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깨달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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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4:08 조회3,544회 댓글0건본문
듣고 깨달으라
듣고 깨달으라
2014년 10월 12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5:10~20
본문 마태복음 15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가리켜 ‘맹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라는 어린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아이에게 평생 축복이 됩니다. 국민들은 훌륭한 지도자를 만나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좋은 목회자를 만나면, 행복하게 신앙생활할 수 있습니다. 시간마다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아 믿음이 자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면서 많은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도자를 잘 만나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영적 맹인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는 볼 수 있지만, 영적으로는 맹인이었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그들은 영적 맹인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왜 깨닫지 못했을까요? 영안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왜 영안이 어두워졌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의 하나는 그들이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욕심, 탐심, 탐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면 영적으로 어두워집니다.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영적으로 맹인이 됩니다.
우리고 마찬가지입니다. 교만하면 영안이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깨닫지 못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영적으로 맹인이 됩니다. 그리고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영적 맹인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똑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이상하게도 말씀에 귀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한 마음을 가지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은 욕심에 눈이 어두워져서 양심을 저버리고 신앙도 저버려서 심령이 어두워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오묘한 말씀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손해를 많이 봅니다.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고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해서 고통 가운데 살아갑니다. 어리석은 짓을 많이 범합니다. 깨닫지 못해서 망하는 길로 갑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제가 아는 분 중에는 통일교에 빠져서 재산을 바치고 열심히 봉사하는 분이 있습니다. 똑똑한 분이라 통일교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잘못된 것임을 금방 깨달을 수 있을 텐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평생 거기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솔로몬은 모든 것을 가지고 누리며 살았음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하며 자신이 살아있는 것을 한탄하며 살았습니다. 솔로몬이 왜 그렇게 살았을까요?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전도서 2장에 보면, 솔로몬은 ‘어떻게 하면 내 육신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쾌락을 누려볼까?’라고 생각하며 썩어질 육신을 즐겁게 하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며 살았습니다. 솔로몬은 여자를 천 명이나 데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금은보화가 흔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살아있는 것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죽기를 원했습니다.
세상적으로 보면,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영적 맹인이었습니다.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살 때,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과 평강과 행복이 온다는 것을 솔로몬은 몰랐습니다.
이 세상의 것에서 행복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잠시 좋습니다. 그러나 돈은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출세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한다 해도 잠시 좋을 뿐입니다. 만족을 주지 않습니다.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제가 깨달은 것을 솔로몬이 깨달았다면, 솔로몬은 그렇게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인금들과 귀족들이 솔로몬을 찾아왔습니다.
만약 그때 솔로몬이 ‘이 사람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전해주어야겠다. 성경을 그 나라의 말로 번역해서 선물해야겠다.’라고 생각했다면, 더 많이 기도했을 것이고, 성경을 많이 연구했을 것입니다.
만일 솔로몬이 그렇게 했다면,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자신에게도 기쁨이 넘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는 평생 쓸데없는 짓을 하다가 60세에 죽었습니다.
사사기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를 하다가 고통당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면 망하게 되어있고, 침략을 받아 노예가 되고, 모든 것을 빼앗겨 고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훌륭한 사사가 세워지면, 그 사사로 인해 나라가 회복되고, 다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사사가 죽으면, 또 다시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그것이 계속해서 반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체험했음에도 어리석게 똑같은 짓을 되풀이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을 가까이하면 망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깨닫지 못해서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얼마나 불행한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깨닫지 못해서 그런 짓을 저질렀습니다. 만약 깨달았다면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그들은 예수님께 찾아와 “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마 15:2). 그들은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제자들을 지적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마 15:3).
그들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했을까요? 장로들의 전통보다 하나님의 계명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장로들의 전통은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고르반’입니다. 고르반은 하나님께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려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드렸다. 고르반”이라고 하면,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마땅히 부모를 섬기고 공경해야 하는데, “고르반”이라고 해버리면, 부모를 섬기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이렇게 고약한 법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것이 장로들의 전통이었습니다. 사람의 만든 계명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전통을 지킨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게 하는, 아주 잘못된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5장 1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장로들의 전통을 가리켜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심지 않으신 것, 즉 하나님이 만들지 않으신 엉터리 계명은 다 뽑아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다 없어진다는 의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따라가야 합니다. 말씀에 덧붙이거나 빼거나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사람이 만든 계명은 하나님의 계명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8~19절에 보면,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것은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하면, 하나님이 점점 멀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세요.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과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5장 1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에게 “듣고 깨달으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잘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깨달아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확실히 깨닫게 됩니다.
저는 제가 깨달은 말씀을 전합니다. 그래서 듣는 분들이 깨닫기 쉬울 것입니다. 귀에 쏙쏙 들어올 것입니다. 깨닫는 것은 매우 큰 은혜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죄를 깨달으면, 회개하게 되고, 죄를 사함 받고, 거룩한 자가 됩니다. 이것은 축복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기쁘고 즐겁고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수록 행복해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달으면, 기쁨이 충만해지고, 감사하며 살게 되고, 행복한 신자가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사명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고,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받게 됩니다. 사명을 깨달은 사람들은 충성하는 일꾼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듣다가 주님을 위해 살아가는 동안 고난 받는 것이 장차 큰 영광이 된다는 것을 깨달으면, 주님을 위해 살면서 핍박과 고난을 받아도 괴롭지 않습니다. 그것이 큰 상급이 되고, 영광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을 위해 살다가 어려운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아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손을 깨끗이 하는 것보다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식사하기 전에 손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그러나 손을 씻었다고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문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들은 손 씻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마치 겉은 희지만 속에는 시체가 들어있는 무덤과 같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무엇보다 마음이 깨끗하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가장 치열한 영적 전쟁터입니다. 반대되는 두 가지 생각이 자리 잡기 위해 우리의 마음속에서 얼마나 싸우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지고, 삶의 태도와 성품이 달라집니다. 우리가 생명의 길을 갈 수도 있고, 멸망의 길을 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도 있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잠언 4장 23절에 보면,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본문 마태복음 15장 17~2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손을 씻지 않았다고 해서 거룩이 훼손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손을 씻으면, 손만 깨끗해질 뿐 거룩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손을 깨끗이 하는 것도 좋겠지만,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이 더러우면, 마음으로부터 온갖 더러운 생각을 하게 되고, 더러운 행동을 하게 되고, 엄청난 죄를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잘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말은 우리의 삶을 괴롭게 만듭니다. 좋은 말만 하면서 산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사람들에게 기쁨과 용기를 주는 말, 사람들을 위로하고 축복하는 말, 지혜로운 말, 사랑이 담긴 말, 덕을 세우는 말, 믿음의 말, 진실한 말 등 좋은 말을 하며 살면, 이 세상은 좋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좋지 않은 말을 많이 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말, 더러운 말, 거짓말, 부정적인 말, 증오심이 가득한 말을 많이 하고, 사람들을 괴롭히는 말, 낙심하게 하는 말, 화나게 하는 말, 절망하게 하는 말, 정죄하는 말, 저주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판단하고 모독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말에는 독이 들어있습니다. 좋지 않은 말을 많이 들으면, 마음이 상할 뿐 아니라 병들어서 결국에는 죽게 됩니다. 입술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이는지 모릅니다.
사람들이 좋지 않은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만큼 마음이 악하고 더럽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7장 9절에 보면,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만물보다 거짓되고 부패했기 때문에 사람들의 말이 악하고 음란하고 더럽습니다. 말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고, 불행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심으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아 성령으로 거듭나면, 말이 달라집니다.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중심에 거룩하신 하나님의 영,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이 달라진 것을 보면, 그 사람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정말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잠언 28장 26절에 보면,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믿을 수 있습니까?
“여자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라는 노랫말이 있습니다. 여자의 마음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의 마음은 믿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아주 쉽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보는 것에 따라 머릿속에 생각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환경에 따라 마음이 달라집니다.
성전에 앉아있을 때와 성전 문을 나갔을 때의 생각이 다릅니다. 집에 가면 생각이 또 달라집니다. 세상에 나가 살다 보면 생각이 또 달라집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문이 없습니다. 울타리도 없습니다. 언제나 활짝 열려있습니다. 우리가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새를 잡을 수 없듯이 우리의 머릿속에 별별 생각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는 “머리 위로 지나가는 새는 막지 못하지만, 새가 머리 위에 둥지를 짓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엉뚱한 생각, 나쁜 생각이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문도 없고 울타리도 없기 때문에 사탄은 기회가 있으면 우리에게 좋지 못한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을 항상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항상 거룩하게 지키려면, 눈으로 보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좋은 것을 보아야 합니다. 책을 보더라도 좋은 책을 보아야 합니다. 영화를 보더라도 마음에 감동을 주는 좋은 영화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듣는 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의 발걸음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힘만으로는 거룩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해결책은 오직 하나, 성령 충만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믿음이 충만해지고, 사랑이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고, 거룩하게 살려고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살려고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고난 받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권능으로 충만해집니다. 그래서 마귀와 싸워 이기게 됩니다. 죄악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정욕과 싸워 이기게 됩니다.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영안이 밝아집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분별하게 되고, 진리와 진리가 아닌 것을 분별하게 되고, 성령과 악령을 분별하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이 주시는 지혜로 거룩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좋은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은혜로운 말, 믿음의 말, 축복의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마음을 잘 관리해서 좋은 말만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면서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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