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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7장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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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5:26 조회3,446회 댓글0건

본문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

2015년 02월 0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7:1~8

 

본문의 말씀은 마가복음 9장 2~13절과 누가복음 9장 28~36절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세 군데에 기록된 말씀을 종합해보면, 전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죽는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예수님은 메시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전지전능하신 분이시므로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왕국이 건설되면, 제자들은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제자들은 그렇게 되었을 때에 영광을 누릴 것을 생각하며, 기쁨과 희망에 차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셔서 고난을 받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아마 이때 제자들은 꿈과 희망이 사라져서 근심하고 슬퍼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4~2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죽을 각오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십자가의 고난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죽을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마태복음 17장 1절에 보면,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28절에 보면, “이 말씀을 하신 후 팔 일쯤 되어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가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산은 헤르몬 산을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9장 29~30절에 보면,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예수님의 모습이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은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제자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과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요? 누가복음 9장 31절에 보면,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에 대해 예수님과 이야기했습니다.

 

누가복음 9장 32절에 보면, “베드로와 및 함께 있는 자들이 깊이 졸다가 온전히 깨어나 예수의 영광과 및 함께 선 두 사람을 보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깊이 졸다가 깨어났습니다. 아마 높은 산을 오르느라 힘들었고, 몹시 피곤했나 봅니다.

 

몹시 피곤하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피곤한데도 기도하려고 애쓰는 분이 있습니다. 졸면서도 기도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제 경험에 의하면, 피곤한데도 기도하다가 졸면, 마귀가 역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하다가 피곤하고 졸릴 때에는 “주님, 아주 피곤해요. 잘래요.”라고 말씀드리고 편하게 잡니다. 30분이라도 편하게 자고 정신이 맑아진 후에 일어나 기도합니다.

정신이 맑으니 더욱 힘 있게 기도하다 보면, 기도 속도도 빨라지고, 기도 내용도 깊어지고, 은혜가 넘칩니다.

 

예전에는 하루에 두세 편의 설교를 써야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는 제가 설교를 다 해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루에 두세 편의 설교를 쓰려니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금요일 철야기도를 하느라 밤을 새며 기도하고 난 후, 설교를 정리하려니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설교를 쓰려고 하면 졸렸습니다. 하루는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옆방에서 기도하는 소리에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 순간 피로가 사라지고, 은혜 가운데 설교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아주 피곤한 가운데에 설교를 쓰면, 피곤한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설교를 쓰다가 피곤할 때에는 아예 편하게 잡니다. 말씀을 생각하며 잡니다.

그러고 나서 일어나면, 제가 자는 동안 하나님께서 말씀을 제 머릿속에 정리해주셔서 말씀을 쉽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졸면서 기도하지 마세요. 아예 편히 주무세요. 그러고 난 후, 다시 일어나서 기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졸다가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려보니 예수님의 용모가 변화되어있고, 예수님께서 희고 빛나는 옷을 입으신,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누가복음 9장 33절에 보면, 모세와 엘리야가 사라진 후,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아직 잠에 취해있는 모양입니다.

베드로가 갑자기 주님을 위해, 모세를 위해,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고 살겠다고 했습니다.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말입니까.

 

누가복음 9장 34~35절에 보면,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기도하시다가 변화되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은 장차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가 보게 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얼마나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오실지 제자들에게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범한 죗값을 대신 치르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온갖 고난을 당하시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백성들,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한 사람도 잃어버리지 않고, 다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기 위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40일 후에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모든 사람들이 보았습니다.

그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고 말했습니다(행 1:11).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2천 년 전 마구간에서 태어나실 때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으로 이 세상에 다시 오십니다. 그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러 이 세상에 오셨지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에는 심판 주로, 만왕의 왕으로 오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시면, 이미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원히 예수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변화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본 예수님의 모습은 영광 중에 재림하실 예수님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장차 영광 중에 재림하실 예수님의 모습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에게 왜 미리 보여주셨을까요? 모든 꿈과 희망을 잃어버리고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고 격려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님처럼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게 될 때에 받을 영광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던 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마치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모습을 왜 그들에게 보여주셨을까요? 이를 통해 주님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이 장차 받을 영광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26~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를 위해 사는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예수님이 가지신 권세를 가지고, 영광을 받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4절에 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에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고난당하고, 주님을 위해 순교하고, 주님을 위해 살았던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천 년 동안 왕 노릇 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6~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주님을 위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고난을 받고, 순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일한 대로, 충성한 대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한 모세는 1,480년 전에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9백여 년 전에 불 수레와 불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 큰 권능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크게 했습니다.

 

모세의 경우,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출하여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때,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홍해가 갈라져 육지같이 되었습니다. 아말렉과 이스라엘이 전쟁할 때에는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기만 해도 이스라엘이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생수가 나오게 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이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능력 있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엘리야의 경우, 아합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에 엘리야가 기도하니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고, 엘리야가 다시 기도하니 비가 내렸습니다.

엘리야가 사르밧에 가서 한 과부에게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라고 했습니다. 과부가 그의 말에 순종하니, 다시 비가 내릴 때까지 그 집에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집집마다 굶고 있는데, 과부의 집에 그런 기적이 일어났다면, 옆집에서도 얻어먹으러 과부의 집에 왔을 것이고, 친척들도 그의 집을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래서 식구가 많이 늘어났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부의 집에는 3년 반 동안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고 사르밧 과부의 아들이 죽었을 때, 엘리야가 기도하니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갈멜 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400명과 엘리야가 대결했습니다.

바알의 선지자와 아세라의 선지자들이 빌고 난리쳤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기도했을 때, 하늘에서 불이 임하여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처럼 모세와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이 세상을 떠날 때에 시체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을 존경하다 보면, 밤낮 그 사람의 무덤에 가서 절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신명기 34장 5~6절에 보면, “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시체를 어떻게 하셨는지 모릅니다. 모세의 장례식을 했을 텐데, 모세의 시체는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열왕기하 2장 11절에 보면, “두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엘리야는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는 가운데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엘리야가 겉옷을 떨어뜨리고 갔는데, 엘리사가 그것을 주워 그것으로 요단 강을 쳤더니 요단 강물이 갈라지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모세와 엘리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큰 축복은 이들이 하나님께 인정받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하나님 나라에 있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엄청난 일을 하고, 능력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에게 칭찬 듣고 존경받아도 하나님 나라에 가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태복음 7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회자가 되어서 평생 목회하고, 노회장, 총회장을 하고, 신학교에서 교수로 신학생들을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큰 권능을 행한다면,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기에는 굉장한 목회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 갔을 때,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될 사람이 많습니다.

 

평생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등의 능력을 행하고, 권능을 많이 행했는데, 왜 주님을 이들을 모른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우리가 많은 일을 하고, 큰일을 하느냐보다 하나님 앞에 어떤 사람이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엄청난 일을 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은 사람, 불법을 행하는 나쁜 짓을 한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이들을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중심을 보셨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 같았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고, 자기를 위해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교회에서 직분자로서 충성 봉사하는 것은 좋지만, 자기를 위해 봉사하는가,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가를 잘 생각하세요.

자기가 영광 받고, 자기가 칭찬 받고, 자기가 인정 받고, 자기가 교회에서 특별한 대접 받으려고 봉사하는가, 오직 주님을 위해 봉사하는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최근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이단의 설교를 들어보았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엉뚱한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붙잡아놓고 사람들을 미혹했습니다.

성경에 대해 제대로 아는 성도라면, 그들이 이단인 것을 금방 알아채고, 그들을 뿌리칠 수 있을 텐데, 성경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미혹되어서 그들을 따라갑니다.

 

이단 교주들은 재산이 많습니다. 그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재산을 모아 수백억, 수천억 원의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파, 통일교 등 이단 교주들은 재벌입니다.

그들은 엄청난 재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것처럼 말합니다.

그리고 이단 교주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신이 모든 영광을 받아 누립니다. 그리고 이단들은 온갖 죄를 범하고, 불의한 짓을 많이 행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주님으로부터 버림 받게 되고,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보다 1,480년 전에 일하다가 죽었던 모세가 나타나 예수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모습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모세는 120세에 죽었지만, 그의 몸만 흙으로 돌아갔을 뿐, 그의 영혼은 지금도 주님과 함께 천국에 살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고생은 끝나지만, 천국에 가서 예수님과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에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믿음으로 살고, 믿음으로 충성하다가 죽는 사람들에게 죽는 날은 세상 고생이 끝나는 날이고, 이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삶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 사실을 믿으며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은 죽는 것을 슬퍼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 만날 것을 생각하며 오히려 기뻐합니다.

 

우리가 죽는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부활합니다. 다만 두 가지 부활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명의 부활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죽으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부활합니다.

오늘이라도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면, 이들이 부활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됩니다. 이들은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생명의 부활이 첫째 부활입니다.

심판의 부활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후, 천년왕국 시대가 끝난 후에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이 부활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심판 받고,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심판의 부활이 둘째 부활입니다.

 

누가복음 20장 3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지만, 우리의 영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살든지, 지옥에서 살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한쪽은 천국이고, 한쪽은 지옥입니다.

 

아무쪼록 저와 여러분은 에녹, 엘리야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산 채로 변화되어 주님을 만나거나,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는다면,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생명의 부활에 참여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 올라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산에서 초막 셋을 짓고 살고 싶어 했습니다.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고, 거기서 살기 원했습니다.

그들은 헛소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왜 이렇게 말했을까요? 주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니 아주 좋았습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들도 그곳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사명도 알지 못하고 말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헛소리입니다.

 

누가복음 9장 34~35절에 보면, “이 말 할 즈음에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는지라 구름 속으로 들어갈 때에 그들이 무서워하더니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본문 마태복음 17장 4~8절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제자들이 듣고 엎드려 심히 두려워하니 예수께서 나아와 그들에게 손을 대시며 이르시되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의미입니다.

 

평소 우리는 세상의 소리만 듣고 있습니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세상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사람들을 통해 세상 소리를 듣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사람이라도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 불완전한 인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말씀만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예수님께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예수님만 의지하고,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 기울이면서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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