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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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6-09-20 14:00 조회3,416회 댓글0건본문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바다 위로 걸어오신 예수님
2014년 09월 14일(주일예배)
본문 / 마태복음 14:22~33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잘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인가를 알려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관심이 많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할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관심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더 알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 예수님이 무엇을 원하시고, 무엇을 원하시지 않으시는지,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성경을 읽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즉 예수님이 세상에 계실 때의 행적과 말씀하신 것이 기록된 4복음서를 반복해서 읽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도들은 주님이 직접 여러분을 만나주실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직접 만나주신다고 생각해보세요. 여러분의 생애가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4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여러분에게 말씀하신다면, 얼마나 기쁘고 좋겠습니까.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신 사건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사건은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신 이 사건은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세 군데에 반복해서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람을 물 위를 걸을 수 없습니다. 물속에 빠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헤엄치기 전에는 물속에 빠져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마치 육지에서 걷는 것처럼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사람의 모습으로 사셨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주는 일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하기 위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많이 행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실 때에도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남녀가 결혼한 사이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닙니다.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옛날에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예수님이 태어나신 이스라엘에서도 16~17세가 되면 결혼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주 깨끗한 처녀의 몸에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태어나셨습니다.
오병이어로 5천 명을 먹이시고, 열두 바구니를 남는 일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시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죽은 지 나흘 된 나사로를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말씀하시니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빛이 있으라”라고 말씀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창 1:3).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이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풍랑이 일어나는 바다를 향해 예수님이 “잠잠하라”라고 말씀하시니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막 4:39). 이 모든 사건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명해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성경의 기록들은 꾸며낸 거짓이다. 예수님을 신격화하기 위해 꾸며 쓴 신화다.”라고 주장합니다.
평생 교회 다녔어도 거듭나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록,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의 기록은 사실이 아니고, 제자들이 꾸며 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여러분은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한 기록이 진실이라고 믿으십니까? 사실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게 믿어진다면, 여러분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에 보면,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하나님의 성령이 계시기 때문에 성령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주’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그 속에 성령이 계시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장 15~17절에 보면,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향해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 안에 양자의 영, 성령이 계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 성령이 계신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줄 알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을 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습니다. 자식을 두들겨 패는 아버지라고 해도 아버지가 있다는 것만으로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제가 하나님을 아무리 좋게 생각한다 해도 하나님은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좋으신 아버지이심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중학생이었을 때, 하루 종일 교회에서 기도하며 ‘아버지’를 수천 번 불렀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완전하신 아버지, 나를 매우 사랑하시는 아버지, 내게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아버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아시는 아버지,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며 하루 종일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사람, 예수님을 향해 “나의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을 향해 “나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이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리고 이후에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요한복음 6장 14~15절에 보면, “그 사람들이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사복음서 중 가장 나중에 기록되었습니다. 요한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을 읽은 후에 보충해야 할 것을 보충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다른 세 복음서와는 조금 다릅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기록되어있지 않은데, 요한복음에만 나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남자만 5천 명을 먹이셨으니, 여자와 아이들을 다 합하면, 적어도 2만 명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그 많은 사람들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나 남았으니,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면, 먹을 것으로 인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걱정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왕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시려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만주의 주가 되십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왕으로 삼으려고 하니 예수님은 사람들을 피해 산으로 올라가셔서 혼자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는 먼저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에 가게 하셨습니다.
본문 마태복음 14장 24절에 보면,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18절에 보면,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바람이 배가 나아가는 방향대로 불면, 아무것도 문제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배가 나아가는 방향과 반대로 바람이 부는데, 바람이 강하고 파도까지 치니 제자들이 노 젓기가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마가복음 6장 48절에 보면,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평생 어부로 살았던 사람들이니 배를 얼마나 잘 다루겠습니까. 그런데 바람이 매우 강해서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생하는 제자들을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바람이 문제되지 않았다면, 벌써 바다를 건너갔을 텐데, 바람 때문에 바다를 건너가지도 못하고,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예수님이 보셨습니다.
밤 사경쯤 되었을 때,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오셔서 바다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여기서 ‘밤 사경’은 새벽 3~6시를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전날에도 하루 종일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시달리셨을 텐데, 얼마나 피곤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시고, 바다 위를 걸어서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한밤중에 바다 위로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본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를 통해 제자들은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면서도 믿음이 작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작은 사람들은 두려움이 많습니다.
특히 귀신에 대한 두려움, 사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다. 과거에 죄를 많이 범했기 때문에 그것이 들통날까봐 두려워합니다.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에게는 두려움이 많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일수록 두려움이 많습니다. 이것은 믿음이 작은 사람들의 특징입니다. 믿음이 작기 때문에 자꾸만 걱정합니다. 사업이 잘되지 않을 것 같고, 암에 걸릴 것 같다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할수록 걱정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은,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두려워하는 것이 없습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가고, 주님을 만나고, 이 세상보다 더 좋은 곳에 가는데,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믿음 좋은 분들은 죽을 때에 얼굴이 아주 예뻐집니다. 행복해보입니다. 세상 고생은 끝나고, 천국에 가서 주님을 만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행복합니다. 그래서 믿음 좋은 분들은 죽을 때의 모습이 다릅니다.
다윗은 큰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골리앗 앞에서도 두려움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울 왕과 이스라엘의 군병들은 두려워서 떨며 골리앗 앞에 한 사람도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물맷돌 다섯 개를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그리하여 골리앗의 목을 베었습니다. 다윗은 어떻게 그토록 담대할 수 있었습니까? 다윗에게는 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나 이스라엘 군대처럼 두려워 떠는 사람들은 패배할 것이 뻔합니다. 그들은 싸우려고 생각하지 않고, 도망가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두려워서 싸우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살기 위해 도망가려고만 생각하는데,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생사화복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고, 하나님만 믿고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담대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외에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한밤중에 바다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라고 소리 지르며 무서워할 때,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4:27). 이처럼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여러분이 제자들처럼 두려워 떨 때에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주님이 “안심하라. 내가 너와 함께하고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주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왜 축복인지 아십니까?
저는 주님의 음성을 여러 번 들어서 압니다만,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면, 큰 믿음이 생깁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보면,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강한 믿음이 생깁니다.
사도행전 23장 11절에 보면, “그 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언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언하여야 하리라 하시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그 후에 보면, 바울을 죽이지 않으면,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던 유대인 40여 명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순간인데도 주님의 음성을 들은 사도 바울은 담대했습니다. 그에게 큰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성경을 많이 읽는 사람들에게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많이 읽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성경에서 말씀하신 것을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좋겠습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우리에게도 말씀하십니다.
예를 들어,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분들에게 주님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걱정하고 염려하고 있을 때에 이 말씀을 들으면, 평소에 알고 있던 말씀이지만, 얼마나 기쁘고 좋은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가 수영로터리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주차장으로 사용하려고 삼도물산의 건물을 살 때, 중도금을 지불하기 전에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하나님이 다 주실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한 푼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중도금 지불할 날을 1주일 앞두고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1주일 동안 금식하며 하나님께 “주신다고 하셨는데, 왜 주시지 않으십니까?”라고 따지듯 기도했습니다.
엄청난 액수의 중도금을 월요일까지 지불해야 했습니다. 주일 아침 새벽예배를 인도한 후에 강단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는데, 주님이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라고 기록된 이사야 45장 2~3절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으니 확신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혼자 좋아했습니다.
주일예배 시간에 다섯 번 설교해야 하는데, 금식하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어야 밥을 먹지, 해결되기 전에는 밥을 먹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금식하면서 주일예배 시간에 다섯 번 설교하면서 제가 기도하여 응답 받은 것을 간증했더니 성도들도 모두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헌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월요일에도 계속 금식했습니다. 낮 12시가 되어도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은행 업무 마감 시간이 되기 전, 은행에서 사무장님을 오라고 해서 갔습니다. 교회계좌로 중도금을 지불하고도 1억 8천만 원의 헌금이 더 들어왔습니다. 믿음 좋은 성도들이 감동을 받아 주보에 기록된 교회 은행계좌로 얼마씩 헌금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더 주시는 분이십니다. 모자라게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니 제게만 믿음이 생긴 것이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믿음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주신다는 음성을 들은 목사만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의 간증을 들은 성도들에게 믿음이 생기니까 자발적으로 헌금하여 헌금이 넘치게 들어왔습니다.
여러분 중에도 많은 문제를 갖고 있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의 마음에 큰 믿음이 생기고 있을 것입니다. 주님이 여러분에게도 말씀해주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음성을 들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생겼습니다. 담대한 믿음이 생긴 베드로는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습니다(마 14:28). 얼마나 흥분되었기에 베드로가 이렇게 말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오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담대하게 내려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기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아주 잠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30~33절에 보면,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이 광경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교훈을 깨닫습니다.
첫째, 베드로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에는 바다 위를 걸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한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바다를 보는 순간, 눈을 돌리는 순간, 의심이 생기고,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물에 빠졌습니다.
세상에 환난의 풍파가 일어나고, 어려운 문제가 생겨도 항상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만 바라보세요. 주님의 말씀만 붙잡으세요. 그러면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주님은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십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며 흔들리지 마세요. 속지 마세요. 신문을 열심히 보지 마세요. 세상의 뉴스를 열심히 듣지 마세요. 오직 주님만 바라보세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지 절대주권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붙잡으면, 믿음이 강해집니다. 그러나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우리의 믿음이 약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염려 속에 살게 되고, 두려움이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 왜 원망 불평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지 않고, 광야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화날 수밖에 없고 속상합니다. 믿음이 약해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의심이 생깁니다. 그래서 밤낮 원망 불평하다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말씀을 믿고 나아갔던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정복했습니다.
믿음 관리를 잘하세요. 믿음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사람의 말만 듣고, 세상만 바라보면 안 됩니다. 똑똑한 사람들은 세상을 분석하고 예측하는데, 조금만 좋지 않으면, 부정적인 말을 하고, 미리 걱정하는 것을 봅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그랬습니다. 현실이 아주 어렵고,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까, 늘 기적을 체험하면서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 많이 했습니다. 때가 되니 하나님이 모든 것을 준비해놓으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걱정한 것을 후회합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는 걱정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여러분, 세상을 바라보지 마세요. 오직 주님만 바라보세요. 예수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절대주권을 가지고 계십니다. 우리의 생사화복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살아가기 어렵다 해도 주님이 우리를 축복하시면, 우리는 축복 받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살리시면, 죽을병에 걸렸다 해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병 때문에 두려워하지 마시고, 주님을 바라보세요. 우리가 죽고 사는 것은 주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세상을 바라보며 걱정하지 마시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세요. 잘못된 생각은 잘못된 결과를 가져옵니다. 부정적으로 생각할수록 손해가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까’라고 생각하고, 좋은 생각을 많이 하세요. 하나님이 감동 받으실 만한 좋은 생각을 하시고, 좋은 계획을 세우세요. 사업이 어려워도 그것과 상관없이 마치 돈을 쌓아놓은 것처럼 생각하고, 주님을 위해 좋은 계획을 세우고, 좋은 것을 꿈꾸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일치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자주 변했습니다. 어떤 때는 믿음이 좋아보이다가도 어떤 때는 믿음이 형편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성령 충만해진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마치 바람에 흔들려서 일어나는 파도와 같습니다. 올라갈 때도 있고, 떨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충만하면, 담대해지고 흔들림이 없고 언제나 승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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