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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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4:50 조회5,599회 댓글0건본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2015년 01월 04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6:13~18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교회에 나오지만, 예수님이 누구신지 전혀 모르거나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다면, 평생 교회 다녀도, 자신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해도 그 사람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 받으려면, 구원 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엉뚱한 믿음을 가지고 살면서 믿는다고 생각하거나 구원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무식한 신앙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려면, 구원 받을 수 있는, 올바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아무렇게나 믿어도 “예수님을 믿는다”라고 하면, 구원 받고, 천국에 간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 받을 수 있는, 올바른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첫째,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고 믿는 믿음입니다. 자신이 믿는 예수님을 똑바로 아는 믿음이라야 구원 받는 믿음입니다.
둘째, 예수님을 신뢰하는 믿음입니다.
셋째,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믿음을 가져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에게는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아예 등 돌리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들은 귀신보다 못한 사람들입니다.
성경에 보면, 귀신들린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향해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눅 4:34),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눅 4:41)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귀신은 예수님을 사랑하거나 경외하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구원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저버렸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들은 이것을 버렸습니다. 십일조도 철저히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렸습니다. 이것이 그들에게 믿음이 없는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정말 믿음이 있는 사람인지 없는 사람인지, 구원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뜨거울수록 그 사람은 뜨거운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과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정비례합니다.
우리가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이 있는 사람인가를 알려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그런 마음이 여러분에게 있다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믿음이 점점 자라면, 우리의 마음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믿음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잘해주고 싶어 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살아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자원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대로 삽니다.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합니다. 주님을 위해 십자가를 지려고 합니다. 이것이 믿음이 있는 사람의 삶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겠다는 마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습니다. 교회 다닌다고 말하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행함이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약 2:17).
겉을 보면 멀쩡한데, 영혼이 없는 몸은 죽은 몸입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하는 행함을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구원 받을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행동을 보면,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 13~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3장 25~2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3장 3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뱀, 독사는 사탄을 가리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철저히 지켰고, 십일조를 드릴 때에도 아주 작은 것에 대한 것까지 정확하게 드렸고, 1주일에 금식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거룩한 척 위장하는, 외식하는 종교행위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았다면, 그렇게 살았을까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그들이 알았다면,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았다면, 그들이 그렇게 살았을까요?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몰랐기 때문에 어리석게 살다가 지옥에 가고 말았습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왜 따르는지 아셨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것은 좋은데,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고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누가복음 7장 16절에 보면,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 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았습니다. 선지자들은 예수님만큼 능력이 없었으니 사람들은 예수님을 ‘큰 선지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라고 불렀습니다.
‘주’라는 말은 하인들이 자신의 주인을 부를 때에 쓰는 말입니다. 하인들은 자신의 주인을 “주여”, “주인이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예수님을 ‘주’라고 부른 것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고 ‘주’라고 부른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메시아이신 것을 알고, ‘주’라고 불렀습니다.
예수님은 만주의 주요, 만왕의 왕이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 메시아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의 헬라어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람어로는 ‘메시아’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보면, 동정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을 때, 주의 사자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예수님의 이름의 뜻 그대로 구세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신앙고백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이 누구신지 똑바로 알고, 입으로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가 가르쳐주어서가 아닙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알게 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게 해주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님을 누구보다 똑바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예수님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신뢰하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경외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을 가져야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로마서 10장 9~13절에 보면,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을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 속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향해 “주”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9절에 보면,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로마서에 보면, 성령이 ‘하나님의 영’, ‘그리스도의 영’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기도 하고, 그리스도의 영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기 때문에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고,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는, 올바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천국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성령으로 거듭난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3:3,5).
베드로가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만 가진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했더라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충만했을 것이므로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순절 이전의 베드로는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믿음이 약했습니다. 믿음이 있었지만, 믿음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을 때, 예수님께서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마 26:34)라고 말씀하신 것과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5)라고 말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베드로가 회개한 것을 보면, 그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에게는 반드시 회개가 있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여러 번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니기 때문에 회개하지 않고 자살했습니다.
회개는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하고 싶다고 해서 회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은혜로 회개할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안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그 성령이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십니다. 베드로가 회개한 것처럼….
그러나 가룟 유다의 속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는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회개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큰 죄를 범한 사람이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자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게 되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하나님께 찬양과 경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길 때, 참 그리스도의 교회, 예수님의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들이 모인 곳이 예수님의 교회,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눈에 보이는 건물, 예배당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건물은 어디에 있든지 상관없습니다. 가령 우리가 뒷산에서 모여서 예배드리고 하나님을 섬긴다면, 사람들이 모인 것을 가리켜 ‘교회’라고 합니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두세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주님이 그곳에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그곳이 교회가 됩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면, 주님이 그 가운데에 계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그 가운데에 머리로 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을 모셔놓고 함부로 떠들고, 경솔하게 행동하고, 남을 흉본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주님이 가운데에 계신다고 생각해보세요. 조심해야 합니다.
본문 18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고, 베드로에게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베드로의 본명은 ‘시몬’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시몬이 그의 형제 안드레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시몬은 예수님께 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을 보시자마자 시몬에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42).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시몬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처음으로 찾아왔지만, 예수님은 그의 믿음이 어떠한지를 아시고, 베드로에게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바’는 반석이라는 뜻의 시리아어입니다. 시리아어 ‘게바’를 헬라어로 바꾸면 ‘베드로’입니다.
예수님은 시몬이 반석과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을 아시고, 그에게 ‘반석’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붙여주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곳에 예수님의 교회가 세워질 것을 아시고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 모였다면, 어떻게 보면 한심한 교회입니다. 그런데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한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왜 이길 수 없을까요?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는 몇 명 안 되어 보이지만, 그 가운데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그 가운데 계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몸 된 교회, 예수님이 머리되시는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길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7장 14절에 보면,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이기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성도들은 덩달아 이긴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과 함께 있는 자들’은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는 진실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4~5절에 보면,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8절에 보면,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기독교를 핍박하고, 짐승에게 경배하도록 만들 때,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만 굴복하고 경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사람들은 절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7절에 보면,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가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그리로’는 ‘새 하늘과 새 땅으로’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들어가서 영원히 살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의미합니다.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고, 오직 어린 양 예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들어갑니다.
앞으로 아무리 큰 환난과 핍박이 있다 해도 저와 여러분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판 주가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음부의 권세가 우리를 이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에는 언제나 주님이 계시기 때문에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이기시지만, 예수님과 함께 있는 우리도 이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겨놓고 마귀와 싸우는 십자가 군병들입니다.
예전에는 한국과 일본의 축구국가대표들이 1년에 한 번씩 경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주일에 경기가 있어서 제가 중계방송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 다음 날 경기녹화방송을 봤습니다. 녹화방송을 보기 전에, 우리나라가 1:0으로 이겼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막상 경기하는 것을 보니 한국이 너무나 못하고, 일본은 매우 잘했습니다. 그래도 전혀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결과를 알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얼마나 한심합니까. 다 패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 올바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고,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고,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반드시 이길 것입니다.
마태복음 16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열쇠를 베드로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 열쇠가 있는 사람만 천국 문을 열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천국 열쇠를 주십니다.
천국 열쇠는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천국 열쇠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책임이 무겁습니다. 자기만 구원 받았다고 좋아하고 ‘나는 언제 죽어도 괜찮아.’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해서, 그들도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아야 합니다. 그 사람들도 천국 열쇠를 가지게 해줘야 합니다.
베드로와 같은 믿음을 갖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이 믿음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이 믿음으로 천국 시민권을 갖게 됩니다. 이 믿음으로 천국 열쇠를 가지게 됩니다. 이 믿음으로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히 전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어 구원 받아 천국 열쇠를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가족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친구와 친척, 이웃 사람 중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해서 다 천국 열쇠를 가지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장차 받을 영광이 클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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