회에 나오지 않고,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함부로 말하거나 소홀히 대하면, 이런 사람들은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역자들이나 중직자들이 본이 되지 않게 행동하거나 세상 사람들처럼 험하게 말하므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낙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제가 중ㆍ고등학생이었을 때, 교회에서 분쟁이 일어났습니다. 평소에는 은혜롭고 기도 많이 하시던 분이 어떻게 그렇게 행동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그 일로 인해 교회를 떠나 타락한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라고 하면 욕을 하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신학교에 입학할 만큼 열심 있던 학생들 중에 신학교에 그만 다니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평소에 존경하던 사람이 말도 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얼마나 낙심했는지, 신학교에 그만 다니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낙심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큰 죄가 되는지, 본문에서 예수님은 강조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낙심하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져 죽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아주 귀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18장 12~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찾으면 길을 잃지 아니한 아흔아홉 마리보다 이것을 더 기뻐하리라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이 작은 자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과 같은 사람을 찾아서 그들을 만나주시고 불러주시고 받아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에 세리라고 하면, 백성들이 저주하고 욕할 정도로 나쁜 사람인데도 예수님은 세리 마태에게 믿음이 있는 것을 아시고, 그를 불러 제자로 세우셨습니다.

사마리아의 수가 성 여인은 과거에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자도 남편이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이 여자의 얼굴이 예뻤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온 동네 사람들이 그 여자를 가리켜 창녀라고 하고, 별별 소리를 다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는 사람들이 우물에서 물을 뜰 때에는 우물가에 나오지 못하고, 사람들이 낮잠 자는 시간에 우물가에 나와 물을 길어갔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가장 먼저 지옥에 갈 사람으로 취급받았지만,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만나기 위해 일부러 우물가에 가서 이 여인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만나주시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마을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말했습니다(요 4:29).

동네 사람들이 신기하게 생각하고 몰려와서 보고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이틀 동안 그곳에 머무시게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예수님을 믿게 된 자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수가 성 여인은 세상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사람이었지만, 예배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메시아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이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는 천대 받지만, 작은 믿음을 가진 이 여인을 예수님은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만나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히신 십자가의 옆에 있던 십자가에 못 박혔던 강도는 평생 강도짓을 하다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악독한 인간은 십자가형보다 더 한 형벌을 받아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강도는 죽기 전에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눅 23:42). 이에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23:43).

그는 평생 강도짓을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남의 것을 빼앗고, 사람을 죽이는 등 못된 짓을 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 앞에 손을 벌렸습니다.

주님은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사람이 보기에는 구원 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큰 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들을 귀히 여기셨습니다.

 

마태복음 9장 9~13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은 세관에 앉아있는 마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때부터 마태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예수님과 제자들만 집에 초청한 것이 아니라, 친구인 세리들을 많이 초청하고, 세상 사람들이 죄인으로 취급하는 사람들을 많이 초대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과 같이 식사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말을 들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계명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5장 1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계명입니다.

 

마태복음 5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이나 서기관은 자신이 가장 큰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잔칫집에 가면 언제나 상석에 앉았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알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행하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 곧 그 경문 띠를 넓게 하며 옷술을 길게 하고 잔치의 윗자리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들은 이런 짓을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실족하게 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3~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이들은 말을 번드르르하게 잘했습니다. 잘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꾸로 행동했습니다. 자기들이 전도한 사람 앞에서 자기들이 가르친 것과 반대로 행동하니, 그들로부터 전도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낙심하고, 얼마나 실족하겠습니까.

그래서 그들로부터 전도 받은 사람들이 더 악해지고, 더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도 천국에 가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도 천국에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시간, 생각해봅시다. 나 때문에 실족한 사람은 없는가, 나 때문에 낙심하여 교회를 떠난 사람은 없는가 생각해봅시다.

마태복음 18장 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 때문에 낙심하고, 나 때문에 실족한 사람은 없는지 깊이 생각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생각나는 사람이 있으면, 철저하게 회개하여 용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반드시 화가 임합니다.

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타락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이 말씀이 축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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