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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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5-24 12:58 조회5,511회 댓글0건본문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2003년 01월 26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6:21~28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33년의 짧은 생애를 사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천국 복음을 전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신 것은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본문 말씀은 공생애가 거의 끝나갈 무렵, 십자가를 지실 날이 점점 가까이 다가왔을 때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21절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처음부터 제자들에게 말씀해주시지 않았고, 나중에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제자들이 이 사실을 일찍 알았더라도 이 말씀을 듣고 감당하지 못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평소에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하고, 주를 위해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헌신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요구하기보다는 이미 받은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드릴까, 어떻게 하면 더 충성할까’라고 생각하며, 주님을 위해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충성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성도들은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와 같이 밤낮 달라고만 하고, 감사하기보다는 요구하는 것이 무척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수고하려고 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교회를 나와도 편안히 예배나 드리고 가는 것을 좋아하고, 교사나 찬양대원이나 안내위원 등 교회봉사를 무척 귀찮아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믿어 복 받고 성공하고 건강하고 평안하고 잘되는 것은 좋아하지만, 혹 조금이라도 잘 안되면 “예수 믿어도 별 볼일 없네”, “예수 믿어도 장사가 잘 안되네”, “예수 믿어도 병도 낫지 않네”라고 투덜댑니다. 오히려 교회에 나와서 환난이 많고 시험이 많다고 원망하고 비난하고 그러다가 실족하여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이 별로 없는 연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제자들의 믿음이 별로 없을 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를 지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고 “너희들도 십자가를 지라”라고 말씀하셨다면, 누가 주님 곁에 남아 있었겠습니까? 지레 겁을 먹고 다 도망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기다리신 후에 말씀하셨습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자기 십자가’는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려고 하면 반드시 겪어야 하는 고난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면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모릅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자기 나름대로 겪어야 할 고난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14장 22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는?
1. 기독교를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게 되는 십자가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는 것을 가장 방해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가족인 경우도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족들의 핍박을 아시고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0:36).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아브라함처럼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날 각오를 해야 합니다.
교사로 봉직하시다가 은퇴하신 존경스러운 장로님 한 분을 만나 뵈었습니다. 이분은 부모님이 너무나 엄하셔서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아버지로부터 심하게 매를 많이 맞으며 자라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신앙의 지조를 지켰기 때문에 자녀들이 모두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자녀들이 다 잘되어 큰 아들은 대학교 학장으로, 작은 아들 부부는 의사로 있으며, 그렇게 자신을 혹독하게 매질했던 부모님도 결국 예수님을 믿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이 장로님의 말씀을 들으며 ‘장차 천국에서 큰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2. 신자답지 못한 사람들로 인해 억울하게 비난을 받게 되는 십자가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이 별로 없어서 불신자들보다 못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특별히 유명인사 가운데 교회의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있으면서 바르게 살지 못하는 경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물론이요, 전도의 문이 막히고, 모든 기독교인들이 도매금으로 욕을 먹게 됩니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마치 군대의 연대 기합처럼 잘못한 몇몇 사람으로 인해 믿음생활 잘하는 사람들까지 덩달아 욕을 먹게 됩니다.
3.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려고 할 때 받게 되는 고난의 십자가입니다.
자기 자신만 조용히 믿다가 천국에 가려는 사람에게는 없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자발적으로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고난입니다. 사실 전도하고 선교하려고 애를 쓰다보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최고의 학문을 공부했기 때문에 출세가 보장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되어, 가는 곳곳마다 매를 심하게 맞고 헐벗고 굶주리고 옥에 갇히고 생명의 위협을 여러 번 받았으면서도 중단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복음을 위해 수고하고 고난 당할 때 주님이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백 배의 축복을 받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막 10:29).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천년동안 왕노릇하게 될 것입니다(계 20:4).
<쿼바디스>라는 영화에 나오는 “쿼바디스 도미네”라는 말은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라는 뜻입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네로 황제는 소위 예술가를 자처하는 사람으로 자신이 살고 있는 로마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상관없이 로마를 다시 만들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질렀습니다. 그
러나 의외로 사람들의 비난과 원망이 쏟아지자, 당황한 네로는 이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에게 방화혐의를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기독교인들이 항상 불로 이 세상이 심판 받는다고 떠들지 않았느냐며 결국 불을 지른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임에 틀림없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렸습니다. 그리하여 수만 명의 기독교인들이 원형극장에서 억울하게 처형당했습니다. 불을 지른 것은 네로였는데 피해는 기독교인들이 봤습니다.
이때 베드로도 사람들과 함께 일단 위기를 잠시라도 피하기 위해 급히 로마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걷다가 예수님께서 로마를 향해 가시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깜짝 놀란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네가 버리고 나온 로마로 가서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려고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이 말을 듣고 다시 발걸음을 로마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십자가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감히 주님과 같은 모양으로 죽을 수 있겠느냐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고 합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도망가다가 붙잡혀 죽는 것은 순교가 아닙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주님을 위해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야 순교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선포했습니다(고전 15:31).
오늘날도 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순교적인 삶을 사는 사람은 비록 순교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천국에서 순교자 못지않은 상급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도 산 순교자들이 있습니다. 새 성전을 지을 때에 자신이 살던 집을 바친 분들입니다. 어떤 분은 가진 재산이 별로 없는데도 전 재산을 바쳤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 복음을 위해서 살려고 하면 고난의 십자가가 따르게 됩니다.
4. 모든 원수를 용서해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1~22절에 보면, 베드로가 주님께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보통 후하게 생각해도 세 번 정도이지만 베드로는 일곱 번까지 용서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끝까지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8:35).
주기도문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마 6:12)”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할 때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다 용서합니다. 내가 이렇게 용서한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내 죄를 용서해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에 기독교의 위대한 사랑이 있는 줄 압니다.
다른 종교에는 이런 말이 없습니다. 특히 회교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악을 악으로”라고 철저하게 피의 보복을 명령합니다. 사실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하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됩니다.
특별히 한국 사람들은 한이 많이 맺힌 민족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예수님의 용서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말씀대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아직 망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원수라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은 기독교의 생명이며, 기독교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원수를 무조건 용서하려고 하면 억울함을 참아야 하고 고통을 참아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용서만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프랑스의 루이 12세가 왕좌에 오르기 전에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는 적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루이 12세가 왕위에 오르게 되자 그의 원수노릇을 했던 사람들은 큰일났습니다. 자신의 앞날을 생각하며 불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명단이 하나 하나 작성되고 그 이름 옆에 왕이 직접 십자가를 일일이 긋고 있다는 소문까지 들렸습니다. 당사자들은 극형인 십자가를 생각하며 파리를 떠나 어디론가 도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왕이 표시한 십자가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용서의 십자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5.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누가복음 14장 26~27,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7~29절에 보면, 베드로가 주님께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자신의 생업을 버리고 주님께 왔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위대한 선지자도 순교하는 것이 두려워서 도망했고, 자신이 당하는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께 불만을 토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환난과 핍박 앞에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괴로운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면, 신앙을 지킬 수 없고,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에 보면, “그리스도인은 십자가에서 도망칠 수 없다. 십자가를 피한다면 그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밖으로 도망쳐도 거기에 십자가가 있고, 안으로 숨어도 거기에 십자가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위로 올라가도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고 밑으로 파고 들어가도 십자가가 있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자 하는 한 반드시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영광이 있습니다.
로마서 8장 16~18절에 보면,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과 함께 천국을 상속받고 예수님과 함께 받을 영광이 너무 크기 때문에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고난을 받을지 모르지만, 그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영광과 상급으로 장차 우리에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골에 사는 여 집사님이 너무나 힘들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집사님은 기도할 때마다 “주님! 너무 힘듭니다. 너무 힘듭니다”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커다란 십자가를 질질 끌고 힘겹게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집사님은 예수님께 “주님! 주님은 목수시잖아요. 이 십자가가 너무 무거워요. 그러니 조금만 잘라주세요.”라고 부탁했습니다. 주님께서 빙그레 웃으시면서 잘라주셨습니다. 그래도 무거웠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주님께 더 잘라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집사님이 잘라달라는 대로 말없이 다 잘라주셨습니다.
어느덧 천국에 다다랐습니다. 이 집사님이 천국에 와서 보니 각 사람이 모두 십자가를 가지고 있었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십자가 크기에 따라 상을 받게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의 십자가는 손 안에 들어올 정도로 매우 작은 십자가였습니다. 그 순간 이 집사님은 깜짝 놀라 잠을 깼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중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라는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그저 복이나 받고 평안하게 믿다가 천국에 가는 사람은 천국에서 받을 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어도 조금도 수고하지 않고 천국에 간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매우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위해 고난 받을 때 주님으로부터 오는 위로와 평강이 얼마나 큰지 모릅니다. 즐겁게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영광으로 생각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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