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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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7:38 조회3,527회 댓글0건본문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2015년 02월 22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7:14~20
이 세상에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즉 성령이 계신 하나님의 자녀와 성령이 없는 마귀의 자녀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매우 복잡한 교회였습니다. 문제도 많고, 여러 가지로 부족한 교회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썼습니다(고전 3:16).
그리고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라고 썼습니다(고전 6:19~20).
우리에게 부족한 것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 속에 성령이 계신, 성전 된 몸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은 모두 성령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이 세상에서 손을 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계시지만, 그리스도의 영, 보혜사 성령이 언제나 우리 안에 계십니다. 주님이 영으로 오셔서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믿음이 부족하다 해도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안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계십니다. 그 안에 주님이 계십니다.
러시아 선교사를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러시아에 있는 신학교를 열심히 돕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돕는 러시아의 신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먹고 자고 공부합니다. 우리 교회를 비롯한 여러 교회에서 학생들이 먹고 자고 공부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에는 좋은 학생들만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학교의 학생 중에는 농땡이 학생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목회자가 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면 속상합니다.
학생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엉망입니다. 오갈 데가 없어 학교에 와서 먹고 자는지 모르지만, 선교사가 보기에 그 학생은 신학교에 맞지 않는 학생이라고 생각될 정도입니다. ‘이 학생은 목사가 되면 오히려 골치 아프다.’라고 생각되는 학생도 있습니다.
그래서 선교사는 그 학생들을 학교에서 내보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좋은 학생들만 가르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나쁜 학생들이 얼마나 못된 행동을 하는지, 좋은 학생들이 학교에서 다 떠났습니다. 학교에 있어야 할 학생들은 있지 않고, 학교에서 떠나야 할 사람이 남았습니다. 선교사가 얼마나 속상했겠습니까.
그래서 ‘신학교를 더 이상 운영할 수 없다. 학교 문을 닫아야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주여, 이제 더 이상 신학교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네가 이 학생들을 내쫓는 것은 나를 내쫓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아주 농땡이 학생들입니다. 그래도 예수님을 믿고 신학교에 온 학생들의 속에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그 학생들을 학교에서 내쫓는 것은 예수님을 내쫓는 것과 같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믿음이 좋아 보이고, 열심이 있어 보이는데, 한 주 동안 세상에서 별별 죄를 짓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람이 보기에는 믿음이 없어 보이지만, 그 속에 주님이 계신 사람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왜 귀합니까? 그 속에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학생들이지만, 그들을 학교에서 내쫓는 것은 주님을 내쫓는 것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선교사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학생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학생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참고 견디며 신학교를 운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니까 학생들이 다 변화되어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주님이 내 안에 계신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까? 주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나와 함께하시는 것을 항상 느끼며 살아야 하는데, 왜 그렇지 못합니까?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매우 작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우리의 믿음만큼 순종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계명대로 살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나의 모습을 보면, 나의 믿음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에 교회에 오면, 지난 한 주간,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주님의 계명대로 순종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할 수밖에 없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이 아주 작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작으니까 주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믿음만큼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라야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보여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여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 수 있게 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산다고 생각해보세요. 요셉은 하나님이 언제나 함께하셔서 범사에 형통했습니다. 요셉 자신만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이 잘 되었습니다. 요셉으로 인해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지만, 망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로 인해 총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인이 나타나면,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거리가 태산같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엄청난 축복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주님이 함께하시면, 아무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성령이 그 속에 거하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유다서 19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속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다. 평생 교회에 다녀도 실제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인데, 그 사람들 속에는 성령이 없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직분도 있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 안에 성령이 계시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귀의 종 노릇을 하기 때문에, 마귀의 자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원수 마귀는 누구에게든지 공격합니다.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고, 믿음이 좋고, 성령 충만하다고 해서 마귀가 공격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마태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로 가셔서 40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셨는데도,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세 번이나 시험했습니다.
성령 충만하신 예수님,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신 예수님, 40일간 금식하며 기도하신 예수님을 시험했던 마귀가 누구를 내버려두겠습니까.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 보면,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신이 강하다고 생각할 때, 은혜 충만하다고 생각할 때,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마귀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시험했듯이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도 찾아와서 넘어뜨리려고 함정을 파놓기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고, 괴롭히고 공격합니다.
그런데 하늘과 땅을 주장하시고,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하나님의 자녀를 손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마귀의 시험을 허락하시는데,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 사람의 믿음만큼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매우 큰 시험을 당하여 앞이 캄캄하십니까. 그만큼 믿음이 크기 때문에,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피할 길을 반드시 열어주실 것이고, 능히 감당하고도 남을 줄 믿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가리켜 도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찾아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죄의 종으로 만듭니다. 정욕의 종, 사람의 종이 되게 해서 하나님을 따르기보다는 사람을 따르게 만듭니다. 돈의 종이 되게 하고, 마귀의 종이 되게 해서 결국 멸망하게 만듭니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고,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만들고, 하나님을 대적하게 만들고, 사람들의 육신과 정신을 병들게 만듭니다. 우울증에 걸리게 하고, 각종 정신병에 걸리게 만듭니다.
악심을 품게 하고, 포악한 짓을 하게 만듭니다. 사울 왕의 속에 악신이 들어갔을 때, 얼마나 악한 짓을 했습니까.
육체의 욕망과 쾌락을 추구하게 해서 음란한 짓을 범하게 합니다. 거짓말을 잘하게 하고, 거짓되고 이중적인 생활을 하도록 만듭니다.
교회를 공격하도록 만듭니다. 교회 안에 문제를 일으키게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잘못된 것을 책망하고 치리하면, 그에 불복하게 합니다. 교회의 뜻에 복종하지 않게 합니다. 사탄이 이런 짓을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15~1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만일 듣지 않거든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증하게 하라 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거든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같습니다.
교회의 말도 듣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반발하고, 교회를 배반하고, 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마귀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면,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가 아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귀신이 쫓겨나고, 모든 병을 고침 받았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마가복음 9장 14~29절과 누가복음 9장 37~43절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내용을 기록한 사람들의 지식과 생각, 관점에 따라 조금의 차이가 있지만, 세 군데에 기록된 말씀을 종합해보면,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에 보면, 귀신 들린 아이가 외아들이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눅 9:38).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귀신 들렸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막 9:21).
마가복음 9장 18절에 보면,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0절에 보면,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2절에 보면,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7장 15절에 보면, “주여 내 아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그가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아이의 병이 간질이었다고 분명히 기록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2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 아이 속에 있는 귀신을 향해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이 아이가 말하지 못하고 듣지도 못하는 아이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아이 속에 보통 귀신이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아이 속에 큰 귀신이 바글바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 때문에 아이의 부모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에 올라가셨다가 내려오신 후 이튿날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아이를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계시는 동안, 이 아이의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제자들을 찾아왔지만, 제자들은 이 아이를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아버지는 다음 날, 예수님이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이후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아이를 고쳐달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말했습니다(막 9:22).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몰랐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9:23). 이에 아이의 아버지가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말했습니다(막 9:24).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달려와서 모이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시며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막 9:25).
마가복음 9장 26~27절에 보면,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누가복음 9장 43절에 보면, “사람들이 다 하나님의 위엄에 놀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니 귀신이 쫓겨나는 것을 사람들이 보고 놀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고 메시아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셨음을 보여주기 위해 예수님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은 자에게 “일어나라”라고 말씀하시니 죽은 자가 일어났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처럼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낙심하지 마세요. 예수님께 나아오면 됩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앞에 나아오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7장 19~20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작아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고 패역한 세대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7:17).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도 없는 제자들을 보시며 통분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있지만 믿음이 매우 작은 것이 문제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개인과 가정, 교회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믿음이 작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문제 되지 않을 일도 믿음이 부족하다 보니 문제가 됩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의 특징이 있습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은 매사에 부정적입니다. 그리고 매사에 의심이 많습니다. 두려움이 많습니다.
그리고 걱정이 많습니다. 그래서 10년 후의 일을 미리 걱정합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준비해놓으시는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미리 걱정합니다. 쓸데없는 걱정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원망과 불평이 많습니다. 잘 낙심합니다. 그리고 큰 시험을 당하면, 절망에 빠져버립니다.
왜 이렇게 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공중에 나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가 어떻게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겠습니까. 나에게 일어나는 문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만 바라보고, 사람만 바라보고, 문제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오히려 문제가 커집니다. 문제만 바라보고 걱정하면, 문제가 몇 배로 확대됩니다. 그리고 믿음은 더 작아지고 흔들리고 없어집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개인의 문제,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를 믿음으로 해결하려면,
첫째,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확무오하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둘째, 기도만 해야 합니다.
입을 벌리지 마시고, 입을 꾹 다물고, 기도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는 자는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만 한다면, 우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으니 귀신을 쫓아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10장 5~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전도하러 내보내시며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낼 수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9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왜 문제가 해결될까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기도해보세요. 그렇게 하면 반드시 은혜를 받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깨닫게 됩니다.
첫째, 죄를 깨닫습니다.
죄를 깨달으면, 회개하게 됩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만큼 거룩해집니다. 철저히 회개해보세요. 철저히 회개하면, 성령께서 선물을 주셔서 죄와 싸워 이기게 하시고, 마귀와 싸워 이기게 하시고, 거룩하게 살게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습니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때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불 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고, 주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주님의 계명을 기쁜 마음으로 지키면,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을 체험하며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셋째, 사명을 깨닫고 충성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증인이 됩니다.
이사야 43장 10절에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알고 믿으며 내가 그인 줄 깨닫게 하려 함이라 나의 전에 지음을 받은 신이 없었느니라 나의 후에도 없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은혜를 받으면, 내가 믿는 예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게 되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은 것이 얼마나 좋은가를 전하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에 보면,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많은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많은 사람을 감동시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 받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 열매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나로 인해 구원 받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 열매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열매’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가운데,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 받게 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변화가 일어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생각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예전에는 쓸데없는 생각이 많았는데, 이제는 좋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해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합니다.
말이 달라집니다. 행동이 달라집니다. 가치관이 달라지고, 삶의 목표와 목적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성품이 달라집니다. 사랑이 많아져서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되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축복하며 기도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과 함께하시고, 이런 사람을 크게 들어 쓰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귀신을 능히 쫓아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때때로 고난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기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야고보서 5장 13절에 보면,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기도하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도해야 은혜 받고, 기도해야 믿음이 자라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기도하면 우리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8:19). 우리에게 죄가 많고, 우리의 믿음이 작아도 우리가 합심하여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무엘상 7장 5~14절에 보면, “사무엘이 이르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그들이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거기에서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미스바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그들의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 사무엘이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이스라엘을 위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응답하셨더라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추격하여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서 빼앗았던 성읍이 에그론부터 가드까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니 이스라엘이 그 사방 지역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도로 찾았고 또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스바에서 온 종일 금식하고 회개하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 양으로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들이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큰 우레를 발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격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쳤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잃어버렸던 땅을 회복하고, 나라는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개인에게나 교회나 가정에 문제가 있다면, 두 사람이라도 합심해서 기도하세요. 우리에게 죄가 아무리 많다 해도, 우리의 믿음이 아무리 부족하다 해도, 금식하고 회개하며 부르짖어보세요. 반드시 은혜를 받고, 문제가 반드시 해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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