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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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5:14 조회5,343회 댓글0건본문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려거든
2015년 01월 11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6:21~28
교회 안에는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보면,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가리켜 ‘육에 속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성령이 없는 사람입니다. 유다서 19절에 보면,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에 다녀도 믿음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교회에 다닐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니 구원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니까 마귀의 자녀입니다.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 한 부류는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그 속에 계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 진심으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의 성령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진실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크게 다릅니다. 요한복음 3장 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지옥에 갈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과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성경을 책으로 여기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진리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고, 절대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살 길이 열리고, 하나님께 구하면 주신다는 말씀을 믿기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겨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것을 보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도 모릅니다. 그래서 나쁜 짓을 많이 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정말 악한 사람들이었고, 위선자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1장 42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려고 하지만,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기쁘고 좋은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에는 매우 괴로워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을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며 자신이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를 눈물로 회개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의 특징입니다.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음이 자랄수록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옛사람이 없어지고, 새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거듭난 사람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거듭났지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이전의 제자들과 같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마 16:16). 그러나 상황이 급박해지니 베드로는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똑바로 믿고, 거듭난 사람이라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기 이전에는 믿음이 어립니다. 그래서 철없는 짓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육신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에 보면,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너희는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자는 옛사람이 아직 죽지 않고 남아있기 때문에, 날마다 자기 자신과 전쟁을 치르며 살아갑니다. 옛 사람은 옛날에 하던 대로 하려 하고,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합니다. 옛 사람은 죄를 지을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한쪽에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전쟁이 그치지 않습니다.
믿음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강하면, 이길 수 있을 텐데, 믿음이 작아서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의심이 생기고, 때로는 답답하고, 낙심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의 것을 좋아합니다. 때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같은 행동을 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사람들을 향해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하지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고전 3:2).
이런 사람은 어려운 설교를 하면,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책망하는 설교를 하면 토라집니다. 이런 사람은 젖이나 먹어야 합니다.
사나운 성품이 남아있습니다. 그래서 화목하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분쟁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교회에 오면, 언제나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합니다. 주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주님께 찬양해야 하고, 주님께 기도해야 하고, 주님께 헌금해야 합니다. 주님을 생각하며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어린 사람은 그렇게 할 줄 모릅니다. 육안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만 바라봅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을 구분하여 좋아하는 사람과만 어울립니다. 그래서 교회에 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교회에서 무엇인가 결정할 때에는 예수님 중심으로 결정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주님의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언제나 주님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따라가면 안 됩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바른 길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합니다. 사람은 부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고, 예수님만 따라가야 합니다.
성령 충만한 성도는 다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절에 보면, ‘신령한 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이후의 제자들의 모습과 같은 사람을 신령한 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후에 변화되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졌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해졌습니다. 목숨 걸고 나아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열심히 기도하여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습니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일으켰습니다. 교회가 부흥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할 때,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믿음이 충만해집니다.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권능이 충만해집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마귀와 싸워 이기고, 세상과 싸워 이기고, 항상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마음에는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게 됩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성령으로 거듭났어도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과 성령으로 충만한 은혜를 받은 사람의 차이점이 있습니다.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기 때문에 믿음도 충만합니다. 그래서 흔들림이 없습니다. 좀처럼 흔들리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작은 보트를 타고 바다에 나간 것처럼 작은 어려움에도 흔들리는데, 성령으로 충만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항공모함을 탄 것처럼 웬만한 일에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해서 겁먹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데,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그래서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을 기뻐하고 매우 좋아합니다. 자원하여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아주 작은 잘못을 저질러도 철저히 회개합니다. 철저히 회개하다 보면,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회개하고 성령을 받으니 작은 허물과 죄라도 끊어버리고,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말합니다. 주님처럼 행동하고, 주님처럼 살아가고,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처럼 사랑이 많아져서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특징은 사랑이 충만한 것입니다.
은사와 표적을 행하고, 방언을 한다 해도 사랑이 없고 성품이 사나우면, 그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잘못된 영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사랑의 영으로 충만해지기 때문에 사랑이 많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용서합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미운 사람도 사랑합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도 사랑합니다. 그를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사람이 보기에도 아름답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갑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주님과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담대하게 살아갑니다. 주님을 위해 살다가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믿음이 작은 사람과 온전한 믿음의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믿음이 작을수록 기복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밤낮 복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건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사업이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등 밤낮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도한 대로 응답되면, 매우 좋아합니다.
장성한 믿음의 성도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하고,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려고 하고, 아무리 고난을 받아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 마귀의 자녀, 성령으로 거듭났지만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분별하지 못하고, 함부로 말하고 행동하다 보니 교회가 밤낮 시끄럽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마귀와 싸워 이기지 못합니다.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아주 작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회개하더라도 적당히 회개할 뿐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사람은 온전히 변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가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에게 좋은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자신의 사명을 깨닫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좋은 일꾼이 되지 못합니다.
전도할 때에 “예수 믿고 복 받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다면, 가장 큰 복을 이미 받았습니다.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미 복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에 보면,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1장 4~6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시고, 천국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7~12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은 천국에 가야 하기 때문에, 죄가 있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시므로 모든 죄를 대속해주셔서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는 데 지장이 없게 해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13~14절에 보면,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마귀와 싸워 이기게 하시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해주시고, 우리와 함께해주십니다. 우리는 이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모두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복을 생각하며 항상 감사하고, 항상 기뻐하고, 항상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데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보면,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깨닫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됩니다.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서는 안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라고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업을 하든 직장생활을 하든 공부를 하든 무엇을 하든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33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방법을 아주 쉽게 설명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나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나 어디에서나 걸림돌이 되지 말고, 골치 아픈 인간이 되지 말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사람, 즉 원수와 나를 괴롭히는 사람까지도 기쁘게 하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려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방법입니다. 성령 충만하고, 사랑 충만해야 이런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다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천국 같은 나라가 되려면, 모두 예수 믿어야겠다.”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나로 인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생겨나는가, 나로 인해 가족과 친척,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는가를 보면, 자신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사는 사람에게는 열매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구원 받게 됩니다.
우리가 이 사명을 이루기 위해 충성하며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이렇게 산다면, 무엇을 구하든지 구하는 대로 다 받는 복을 누리며 살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22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서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갈 때, 많은 사람들이 구원 받게 됩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대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에 응답해주시는 것은 물론이요,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다 응답해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로마서 8장 17~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영광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도 예수님과 함께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슨 고난을 받으셨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들을 예수 믿어 구원 받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십자가를 지고, 이것을 위해 고난 받아야 합니다.
본문 마태복음 16장 21절에 보면,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때 제자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실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왕이 되시면, 제자들은 장관도 되고, 한 자리씩 차지하여 영광을 누리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니,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이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왜 예수님께서는 죽음의 길을 가려고 하셨습니까? 첫째,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려고 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려고 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예수님은 그 길을 기꺼이 가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드리는 일,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그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혼자 두지 않으시고, 예수님과 늘 함께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예수님을 본받아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믿음이 어린, 젖먹이 신자와 같았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다가 예수님이 유대의 왕이 되면 덩달아 출세하여 잘 살려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유대만을 위한 왕이 아니라, 만왕의 왕이십니다. 만민을 구원하는 왕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나라는 유대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여 충격을 받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하며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하며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베드로는 왜 이렇게 했을까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몰랐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베드로는 본의 아니게 사탄 노릇을 했습니다. 본문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일’은 사람의 도리를 말합니다. 스승이 죽는다고 하니 사람의 도리로서는 죽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면 안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이 말씀대로 순종하겠습니까? 우리의 힘으로는 이 말씀대로 순종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난 후, 이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실수를 많이 저지릅니다.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감동을 받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실수를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똑바로 알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똑바로 알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것을 배설물처럼 버렸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사명에 충성하기 위해, 주님과 복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으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생각하기만 한 것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리고 환난과 고난을 얼마나 받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항상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고난을 받으면서도 어떻게 기뻐할 수 있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도 주님을 만나는 체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주님께서 언제나 함께해주시는 것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으면, 주님을 만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장차 받을 영광이 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고난을 받아도 주님을 위해 고난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고, 항상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본문 27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날이 가까웠습니다. 깜짝깜짝 놀랄 만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허망한 꿈을 꾸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다는 것을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 똑바로 알고, 충성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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