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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6장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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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5 16:33 조회6,3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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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복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복

2004년 01월 25일(주일예베)

본문 / 마태복음 16:21~27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고학력자일수록 취직하기 힘들어 다시 전문대학에 입학하여 전문기술을 배워 취직하려는 젊은이들이 많다고 합니다. 사실 아무리 많이 배우고 실력이 있어도 불러주는 사람이 없고 받아줄 직장이 없어서 실업자가 된다는 것은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들뿐 아니라, 퇴직한 공무원 중에도 실력이 출중하고 몸도 건강하여 일을 더 할 수 있는데도 노인 취급을 받으며 한가히 지내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특별히 대통령이 불러 일자리를 주지 않는 한 할 일이 없습니다. 이처럼 인재들이 쓰임 받지 못한다면 국가적으로 여간 손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귀하고 영광스러운 일에 쓰임 받거나 대통령으로부터 인정 받아 입각하는 것도 큰 복이라 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큰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복입니다.

모세는 40년 동안 미디안 광야에서 양 치는 목자로 살았습니다. 그때 그의 나이가 80세였습니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을 떠날 날을 기다리는 노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이 많은 모세를 부르시고 그에게 큰 권능을 주셔서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고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해내는 귀한 일에 쓰임 받게 하셨습니다. 이를 계기로 모세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도자가 되어 존경 받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6장 21~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때 제자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 중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마 16:22)”라고 간곡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서 고난 받고 죽는 것을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이라고 말씀하시며 베드로를 책망하셨습니다.

만일 누군가 예수님을 해치려 한다면 제자인 베드로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로서 도리일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는 제자로서 할 일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일’은 무엇을 말할까요? 한 마디로 하나님의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요 6:38~40)”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백성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라는 것이요,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사명을 이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예수님의 고난 당함을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사탄의 말을 대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베드로를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세상 일에 매이다보면 어느 순간 하나님의 일을 저버리기 쉽습니다.

우리가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세상의 일이나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기 위해서는

첫째, 순종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일에 부름을 받아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위대한 사도로서 영광스러운 삶을 살다 천국에 갔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창세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받게 하시고, 천국에 가기까지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엡 1:3~14).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다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입니다. 지혜도 지식도 완전하시고 능력도 계획도 행하심도 완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고 모두 구원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친히 행하기도 하시지만,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를 택하셔서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십니다.

사도행전 13장 22~23절에 보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후손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에 부름 받은 사람들은 오직 순종하면 됩니다.

 

둘째, 고난도 각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므로 모든 영광도 오직 하나님께서 받으셔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사람들에게 충성하는 대로 상급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27).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도구의 역할만 했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은 사람들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들에게도 고난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크다 해도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롬 8:18). 사도들은 이런 사실을 그대로 믿었기 때문에 전도하다가 핍박을 받고 채찍질 당하면서도 주님을 위해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행 5:41).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에게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했습니다(고전 3:9). 그렇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전하는 목사나 전도사나 선교사뿐만 아니라 교회의 봉사자들과 기관 사역자들 그리고 선교후원회 회원들 그리고 목회를 잘 돕는 직분자 모두 하나님의 동역자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6장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각 사람이 일한 대로 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충성을 다하는 일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셋째, 마음이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자신의 신앙을 지키기에 급급합니다. 20% 정도의 기독교인들만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기회를 얻습니다. 더구나 모세와 사도 바울처럼 특별히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은 만 명 중 한 명이 될까 말까 합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는 사람은 거룩한 사람입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1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시기 때문에 거룩한 자를 기뻐하시고, 거룩한 자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고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일에 특별히 쓰임 받기 원한다면, 이 세상이 악하고 깨끗하지 못해도 자기 자신을 언제나 깨끗이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자가 되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철저히 회개해야 합니다. 과거를 깨끗이 청산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지 않을 때와 똑같이 고약한 성품과 나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곤란합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겠습니까.

 

요한일서 1장 9절에 보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술에 취해 물질을 낭비하고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허비하며 자신의 몸을 방탕한 일에 썼거나 화를 참지 못하고 혈기를 부리던 못된 습관들, 그리고 신년이 되면 으레 올해의 신수를 점쳤던 미신적인 취미들을 포함하여 하나님께서 싫어하는 죄들을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회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룩을 지키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딤전 4:5). 그리고 성령의 신령한 은혜를 계속해서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이 유지됩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도 거룩의 능력을 받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공부하며 말씀의 은혜를 받으면 점점 거룩해집니다. 또 말씀을 늘 묵상하며 말씀을 통해 주의 음성을 듣고 교훈을 깨닫고 은혜 가운데 살면 거룩해집니다.

 

또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유지하려고 하면 기도생활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기도생활은 경건생활의 필수요건입니다. 기도하면 은혜를 받고 신령해집니다.

목사든 장로든 권사든 교회 직분과 상관없습니다. 누구나 기도생활에 게으르면 받은 은혜를 다 잃어버리고 심령이 메마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저도 1982년 미국에 유학하는 동안 공부하느라 기도생활에 전념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보니 심령이 사막과 같이 점점 메말라 괴로웠습니다.

내가 목사인데 언제 말씀을 전해봤는지, 어쩌면 은혜가 이렇게 고갈될 수 있는지, 기가 막혔습니다. 단단히 결심하고 조용히 기도할 수 있는 곳부터 찾았습니다.

마침 적당한 곳을 찾지 못하던 중 집앞 마당에서 아이들이 장난치며 들락거리는 개집처럼 생긴 허름하고 작은 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들어가 앉아보니 머리는 천장에 닿았고, 안은 지저분했습니다.

그러나 갈급한 저는 이곳을 기도처소로 정하고, 날마다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가 임했습니다. 메마른 심령에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며 얼마나 기쁘고 좋았는지 모릅니다.

몇 시간동안 기도한 후 성경을 읽다보니 하나님의 영감이 넘치고 설교할 수 있는 말씀들이 구체적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신구약의 말씀들이 체계적으로 정리되면서 말씀을 깨닫는 대로 노트에 조목조목 적어 내려갔습니다.

이렇게 은혜 가운데 살다보니 리포트도 얼마나 잘 써지는지, 공부도 즐겁게 할 수 있었습니다. 더구나 기도에 전념하며 은혜 가운데 살다보니 여기저기서 부흥집회 요청이 쇄도했습니다. 그래서 한 주간도 쉬는 날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어떤 주에는 두 번씩이나 집회를 인도하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과 기도로 항상 은혜 가운데 살며 거룩을 잘 지키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일에 그 사람을 귀히 들어 쓰시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들어 쓰십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고난과 희생이 와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합니다.

 

우리나라에 파송된 선교사의 4대 손인 스티브 린튼 박사는 최근 자신의 삶을 나귀의 삶에 비유했습니다. 모든 선교사의 삶은 주인이 실어주는 짐을 싣고 주인이 원하는 곳으로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짐을 전달하는 나귀의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인품을 엿볼 수 있는 말입니다.

그는 지난 수년 동안 사랑의 구호품을 싣고 북한으로 가서 수십 차례 전달하는 나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여 년 전인 1895년 4월에 스티브의 외고조부인 유진 벨 목사 부부는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한국에 왔습니다. 이들 부부는 평생을 목포와 광주지역에서 선교하다가 한국에 묻혔습니다.

벨 선교사의 딸인 사르트도 윌리엄 린튼 선교사와 결혼하여 일생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이들 2세대 선교사 부부에게 네 아들이 있었고, 그 중 한 분이 스티브의 부친인 휴 린튼이었습니다.

 

스티브의 어머니 로이스는 순천기독재활원의 원장으로 평생 결핵환자들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그녀는 호암상을 받으며 “선교사가 훌륭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다른 나라에 가서 일하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부름을 받고 따른 것뿐입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사랑을 담는 질그릇일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훌륭한 선교사의 가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1955년 어느 가을 미국 오레곤 주 유게네라는 시골마을의 회관에서 종교영화를 상영한다는 신문광고가 났습니다. 이 영화는 한국전쟁에서 생긴 고아들에 관한 것으로, 그 고아들을 돌볼 손길을 찾는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곳에 참석했던 한 농민 부부는 “우리 같은 가난한 농부가 무엇을 어떻게 돕는다는 말인가”라고 탄식하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문득문득 그 날의 가슴 아픈 영화의 장면들이 선명하게 기억났습니다.

그 후 이들 부부는 기도하는 가운데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농장의 일부를 처분한 돈을 들고 직접 한국으로 건너와 8명의 혼혈 고아들을 양자로 데려왔습니다.

이 사실이 마을 신문에 사진과 함께 기사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각처에서 이들을 돕겠다는 사람들의 편지가 쇄도했습니다.

이 농부는 차츰 차츰 농토를 팔고 전적으로 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 후 이들은 1만 6천여 명의 전쟁고아를 각 가정에 맺어주었습니다. 이 농부가 바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홀트복지회의 해리 홀트씨입니다.

비록 그는 돈이 많지 않은 농부였지만, 성령의 감동이 왔을 때 기쁨으로 순종한 결과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쓰임 받는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면, 그저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들이 주님의 부르심에 주저하거나 변명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무조건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택하시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따라 결단하고 행동으로 옮기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능력도 주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높이 들어 쓰실 줄 믿습니다. 아무쪼록 여생을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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